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부두 스틸컷

▲ 8부두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해양수산부 산하 한국해양수산연수원에서 항해사 교육을 받은 일이 있다. 3급 항해사 자격 취득을 위해 2년 가까운 시간을 들여야 하는 국책 프로그램이었는데, 그중 몇 개월을 부산 남구 감만동의 감만시민부두에서 지냈다. 이곳은 연수원 실습선이 정박된 모항으로, 실습생들 선상생활을 익히기 위해 항해를 하지 않을 때도 실습선 안에서 생활해야 했기 때문이다.
 
빡빡한 교육일정을 소화하랴 동기들과 부대끼며 생활하랴 정신없는 생활이었다. 그런 중에도 이따금씩 휴가를 얻어 일대를 쏘다닐 기회를 얻고는 하였는데, 가끔은 선박이 매인 항구 일대를 거닐며 술을 한 잔 걸치는 여유를 부리곤 하였다.
 
8부두에 대해 알게 된 건 그때 즈음이었다. 채 1km가 떨어져 있지 않은 부산항 제8부두엔 통상의 선박과 달리 무채색으로 잘 보이지 않게 칠해진 자동차 운반선 등이 매여 있어 궁금증을 자아냈다. 나중에 그곳을 구글지도와 다음로드뷰로 찾아본 뒤에야 그곳이 정보가 차단된 군사기밀지역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8부두 스틸컷

▲ 8부두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미군의 살아있는 탄저균 반입, 그 후
 
8부두는 기실 부산 일대에선 아는 사람은 아는 시설이다. 2015년 미국이 살아있는 탄저균을 페덱스 택배를 통해 오산 공군기지에 보내며 논란이 된 일이 있다. 감염되면 치사율이 95%에 이르는 치명적인 세균을 그것도 살아있는 채로 택배로 배송한 것이다. 사건이 알려지자 미군에선 '한 번 뿐인 실수'이며 '잘못 보낸 것'이라고 잡아떼었으나 결국 국내에 세균실험시설을 두고 실험을 해온 정황이 알려져 파문이 일었다. 일부 시민단체가 이를 고발하기도 하였으나 수사는 흐지부지, 이렇다 할 결과도 기대할 수 없는 노릇이다.
 
8부두는 미군 시설이다. 과거 주피터 프로젝트, 현 센토시스템이라 이름 붙은 세균전 부대 운용계획의 핵심 시설로 추정된다. <부산일보> 보도로 주피터 프로젝트 예산의 삼분의 일 정도가 8부두에 투입됐단 사실이 알려졌고, 세균전 계획과 관련한 시료들이 이곳에 반입된 사실이 폭로되며 주한미군이 이를 인정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변화는 없었다.
 
신나리 감독의 < 8부두 >는 이에 대한 다큐다. 처음엔 지역 미술가의 작품을 다루려 했던 것이 방정아 화가의 작품 '미국, 그의 한결 같은 태도'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시민을 농락하는 주한미군과 한국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바뀌었다. 제작진은 미군이 무려 20여 년간이나 한국에서 고위험 생화학실험을 몰래 시행해왔다고 말한다. 탄저균 배송 사태로 논란이 인 뒤에도 세균을 국내로 들여와 실험을 해나가길 주저하지 않는다.
 
8부두 스틸컷

▲ 8부두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미술에서 출발해 미군 비판으로 나아가는
 
방 작가는 제 작품을 통해 이 같은 세태를 비판한다. 부산에 기대앉은 거대한 사내는 주피터 프로젝트의 주피터로, 그 막강한 권능에 비해선 다소 지쳐 있는 표정이다. 그러나 그가 깔고 앉은 건 부산시 그 자체로 상황의 모욕성에 대하여 작품은 생생히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주피터 곁엔 또 그만치 큰 여성 세 명이 있는데, 작가는 그것이 '자갈치 아지매'로 대표되는 부산의 드센 여성성이라 이야기한다. 말하자면 지친 주피터를 평범한 시민이 잡기를 바라는 어떠한 염원 같은 것이라 보아도 되겠는데, 현실에서 주한미군의 세균반입이며 실험을 전혀 제지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을 고려하면 다분히 역설적인 감정을 자아낸다 하겠다.
 
신나리 감독은 약 9분에 이르는 짧은 영상의 대부분을 방 작가에게 내어준다. 작가는 카메라 앞에 서서 뒤에 놓인 제 커다란 그림을 짚어 하나하나의 상징을 이야기한다. 그 자체로 영화는 도입부에서 비춰진 8부두의 삭막한 풍경과 음산한 음악과 맞물려 비판적 담론을 형성한다. 다른 많은 예술이 그러하듯 다큐 역시 생물이라, 미술과 지역사회를 향하던 이 다큐가 한미동맹과 생화학전, 시민을 우롱하는 위험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가는 모습이 꽤나 신선하다.
 
코로나19 이후 문을 닫은 인디다큐페스티발을 그리워하다 못해 다큐인들이 모여 새로 문을 연 반짝다큐페스티발이 26일까지 서울 인디스페이스에서 개최된다. < 8부두 >를 포함한 신나리 감독의 작품들이 첫날 상영된 가운데 또 많은 의미 깊은 담론들이 다큐의 형식으로 관객을 맞을 준비를 마쳤다. 내게 < 8부두 >가 그러했듯, 이곳을 찾는 누구에게 의미 깊은 이야기를 전할 작품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기회는 움직이는 이가 잡을 수 있는 법이다.
 
반짝다큐페스티발 상영 시간표

▲ 반짝다큐페스티발 상영 시간표 ⓒ 반짝다큐페스티발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8부두 신나리 방정아 반짝다큐페스티발 김성호의 씨네만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