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를 벗었다. 버스나 지하철, 극장과 거리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니 일상은 코로나19 유행 전으로 돌아온 듯하다. 학교에서도 일터에서도, 쇼핑몰과 공연장, 식당도 전과 다름없다. 마스크 없는 일상은 대체 얼마만인가 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돌아온 건 아니다. 어떤 건 돌아오지 않았다. 그중엔 귀하고 정든 무엇도 있다. 다큐인과 다큐를 사랑하는 이들의 축제, 인디다큐페스티발도 그중 하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예상관객수 감소와 줄어든 정부지원으로 잠정중단된 이 영화제는 한국 영화계, 그중에서도 다큐영화제에 커다란 빈자리를 남겼다. 독립 다큐멘터리가 관객과 만나는 귀한 통로 하나가 없어지고 만 것이다.
 
사라진 만남을 특히 아쉬워한 이들이 있다. 다큐멘터리 감독이기도 한 조이예환, 오재형, 최종호, 명소희, 김수목이 그들이다. 이들은 봄과 함께 찾아오던 다큐축전을 어떻게든 이어나가겠노라고 다짐하였던가 보다. 발품을 팔고 도움을 요청한 끝에 3일 간의 다큐축전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들의 노력 뒤로 수많은 후원자들의 도움이 이어졌다. 그 결과로 오는 26일까지 서울 인디스페이스에서 '반짝다큐페스티발'이 열리게 된 것이다.
 
반짝다큐페스티발 포스터

▲ 반짝다큐페스티발 포스터 ⓒ 반짝다큐페스티발

 
인디다큐 빈 자리, 우리가 메운다!
 
반짝다큐페스티발은 공모를 받아 관객 앞에 내보일 작품들을 선정했다. 공모로 모인 중·단편 독립다큐 21편과 특별초청작 5편이 상영된다. 이곳이 아니라면 관객 앞에 보일 기회를 얻기 어려운 여러 작품들은, 또 이곳이 아니라면 그와 같은 작품을 만나볼 수 없는 관객들은 서로에게 귀한 기회를 놓칠 수가 없다고 증언한다.
 
24일 저녁 7시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개막식은 다큐 감독과 제작자, 관련업계 종사자, 무엇보다 영화와 다큐에 대한 열망을 지닌 이들로 가득 메워졌다. 사회자로 나선 조이예환과 서혜림 감독의 유쾌한 진행에 참석자들은 시종 웃음을 터뜨렸다. 코로나가 우리들로부터 정말 앗아간 귀한 건 무엇도 없다는 듯한 낭랑한 웃음들이었다.

그렇고 그런 마음으로 대충 영화나 보다 가야겠다 싶었던 나를 반성하며 참석한 이들로부터 비어져 나오는 열기에 가만히 마음을 대어보았다. 짜게 식어 있던 마음이 조금쯤 데워지는 느낌이었다.
 
반짝다큐페스티발 상영 시간표

▲ 반짝다큐페스티발 상영 시간표 ⓒ 반짝다큐페스티발

 
병마와 싸우는 감독의 따스한 편지
 
이후 순서엔 신나리 감독의 작품 두 편이 연달아 상영됐다. 신나리 감독전이란 이름으로 모두 세 편의 영화를 상영하기로 한 중 두 편이 개막식에 틀어진 것이다. 사회자들은 신 감독이 투병 중이며 요 근래에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영 전 신 감독이 보내왔다는 짧은 글귀엔 제게 인디다큐페스티발이 시리우스였듯, 반짝다큐페스티발이 이곳을 찾은 관객에게 시리우스가 되길 기원한다는 마음이 담겨있었다. 죽음 앞에서 더욱 삶을 생각하게 되었을 그녀에게 지구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밝은 별빛이 열망이고 또 위안이 되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개막식에 상영된 영화는 <8부두>와 <붉은 곡>이었다. 이중 <8부두>는 따로 다룰 가치가 있는 것이니, 이 글에선 <붉은 곡>에 대하여 간략히 적어본다.
 
15분 짜리 짧은 다큐는 신나리 감독의 여러 작품이 그렇듯 부산을 배경으로 한다. 부산 중에서도 외곽인 기장군 일광면이 무대이며, 때는 일제 강점기 시기로 훌쩍 넘어간다. 이 시기 일광면엔 외지인들이 모여든다. 한반도에서 금을 캐기 위해 일본이 개발한 광산이 이곳에 있었던 탓이다. 이곳 역시 징용된 조선인들이 동원돼 노역했으나 생사를 전할 수 없는 곳으로 끌려간 다른 징용인들에 비하면 형편이 크게 나은 곳이었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광산으로 흘러들어왔고 덕분에 이곳이 북적였던 때가 있었다.
 
붉은 곡 스틸컷

▲ 붉은 곡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빼앗긴 땅, 끌려간 사람들, 그리고 오늘
 
그러나 일제는 결국 패망하고 그들이 물러간 뒤 이곳은 한국인의 땅이 되었다. 광산은 폐쇄되었으나 흙과 물엔 중금속에 오염된 붉은 빛깔이 그대로 나타난다. 감독은 나물을 다듬는 할머니의 목소리로, 또 오래 산 어느 할아버지의 목소리로 옛 이야기를 전한다. 혹시 남은 금이 있을까 하여 퇴직금을 털고 포크레인을 끌어 땅을 파내려간 이들의 이야기도 다룬다. 그로부터 일어난 나름의 감상들은 영화 위에 조금씩 덧붙여진다.
 
<붉은 곡>의 관심은 이후 <녹>과 <뼈>로 확장된다. 신나리 감독은 강제징용의 역사를 추적하는 몇 안 되는 한국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었고, 그로부터 오늘을 사는 이들이 역사를 어떻게 돌아보아야 하는지를 일깨운다.
 
반짝다큐페스티발이 새롭게 조명한 신나리 감독과 그의 작품들이 나는 몹시 새로워서, 그녀가 오랫동안 천착했던 문제들의 역사성이 또한 낯설어서, 나는 이 모두를 알지 못했던 스스로가 조금쯤 민망하였다. 그리고 나와 이 작품들을 만나게 한 반짝다큐페스티발에 감사했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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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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