안양 KGC 인삼공사는 2010년대 이후 한국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왕조'였다. KGC가 창단 첫 우승을 차지한 2011-12시즌을 시작으로, 바로 지난 2022-23시즌 통합우승에 이르기까지 11년간 무려 4회의 챔프전 우승을 차지하며, 같은 기간 울산 현대모비스와 함께 최다 우승을 양분했다.
 
어느덧 통산 우승 횟수에서도 현대모비스(7회)-전주 KCC(5회)에 이어 단독 3위다. 특히 지난 2022-23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첫 정규리그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 동아시슈퍼리그(EASL) 초대 챔피언, 역대 챔프전 첫 7차전-연장전 끝 우승이라는 진기록을 수립하며 트레블(3관왕)을 휩쓸면서 사상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처럼, 영광의 최정점에 올랐다 싶은 순간 KGC에 뜻하지 않은 후폭풍이 찾아왔다. 팀의 주장이자 전설이었던 '원클럽맨' 양희종이 올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리그 베스트5에 올랐던 주전포인트가드 변준형은 백업 빅맨이었던 한승희와 함께 군복무로 팀을 비우게 됐다.
 
여기에 우승주역이자 프랜차이즈스타인 오세근(서울 SK)과 문성곤(수원 KT), 두 코어가 올해 FA(자유계약) 자격을 얻어 한꺼번에 팀을 떠났다. '현역 국내 최고의 토종빅맨'으로 꼽히는 오세근은 양희종과 함게 팀이 거둔 4번의 챔프전 우승을 모두 함께한 일등공신이었고, '양희종의 후계자' 문성곤은 2019-20시즌부터 전대미문의 4시즌 연속 KBL 최우수 수비 선수상을 석권한 리그 최강의 수비 스폐셜리스트였다.
 
장기로 비유하면 KGC로서는 차포는 물론이고 마상까지 한꺼번에 잃은 정도의 충격이다. 챔피언팀이 지난 시즌을 해피엔딩으로 마친지 불과 한달도 안 되어 우승주역들이 거의 '해체' 수준의 변화를 맞이하게 된 것은 KBL 역사에서도 전례가 드문 일이다.

2023년 여름은 10여년 간 KBL을 호령해 온 KGC의 '황금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리는 전환점으로 여겨지고 있다. KGC는 전신인 SBS와 KT&G를 거치며 프로 원년부터 줄곧 안양에서 역사를 이어왔지만,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농구팬들 사이에서는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한 팀이었다.
 
KGC는 1997년 원년부터 2010-11시즌까지 15시즌간 정규리그 통산 345승 396패(승률 .465)로 5할 이하의 성적에 그쳤다. 출범 원년에 정규리그 준우승을 거둔 것이 역대 최고성적이었고, 플레이오프에서는 간간이 4강이 한계로 챔프전에는 한번도 나가보지 못했다.
 
다른 팀과 달리 안양을 대표할만한 원클럽맨이나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할만한 선수도 전무했다. 2003-04시즌 정규리그 15연승 신화를 작성한 '단선생' 단테 존스, 2008-09시즌 런앤건 바람을 주도하며 KBL 최초의 6강 탈락팀 출신 정규리그 MVP로 등극한 주희정 정도가 그나마 잠깐 주목받았던 정도다. 이때까지만 해도 KGC는 확실한 우승권 강호나 인기팀도, 그렇다고 아주 약체팀도 아닌, 그야말로 어정쩡한 중위권팀의 전형이었다.
 
2000년대 후반들어 KGC는 작심하고 리빌딩에 돌입한다. MVP인 주희정을 SK로 트레이드하고 양희종을 군에 입대시키며, 사실상 2년간 성적을 포기하고 신인드래프트 지명권을 노려서 유망주를 끌어모으는데 집중했다. 승강제가 없는 프로 스포츠 리그의 특성상, 이러한 '탱킹(Tanking)'은 NBA(미 프로농구)에서 고질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점이자 꼼수로 지적된다.
 
하지만 결과는 어쨌든 대성공이었다. 마침 KGC가 탱킹에 돌입하던 시기는, 2000년대 후반부터 KBL에서 황금세대로 불리는 '08세대(00년대 학번-80년대생)' 유망주들이 속속 등장하던 시기와 겹쳤다. 3년연속 6강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던 KGC는 2011-12시즌 마침내 고대하던 '완전체'로 돌아왔다. 신인드래프트로 영입한 오세근-이정현-박찬희를 비롯하여, 트레이드-군복무를 마치고 합류한 김태술-양희종까지 젊음과 스타성을 겸비한 20대 선수들 위주로 그야말로 역대급 전력을 구축하게 된다. 이른바 '인삼신기'의 탄생이다.
 
이상범 감독이 이끌었던 KGC는 2011-12시즌 정규리그에서는 당시 최다승 신기록을 올린 원주 DB(44승)의 돌풍에 밀려 2위에 그쳤지만, 챔프전에서 압박수비로 돌풍을 일으키며 DB를 4승 2패를 격침시키고 마침내 꿈에 그리던 창단 첫 우승의 감격을 누리게 된다.
 
KGC는 2015-16시즌부터 김승기 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인삼신기 2기'의 개막과 함께 본격적인 왕조의 전성기에 돌입한다. KGC는 이때부터 최근 8시즌 동안 2018-19시즌을 제외하면 모두 5할 이상의 승률을 올렸고 모두 플레이오프에 진출(코로나19로 리그가 조기종료된 2019-20시즌은 제외)하며 3회의 챔프전 우승과 2회의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명실상부한 KBL의 지배자로 군림했다.
 
김승기 시대의 KGC가 구축한 또다른 이미지는 '화수분' 농구였다. 2010년대 KBL을 대표하는 스타였던 오세근-이정현은 말할 것도 없고, 박찬희-전성현-문성곤-이재도-변준형 등이 모두 올스타급 선수들로 성장하며 'KGC가 지명한 신인들은 스타가 된다.'는 전통을 세웠다.
 
물론 이들 모두 신인 1라운드 상위권에 지명될만큼 아마 시절부터 잠재력을 인정받은 유망주들이기는 했지만, 상위권 픽을 얻고도 막상 프로에서 기대보다 성장하지 못한 선수들도 수두룩한 농구판에서, 수많은 원석들을 잘 키워낸 KGC의 '육성' 능력은 충분히 높이 평가받을만 했다. 크리스 다니엘스-데이비드 사이먼-제러드 설린저-오마리 스펠먼 등 외국인 선수들을 뽑는 선구안 역시 수준급이었다.
 
하지만 전성기 시절에도 KGC에게는 불안한 징크스가 하나 있었다. 바로 몸값이 높아진 주축 선수들이 FA가 되면 모두 팀을 떠난다는 것이다. 반면 KGC가 외부에서 선수들을 영입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김태술-이정현-박찬희-전성현-이재도-문성곤 등, 양희종을 제외하고 KGC의 우승 주역중 팀에 끝까지 남은 선수는 아무도 없다. 여기에는 이상범과 김승기같은 우승 감독들도 포함된다. 김승기 감독은 팀을 떠난후 KGC 구단의 지원 부족과 프런트의 행태를 여러 차례 비판하다가 KBL로부터 경고를 당하기도 했다. 이는 KGC 구단이 투자에 인색하다는 이미지를 남겼다.
 
특히 자타공인 KGC의 상징이자 살아있는 전설로 꼽힌 오세근마저 커리어 말년에 SK로 전격 이적한 것은, 농구팬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오세근은 SK행이 확정된 이후 영구걸번과 원클럽맨 타이틀마저 포기하면서 이적을 결심한 데에 KGC 구단에 대한 실망감 작용했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찬란했던 인삼신기의 전성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이제 KGC는 새로운 전환점에 놓였다. KGC는 내부 FA였던 슈팅가드 배병준을 잔류시켰고, 외부 FA로 최성원-정효근-이종현을 잇달아 영입했다. KGC가 FA로 이렇게 많은 선수를 영입-보강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하지만 떠난 주축 선수들의 빈 자리를 메우기에는 무게감이 크게 떨어져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최성원은 수비형 선수에 가깝고, 정효근와 이종현은 기량이 전성기에 비하여 많이 떨어진 데다 큰 부상전력이 많아서 내구성과 안정감에 물음표가 붙는 선수들이다. 주포 오마리 스펠먼과 대릴 먼로와의 재계약 여부를 비롯하여 다음 시즌 외국인 선수 진용을 어떻게 꾸릴지도 아직은 불확실하다.
 
김상식 감독은 지난해 부임 첫시즌만에 3관왕을 이끌며 지도자 인생의 뒤늦은 봄날을 맞이하는 듯 했으나, 불과 1년만에 입장이 180도 바뀌어 다시 리빌딩을 시작해야하는 기구한 처지로 바뀌었다. 김 감독은 과거 서울 삼성-대구 오리온(현 고양 데이원) 등 리빌딩 시기를 맞이한 하위권 팀에서 지휘봉을 맡으며 엄청나게 고생했던 전력이 있다. 김 감독은 이제 올시즌의 성과가 단순히 '선수빨'이 아니었음을 증명해야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다음 시즌 KBL은 오세근을 영입한 SK를 비롯하여 최준용-허웅-이승현의 KCC, 양홍석이 가세한 LG, 문성곤과 허훈의 KT 등이 패권을 놓고 경쟁할 팀으로 꼽힌다. 반면KGC는 디펜딩챔피언이 무색하게 다음 시즌 6강진출도 장담할 수 없는 험난한 싸움을 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약 12년의 찬란했던 화양연화가 막을 내린 KGC의 미래는 이제 어디로 가게 될까.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안양KGC인삼공사 오세근 김상식감독 왕조 문성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