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오월 햇살이 반갑다 했는데 어느새 덥다. 그래서인가 금요일쯤 되니 오르는 기온만큼 다들 감정의 온도가 올라가는 듯하다. 산만해진 아이들, 예민해진 어른들. 그럴 때면 책이고 뭐고, 리모컨을 들고 OTT 순례에 나서게 된다. 그렇게 만나게 된 <파어웨이(2023)>. 크로아티아의 바다 풍경만으로 밝아지던 여주인공처럼 영화 속 풍광 만으로도 머리가 맑아진다. 

크로아티아의 풍경과 함께 이 영화에서 리모컨을 멈춘 이유는 주인공이 내 또래로 보인다는 점도 작용했다. 보정속옷에 자신의 몸을 맞추려 안간힘쓰는 군살 넘치는 여성(알고 보니 주인공은 그래도 나보다 좀 젊었다)은 독일에 사는 터키계 가족의 안주인 체이네프 알틴(나오미 크라우스 분)이다. 
 
 파어웨이

파어웨이 ⓒ 넷플릭스

 
덜컥 크로아티아로 떠나버린 주부 

그녀의 하루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친정아버지와, 세대가 다른 딸은 아침 식탁에서부터 대놓고 으르렁거린다. 남편은 도통 그녀에게 관심이 없고 바쁘다고만 한다. 그런데 오늘이 다른 날도 아닌 어머니 장례식 날이다. 장례식 준비를 위해 부모님의 집을 찾은 변호사로부터 서류 봉투를 받는다. 

그 안에 든 건 크로아티아 출신 어머니가 사 둔 집 한 채의 계약서이다. 아버지조차 모르던 일, 어머니는 어쩌자고 그 먼 곳에 집을 사신 것일까. 그런데, 그 계약서가 그녀 삶의 치트키가 될 줄이야.

아버지의 장례식 복장에서부터 손님 초대까지 장례식일을 일일이 준비하는 알틴, 그런데도 막상 추도사를 남편에게 맡긴다. 사람들 앞에서 말 하는게 자신이 없단다. 그런데 그 '남편'이 정작 장례식에 등장하지 않았다. 제 아무리 식당 일이 바쁘다손치더라도 장모님 장례식인데, 참다못한 알틴이 식당으로 찾아나선다.

그런데 남편이 웃고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한참이나 어리고 젊은 여자 신입 셰프가 있다. 남편이 저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는 게 도대체 얼마만이던가. 벼락 맞은 듯 그 사실을 깨달은 알틴은 허겁지겁 당황해서 그녀를 붙잡고 변명을 늘어놓는 남편을 두고 자리를 떠난다. 어디로? 어머니의 집이 있다는 크로아티아로.   

바네사 요프 감독의 <파어웨이>는 나오미 크라우스와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아버지의 길>의 고란 보그란을 주인공으로 하는 로맨틱 코미디 성격의 영화다.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성과 판타지를 차치하고 보면, 제목 그대로 여주인공의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 된다.  

자고 일어나 옆에 잠든 요시프(고란 보그란)을 보고 식겁한 것도 잠시, 문을 박차고 나와 마주한 바다에 반하고 만다. 창문조차 없는 창고 같은 오두막이지만, 그 문을 열고 나서면 온전히 바다로 향할 수 있다. 풍광에 반한 것도 잠시, 그녀는 그 집을 고쳐 '에어비엔비'로 돈을 벌고자 한다.  

에어비엔비에 놓을 가전제품 준비를 서두르는 알틴 앞에서 그녀와 밤을 보낸 남자가 태클을 건다. 에어비엔비 따위로 그 집이 가진 고유한 영혼과 역사를 무너뜨릴 수 없다나? 

그녀 집 앞에 텐트를 치고 자고 일어나면 염소 젓을 먹고, 고기잡이를 하고, 카페 알바에 점원까지, 이른바 섬의 '홍반장' 역할을 하는 사내는 크로아티아의 전통을 어해서든 지켜가려고 한다. 그런 그의 입장은 바다를 배경으로 아름답게 울려퍼지는 섬 사람들의 합창으로 대변된다. 
 
 넷플릭스 영화 <파어웨이> 한 장면.

넷플릭스 영화 <파어웨이> 한 장면. ⓒ 넷플릭스

 
 넷플릭스 영화 <파어웨이> 한 장면.

넷플릭스 영화 <파어웨이> 한 장면. ⓒ 넷플릭스

 
오두막의 공기가 모든 것을 바꿨다

알틴도 조금씩 변해간다. 섬의 시장에 들러 편한 원피스를 사고, 자전거를 타고 이곳저곳을 누빈다. 말 한 마디 통하지 않던 크로아티아 사람들과도 익숙해져 간다. 거침없이 바다에 뛰어드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거기엔 요시프도 있다.

영화에서 크로아티아 풍광만큼 시선을 끄는 것이 바로 여주인공 변화다.

요시프와 하룻밤을 보내고 '나신' 그대로 자유롭게 아침 식사를 하던 중 딸이 찾아온다. 놀란 딸은 다그친다. 내가 떠나야 하는데 왜 엄마가 먼저 떠난 거냐고. 그런데 알틴이 웃는다. 늘 딸의 말이라면 쩔쩔매던 알틴인데, 오두막의 공기가 그녀를 변하게 했다. 남편이 찾아왔다. 다시 잘 해보잔다. 요시프, 남편, 아버지, 그리고 딸까지 모두에게 말한다. 맛있는 저녁을 해줄테니, 다같이 먹고, 다같이 떠나라고. 

크로아티아의 바다와 함께 그녀를 변화시킨 건 돌아가신 엄마가 남긴 일기장이었다. 전장으로 떠난 남편, 딸과 함께 남은 어머니는 행복을 위해 이 섬을 떠났다. 그리고 독일로 가서 지금의 아버지를 만나 안정을 찾았다. 그리고 딸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너는 너만의 행복을 찾으라고.

<파어웨이> 속 삼대 모녀는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행복을 찾아 나선다. 행복과 안정을 찾아 섬을 떠난 알틴의 어머니, 이제 자신의 행복을 찾아 섬으로 온 알틴, 그리고 커밍아웃과 함께 이탈리아로 떠나겠다는 딸. 영화는 행복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길을 찾는 과정에 있다고 말한다.
파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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