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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투유니온 조합원이 7월24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사족보행을 면치 못한 헌법재판관들의 진화를 간절히 기도합니다"란 문구가 적힌 입장문을 들고 있다. 이날 헌재는 재판관 9명 중 5명의 합헌 의견으로 문신 시술을 의료인에게만 허용하는 의료행위로 규정한 의료법 27조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타투유니온 조합원이 7월24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사족보행을 면치 못한 헌법재판관들의 진화를 간절히 기도합니다"란 문구가 적힌 입장문을 들고 있다. 이날 헌재는 재판관 9명 중 5명의 합헌 의견으로 문신 시술을 의료인에게만 허용하는 의료행위로 규정한 의료법 27조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 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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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역법원 1심 판사가 지난 30년 간 문신을 불법 행위로 처벌하는 근거였던 대법원 판례가 정정될 필요가 있다며 반기를 들었다. 기존 판례는 헌법 원리를 가장 잘 실현하는 법리 해석이 아니라며, 헌법적 관점에서 다시 법리를 해석해 '문신을 의료행위라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문신 관련 사건의 하급심 판사가 독자적인 논증으로 기존 판례를 반박한 첫 사례다.

지난 10월 19일 청주지법 형사5단독 재판부 박종원 판사는 2년 전 의료법 위반으로 기소된 문신사 정아무개씨와 3년 전 보건범죄단속에관한특별조치법 위반으로 기소된 문신사 최아무개씨에게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앞선 문신사 관련 유죄 선고들은 구체적인 설명 없이 대부분 2~3쪽 내로 판결문이 끝났다면, 이 두 사건 판결문은 30쪽에 달했다.

그동안 문신에 대한 획일적인 불법 규정에 반발해 온 문신사들은 사법부가 기존 판례를 전가의 보도로 휘두른다며 비판해왔다. 억울하게 벌금을 내거나 징역살이를 한 문신사들이 수십 년 간 양산되어 왔지만, 판사들 대부분은 판례 하나에만 기대어 판결했다. 

그러다 최근 '현재 사법부가 헌법 원리에 맞는 법률 해석을 하고 있느냐'를 스스로 묻고 '그렇지 않다'고 답한 1심 판결이 처음으로 나온 것이다.
 
"'문신 시술' 또는 '반영구 화장 시술'이 '의료행위'에 포함된다는 해석이 헌법 원리와 가치를 가장 잘 실현하지 못한다는 의심이 남는 이상 합헌적 해석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심판해야 하는 법원의 의무다." (9쪽)
 
박 판사는 국가 권력으로부터 시민 기본권을 보호하는 헌법 원리를 가장 잘 실현하는 방향의 법리 해석은 법원의 의무라고 밝히면서 30쪽에 걸쳐 자기 논리를 전개했다.  

시민사회로부터 오래 비판 받아온 대법원 판례
 
지난 10월19일 의료법 위반 무죄 선고를 받은 한 문신사 사건 판결문 중 결론 부분 갈무리.
 지난 10월19일 의료법 위반 무죄 선고를 받은 한 문신사 사건 판결문 중 결론 부분 갈무리.
ⓒ 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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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사들에게 유죄를 선고한 재판부 논리의 골자는 "의료법상 의료행위는 의료인만 할 수 있다. 문신은 의료행위다. 문신사는 의료인(의사) 자격증이 없다. 그래서 문신사의 문신은 불법이다"이다. '문신=의료행위'라는 명제의 근거는 바로 대법 판례(91도3219)다.

대법원은 지난 1992년 "의료행위는 질병의 예방과 치료행위 뿐만 아니라 의료인이 행하지 아니하면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 행위"란 기준을 제시했다. 여기에 준해서 문신도 판단했다. 

그러나 박 판사는 이 해석이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고 봤다. 이는 국가형벌권의 자의적 행사를 막기 위해 범죄와 형벌을 법규로 엄격히 정해야 한다는 헌법 대원칙이다. 그런 점에서 기존 대법원 판례는 확장해석금지를 위배한 측면이 있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그는 그 이유로 먼저 의료법 입법 취지와 개정 연혁, 1972년부터의 관련 판례 취지를 모두 종합해봐도 의료행위는 '질병의 예방·진찰·치료를 위한 행위'라는 의료의 본래 의미 밖으로 확대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나아가 '침해의 최소성'에도 반한다는 게 박 판사의 의견이다. 국가가 기본권을 제한할 때 그 수단은 필요·최소한도 내에서만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인데, 문신 범죄화는 문신사들의 직업 수행 및 표현의 자유, 그리고 문신 시술을 원하는 시민들의 개성 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야기다. 

이밖에 먼저 염료로 인한 부작용은 색소 자체의 위험이기에 문신사가 아닌 염료 생산·유통 과정 자체를 감독해야 할 문제라고 봤다. 더불어 "어떤 형태든 피부의 완전성을 침해하는 행위는 감염 위험성을 동반하는데, 이중엔 비의료인이 한정적인 의학지식을 습득해 예방과 대처가 가능한 일부 영역"이 있다고 봤다. 채혈 혈당측정기, 사혈침 등이 일반에 보급된 점, 귀고리를 착용하려고 귓불이나 연골을 뚫는 행위가 일상화된 점 등이 또 다른 예다. 

박 판사는 이를 토대로 눈썹 문신 및 반영구 화장 행위는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문신이 화장술이나 미용업의 행위인데다, 피부를 피가 나지 않을 정도로 찌르는 등 단순 기술 반복으로 이뤄져 위험 예방에 고도의 의학적 지식이 필요하다고 보기 어려운 점, 피시술자도 미용의 목적으로 이해한다는 점, 의학 지식과는 다른 화장기법 등의 지식이 상당히 필요하다는 점 등을 강조했다.


검찰 항소... "문신 범죄화 유지에 기를 쓸 것"

두 사건은 검찰의 항소로 모두 2심 상소법원에 송부됐다. 법조계에선 이 사건을 계기로 문신 비범죄화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검찰의 대응이 눈에 띄게 바뀔 것이라고 보고 있다.

1500명이 넘는 문신사들을 대신해 관련 헌법소원을 대리해왔던 손익곤 변호사는 5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이번 판결은 그냥 나온 게 아니라 많은 문신사들과 변호인들의 노력, 또 기본권 존중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나온 결과"라며 "그래서 항소심 법원이 1심 승소 판결을 취소하고 유죄판결을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검찰이 공소 유지에서 '의료인이 하지 않으면 공중 보건·위생상 심대한 위험이 생길 우려'를 입증하는데 만전을 기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내다봤다. 

임보란 대한문신사중앙회 회장은 판결 직후 입장을 내 "이제야 제대로 첫 단추를 끼울 수 있게 됐다. 현직의 우리가 직접 싸우며 피눈물로 이뤄낸 결과"라며 "검찰이 항소해도 우리는 이길 것이다. 상식적이지 않게 세상에서 유일하게 문신을 의료행위라고 판단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무죄를 선고받은 정아무개씨도 자신의 SNS에 "판사님 제 직업을 인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진짜 죽어도 한이 없을 듯하다"고 썼다. 또 "이제는 문신사를 직업으로 인정하고 떳떳하고 당당하게 음지에서 양지로 나올 수 있도록 법이 인정해주길 바란다"며 "전문가로서 최고의 기술을 통해 전 세계로 뻗어나가도록 문신사의 길을 열어주면 좋겠다"고 밝혔다. 

태그:#문신 비범죄화, #문신사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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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기자입니다. 제보 young@ohmynews.com / 카카오톡 rockyrkd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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