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 포스터

영화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에드긴(크리스 파인 분)은 한때는 명예로운 기사였으나 아내를 잃은 후 도둑으로 전락한 신세다. 그는 소피나(데이지 헤드 분)의 제안으로 망자를 되살리는 '부활의 서판'을 훔치기 위해 홀가(미셸 로드리게즈 분), 사이먼(저스티스 스미스 분), 포지(휴 그랜드)와 함께 '코린의 성'에 잠입했다가 발각되고 만다. 위기에 처한 에드긴은 포지에게 딸 키라(클로에 콜맨 분)와 부활의 서판을 부탁하고 홀가와 붙잡힌다. 

몇 년 후 에드긴은 홀가와 탈옥에 성공하여 키라와 부활의 서판이 있는 네버윈터로 향한다. 포지가 영주로 있는 네버윈터에 도착한 두 사람은 사악한 마법사가 부리는 레드 위저드 군단의 일원인 소피나와 포지가 꾸민 음모로 인해 코린의 성에서 붙잡혔음을 알게 된다. 처형  당할 위기를 모면한 에드긴은 자길 버렸다는 딸의 오해를 풀고 부활의 서판을 손에 넣기 위해 홀가, 사이먼, 터전을 빼앗고 부족을 처형한 포지에 맞서는 도릭(소피아 릴리스 분), 레드 위저드 군단과 악연으로 얽힌 젠크(레게 장 페이지 분)와 힘을 모은다.
 
 영화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의 한 장면

영화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1974년 미국의 TSR이 출시한 TRPG(Tabletop or Table-talk Role Playing Game, 사람들이 테이블에 모여 앉아 대화를 통해 진행하며 각자 맡은 역할을 연기하는 게임) <던전 앤 드래곤>은 판타지 세계관에 RPG라는 개념을 도입한 기념비적인 게임으로 유명하다. 이후 <던전 앤 드래곤>은 여러 판본으로 만들어졌고 현대의 롤플레잉 게임과 롤플레잉 비디오 게임 산업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던전 앤 드래곤>은 책, 게임, 장난감, 애니메이션 등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산업을 형성한 인기 브랜드답게 몇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결과는 끔찍했다. 그나마 대중에게 알려진 작품은 배우 제레미 아이언스가 악역으로 등장한 영화 <던전 앤 드래곤>(2000)으로 미국의 평론가 로저 이버트로부터 "과장된 대사의 중학교 연극"이란 혹평을 면치 못했고 제작비 4500만 달러를 들여 전 세계에서 3400만 달러를 벌어 적자를 기록하는 대실패를 거뒀다.

1억 5천만 달러로 제작한 블록버스터 영화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2023)는 이전에 나온 영화들과 연결되지 않는, 리부트한 작품이다. 외형상으론 TRPG <던전 앤 드래곤> 시리즈의 다섯 번째 판본의 세계관인 포가튼 렐름을 가져왔으나 전개 자체는 게임과 그다지 상관이 없다. 게임의 인물, 장소, 아이템, 크리처 등을 참고하되 복잡한 설정을 단순한 스토리(기본적으로 네댓 명이 팀을 구성하여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이 이어지는 식이다)에 맞춰 매끄럽게 넣어 새로이 혼합했다. 제작진은 "모두(게임의 팬과 게임을 하지 않은 관객)를 위한 영화"임을 강조한다.
 
 영화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의 한 장면

영화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의 가장 큰 특징은 '유머'다. 영화의 연출과 각본을 맡은 조나단 골드스타인 감독과 존 프란시스 데일리 감독이 이전에 코미디 영화 <베케이션>(2015), <게임 나이트>(2018)를 공동 연출하고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 상사>(2011),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2>(2013), <스파이더맨: 홈커밍>(2017) 등 코미디를 기반으로 한 각본을 쓴 바 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재능을 십분 살려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웃음을 만들었다. 타이밍도 아주 좋다. 특히 시체를 되살려서 질문하는 묘지 장면과 젠크가 주위를 썰렁하게 하는 대사는 보는 이의 배꼽을 빠지게 한다. 

한편으로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고귀한 영웅과는 거리가 먼, 어딘가 허술한 캐릭터들이 저마다 가진 능력을 발휘하여 위기를 헤쳐 나가는 과정을 유쾌하게 그린 영화의 톤 앤 매너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를 연상케 한다. 리더격인 에드긴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의 스타로드(크리스 프랫 분)와 빼닮았다. 팀의 구성원끼리 티격태격하는 모습도 비슷하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에 나온 유명 배우를 카메오로 등장시킨 센스도 눈길을 끈다. 마치 <반지의 제왕>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만난 느낌이다.

몇몇 장면의 연출은 <어벤져스>(2012)의 헐크가 로키를 패대기를 치는 대목이나 카메라의 구도와 움직임을 그대로 가져왔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어벤져스> 등 다수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작품을 만든 바 있는 프로듀서 제레미 랫챔이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에 참여한 점에 주목할 필요성이 있다. 제작사는 처음부터 <왕좌의 게임>, <반지의 제왕> 같은 무거운 판타지물과 결이 다른, 마블 스타일을 가미한 가벼운 판타지물을 목표로 삼았던 것이다.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할리우드의 다른 장르에 끼친 영향으로 봐야 한다.
 
 영화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의 한 장면

영화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그동안 게임을 영화로 옮기는 시도는 대부분 실패에 그쳤다. 성공 사례는 <레지던트 이블>(2002), <사일런트 힐>(2006) 등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러나 최근의 분위기는 다르다. <명탐정 피카츄>(2019), <수퍼소닉>(2019), 드라마 <더 라스트 오브 어스>(2023) 등이 창의적인 각색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2023)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는 원작 게임을 몰라도 상관이 없다. 원작 게임에 얽매이지 않은 채로 독자적으로 세계관을 구축한 다음 볼거리와 웃음을 잔뜩 채웠기 때문이다. 크리스 파인, 미셸 로드리게즈, 레게 장 페이지, 저스티스 스미스, 소피아 릴리스, 휴 그랜트 등 캐스팅도 훌륭하다. 장르의 팬들이 기대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있다. 

미국의 영화 전문 매거진인 '인디와이어'의 한 평자는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를 "성공적으로 제작된 최고의 판타지 모험 영화"라고 평가했다. 이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또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나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를 잇는 새로운 '액션 어드벤처' 시리즈를 기대해봄 직한 근사한 시작이다. 그리고 게임을 영화로 옮긴 성공 사례가 하나 추가됐다. 29일 개봉.
크리스 파인 미셸 로드리게즈 휴 그랜트 소피아 릴리스 저스티스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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