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일타 스캔들> 한 장면.

tvN <일타 스캔들> 한 장면. ⓒ tvN

 
지인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전도연 청바지 사려고 하는데.....'

지난 겨울 만나 해가 바뀌고 봄이 오면 살을 빼자고 서로 독려했던 처지였다. 겨울잠을 자는 곰도 아닐진대, 해마다 겨울이 되면 야금야금 오르는 살, 이 나이에 살이라 하면 그게 다 뱃살이 아니고 뭐겠는가. 그렇게 두툼한 몸에 전도연 청바지라니. 

어디 카톡을 한 지인뿐인가. 다들 난리란다. 여성 옷을 파는 포털 사이트에 핏이 딱 떨어지는 청바지들이 속속 등장했다. tvN <일타 스캔들>이 처음 방영됐을 때만 해도 조거 팬츠와 통바지가 유행이었는데 회를 거듭할수록 그녀의 스타일이 눈에 들어온다.  

'근데 저 청바지 우리한테는 불가능한 옷이에요.'

실제로 그녀가 불철주야 동네 운동장을 돌며 꾸준하게 몸을 만들어 왔다는 걸 알았기에 지인을 말렸다. 오십 줄의 전도연이 서른 중반의 주인공 역할을 거뜬히 소화해 내며 청바지 유행을 선도하는 상황이 반가웠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모처럼 밝고 씩씩한 캐릭터로 돌아온 그녀가 반가웠다.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전도연
 
 tvN <일타 스캔들> 한 장면.

tvN <일타 스캔들> 한 장면. ⓒ tvN

 
오래 전 배우 전도연은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 등에서 밝은 캐릭터로 눈길을 끌었다. 이후 그녀는 영화 <접속>을 통해 당대 젊은 여성의 아이콘으로 거듭났고, <내 마음의 풍금>에서는 늦깎이 학생으로 확장 변주되었고 <너는 내 운명>에서 정점을 찍었다. 

그런데 밝고 화사했던 배우 전도연의 이름값이 높아질수록 그녀가 맡은 캐릭터들은 심각해져 갔다. 영화와 드라마 속 그녀는 예민해졌고, 거칠었으며 우울했다. 전도연이라는 배우가 가진 다채로운 스펙트럼 중 한쪽의 측면들만이 소모되는 것 같아 답답했다. 

그러다 드라마 <일타 스캔들>에서 다시 만난 전도연은 모처럼 자신에게 딱 맞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극중 남행선(전도연 분)은 한때 핸드볼 국가대표였으나 식당을 하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졸지에 가장이 된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남동생과 언니가 떠맡긴 어린 조카가 그녀의 몫이 되었다. 그렇게 결혼도 하지 않은 어린 이모는 조카를 딸로 삼고, 반찬집 사장님이 되었다. 그러다 일타 강사 최치열(정경호 분)을 만나며 로맨스의 주인공이 된다.  

병약미의 아이콘 남자 주인공에 대비되어, 극중 전도연이 맡은 캐릭터 남행선은 '외로워도 슬퍼도 안 우는' 캔디형 캐릭터다. 오토바이를 타고 새벽시장을 분주히 오가는 그녀는 자신의 딸이 학원 소수정예 반에서 밀려나자 홀로 학원 앞에서 시위를 할 정도로 걸크러쉬하다.  

'사랑밖에 난 몰라?' 이 드라마엔 그런 게 없다
 
 tvN <일타 스캔들> 한 장면.

tvN <일타 스캔들> 한 장면. ⓒ tvN

 
무엇보다 사랑에 빠진 여주인공들이 '사랑밖엔 난 몰라' 하듯이 맹목적이 되어가는 전통적인 로맨스물의 맹점을 <일타 스캔들>은 현명하게 피해 갔다. 남행선은 자신 앞에 닥친 일들을 둔감하지 않게 대처하며 해결해 나갔다.  

말이 최치열·남행선의 로맨스물이지, 학원물의 성격을 띠고 있는 <일타 스캔들>은 자살, 살인, 음모와 배신 등 자극적 소재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마지막을 앞두고 남행선의 딸 해이가 교통사고로 의식불명이 되는가 하면, 그 다음 회에서는 범인 지동희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식으로 말이다. 그 와중에 학부모들은 자기 아이를 위해 시험지 유출에, 여론몰이, 항의시위 등 눈살 찌푸리는 행동도 일삼았다.

그럼에도 <일타 스캔들>이란 드라마를 보면서 피곤하지 않았던 이유는 남행선의 매력 때문이 아닐까. 수아엄마(김선영 분)가 선재(이채민 분)를 퇴학시키기 위해 학교 운동장에서 시위를 불사할 때도 남행선은 '주제 넘었다면 미안하다'라면서도 직설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수아엄마가 팔을 다친 채 병원에서 쩔쩔맬 때는 모른척 하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먼저 내밀기도 했다. '복수물'로 대표되는 학원물의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준 셈이다. 

특히 일타 강사와의 스캔들 주인공이 되며, 불륜녀에서 미혼모, 그리고 미담의 주인공이 되기까지 상황 변화를 겪으며 자기 비하없이 의연함을 잃지 않는 남행선이라는 캐릭터는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이런 자연스러움은 전도연이기에 가능한 게 아니었을까.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위한 진심,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바를 끝까지 지켜려는 소신 등을 드러내는 데 있어서 전도연의 연기는 진가를 발휘했다. 그런 순간을 표현하는데 있어 전도연의 연기는 그 어떤 색채로도 칠할 수 없는 순수의 영역처럼 보인다.  

반찬 가게를 하며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그녀는 충분히 화사하다. 비단 몸에 핏되는 청바지가 잘 어울려서만은 아니다. 내 곁에 저런 순수한 사람 한 명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희망을 품게 하니 말이다. 앞으로도 그녀가 우리네 곁에 멋진 캐릭터로 종종 찾아와 주길 바라본다. 
일타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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