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엔 연말 가요제의 권위가 많이 떨어졌고 실제 지상파에서도 연말 가요시상식을 모두 폐지했지만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지상파의 연말 가요시상식은 가수들에겐 가장 큰 행사이자 최고의 영광이었다. 따라서 연말 가요시상식에서 대상을 노릴 수 있을 법한 인기가수들은 일부러 연말시상식이 다가오는 4/4분기를 컴백시점으로 잡아 연말에 집중적으로 활동해 인기몰이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할리우드에도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라는 확실한 입지를 가진 영화제가 존재하는데, 수상을 기대하는 작품들의 경우 시상식이 열리기 두 세달 전에 개봉해 바람몰이를 하기도 한다. 시상식이 열리기 전에 영화를 공개해 관객들로 하여금 입소문을 타게 만들고 시상식이 가까워 질수록 점점 개봉관을 늘려가며 흥행성적을 끌어 올려 수상 가능성을 높이는 전략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2020년 아카데미 4관왕에 빛나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2019년 10월에 북미에서 개봉했다가 시상식이 가까워 오면서 상영관을 늘리는 전략을 선택해 대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2013년 아카데미 시상식 8개 부문 후보에 올라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이 영화 역시 16개였던 상영관을 2500개까지 늘리며 흥행과 영화재 수상을 모두 잡는 데 성공했다. 제니퍼 로렌스와 브래들리 쿠퍼가 주연을 맡은 2012년작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이었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2억 달러가 넘는 흥행과 함께 아카데미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2억 달러가 넘는 흥행과 함께 아카데미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 나이너스 엔터테인먼트(주)

 
만 22세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한 배우

14살 때 뉴욕에서 광고모델을 하며 배우의 꿈을 키운 로렌스는 2008년 만 18세의 어린 나이에 첫 주연작 <욕망의 대지>를 통해 베니스영화제 신인상을 수상하며 무서운 신예로 떠올랐다. 같은 해 셀마 블레어와 함께 출연한 <포커 하우스>에서도 열연을 펼치며 로스앤젤레스 영화제에서 신인상을 받았다. 한마디로 로렌스는 데뷔 초부터 천재적인 연기력을 인정 받았던 '될 성 부른 떡잎'이었다는 뜻이다.

로렌스는 2010년 <윈터스 본>에서 산골마을의 소녀 리 돌리를 연기하며 약관의 나이에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데뷔 후 지나치게 무거운 영화에만 출연했던 로렌스는 2011년 슈퍼히어로 영화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서 미스틱 역을 맡았고 2012년부터 2015년까지 4부작으로 제작된 <헝거게임> 실사영화 시리즈에서는 주인공 캣니스 에버딘을 연기했다.

<헝거게임> 실사영화 시리즈 4편으로 29억6300만 달러라는 엄청난 흥행성적을 올린 로렌스는 2012년 브래들리 쿠퍼와 함께 독특한 정서의 로맨틱 코미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 출연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2100만 달러로 만들어 제작비의 10배가 넘는 2억36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고 로렌스는 201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역대 두 번째로 어린 나이(만22세)에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로렌스는 <헝거게임>과 <엑스맨> 프리퀄 시리즈에 꾸준히 출연하면서도 2013년 <아메리칸 허슬>, 2015년 <조이>에 출연하며 데이비드 O.러셀 감독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특히 2015년에는 <조이>로 골든골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 잘하는 젊은 여성배우'의 명성을 누렸다. 하지만 로렌스는 2016년 <엑스맨: 아포칼립스>와 <패신저스>, 2019년<엑스맨: 다크 피닉스> 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슬럼프에 빠졌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로렌스는 2018년 단독주연을 맡았던 <레드 스패로>에서 호연을 펼쳤고 2021년에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플란쳇, 티모시 샬라메 등과 함께 애덤 맥케이 감독이 만든 넷플릭스 영화 <돈 룩 업>에 출연했다. 로렌스는 2010년대 후반부터 다소 정체돼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30대 초반의 나이에 골든글로브 트로피 3개(주연상2개, 조연상1개)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가진, 또래 중 독보적인 커리어를 가진 배우임에 분명하다.

쟁쟁한 여성배우들이 탐냈던 티파니 캐릭터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두 주인공은 201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나란히 남녀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두 주인공은 201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나란히 남녀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주)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메슈 퀵이 집필한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2014년 <아메리칸 허슬>로 골든글로브 작품상을 수상하는 데이비드 O.러셀 감독이 연출했다. '실버라이닝'은 햇빛이 구름 뒤에 있을 때 구름 가장자리에 생기는 은색선을 가리키는 말로 흔히 '희망'을 은유할 때 쓰이는 표현이고 플레이북은 영화의 각본이나 스포츠팀의 작전 등을 그림으로 표현한 책을 의미한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두 주인공 티파니(제니퍼 로렌스 분)와 팻 솔리타노(브래들리 쿠퍼 분)는 저마다 '성격적 결함'으로 보이는 마음의 상처가 있다. 경찰이었던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은 티파니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직장동료 11명과 잠자리를 가졌다가 실직을 당했다. 팻은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고 불륜상대를 폭행했다가 정신병동 입원치료를 선고 받았고 이 때의 후유증으로 결혼식 때 축가로 쓰인 노래가 들리면 끓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한다.

아내에게 접근금지명령을 받은 팻은 자신의 진심을 담은 편지를 써서 아내와 친분이 있는 티파니에게 편지를 전달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리고 티파니는 편지를 전달해 주는 조건으로 자신이 출전하고 싶은 댄스대회의 파트너가 돼 달라고 제안한다. 한 번도 춤을 춰본 적이 없는 팻은 처음엔 단호하게 거절하지만 아내에게 편지를 전할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어쩔 수 없이 티파니의 제안을 수락한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단순한 로맨틱코미디라고 치부하기엔 아픔이 있는 두 주인공의 성장과 치유과정을 중요하게 다루는 힐링 무비고 성장 드라마라고 하기엔 두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너무 달달하다. 물론 일반적인 데이트 무비의 전개와는 거리가 먼 작품으로 실제 한국에서는 2013년 발렌타인데이를 개봉날짜로 잡았다가 전국 12만 관객에 그치며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실제로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티파니 역은 안젤리나 졸리를 비롯해 커스틴 던스트, 레이첼 맥아담스,앤 해서웨이 등 많은 여성배우들이 탐냈던 역할이었다. 하지만 데이비드 O.러셀 감독은 남자주인공 브래들리 쿠퍼(1975년생)보다 15살이나 어린 1990년생 제니퍼 로렌스를 티파니 역에 낙점했다. 그리고 로렌스는 최고의 연기로 영화를 빛내며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를 비롯한 6개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조울증 걸린 남자, 실감나는 연기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남녀 간의 사랑만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회복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남녀 간의 사랑만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회복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주)

 
1998년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를 통해 데뷔한 브래들리 쿠퍼는 2009년 영화 <행오버>에서 '잘생긴 돌+아이' 필 웬넥을 연기하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0년 <A특공대>와 2011년 <리미트리스>에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렸다. 그리고 쿠퍼는 2012년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서 아내의 외도로 조울증에 걸린 남자 팻을 실감나게 연기하며 생애 첫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팻은 책을 읽다가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새벽 3시에 부모님을 깨워 항의하는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남자로 특히 자신의 결혼식 때 틀었던 노래가 들리면 그 분노가 극에 달한다. 하지만 티파니를 만나 함께 댄스대회를 준비하면서 팻은 점점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티파니를 사랑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브래들리 쿠퍼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어벤져스>에서 로켓의 목소리 연기를 하면서 세계적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는 아카데미 2회 수상에 빛나는 대배우 로버트 드 니로가 팻의 아버지 역할로 출연했다. 병원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을 걱정하고 아들에게 잔소리도 하지만 사실은 본인도 은퇴 후 스포츠 도박을 하면서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아들과 함께 경기를 봐야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승리한다는 징크스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삶의 의욕을 잃은 아들과 더 많은 대화의 시간을 갖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1998년부터 2007년까지 세 편에 걸쳐 제작되며 세계적으로 8억 달러가 넘는 흥행 성적을 기록한 <러시아워>에서 성룡의 파트너 형사 카터를 연기했던 크리스 터커도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 출연했다. 정신병원에서 팻과 만난 친구 대니 역으로 몇 번의 탈출을 감행하다 붙잡히지만 자신의 담당의가 면허 취소되면서 운 좋게 병원을 나온다. 대니는 스토리 진행에서 큰 비중은 없지만 방황하는 팻 옆에서 응원하는 좋은 친구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데이비드 O.러셀 제니퍼 로렌스 브래들리 쿠퍼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