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울메이트>를 연출한 민용근 감독.

영화 <소울메이트>를 연출한 민용근 감독. ⓒ NEW


 
햇수로 치면 12년 만에 장편 연출이다. <혜화,동>(2011) 이후 <소울메이트>로 극장 관객과 만나게 되는 민용근 감독은 "OTT 플랫폼으로 많이 공개되는 흐름에서 영화가 극장에 상영될 수 있어서 설레고 반응이 궁금하다"고 감회부터 전했다. 영화 규모만 놓고 보면 이번 작품이 상업영화로 분류할 수 있기에 어쩌면 첫 경험이라 할 수도 있겠다. 7일 서울 성수동의 모처에서 만난 민용근 감독에게 보다 자세한 영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알려진 대로 중국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를 원작으로 한 <소울메이트>는 한국적 정서에 맞게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 작업 및 각색에 참여했다. 시골 마을과 대도시 간 격차를 담은 원작의 공간 설정이 서울과 제주라는 공간으로 변모했고, 활달하고 솔직한 성격의 미소(김다미)와 세심하고 정적인 하은(전소니)의 인생 궤적을 따라가는 식으로 이야기가 구성됐다.
 
창작하는 즐거움
 
넷플릭스 < D.P. >와 <지옥>으로 잘 알려진 제작사 클라이막스가 원작 판권을 구매했고, 2019년 무렵 민 감독에게 제안했다고 한다. 당시 민용근 감독은 미스터리 장르 영화를 준비 중이던 상황. "꽤 오래 붙들고 있었는데 준비가 잘 되다가도 막혀서 희망고문을 당하는 것 같은 때였다"고 그는 회상했다.
 
"재밌어서 준비하던 게 시간이 길어지며 그 동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상업영화로써 투자받으려면 어떤 요소들이 필요하잖나. 그 부분을 못 뚫고 있었고, 어느 순간 창작하는 즐거움을 잃어버린 것 같더라. 결국 잠시 그 작품을 놓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다시 영화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제안을 받은 셈이다. 원작은 알고 있었고, 바로 영화를 봤다. 근데 1차적으로 두 여성의 오랜 관계성을 다룬 것이다 보니 저보단 구체적 체험이 있는 여성 감독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고사하려 했다."
 
거절하려는 생각으로 제작사와 만나려던 민용근 감독은 "한 번 더 영화를 봤는데 후반부에 어떤 장면에서 감정이 세게 훅 왔다. 오랜 시간 켜켜이 관계가 쌓이고 어느 순간 인생에서 깨달음이 오는 순간이 있는데 그걸 영화에서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생각을 바꿔 제작사의 제안을 수락하기로 한 것. 민 감독은 "소재나 기획도 중요하지만 제겐 등장인물의 감정이 중요한 것 같다. 그 감정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영화 <소울메이트> 관련 이미지.

영화 <소울메이트> 관련 이미지. ⓒ NEW


 
그렇게 해서 서울을 떠나 제주로 오게 된 미소와 제주에서 서울로 떠나게 되는 하은이 탄생할 수 있었다. 두 여성의 우정, 그 인생이 마치 대칭을 이루듯 영화 전반을 채우고 있는 게 특징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한국영화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2000년대 초중반이 주요 시대 배경으로 등장한다는 것 또한 신선한 지점이었다.
 
"시대 설정과 공간 설정이 중요했다. 중국이 워낙 땅이 넓어서 도시와 시골 간 격차가 크잖나. 우린 1일 생활권이라 그걸 표현하기 애매했다. 그러다 제주도를 떠올렸다. 섬이라는 공간, 그리고 자연이 주는 느낌, 어린 시절 향수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틀을 정한 후 제주도에 내려갔다. 혼자 이곳저곳 헌팅한다는 생각으로 협재부터 서귀포의 작은 마을들을 돌았다. 제주 동쪽인 종달리와 하도리가 딱 우리 영화에 나올만한 장소가 있더라. 시나리오에 구체적 지명을 넣기 시작하며 글을 완성했다. 하은의 집도 그곳의 빈집을 찾아 개조한 결과다.
 
시대 배경 기준으로 세 가지 버전이 있었다. 가장 처음 설정은 1973년생이었고 두 번째 시나리오는 80년생으로 했었다. 근데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 시대가 많이 활용되기도 했고, 무엇보다 지금 현재와 접점을 넓히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두 주인공을 88년생으로 정한 거다. 영화에 미소의 과거가 자세히 나오진 않지만 IMF 직후 경제 위기 여파로 육지를 떠난 것으로 설정했다. 2000년대 초중반을 떠올려 보면 2002년 월드컵을 기점으로 뭔가 사회가 자유로워졌달까. 오히려 요즘이 더 경직됐다 느낄 정도로 자유로운 분위기가 있었다. 거기에 미소와 하은이 주는 싱그러움과 잘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탐구하다
 
서로 상반돼 보이지만 내면에 비슷한 정서를 공유한 미소와 하은을 표현하는 배우 또한 매우 중요했다. 단정하고 모범생 같지만 내면엔 어떤 열망이 끓고 있는 하은, 자유롭고 호탕해 보이지만 결핍이 있고 여린 면이 있는 미소라고 캐릭터를 소개하며 민용근 감독은 캐스팅에 얽힌 일화를 전했다.
 
"순서는 김다미, 전소니, 변우석 배우(극중 하은이 연애 감정을 느끼는 진우 역) 순이었다. 다미 배우는 이 작품을 쓸 때 가장 먼저 떠올렸다. 시나리오 쓰기 전에 모든 걸 열어두고 먼저 제안했다. 그 사이 여러 번 만났다. 다미씨 동네에서 치킨도 먹고, 계곡으로 지인들과 같이 놀러 가기도 했다. 시간을 갖고 서로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 사이에 <이태원 클라쓰>가 공개됐더라. 처음에 전 하은 역할을 제안했고, 다미 배우는 미소에 더 끌리는 것 같았다. 2주 정도 서로 생각할 시간을 가졌는데 미소의 자유로운 느낌을 다미 배우가 표현하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정하게 됐다.
 
소니 배우는 <악질경찰>에서 처음 보고 눈빛이 참 영화적이라고 생각했었다. 막 발산하고 감정을 애써 드러내진 않는 미스터리함이 있었다. 그 이후 우연히 전소니 배우를 마주칠 일이 있었다. 직접 대화하면서 참 섬세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하은 역할을 제안했지. 감사하게도 시나리오를 좋아해 주셨다.
 
진우 역할은 선한 느낌의 배우였으면 했다. (삼각관계의 씨앗이 되기에) 너무 강하거나 악한 기운이 있으면 캐릭터가 무너질 거라 생각하던 차에 우석 배우를 만났는데 잘 생겼다가 아닌 아름답다는 느낌이더라. 그림에 소질을 보인 하은이 그리고 싶어할 얼굴이라 생각했다. 얘길 나눠보니 실제로 선하고 여렸다. 고교생의 풋풋함, 성인이 된 후 지극히 현실적으로 변하는 진우의 모습이 배우 안에 있어 보였다."

  
 영화 <소울메이트>를 연출한 민용근 감독.

영화 <소울메이트>를 연출한 민용근 감독. ⓒ NEW


 
그만큼 민용근 감독은 캐릭터와 배우의 정서에 방점을 찍고 있었다. 그는 "영화에 참여한 스태프나 제작사의 면면을 보면 강한 장르물만 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정작 실제로 이분들은 <소울메이트> 같은 작품을 하고 싶었다고 말하곤 했다"고 전했다.
 
"촬영감독님(강국현)이 <뜨거운 피> <경관의 피> 등을 하신 분이다. 동시에 <벌새>라는 작품도 하셨다. 실제로 만나니 <소울메이트>에 어울리는 감성이시더라. 제작사 대표님도 겉모습과 다르게 섬세하신 분이셨고. 함께 제주에서 숙식하며 꿈같은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창작하는 재미를 잃지 말자는 생각으로, 서로의 자발성이 많이 담긴 작품이길 바랐다.
 
산업적으로 유행이라는 게 있잖나. 장르 쏠림 현상이 있는 건 당연하지만 최근 몇 년 간 영화나 드라마가 뭔가 강한 후킹, 자극적 소재 중심으로 기획되는 게 있어 보였다. 자기 삶을 떠올리게 하는, 실제 삶과 접점이 있는 작품은 소외받아 온 것 같다. 물론 현실을 잊게 하는 작품도 필요하지만 각박한 현실에서 뭔가 치유가 되는 작품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로 저도 그렇고 관객분들이 순수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이후를 살아가는 힘을 얻게 되었으면 좋겠다.
 
한편으론 두 여성의 관계, 여성 서사를 다룬 작품이 많지 않았는데 그 관점에서 보면 <소울메이트>가 존재해야 할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민용근 소울메이트 김다미 전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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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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