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 스틸컷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 스틸컷 ⓒ UPI코리아

 
* 이 기사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가족이 모두 모여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돔'(빈 디젤)과 '레티'(미셸 로드리게즈). '로만'(타이러스 깁슨), '테즈'(루다크리스), '램지'(나탈리 엠마뉴엘), '한'(성 강)이 로마로 작전을 나간 사이 그들은 불청객을 만난다. 바로 숙적 '사이퍼(샤를리즈 테론)'. 그녀는 새로운 빌런 '단테'(제이슨 모모아)의 존재를 알려준다. 오래전 돔 때문에 가족을 잃은 단테. 그는 로마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돔을 범죄자로 만든다. 이에 뿔뿔이 흩어진 패밀리. 그들은 각기 '제이콥'(존 시나)과 '쇼'(제이슨 스타뎀) 등 가능한 모든 친구를 모아 단테에게 반격할 준비를 한다. 

<인피니티 워>에는 미치지 못하다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아래 <분노의 질주 10>)를 보면 영화 하나가 떠오른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다. 둘은 여러 공통점이 있다. 시리즈 속 모든 인물이 집결한다. 가장 치밀하고 강력한 빌런도 등장한다. 몇몇은 대의를 위해 목숨을 희생한다. 종결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판을 까는 영화라는 점도 같다. 

그런데 두 영화의 인상은 사뭇 다르다. <인피니티 워>는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전개로 모두를 놀라게 했다. 동시에 기대감을 키웠다. 파멸적인 피해를 입은 영웅들이 타노스에게 어떻게 반격할지. <엔드게임>을 손꼽아 기다리게 만들었다. 

<분노의 질주 10>은 반대다. 주인공이 유례없는 위기에 빠지는 전개는 동일하다. 그런데 그 위기는 진짜 같지 않다. 새 빌런 단테도 타노스만큼의 위압감은 없다. 과거 주역들의 복귀는 반갑지만, 인상적이지 않다. 오히려 억지스럽다. 결말도 아쉽다. 놀랍지만, 기대감보다는 실망감이 더 크다. 이유는 명확하다. <인피니티 워>와 달리 <분노의 질주 10>은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끝난 준비 작업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 스틸컷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 스틸컷 ⓒ UPI코리아

 
잠깐 시선을 전편으로 돌려보자.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는 나름 인상적이었다. 자동차를 타고 우주로 향하는 무리수는 충격적이었지만, 시리즈의 난맥상을 정리한 서사는 돋보였다. 사실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통일성을 잃은 지 오래였다. 브라이언과 한의 빈자리는 컸다. 첫 편과 비교하면 장르도 크게 변했다.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는 가족의 귀환을 택했다. 그 중심에는 돔의 동생, 제이콥이 있었다. 제이콥은 성경 속 야곱 같았다. 야곱은 아버지의 축복을 둘러싸고 형과 갈등을 빚었다. 제이콥은 아버지와 진실을 숨긴 채 돔과 충돌했다. 진실을 알지 못한 돔은 제이콥을 패륜아로 비난했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오해를 풀고 화해했다. 긴 시간 헤어져 있던 가족은 마침내 하나 됐다. 

제이콥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도, 미아도, 심지어 브라이언도 직간접적으로 토레토 패밀리에 복귀했다. 돌아온 탕자, 제이콥의 서사가 중심을 잡아준 덕분에 다른 이들의 복귀는 비교적 매끄러웠다. 익숙한 얼굴이 재합류하면서 시리즈에 통일성도 생겼다. <분노의 질주: 더 맥시멈>를 기준으로 이야기가 나름 깔끔하게 연결됐다. 이처럼 <분노의 질주 9>라는 가족 드라마는 프랜차이즈를 떠나보낼 준비 작업을 깔끔히 끝마쳤다. 

레퍼런스를 잘못 써먹다

그런데 정작 <분노의 질주 10>는 달리지 않는다. 자기 역할이 <인피니티 워>와 다르다는 걸 망각한 듯 보인다. <인피니티 워>의 과제는 두 가지였다. 우주와 지구에서 활동하는 영웅들을 한데 모아야 했다. 동시에 타노스와의 대결을 그려내야 했다. <분노의 질주 10>은 첫 번째 과제를 이미 끝냈다. 전편에서 돔은 분명 모든 가족을 규합했다. 그들에게는 달릴 일만 남았다. 화끈하게 단테와 싸우면 그만이었다.

<분노의 질주 10>의 선택은 달랐다. 제작자 빈 디젤은 마지막으로 남은 가족까지도 전부 끌어모았다. 최종 빌런인 단테에 맞서기 위해 과거 빌런이었던 쇼와 사이퍼를 소환한다. 시리즈에서 하차한 줄 알았던 '홉스'(드웨인 존슨)도 불러온다. 심지어 오래전에 사망한 줄 알았던 '지젤'(갤 가돗)을 되살려낸다. 빈자리를 채울 새로운 멤버도 투입한다. '미스터 노바디'(커트 러셀)'의 부재는 그의 딸 '테스'(브리 라슨)가 대신한다. 8편에서 죽은 '엘레나'(엘사 파타키)의 여동생 '이사벨'(다니엘라 멜키오르)처럼 잊고 지나갈 뻔했던 가족도 챙긴다.

하지만 올스타전은 그다지 반갑지 않다. 이미 전편에서 끝난 가족 드라마를 중언부언하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또 가족이라는 이유로 시리즈에서 퇴장했거나 죽은 인물을 되살리니 긴장감이 없다. 단테가 돔을 위기에 몰아넣어도, 패밀리가 중 한 명이 죽어도 담담하다. 다시 살아날 테니까. 아무리 <분노의 질주> 시리즈가 가족애로 똘똘 뭉친 시리즈라 해도 과한 전개다. 시리즈를 향한 빈 디젤의 애정이 집착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이유다.

다른 문제도 있다. 영화는 돔과 단테의 대결을 보여주기도 벅차다. 그런데 다른 이야기가 자꾸 끼어든다. 흩어진 일행 중 일부는 쇼를 데려와야 하고, 다른 쪽은 사이퍼와 친해져야 한다. 돔은 테스와 함께 브라질로 가서 이사벨을 구해야 한다. 물론 어떻게든 각 에피소드를 하나로 이어 붙이려는 노력은 엿보인다. 가족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돔의 대사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대사 내용도 타이밍도 작위적인 나머지 설득력은 부족하다. 이처럼 구심점 없는 2시간 20분은 어지럽다. 

단테의 지옥이 펼쳐지다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 스틸컷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 스틸컷 ⓒ UPI코리아

 
잘못된 레퍼런스 활용은 단테의 서사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사실 단테라는 빌런의 모티브는 인상적이다. 그는 자신이 겪은 고통을 돔에게 그대로 되돌려주는 악당이다. 그의 이름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듯한 계획이다. 이탈리아 작가 단테가 창조한 <신곡> 지옥편 속 지옥은 인과응보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지옥에서 자기가 저질렀던 죄를 형벌로 되돌려 받는다. 

실제로 <분노의 질주 10>는 단테가 열어젖힌 지옥도를 보여준다. 단테는 <분노의 질주: 언리미티드>에서 돔 때문에 아버지와 재산을 모두 잃고 비참하게 살아야 했다. 그래서 그는 돔의 아들을 집요하게 노린다. 돔에게 가족을 잃은 슬픔을 안겨주기 위해서. 단순히 아들을 죽여 복수하려는 게 아니다. 살아 숨 쉬는 동안 가족을 차례로 잃고, 무력하게 바라봐야 하는 아픔을 돔에게 안기려 한다. 

단테는 가족애로 무장한 시리즈에 걸맞은 최종 빌런이라 할 수 있다. 돔에게 물리적 위협만 가하는 게 아니라, 그의 신조까지 위기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자기 가족을 챙기기 위해 다른 가족은 파괴해도 되는지. 그의 신조는 정녕 정의로운 것인지. 돔을 정신적으로 괴롭힌다. 여기까지만 보면 단테는 길고 길었던 가족 이야기를 끝내기 위한 비장의 무기로서 손색없다. 

밋밋하기만 한 지옥

문제는 단테라는 캐릭터의 완성도다. 영화는 토레토 패밀리를 다시 규합하는 데 너무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그 결과 단테라는 캐릭터에게 필요한 공간을 내주지 못했다. 잘못된 레퍼런스 활용의 또 다른 예시다. <인피니티 워>는 타노스가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악역의 신념과 철학, 위력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우주의 절반을 죽이는 살인자이자, 대의와 영웅을 존경하는 현자라는 입체적인 모습을 설득력 있게 보여줬다. 

단테에게는 그런 사치가 허용되지 않았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분노에 불타는 복수귀를 보여주는 게 전부다. 그 결과 남은 건 스테레오 타입이다. 단테는 소시오패스 살인범이라는 캐릭터의 전형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다. 개연성도 떨어진다. 그가 돔보다 언제나 한 발 앞서 계획을 완벽하게 실현하는 과정은 부자연스럽다. 평면적인 악역이 너무 완벽하고, 무턱대고 잔인하니 좋은 소재나 모티브도 힘을 쓰지 못한다.

<분노의 질주 10>이 비빌 언덕은 결국 액션이다. 현실감을 되찾은 액션이 눈길을 끈다. 물론 헬리콥터를 차로 격추하거나 대형 폭탄을 쫓아 로마 시내를 종횡무진 누비는 대목이 있기는 하다. 그래도 우주로 가거나, 잠수함과 싸우는 전편에 비하면 현실적인 느낌을 주도록 액션이 잘 짜여 있다. 5편인 <분노의 질주: 언리미티드>와 6편 <분노의 질주: 더 맥시멈>을 오마주한 일부 시퀀스가 대표적이다.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는 언제나 인상적인 팀 액션이 있었다. 토레토 패밀리가 한 팀으로 움직이며 악역을 막아내는 시퀀스는 늘 짜릿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다. 로마 시퀀스를 제외하면 뛰어난 팀 액션을 찾아볼 수 없다. 팀원들이 다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레이싱 장면이 스쳐 지나간 점도 감질난다. 물론 시리즈 정체성이 바뀐 지는 오래됐다. 하지만 시리즈의 기원을 생각하면 레이싱 과정이 너무 간단하다는 인상을 지우기는 어렵다.

결론적으로 <분노의 질주 10>은 한계가 명확한 10번째 시리즈다. 가족애 말고는 더 할 이야기도 없고, 카 액션도 한계가 찾아왔으며, 빌런도 매력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다운 스펙터클은 여전하지만, 특별함과 신선함은 없다. 과연 이 장수 시리즈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결과물만 놓고 보면 미래가 밝지는 않아 보인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potter1113)와 브런치(https://brunch.co.kr/@potter1113)에 게재한 글입니다.
영화리뷰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 빈 디젤 제이슨 모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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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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