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은 건강에 좋고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으며 주변사람들과의 친목도 돈독히 할 수 있는 매우 좋은 취미다. 물론 '장비부심'을 부리면 유명브랜드에서 출시한 고가의 등산복이나 등산용품들이 필요하겠지만 가까운 저지대의 산을 오를 때는 최소한의 등산화 정도만 있으면 충분히 등산을 즐길 수 있다. 특히 한국은 해발 2000m가 넘는 높은 산이 없고 산들의 난이도도 썩 높지 않아 등산을 취미로 하기 좋은 대표적인 나라로 꼽힌다.

하지만 등산을 할 때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룰이 있다. 바로 정해진 등산로를 지키는 것이다. 특히 국내의 국립공원들은 대부분 등산로가 지정돼 있기 때문에 이를 지키면 큰 위험 없이 안전한 등산을 즐길 수 있다. 또한 겨울 산행 시에는 길이 얼어 있거나 눈이 쌓여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아이젠이나 스패츠 등 겨울 등반을 위한 안전장비들을 구비하는 것이 좋다. 물론 기상상황이 좋지 않으면 입산을 하지 않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이처럼 등산을 할 때는 안전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모험심이 강한 일부 등산객들은 정해진 등산로를 벗어나 일부러 어렵고 위험한 코스를 선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난코스를 통해 등반을 하게 되면 그만큼 사고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 2010년에 개봉한 데니 보일 감독의 < 127시간 >은 홀로 등반에 나선 등산객이 절벽 사이에 갇혀 5일이 넘는 시간 동안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국내에서 흥행에 실패한 <127>은 세계적으로 제작비의 3배가 넘는 흥행수익을 올렸다.

국내에서 흥행에 실패한 <127>은 세계적으로 제작비의 3배가 넘는 흥행수익을 올렸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배우-감독-교수-화가까지 섭렵한 재주꾼

UCLA 대학 영문과에 입학한 제임스 프랭코는 1년 만에 자퇴 후 TV드라마를 통해 연기생활을 시작했다가 만 28세 때 모교로 돌아가 문학-소설 창작을 전공해 2년 만에 학위를 받았다. 프랭코는 대학졸업 후에도 뉴욕대학교와 콜럼버스 대학교 대학원에서 소설창작과 시문학을 배웠고 예일 대학교에서는 영문학 박사과정을 거쳤을 정도로 학구열이 매우 높은 배우다. 게다가 개인 전시회를 열 만큼 그림실력도 뛰어나다.

2001년 제임스 딘의 전기 드라마에서 제임스 딘을 연기하며 주목 받은 프랭코는 2002년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3부작에서 피터 파커(토비 맥과이어 분)의 절친이자 라이벌 해리 오스본 역으로 이름을 알렸다. 프랭코는 2007년 <부라더2018>을 연출하며 감독으로 데뷔했고 <밀크> <브로큰 데이트>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등에 출연했지만 <스파이더맨>의 해리 이미지를 좀처럼 깨지 못했다.

그러던 2010년, 프랭코는 < 127시간 >에서 등산 도중 절벽 사이에 고립되는 아론 랠스턴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18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든 < 127시간 >은 세계적으로 60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고(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2011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콜린 퍼스와 하비에르 바르뎀, 제프 브리지스 등과 함께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 127시간 >은 프랭코에게 '스파이더맨 친구'라는 꼬리표를 떨치게 해준 작품이었다.

프랭코는 2011년 <혹성탈출:진화의 시작>에서 시저(앤디 서키스 분)의 친구 윌 로드만을 연기했고 <브로큰 타워> <살> 등을 만들며 감독으로서의 커리어도 계속 이어갔다. 2013년 샘 레이미 감독의 신작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에 출연한 프랭코는 2014년 세스 로건이 감독과 주연을 맡은 북한을 소재로 한 독특한 코미디 <디 인터뷰>에서 데이비드 스카이락 역을 맡으며 연기범위를 넓혔다.

프랭코는 2017년 영화 <더 룸>의 제작기를 다룬 책 <디재스터 아티스트>의 판권을 구입해 직접 감독과 제작, 주연을 맡았고 이 작품으로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프랭코는 <혹성탈출>에 출연했던 2010년대 초반 이후로는 상업배우로서 다소 주춤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프랭코는 배우로, 감독으로, 애니메이션 더빙 성우로, 화가로 지치지 않는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대중예술인이다. 

5일 동안 홀로 절벽 사이에 갇힌다면?
 
 제임스 프랭코는 <127시간>을 통해 데뷔 후 처음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제임스 프랭코는 <127시간>을 통해 데뷔 후 처음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등산 가이드를 꿈꾸는 엔지니어 아론은 홀로 유타주의 블루 존 캐년을 등반하다가 활발한 여성등반객 크리스티(케이트 마라 분)와 메건(앰버 탐블린 분)을 만나 자신이 좋아하는 등반코스를 알려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크리스티와 메건으로부터 파티에 초대 받은 아론은 들뜬 마음으로 더 위험한 코스로 등반을 이어가지만 떨어진 암벽에 팔이 짓눌리면서 절벽 사이에 꼼짝 없이 고립되고 만다.

아론의 팔을 짓누르고 있는 바위는 힘으로 밀어낼 수 없었고 아론의 배낭에 든 것이라고는 산악용 로프와 날이 무딘 중국산 다용도 칼, 그리고 충분하지 않은 한 통의 물 뿐이었다. 그렇게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선 아론은 구조대를 기다려 보지만 가족들에게도 목적지를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구조대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론은 몽롱해진 정신으로 친구와 전 애인,가족, 그리고 사고 전에 만났던 크리스티와 메건을 떠올리며 자신의 삶을 돌아봤다. 

그렇게 5일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아론은 마지막 탈출을 위해 자신을 막고 있는 오른팔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이 부분에서 아론이 짓눌린 팔을 절단하기 위해 뼈를 부러뜨리고 다용도 칼로 자신의 살을 마구 자르는 장면이 상당히 리얼하게 묘사되며 관객들을 놀라게 한다. 그렇게 자신의 팔을 포기한 채 탈출에 성공한 아론은 지나가는 등산객 가족을 만나 구조를 요청하고 127시간 동안 벌였던 혼자만의 외로운 사투를 끝냈다.

이 거짓말 같은 아론의 이야기는 산악인 아론 랠스턴이 실제로 겪었던 실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영화에서 아론이 성능 좋은 스위스제 다용도 칼을 집에 놔두고 날이 무딘 중국제 칼을 가지고 왔다가 후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실화의 주인공이 실제로 겪은 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에피소드다. 구조 당시 아론은 몸 속 혈액의 25%가 빠져 나간 상태였는데 조금만 더 출혈이 있었다면 과다출혈로 사망했을 거라고 한다.

비록 수상엔 실패했지만 < 127시간 >은 2011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각색상을 비롯해 6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작품성을 인정 받았다. 국내에서는 2011년 2월에 개봉했지만 전국 18만 관객을 모으는 데 그치며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그럼에도 < 127시간 >은 N 포털사이트의 네티즌 평점에서 8.17점으로 흥행성적에 비해 비교적 높은 평점을 받았다.

아론이 고립되기 전 만났던 크리스티
 
 <127시간>에 크리스티 역으로 출연했던 케이트 마라(왼쪽)는 <하우스 오브 카드>의 기자 역으로 2014년 에미상 후보에 올랐다.

<127시간>에 크리스티 역으로 출연했던 케이트 마라(왼쪽)는 <하우스 오브 카드>의 기자 역으로 2014년 에미상 후보에 올랐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영국 출신의 대니 보일 감독은 감각적인 촬영기법과 독특한 편집, 뛰어난 음악선곡, 관객을 몰아붙이는 연출에 능한 감독이다(물론 독특한 스타일을 가진 감독답게 관객들로부터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편이다). < 127시간 >은 <슬럼독 밀리어네어>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휩쓴 대니 보일 감독의 차기작으로 주인공이 느끼는 고통을 화면과 소리로 생생하게 담아내며 불편함을 느끼는 관객들이 적지 않았다.

< 127시간 >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론 역을 맡은 제임스 프랭코가 끌고 가는 영화다. 영화 내내 소형 캠코더에 대고 독백만 하는 아론은 초반부에 잠시 타인과 대화를 나누는데 아론이 절벽 사이에 고립되기 전에 만났던 인물이 바로 크리스티 역의 케이트 마라였다. 크리스티는 친구 메건과 함께 아론의 안내를 받아 다이빙을 즐기는데 크리스티는 아론이 내심 마음에 들었는지 아론을 파티에 초대한다(물론 아론은 파티에 참석하지 못한다).

관객들은 내심 아론의 등산로를 유일하게 알고 있는 크리스티가 구조대를 데리고 올 거라 예상하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그런 멜로영화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크리스티를 연기한 케이트 마라는 인기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특종에 목말라 있는 기자 역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15년에는 <판타스틱4> 리부트에서 수잔 스톰을 연기했는데 이 영화에서 만난 제이미 벨과 2017년 결혼해 현재 슬하에 두 아이를 두고 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127시간 대니 보일 감독 제임스 프랭코 케이트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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