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1TV <시사 직격>의 한 장면

KBS 1TV <시사 직격>의 한 장면 ⓒ KBS

 
현지 시각으로 지난 6일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강도 7.8의 대지진이 일어났다. 이번 지진으로 5만 명 넘게 사망했다. 여전히 여진의 공포 속에 삶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 튀르키예의 지금 상황은 어떨까?

지난 17일 KBS 1TV <시사 직격>에서는 '사투(死鬪),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현장을 가다' 편이 방송되었다. KBS PD가 직접 튀르키예 현지를 찾아 지진 발생 후 어떤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지 생생한 모습을 담았다. 취재 이야기가 궁금해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KBS 신관에서 튀르키예 다녀온 정용재 PD를 만났다.

다음은 정 PD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사투(死鬪),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현장을 가다' 편은 해외 취재라서 더 힘들었을 것 같은 데, 끝낸 소회가 어떠세요?
"가기 전에 너무 걱정 많이 했어요. 두 가지 걱정이었는데요. 하나는 일단 가서 안전상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죠. 여진도 계속 난다고 하고 건물 무너지는 영상들 많이 보고 갔거든요, 또 하나는 되게 짧은 시간 동안 취재해서 제작해야 했던 일정이었기 때문에 그걸 잘할 수 있을까였어요. 두 가지 걱정 때문에 좀 힘들었는데 막상 가니까 너무 현장 자체가 잔혹해서 그걸 보는 게 되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보면서 너무 가슴이 아팠고 그분들이 저를 보고 안으실 때 따뜻하면서도 되게 차가운 손길이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고 좀 마음이 많이 쓰입니다."

- 이 아이템은 어떻게 선정하게 된 건가요?
"사실 저는 지금 빠졌지만, 3월 10일에 방송할 부동산 아이템 팀에 처음부터 붙어서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저희 팀장님이 저에게 튀르키예 가는 비행기 티켓과 현지 코디네이터를 알아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전 알아만 보는 줄 알았어요. 그때 저는 내심 가고싶다고 생각했어요. 원래 다른 선배님 두 분이 가는 걸로 가닥이 잡혀있었는데 마침 팀장님이 '네가 가라'고 해주셨어요. 사람이 간사한 게 그때부턴 엄청 걱정이 되더라고요. 저는 해외 출장이 처음이거든요. 게다가 이런 재난 취재는 국내에서도 해본 적 없었어요."

- 아무래도 여진이 계속 있으니 더 무서웠을 것 같아요.
"여진이 취재하는 동안 계속 있었고 포항 지진 정도의 규모가 하루에 한 네다섯 번씩은 왔어요. 하지만 저는 찍어야 될 게 많고 인터뷰해야 할 것도 많아서 거기에 온 신경이 다 가있었어요. 그래서 여진이 엄청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 튀르키예에 가기 전 국내에선 어떻게 준비하셨어요?
"준비할 시간이 없었어요. 제가 출국한 날이 수요일 저녁이었는데 화요일 저녁에 제가 가는 게 결정됐어요. 운전해 주시는 기사님과 차 각각 두 대씩, 숙소와 비행기도 다 전날에 다 알아봤죠. 근데 튀르키예의 가지안테프 지역을 다들 안 가려고 하는 거예요. 거긴 시리아와 국경 맞닿아 있고 내전도 있어서 위험한 지역이거든요. 저희가 비행기를 탄 순간까지도 기사님이 없었어요. 저기 도착할 때쯤 기사님이 구해졌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만 갖고 있었어요. 만약 비행기에서 내렸는데 기사님이 없으면 저희는 공항에 붙들릴 수도 있었어요. 다행히 거기 현지에 계신 코디님이 워낙 잘해주셔서 모든 게 세팅이 됐죠."

- 대지진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어떠셨어요?
"이스탄불에 내렸을 땐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러고 거기서 비행기를 타고 (가지안테프로) 가야 하는데 항공노선이 다 마비됐어요. 어쩔 수 없이 차를 타고 가는 데 20시간이 걸리더라고요. 둘째 날에 카라만마라슈에 갔어요. 가는 도중엔 건물이 다 멀쩡하더니 가까이 가니 슬슬 무너진 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카라만마라슈 외곽은 안 무너졌어요. 근데 그 지역이 남한 크기와 비슷한 땅인 거죠. 우리나라 치면 남한 전체 건물이 다 무너졌다고 보면 됩니다."

- 방송에서는 카라만마라슈의 건물에서 파편이 계속 떨어지던데.
"기울어진 건물에서 잔해가 계속 떨어졌어요. 그래서 되게 위험했죠. 건물 쪽으로 제가 걷고 있으니까 그 사람들이 가운데로 걸으라고 하잖아요. 그게 맞는 말이죠. 저는 모르니까 겁도 없이 그랬던 건데 다행히 제게 건물 파편이 쏟아진 적은 없었어요. 늘 조심했습니다."

"무너진 건물 밑에서 술래잡기도"
 
 정용재 KBS PD

정용재 KBS PD ⓒ 이영광

 
- 현지 분위기는 어떤가요?
"참담하죠. 되게 가슴이 아픈데, 도시 전체가 울고 있거나 모두가 낙담해 있는 분위기는 아니에요. 의외로 화기애애 하기도 하고 아이들은 무너진 건물 밑에서 술래잡기를 해요. 놀이터에서 볼 수 있는 아이들과 똑같이 놀고 있는데 저는 그게 더 슬프더라고요. 너무 큰 재앙이고 비극인데 100% 받아들이고 있지 못한 듯한 느낌이었어요."

- 이재민이 텐트에서 지내는 것 같던데 나라가 지원한 건가요?
"재난관리위원회(AFAD)에서 군인과 경찰들이 텐트를 지어줬어요. 그렇지만 사실 텐트 안에 못 들어가는 분들도 많아요. 텐트에 들어가는 것도 우선순위가 있어요. 예를 들어 가족이 많고 아이들이 많고, 사회적 약자들이 먼저 들어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안 들어가겠다고 한다고 해요. 왜냐하면 그 텐트촌이 어디나 있는 게 아니에요. 예를 들어, 전주에 사는데 텐트촌이 일산에 있다면요. 차라리 나는 내 집 옆에 텐트를 짓겠다고 하지 않을까요? 그런 식이에요."

- 현지 날씨는 어떤가요. 텐트에서 겨울을 견딜만 할까요?
"우리나라는 건조하게 춥잖아요. 거기는 습도가 높아서, 찬물에 몸을 담근 느낌이에요. 그래서 우리나라의 추위와 또 다르고 일교차도 엄청 커요. 저희도 취재할 때 낮에는 더워서 상의 하나만 입고 다니다가, 밤이 되면 너무 추워서 패딩 입어요. 밤이 되면 엄청 춥죠. 하지만 텐트엔 전기도 안 들어오고 난방도 없죠. 체온으로 버텨야 하는 상황이에요."

- 안타까운 사연도 많았겠네요.
"A란 사람을 만났어요. A에겐 형이 있는데 형이 아버지 병간호를 하러 병원에 갔다가 그 병원이 무너져서 죽은 거예요. 근데 지진 난 다음 날이 아버지 퇴원 날이었대요. 그러니까 하루만 더 늦게 나왔거나 하루만 더 빨리 나오셨으면 모두가 살 수 있었는데 아버지랑 형을 모두 잃은 거예요. 형한테는 딸이 있어요. A에겐 조카죠. 조카를 데리고 형을 묻었대요. 하지만 조카는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걸 심리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버지 무덤 만지면서 웃고 있는 사진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날이 그 딸의 생일이었어요. 이 아이는 평생 자기 생일날 아버지가 생각나겠죠."

- 부실 공사가 피해를 키운 걸까요?
"전문가들은 그렇다고 많이 얘기해요. 실제로 가서 보면 건축학적으로 아무리 흔들려도 기둥 철근같은 것들은 똑바로 서 있어야 해요. 무너져도 기둥은 남아 있거든요. 하지만 마치 다이너마이트를 폭발시킨 것처럼 무너졌죠. 놀라실지 모르겠지만 튀르키예는 지진에 대한 건축 규제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엄격해요. 문제는 아무도 지키지 않는다는 거죠. 가지안테프, 카라만마라슈 쪽은 '동생 문화'가 되게 강한 곳이래요. 예를 들어, 내가 건물을 짓고 싶은데 비용이 저렴해야 하잖아요. 철근을 10개 넣어야 되는데 10개 넣으면 너무 비싸니 3개만 넣고 싶어요. 그럼 그렇게 지어놓고, (공무원이) 감사하러 나오면 '형 왜 그래. 이따 술 한 잔 하자'는 식으로 넘어가요. 그러니까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공직자가 눈 감아주고, 규정대로 집행하지 않는 거죠."

- 에르도안 대통령이 제대로 대응을 못해서 피해가 커졌다는 주장도 있더라고요.
"현지에서도 그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지진이 일어난 지 3일째, 4일째가 돼도 (정부 당국에서) 아무도 오지 않았더라고요. 위험한 곳인데 시민들이 막 손으로 흙을 파내고 있어요. 참사 직후 4, 5일째까지 현장의 풍경이었어요. 근데 에르도안 대통령이 와서 연설도 하고 구호물자도 보내고 텐트도 지어준 거죠. 하지만 3, 4일 동안 국가는 부재했다고 시민들이 많이 얘기했어요."

- 에르도안 대통령이 지진을 막을 수 없었다고 해서 국민의 화를 키운 것 같죠?
"불난 집에 기름을 부었죠. 사실 대비할 수 있었거든요. 왜냐하면 에르진은 하나도 안 무너졌어요. 건축업자들이 와서 '형 왜 그래'라고 하면, 시장이 '내가 왜 네 형이야'라면서 다 막은 거죠. 그렇게 지은 건물은 무너지지 않았어요. 그리고 대통령이 지금 장기 집권하고 있잖아요. 대통령이 취임한 지 몇 달 안 됐으면 그 변명이 통했겠지만 2003년부터 집권하고 있는데 정부 수반이 살폈어야 하는 문제죠. '제 불찰입니다'라고 사과하든, 그 이후 대책이라도 제대로 마련해야죠. '이건 누가 와도 못 막았다'라고 하면 국민들은 화날 수밖에 없죠."

- 시리아는 취재가 불가능했나요? 대지진 이후에도 내전은 계속되고 있다던데.
"시리아는 들어갈 수가 없었고 국경이 내전 때문에 막혀 있는 상황이었어요. 유엔의 제재를 받는 상황이라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는 들어가기 쉽지 않습니다. 거의 11년째 내전이 진행 중인데 이 아사리판에서도 정치적 욕심을 지진이 막을 수는 없기 때문에 미사일도 쏘고 하더라고요."

- 취재하며 느낀 점이 있다면요?
"재난 지역 취재를 처음 가봤고, 전 세계의 취재진이 모두 몰렸던 대지진의 현장이었어요. 자연 현상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는 없지만 판과 판이 만나는 지역이기 때문에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죠. 늘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겠죠."
덧붙이는 글 '전북의 소리'에도 중복 게재했습니다.
정용재 시사직격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