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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59회 무역의날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고
▲ 무역의 날 기념식 축사 하는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59회 무역의날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고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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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소야대에다 지지율 하락 및 김건희 리스크 등에 시달리는 윤석열 정권이 공안정국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촛불집회를 여는 통일운동권에 대한 구속·압수수색, 문재인 정권 및 민주당에 대한 수사와 더불어 화물연대 파업을 계기로 노동계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공안정국으로 향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움직임은 화물연대 파업에서도 나타난다.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법적 개인사업자들인 화물연대 노동자들에게 운송을 강제하는 초유의 업무개시명령을 의결한 데 이어, 이달 4일 관계장관회의에서는 강력 대처를 촉구하면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범죄로부터 국민을 지켜내는 일"이라고 발언했다. 생계 때문에 파업에 나선 사람들의 호소를 '범죄'에 빗댄 것이다.

5일 새벽 언론보도에 따르면, 최근 윤 대통령은 참모들과의 비공개 회의에서 화물연대 파업을 "북한의 핵위협과 마찬가지"라고까지 표현했다. "불법행위와 폭력에 굴복하면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도 말했다고 한다. 노동자 파업에 대한 그의 왜곡된 시선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가 파업 대처를 명분으로 공안정국을 확대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발언이다.

재야 운동권이나 시민단체를 겨냥한 공안정국과 달리, 지금처럼 노동자들을 주요 타깃에 넣는 공안정국은 훨씬 심대한 사회적 후과를 낳는다. 정부가 경찰과 검찰 등을 동원해 노동계를 탄압하면, 노동자들에 대한 사용자들의 태도에도 당연히 변화가 생긴다.

그래서 사회 전반적으로 노동자의 지위가 약해질 위험이 있다. 노동 시간, 노동자 해고, 노동조합 지위 등에도 부작용을 끼쳐 대중의 생존 조건을 더욱 불리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노동계를 겨냥한 공안정국의 해악이 더 심하다고 할 수 있다.

상당히 이례적이었던 박정희·노태우 공안정국

역대 보수정권들이 정치적 위기 때마다 공안정국을 조성할 수 있었던 최대 기반은 반공이념과 냉전체제라고 할 수 있다. 정권에 위협이 될 만한 집단이나 현상을 북한 혹은 공산주의와 연결해 억누르는 방법으로 손쉽게 위기 국면을 벗어나곤 했다.

사실, 1972년에 박정희 정권이 조성한 공안정국과 1990년에 노태우 정권이 만든 공안정국은 국제정세 흐름에서 보면 상당히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이 두 가지가 가장 대표적인 공안정국 사례로 기억되고 있지만, 공안정국이 일어나기 힘든 시점에 고강도 공안정국이 출현했다는 점에서 예외적인 사례에 속한다.

1971년 4월 10일 미국 탁구대표팀의 중국 방문으로 핑퐁외교가 일어나고, 1972년 2월 21일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 데 이어 28일 미·중 양국이 상하이공동성명을 발표하고, 7월 4일 남북한이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고, 9월 29일 중·일 공동성명으로 중·일 수교가 이뤄진 데서도 나타나듯이 이 시기는 세계적인 데탕트로 동북아에도 화해와 긴장완화의 훈풍이 불던 때였다.

그런데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는 유신체제를 선포하는 '10월 17일 대통령 특별선언'에서 훈풍을 냉풍으로 해석하는 도발적 인식을 선보였다. 그는 "긴장완화라는 이름 밑에 이른바 열강들이 제3국이나 중소국가들을 희생의 제물로 삼는 일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한 뒤 "오늘과 같은 국면에 처해서는 마땅히 이에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체제로의 일대 유신적 개혁이 있어야 하겠습니다"라며 독재와 냉전을 강화하는 유신체제를 선포했다.

세계적으로 훈풍이 부는 상황에서도 공안정국을 선포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 사회가 반공이념에 속박돼 있었기 때문이다. 1990년 공안정국 때도 다르지 않다. 1970년대 데탕트보다 훨씬 강렬한 세계적 탈냉전 속에서도 노태우 정권이 공안정국을 전개할 수 있었던 것은 반공이념이 핵심 무기가 됐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기운을 차단해 남한 땅에서만큼은 여전히 냉풍이 불도록 할 수 있었던 것은 반공이념의 강력한 위력을 반영한다.

다른 시기의 공안정국들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인들이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 뒤에도 공안정국이 수시로 출현한 것은 반공과 냉전체제가 한국인들의 의식을 외부와 차단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안보 분야에서만큼은 한국인들의 의식이 외부세계와 격리돼 있었던 것이 공안정국의 수시 등장을 수월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보수정권들은 이런 구도를 활용해 정권의 위기의식을 기반으로 사회 전체를 공안정국에 가둬둘 수 있었다. 이들은 정권의 위기를 사회 전체의 위기로 포장하고자 반공이념과 냉전체제를 요긴하게 활용했다.

심상치 않은 세계 민중의 흐름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관계자들이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적용 차종ㆍ품목 확대 등을 요구하는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전방위적 탄압 중단 촉구하고 있다.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관계자들이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적용 차종ㆍ품목 확대 등을 요구하는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전방위적 탄압 중단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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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윤 정권이 공안정국을 조성하는 2022년 지금은 정치 환경이 크게 다르다. 대중의 안보의식을 가둬두던 장벽이 글로벌 경제위기와 코로나 팬데믹으로 크게 훼손돼 있다. 전 세계 대중이 코로나 바이러스만 공유하는 게 아니라 위기감까지 공유하고 있어 정권의 위기의식이 대중의 내면을 좌우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 3년간 세계 정세에서 두드러진 것은 질병뿐 아니라 생활고와 방역에 시달리는 세계 민중들의 연쇄적인 저항이었다. 유럽연합, 이란, 카자스흐탄, 인도, 스리랑카, 호주, 캐나다, 페루, 아르헨티나 등등에서 인상적인 대규모 시위들이 발생했다. 이는 정치 이슈보다는 생활 이슈, 민생 이슈를 들고 나온 민중들의 절규였다.

웬만한 나라들은 이런 시위를 감당하기 힘들어 했다. 지난 1월 6일에는 러시아가 카자흐스탄 정권을 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로부터 구원하고자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평화유지군을 보내줬다. 7월 9일에는 고타바야 라자팍사 스리랑카 대통령이 나흘 뒤의 퇴임을 예고하더니 13일에는 그가 군용기를 타고 몰디브로 도주하는 어이없는 일이 있었다.

카자스흐탄이나 스리랑카의 경제력 때문에 이 두 나라에서 벌어진 사건의 의미가 과소평가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 민중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는 점은 이란과 쿠바가 직면한 상황에서도 느낄 수 있다. 반미항쟁을 명분으로 민중을 안정적으로 통제해온 두 나라가 대규모 민중시위에 시달리는 것은 두 정권의 약체화를 반영한다기보다는 세계 민중의 저항 역량을 반영한다고 봐야 정확할 것이다.

북한도 이런 분위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기층 당원이나 민중과의 스킨십을 꾸준히 늘리는 동시에 외부 문화 유입을 통제하는 것은 민심 이반에 대한 북한 정권의 우려를 반영한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이따금 느닷없이 막말 담화를 발표하는 것도 남북 긴장을 고조시켜 내부 통제를 강화하려는 의도를 담은 측면이 없지 않다.

중국 역시 상황이 녹록지 않다. 3연임을 공고히 하려는 시진핑을 상대로 퇴진을 요구하는 구호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영국·프랑스 등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민중을 관리해온 북한·중국·쿠바·이란 등이 민중의 움직임에 초조해하거나 민중 시위로 곤경에 빠진 것은 글로벌 경제위기와 코로나 팬데믹이 세계 민중의 위기감과 저항 역량을 증대시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도 이런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은 코로나 이후로 대중의 도전이 거세지고 있을 뿐 아니라 정권 지지율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데서도 느낄 수 있다. 대통령이 대외 강경 발언을 쏟아내거나 해외순방을 하고 돌아와도 중도층의 대통령 지지율이 쉽게 오르지 않는 것은 그만큼 민중들이 살기 어려워져 기존의 정치공학적 접근법이 통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측면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대중을 상대로 공포감을 조성하는 공안정국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대중의 불만과 분노가 올라가는 상황에서 그는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 같은 위험천만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

윤 대통령과 국토교통부장관의 위협에도 화물 노동자들이 파업을 풀지 않는 것은 이들이 그만큼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노동자들을 상대로 범죄니 북핵이니 하는 표현까지 써가며 정면대결을 불사하는 모습은 세계적으로 대중의 기운이 상승하고 각국 정권들이 위축되는 상황과 대비를 이룬다. 한국 대중을 더 이상 반공이념과 냉전체제로 묶어두기 힘들 정도로 세계 민중의 위기감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상황과 대조되는 장면이다.

지금 윤 대통령은 폭발 직전의 민심, 세계 대중과 연대되기 쉬운 민심을 건드리려 하고 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상황에 맞지 않는 공안정국을 조성하는 게 아니라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태그:#화물연대 파업, #업무개시명령, #민주노총 총파업, #공안정국, #윤석열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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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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