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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 소속으로 일하던 김용균 노동자가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어 사망한 지 4년이 지났다. 그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는 그때부터 아들의 사망 원인을 밝히고 현장 안전 개선을 위해 활동했다. 또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위해 이곳저곳을 뛰어 다녔고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위해 단식을 했으며, 산재 피해자와 유가족을 지원하는 김용균재단을 설립하고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을 만들어 활동 중이다.

가슴 아픈 아들의 사망 이후, 쉼 없이 사회와 정치를 움직이고 발로 뛰어온 김미숙 대표를 11월 11일 '다시는' 전시장에서 만났다. '다시는'은 산재 피해 가족들이 모여 치유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그린 그림으로 꾸린 작은 전시였다. 전시장 입구에는 산업재해로 사망한 사람들이 쓰고 간직하던 물건들이 놓여져 있다. 전시에 참여한 가족들은 산업재해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일부러 그림이나 물건, 사진에 이름을 표시하지 않았다. 전시를 준비하고 그림을 그릴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다시는' 가족들이 트라우마 치유 글쓰기, 그림 그리기 등을 해왔어요. 화가 선생님께 배워가면서요. 트라우마 치료 차원에서 그리는 거라서, 옆 사람 얼굴 그리기, 1분 안에 그리기, 5분 안에 그리기, 이런 걸 했어요. 나이 먹어서 그리려니까 되게 어색하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림을 그릴 때 제일 좋은 게, 그리다 보면 다른 생각이 하나도 안 났어요. 유족들은 맨날 아프고 힘들고 그런데 그런 생각이 없어지는 거예요. 그 순간만큼은 아주 좋았어요.

유가족들은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었는데, 사고를 당한 후에는 다른 세상을 사는 느낌이에요. 그런데 이런 재해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평범한 사람들과 분리된 것처럼 대하는 게 싫거든요. 유족다움이나 이런 것 질문받을 때가 있는데 사람이 다 다르기 때문에 유족이 느끼는 감정도 다 다를 수 있고, 유족다움이란 없다고 생각해요."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의 일원으로 전시를 함께 개최한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의 일원으로 전시를 함께 개최한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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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은 김용균 노동자가 사망한 후 김 대표를 위로해준 산업재해, 시민재해 피해유가족들을 만나면서 구상하기 시작했다. 산업재해 유가족들은 함께 정기적 모임을 만들었고, 이후 사회를 위해서 뭔가 해보자는 결정을 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에도 함께 하였다. 김 대표는 산재사망 사고가 개인의 잘못이 아닌 사회적, 구조적 문제로 인해 생긴 것임을 알리고 바꾸기 위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아들의 죽음으로 알게 된 위험하고 무책임한 노동 현장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김용균은 2018년 정부에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진행한 캠페인에 참여해 "대통령 만납시다"라는 메시지를 들고 인증샷을 찍었다. 김 대표는 아들이 왜 대통령과 만나자 했을까 궁금했고, 부당한 것이 있는데 바뀌지 않으니 만나자고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장례식장에서 관리자들을 만나고 사고 현장을 목격한 후 안전과 관리 책임에 대한 뿌리 깊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장례식장에서 관리자가 저한테 '용균이는 일도 잘하고 착한 아이였는데, 가지 말라는 곳에 가서 사고가 났다'고 했어요. 그런데 용균이 동료들한테 물어보니 회사에서 시킨 대로 하다가 사고가 난 것이라고 했지요. 그 얘길 듣고 회사가 용균이한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운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사고 3일 차에 사고 현장에 방문했거든요. 누가 자식 죽은 자리에 가고 싶겠어요. 그렇지만 우리 아들이 뭘 어떻게 하다가 죽었는지 알고 싶었어요. 사고의 진상을 규명하려면 내 눈으로 봐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미 물청소가 되어있더라고요. 사람이 죽었으니까 폴리스라인 치고 아무도 못 들어가게 하는 게 기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걸 보니까 뭔가 감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거기서 한 번 더 경악하면서 진상규명을 제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현재 김병숙 전 서부발전 대표와 백남호 전 한국발전기술 대표 등에 대한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김 대표는 재판에 참석할 때마다 이윤은 가져가면서 생명에는 무책임한 책임자들의 행태에 분노를 느끼고 있다.

"지금 용균이 사고 재판 항소심이 진행 중인데 너무 화가 나요. 사고가 산안법 개정 전에 일어난 거라, 구 산안법이 적용돼요. 그래서 처벌이 미미하게 끝나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그래도 최대한 강하게, 지금까지 한 것보다 크게 처벌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재판에 임하고 있어요. 피의자들은 위증도 수시로 하고, 합의안에는 잘못했다고 해놓고 재판에서는 죄 없다고 해요. 잘못이 드러났는데도 처벌에서 빠져나가려는 건 용서가 안 돼요."

발로 뛰며 개정하고 제정한 법

김 대표는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기 위해 정치인들을 설득하고,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위해 다른 유가족, 활동가, 국회의원과 함께 단식 농성까지 했다. 비로소 통과시켰을 때 뿌듯한 순간도 있었지만, 번번이 노동자들에게 충분하지 않은 내용이 통과되어 실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다시 시작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곤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잘 만들면 김용균 사고 책임자들이 책임지게 할 수 있다고 해서 저도 같이 나섰어요. 각 정당 다 만나면서 법 개정 도와달라 했어요. 소회의가 진행 중일 때, 마이크에 대고 (안에 있는 국회의원도 다 들을 수 있게) '얼마나 죽어야 이 법 통과시킬 거냐'고 호소했어요. 결국 통과됐죠. 그런데 용균이 동료들이 산안법에 용균이 같은 노동자는 포함 안 된다는 거예요. 내가 뭘 하고 온 건가 하고 낙심했죠. 그래서 뭔가 제재하지 않으면 용균이 같은 죽음을 막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중에 중대재해처벌법을 알게 돼서 함께 했어요.

저는 아들을 잃었지만, 그전부터 한 해에 2400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한국에도 영국의 기업살인법 같은 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법을 제정하려고 갖은 애를 썼어요. 그런데 법안을 발의하는데 우리 법안은 간데없고, 정의당 강은미 의원 안도 있었는데, 정부 법안이 세워져서 의아했어요. 어떻게 저게 정부안일까 할 정도로 제일 안 좋았거든요. 결국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 범위에서 빠졌잖아요. 산재사고 사망자 80%가 50인 미만에서 발생하는데 50인 미만 사업장은 또 3년간 유예됐고요. 죽음을 막지 못하겠단 생각에 좌절했어요. 하지만, 영국 유족들이 만든 법도 바로 죽음을 막은 것은 아니고, 서서히 변화를 만들었다고 들었어요. 법만 만들면 되는 게 아니구나,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을 또 했죠."


느리더라도, 변화를 만들어가는 활동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1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와의 간담회에서 김미숙·박석운 운동본부 공동대표 등 참석자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1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와의 간담회에서 김미숙·박석운 운동본부 공동대표 등 참석자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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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해오며 기대도 하고 실망도 했다. 김 대표는 어떻게 하면 이 사회가 더 안전해질 수 있을지,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한다.

"이런 죽음은 막아야 한다는 시민들 인식은 많이 높아져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아직도 산재가 많이 일어나고 있잖아요. 산재를 막는 역할을 국민 전체가 나서야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대학생들한테 강연할 때, 학생들이 뭘 할지 잘 모르겠다고 하면 제가 이렇게 말해요. '건축 중인 곳, 문제 있는 곳 사진 찍어라'라고요. 얼마 전에 길을 지나는데 공사장에 사다리 높은 것을 갖다 놓고 약간 비스듬한 상태로 올라가서 노동자 한 명이 뭘 뚝딱뚝딱 고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거 사진 찍으려고 하니까 옆에 있던 관리자 3명이 뭐 하시는 분이냐고 물어봤고, 제가 '인권 활동가다, 이거 찍어서 알릴 거다' 이렇게 얘기했더니 바로 사다리 미끄럼 방지 설비를 설치하더라고요. 그렇게 일상에서 할 수 있는 걸 찾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기업 책임자들은 여태까지 노동자 탓하던 사람들이니 자기 잘못이라 인정하지 않겠죠. 법이 제정돼도 어떻게 빠져나갈지 궁리할 거고요. 제대로 처벌받을 수 있게, 그들 잘못임을 각인시켜야 해요. 그게 사회의 역할이고요. 이태원 사고에서 보듯이 정부도 안전을 방치하고 있잖아요. 공무원들도 책임 안 지려고 할 텐데, 결국은 시민들이 감시하고 처벌받게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대표는 앞으로도 해야 할 일들로 마음이 바쁘다. 변화가 빨리 오지는 않더라도 노동 현장을 안전하게 바꾸고, 차별 없는 현장을 만들기 위해 또 한 발 내디딘다.

"김용균 재단이 내년 초 이사를 앞두고 있어 마음이 분주해요. 재단 만들면서 3년까지는 흔들리지 않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기반을 탄탄하게 하는 거요. 지금까지 한 것처럼 앞으로도 꾸준히 현안에 충실히 활동해야겠죠. 노조법 2·3조 개정, 중대재해처벌법 위헌 심판 대응 같은 현안이 많잖아요. 또 유족들이 손잡아 달라고 하는 곳에는 열심히 달려가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도 계속해야 할 활동이고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유청희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12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김용균, #산재_사망, #중대재해, #김용균재단, #다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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