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9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영화를 좋아하는 남학생들은 대부분 홍콩영화를 좋아했다. 같은 아시아권의 영화라 접하기 쉬웠고 아직 기술이나 제작 노하우가 부족했던 한국에 비해 양질의 영화들을 빠른 속도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당시 홍콩영화를 좋아하는 남학생들은 영화취향에 따라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됐다. 그 중에서도 주윤발과 오우삼 감독으로 대표되는 어두운 분위기의 홍콩 누아르를 좋아하는 유형과 성룡과 이연걸이라는 걸출한 배우들이 이끌었던 액션과 무협영화들을 좋아하는 유형이 '양강'을 형성했다. 그리고 그리 많지 않은 유형들 중에는 한국에선 홍콩 현지 만큼 '주류'가 아니었던 주성치의 코미디 영화를 좋아하는 마니아들도 있었다.

이렇게 세 분류로 나뉘어지는 홍콩영화를 좋아하는 남학생들 중에서 '홍콩의 멜로영화'를 좋아하는 남학생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나오면서 '홍콩 멜로'에 대한 관객들의 인식은 크게 변했다. 홍콩에선 1994년, 국내에선 1995년에 개봉해 액션과 누아르에 익숙하던 관객들의 메마른(?) 정서를 촉촉하게 적셔준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이었다.
 
 <중경삼림>은 2013년과 2021년,2022년 세 번에 걸쳐 국내에서 재개봉했다.

<중경삼림>은 2013년과 2021년,2022년 세 번에 걸쳐 국내에서 재개봉했다. ⓒ (주)디스테이션

 
독창적인 영상미의 아시아 대표 감독

왕가위 감독은 독창적인 영상미와 허무, 고독의 주제를 다룬 로맨스로 1990년대 중·후반 홍콩과 아시아권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큰 명성을 누렸다. 중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홍콩으로 이주한 왕가위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많은 영화와 문학 작품들을 접하며 자랐고 80년대 초반부터 각본가로 활동하다가 1987년 유덕화와 장만옥, 장학우 등이 출연한 <열혈남아>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했다.

장편 데뷔작 <열혈남아>로 홍콩 금상장영화제 작품상 후보에 오른 왕가위 감독은 1990년 고 장국영의 맘보춤이 큰 화제가 됐던 <아비정전>으로 금상장과 대만 금마장 영화제의 감독상을 휩쓸며 홍콩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떠올랐다. 왕가위 감독은 <아비정전> 이후 직접 제작사를 설립해 장국영과 양조위, 임청하, 장만옥,양가휘, 장학우 등 호화캐스팅을 자랑하는 무협영화 <동사서독>을 준비했다.

하지만 워낙 많은 자본이 들어간 데다가 왕가위 감독 특유의 느린 촬영 스타일 때문에 2년이 넘도록 촬영이 끝나지 않았다. 왕가위 감독은 <동사서독> 촬영이 중단된 사이 빠르게 영화 한 편을 찍었는데 그 작품이 바로 <중경삼림>이었다. 그리고 왕가위 감독이 빠르게 만든 <중경삼림>은 아시아 전역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중경삼림>은 왕가위 감독이 크게 공을 들인 <동사서독>보다 더욱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 됐다. 

1995년 <중경삼림>의 후속작이라 할 수 있는 <타락천사>를 선보인 왕가위 감독은 1997년 드디어 자신의 진정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해피 투게더>를 선보였다. 왕가위 감독은 <해피 투게더>로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지만 <해피 투게더>는 국내에서 동성애를 다룬 영화라는 이유로 개봉이 1년이나 미뤄지기도 했다. 그리고 왕가위 감독은 2000년 'BBC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영화 2위'에 뽑힌 또 하나의 명작 <화양연화>를 만들었다.

왕가위 감독은 2004년 양조위와 장쯔이, 기무라 타쿠야 등이 출연한 < 2046 >을 연출했고 2007년에는 주드 로 등 서양배우들이 출연한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를 만들었다. 2008년 <동사서독>의 필름을 복원하고 재편집한 <동사서독 리덕스>를 선보인 왕가위 감독은 2013년 <더 글로리>의 송혜교가 출연했던 <일대종사>를 연출했다. 왕가위 감독은 <2046>의 세계관을 잇는 차기작 <블러섬>을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준비하고 있다.

은퇴한 밴드도 재결합하게 만든 영화의 힘
 
 같은 세계관의 두 이야기를 다루는 <중경삼림>에서는 1부와 2부의 등장인물이 한 화면에 잡히는 장면이 곳곳에 등장한다.

같은 세계관의 두 이야기를 다루는 <중경삼림>에서는 1부와 2부의 등장인물이 한 화면에 잡히는 장면이 곳곳에 등장한다. ⓒ (주)디스테이션

 
사실 <열혈남아>와 <아비정전>이 나올 때만 해도 국내에서 왕가위 감독의 위상은 그리 높지 않았다. 하지만 1995년 <중경삼림> 개봉 후 국내에서 왕가위 감독의 마니아들이 급증했고 이후 많은 한국영화와 CF 등에서 왕가위 감독의 촬영기법과 스타일을 많이 모방 및 오마주했다. 특히 1997년 고 최진실과 김민종, 장동건 등이 출연했던 <홀리데이 인 서울>은 노골적으로 왕가위 감독의 스타일을 흉내 냈던 영화다.

물론 <중경삼림>을 비롯한 왕가위 감독의 영화들은 많은 마니아들을 거느린 만큼 그의 스타일과 작품세계를 좋아하지 않는 관객들도 존재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작년 칸 영화제에서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이었다. 박찬욱 감독은 과대평가된 대표적인 영화 중 하나로 <중경삼림>을 꼽으며 혹평한 바 있다.

<중경삼림>은 금발 가발의 여인(임청하 분)과 경찰 223(금성무 분)의 이야기를 다룬 1부와 실연 당한 경찰 663(양조위 분)과 그를 좋아하는 페이(왕페이 분)의 이야기를 다룬 2부로 나눠진다. 왕가위 감독의 스타일리시한 촬영과 독창적인 연출, 그리고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 때문에 <중경삼림>의 독특한 분위기를 이야기할 때는 주로 1부가 많이 언급된다(금발 가발을 쓴 임청하의 비주얼 역시 당시로선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두 주인공이 서로 가까워질 시간도 없이 다소 허무하게 끝나 버리는 금발가발여인과 경찰223의 이야기보다는 로맨틱코미디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2부가 관객들이 보기엔 훨씬 수월하다. 특히 우연히 경찰663의 집 열쇠를 습득하게 된 페이가 아무도 없는 경찰663의 집에서 모형 비행기를 들고 장난을 치면서 집안을 정리하는 장면과 경찰663에게 들키고 놀라 도망치는 장면은 관객들을 미소 짓게 만들기 충분했다.

<중경삼림>에서 페이가 좋아하는 노래로 나오는 마마스 앤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리밍>은 2부가 진행되는 내내 자주 흘러 나오며 관객들의 뇌리에 강하게 꽂히는 OST다. 1965년에 발매된 이 노래는 국내에선 크게 인지도가 없었는데 <중경삼림>에 삽입된 것을 계기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미 활동을 중단했던 밴드 마마스 앤 파파스가 <중경삼림> 개봉 후 내한공연을 위해 다시 뭉쳤을 정도.

대배우로 성장한 <중경삼림>의 경찰663
 
 양조위는 <중경삼림> 개봉 29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중화권을 대표하는 배우로 군림하고 있다.

양조위는 <중경삼림> 개봉 29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중화권을 대표하는 배우로 군림하고 있다. ⓒ (주)디스테이션

 
대만에서 태어나 주로 홍콩과 같은 중화권에서 활동한 일본과 대만의 혼혈배우 카네시로 타케시는 국내에서는 금성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배우다. <중경삼림>에서 약간의 백치미를 가진 경찰 223을 연기하며 국내에서 많은 인기를 얻은 금성무는 이듬 해 왕가위 감독의 또 다른 영화 <타락천사>에도 출연하며 중화권 스타로 급부상했다. 2008년과 2009년에는 오우삼 감독의 <적벽대전> 시리즈에서 촉나라의 제갈량을 연기하기도 했다.

1992년 <동방불패>를 통해 단숨에 홍콩 최고의 여성무협배우로 떠오른 임청하는 커리어 대부분을 무협액션 장르의 시대극에만 출연했다. <중경삼림>은 임청하가 출연했던 몇 안 되는 현대극 중 한 작품인데 많지 않은 대사와 썩 길지 않은 출연분량에도 특유의 카리스마를 뽐내며 영화를 빛냈다. 하지만 임청하가 <중경삼림> 이후 결혼과 함께 영화계를 떠나면서 <중경삼림>은 임청하의 팬들에게 더욱 애틋한 작품이 됐다.

<중경삼림>이 개봉한 지 3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중화권 최고의 배우로 군림하고 있는 양조위는 30대 초반의 젊은 시절 <중경삼림>에서 왕페이와 풋풋한 멜로연기를 선보였다. 연인에게 실연을 당한 경찰663 역을 맡은 양조위는 <중경삼림>을 통해 1994년 대만 금마장과 1995년 홍콩 금상장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중경삼림>은 양조위가 홍콩의 스타배우로 자리잡게 한 계기를 마련해준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왕페이라는 본명보다 90년대 활동명이었던 왕정문으로 더 익숙한 왕페이는 경찰663의 집을 정리해 주는 좋게 말하면 우렁각시, 나쁘게 말하면 스토커 연기를 귀엽게 잘 표현했다. 1989년 배우보다 가수로 먼저 데뷔한 왕페이는 <중경삼림>에서 페이를 연기하면서 주제가 <몽중인>도 직접 불렀다. 왕페이는 배우로서의 커리어는 상대적으로 초라한 편이지만 가수로서는 중화권 전체에서 인정 받은 싱어송라이터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중경삼림 왕가위 감독 임청하 양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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