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제목이 귀에 꽂혔다. jtbc <신성한, 이혼>. 처음 접하는 단어의 조합이다. 결혼이 신성하다는 말은 고리타분한 주례로 익히 들어봤는데 이혼이 신성하다니. 호기심이 생겼다. 1화를 재생하고 나면 앞선 궁금증은 어느 정도 해결된다.

배우 조승우가 연기하는 역할의 이름이 '신성한'이고 그는 이혼전문 변호사다. 이제야 두 단어 사이에서 멈춤을 주는 콤마의 필요를 알게 됐다. 이 드라마는 이혼에 얽힌 신성한의 이야기와 서로 다른 쟁점을 가진 이혼 소송을 들여다보며 '결혼과 이혼'에 대해 고찰할 예정이다.  
 
 <신성한, 이혼>. 공식 홈페이지 포스터

<신성한, 이혼>. 공식 홈페이지 포스터 ⓒ JTBC


<신성한, 이혼>이 말하는 여성의 탈혼 서사

결혼과 이혼을 깊이 있게 다룬 대중문화를 우리는 이미 몇 차례 만났다. 1화 첫 장면에서 신성한 변호사가 시청하는 아침 드라마에 언급된 '사빠죄아(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는 불륜하는 자의 지겨운 항변을 일축한 대사로 아직까지 회자중이다. JTBC<부부의 세계>는 이혼이 *도덕과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법과 돈의 문제라는 것(황진미 칼럼니스트 칼럼 발췌), <결혼이야기>(노아 바움백, 2019)는 이혼의 과정까지 결혼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설득해낸다. 그렇다면 <신성한, 이혼>에선 어떤 섬세한 접근을 기대해볼 수 있을까.

<신성한, 이혼>은 1, 2화에서 '이혼 소송'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의 탈혼기'를 그려낸다. 2회 차 동안 신성한이 옆에 앉아 변호하는 이들은 모두 여성이다. 배우자의 불륜으로 이혼 소송을 진행해 승소한 여성, 유책 배우자로 이혼 소송을 당했으나 양육권만은 어떻게든 가져오기 위해 변호를 의뢰한 여성, 시어머니의 감정적·언어적 학대로 고통받아 이혼을 고민 중인 여성이 있다.

앞선 두 명의 의뢰인은 승소와 함께 웃는 얼굴로 앞날을 향해 나아갔다. 이는 이혼이 결혼의 실패가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이고, 이왕이면 잘 하고 싶은 숙제임을 말한다. 이때 필요한 건 단시간에 적은 고통을 겪을 수 있도록 숙제를 함께 풀어줄 파트너다. 능청스러우면서 유능한, 가화만사성이 삶의 기조인 신성한은 이들의 좋은 파트너가 된다.

의뢰인 '이서진'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

변호사 신성한의 첫 의뢰인, 방송국 라디오 DJ 이서진이다. 올 화이트 수트 착장에 검은 선글라스는 시청자가 그에게 갖는 첫인상이다. 현재 사람들의 입에 쉼 없이 오르내리는 이슈의 중심에 선 인물로, 신성한에게 도움을 청하러 왔다. 그는 외도한 유책배우자이자 의처증 남편에게 정서적 학대를 받았다.

남편의 통제와 학대의 탈출구로서 외도했고 "개새끼 피하려다가 쌍놈 만났다"는 한마디로 상황을 일단락한다. 외도 상대가 불법촬영물을 유포해 외도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고 이혼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불륜녀라는 이유로 4년 몸담은 직장에서 잘리고 아이는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재산 분할도 필요 없고 오직 양육권만 원한다는 이서진, 진심을 알아챈 신성한은 그를 돕기로 한다.

마치 의도된 불행종합 선물세트처럼 한 인간의 존엄을 무너뜨리는 일련의 사건 속에 캐릭터를 던져두었는데 이 인물의 행동은 어딘가 다르다. 신성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두 인물이 처음 대면하는 장면은 생소한 감각을 건드린다. 보통 사람 같으면 내일은 없는 것처럼 무너졌을 텐데, 이서진은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역경을 돌파해 나간다. 아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사다.
 
 <신성한, 이혼>. 변호사 신성한과 의뢰인 이서진이 대화하는 장면. 유튜브 캡처

<신성한, 이혼>. 변호사 신성한과 의뢰인 이서진이 대화하는 장면. 유튜브 캡처 ⓒ JTBC

 
"이혼 통보를 받았어요. 그래서 이혼을 하긴 해야 하는데. 잘하려고요, 이혼. 당당해서 당황하셨나 보다. 이 정도 되면 고개 숙이고 죽고 싶다는 설정이 일반적이잖아요? 근데 제가 세상 당당해 보이니까 혹시 불편하신가 해서."
"지금 심정이 막 죽고 싶으신가요?"
"네. 도와주세요."
-<신성한, 이혼> 1화 중-


방영 이후 특히 '이서진'에게 몰입하지 못했다는 얘기가 많았다. 배우 한혜진의 연기력에 대한 언급은 연기조차 캐릭터를 설득하지 못했다는 말로도 들렸다. 어색한 더빙 톤과 뻣뻣한 연기가 몰입 방해 요소로 꼽히지만, 그보다 먼저 온 방해는 러닝 타임이 지남과 동시에 쌓여가는 질문이지 않았을까. 시청자는 이서진이 왜 저런 발언과 행동을 하는지 되묻게 되고 결국에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건데, 왜 그럴까?

어쩌면 이는 피해자다움에서 벗어난 여성을 볼 때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가치판단을 하고 있는지와 연결된다. "저런 말을 본인이 해서 상대를 당황하게 한다고?", "외도까지 했으면서 양육권 분쟁 소송을 하는 이유가 뭐지?", "승소 이후에 농담을 던질 만큼 회복했다고?" 등등... 이런 질문은 결국 상상 가능한 피해자의 프레임을 만들어 납작한 이미지에 가두려 드는 시도로 이어진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하는 이서진에게 과연 실재하는 고통이 없을까? 차 안에서, 2차 가해가 만연한 이혼 조정실에서, 남편이 아이에게 불법촬영물을 보여줬다는 사실을 알게 된 법정에서 몇 번이나 좌절하고 괴로워한다. 물론 2회까지 공개된 시점에서 이 인물을 충분히 알아보기엔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지금은 인물이 갖는 맥락보다 귀에 걸리는 대사, 눈에 띄는 행동이 남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서진(한혜진)이 일회성 등장이 아니라 주연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만큼 앞으로 보게 될 회차에선 강렬한 대사 몇 마디로 기억되는 방식보다 입체적인 모습으로 조명되었으면 한다. 이상한 여자, 나대는 여자, 아픔에 당당한 여자들은 원래 세상이 첫눈에 사랑해주지 않는다. 만날 기회가 아직 더 있으니 조금은 따뜻한 눈으로 인물에 대한 평가를 잠시 보류해보는 건 어떨까.

'신성한, 이혼'에서 '신성한 이혼'으로

돌아오는 주말, 시어머니의 언어폭력이 일상인 며느리가 신성한 사무실의 문을 두드릴 것이다. 이미 여러 차례 다뤄왔던 고부 갈등이지만, 시어머니가 아이에게 손찌검하는 것을 참지 않고 시어머니의 등짝을 때려 고통을 돌려준 며느리의 사연은 어떠한 우여곡절을 거칠지 지켜보게 된다.

한편, 5천만 원짜리 독일 스피커로 트로트를 듣고 와인 샐러에 소주를 채운 신성한 변호사의 숨겨진 사연이 드러나는 것 또한 극을 따라가는 재미일 것이다. 결국 사건과 사람이 만나는 지점에는 결혼과 이혼을 재정의하는 질문이 자리한다.

이혼으로 한 인간이 아픔을 씻고 존엄을 회복한다면 이보다 더 신성한 일은 없지 않을까. <신성한, 이혼>에서 '신성한 이혼'으로 가기까지 어떤 질문들이 오갈지 궁금해진다.
신성한, 이혼 JTBC 주말 드라마 대중문화 콘텐츠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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