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06 17:21최종 업데이트 22.12.06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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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난 남성의 노상 방뇨를 무려 여섯 번이나 목격했다. 백발 성성한 할아버지부터 앳된 청년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내가 아침에 출근하는 길에도, 낮에 행정복지센터에 다녀오는 길에도, 밤 10시가 넘어 퇴근하는 길에도 그들은 길바닥에서 바지춤을 내리고 일을 보고 있었다.

심지어 저 중 세 번은 지하철 인천 1호선의 출입구 바로 앞에서 목격했다. 길을 돌아가는 방식으로 피할 수도 없다. 노상 방뇨 맛집 같은 걸까? 지하철에서 계단을 걸어 올라오는 사람은 정면으로 그 꼴을 맞닥뜨리게 되는데, 혹시 제발 봐달라고 시위라도 하는 것일까? 잠깐 지나가는 길에도 이렇게 여러 번 목격했는데 실제로 저 자리에서 일어난 전체 노상 방뇨 사건은 대체 몇 건에 달할지 감히 헤아리기도 두렵다.

노상 방뇨는 범죄다

평소 시민의식이 투철한 나는 길바닥에 널브러진 취객이나 지하철에서 물의를 일으키는 시민을 목격하면 적극적으로 관할 경찰서에 신고하는 편이다. 심지어 노상 방뇨는 경범죄 처벌법 대상으로 벌금형을 받는 진짜 범죄다. 시민의 의무를 따르자면 신고를 함이 옳다.


그러나 이런 나조차도 노상 방뇨는 차마 신고하기가 꺼려진다. 신고를 위해 증거물 촬영을 해야 하는데 그 광경을 똑바로 쳐다보며 내 휴대폰에 담는다는 게 영 괴롭기 때문이다.

노상 방뇨는 단순한 악습이 아니다. 길에서 무단으로 용변을 보는 행위인 노상 방뇨는 경범죄처벌법 제3조 제1항 12호(노상 방뇨) 항목에 따라 1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과료 등으로 처벌받는 경범죄다. 경범죄란 가벼운 범죄라는 뜻으로, 벌금 통보를 받은 뒤 10일 이내에 범칙금을 납부하면 전과도 안 남는다. 이 기간을 넘기면 20%의 가산금이 붙고, 여기서 또 20일이 지나면 형사 처분을 받게 된다. 

사람들이 흔히 지나갈 수 있는 곳, 즉 주위에 성적 수치심을 느낄 만한 이들이 있는 곳에서 노상 방뇨를 저지르는 경우에는 죄과가 무거워진다. 노상 방뇨 자체가 공공장소에서 필연적으로 성기를 노출하는 행위인지라 공연음란죄로 신고될 경우 경범죄가 아닌 1년 이하의 징역 혹은 5백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 형을 받는 공연음란죄가 성립된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에서 노상 방뇨를 한다? 특히 지하철 입구에서 노상 방뇨를 한다? 충분히 화장실에서 적법하게 생리 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데도 그러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들은 더욱 악질적이다. 같은 문명권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맞나 싶다. 나는 이런 경우 가중처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독한 남근 숭배 문화

짐승도 화장실을 가리고 자신의 배설물을 관리하는데, 저런 일부 남성들은 뭐가 문제여서 사적인 기관이자, 맞기라도 했다간 사경을 헤맬 수도 있는 급소를 아무 데에서나 꺼내 노상 방뇨를 하는 것일까. 이들은 어쩌다가 공공 질서도, 위생 개념도, 성적 모멸감도 모르는 '금수'만도 못한 존재가 되어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가. 나는 그 근원을 남근 숭배와 남아 선호에서 찾는다. 

남성에게 '고추'는 말 그대로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자랑거리다. 합계출산율이 1 이하인 요즘은 아예 다른 얘기가 되었지만, 나름 MZ세대에 속하는 내가 태아였던 시절까지만 해도 여아 감별 낙태라는 사회 현상이 심각했다.

여아 감별 낙태란 초음파로 태아의 성별을 확인할 수 있게 되자마자 성기 부위를 유심히 관찰해 남아면 축하와 함께 순산을 기원하고 여아면 임신을 중절하는 행위인데, 이는 모체인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아닌 남근 숭배 문화 그리고 여성에 대한 의도적이고 사회구조적인 대량 학살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1990년 백말띠 출생 성비 자료 ⓒ KOSIS

 

여아감별 낙태가 가장 심각했던 1990년의 경우, 첫째 성비에서부터 이미 여아감별 낙태의 흔적이 보이지만 특히 셋째 이후의 성비가 무려 100:193에 달한다. 셋째 이후로 딸 100명 당 아들은 193명이 태어났다는 의미다. 1990년생은 2022년 현재 만 32세, 한창 경제활동과 혼인, 임신, 출산 등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나이다. 남근중심주의와 그 영향이 생생한 현재진행형이라는 의미다.

금줄에 고추를 엮어 두르던 시절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남성은 뒤집기도 못하는 아기 시절부터 자신의 성기를 과시하고 숭배받는 데에 익숙해진다. 집에서든 어린이집에서든 고속도로의 갓길 위에서든 이성용 목욕탕에서든, 성기를 노출하는 데에 여아에 비해 제재 받지도 않는다.

남아의 성기를 공공연하게 노출하며 칭찬하고, 화장실을 사용하기에 귀찮은 상황이라는 이유로 남자화장실이 아닌 데에서 용변을 보게 하는 것은 프라이버시와 시민의식에 대한 해당 아동의 인식을 왜곡한다. 이런 교육을 받으며 자란 아동이 별다른 재사회화를 거치지 못하고 자라면 아무 앞에서나 성기를 노출하면서도 당당한 '개저씨'가 되는 것이다.
 

남아의 성기를 공공연하게 노출하며 칭찬하고, 화장실을 사용하기에 귀찮은 상황이라는 이유로 남자화장실이 아닌 데에서 용변을 보게 하는 것은 프라이버시와 시민의식에 대한 해당 아동의 인식을 왜곡한다. 사진은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오줌 누는 소년 상 ⓒ pixabay

 

특히 스스로 걷고 말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자란 남아를 여탕이나 여자화장실 등 여성 전용 공간에 데려오는 것은 큰 문제다. 해당 공간을 사용하는 다른 여성의 불쾌감과 불안감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해당 남아에게도(멀쩡히 자신이 쓸 수 있는 남성 전용 공간이 있음에도) 여성이 사적인 일을 처리하는 공간에 침입할 권리가 있다는 왜곡된 인식을 심어주게 된다. 

법적으로 여탕 출입이 가능한 남아의 나이는 2003년 만 7세에서 만 5세로 낮춰졌다. 하지만 만 5세는 한국 나이로 6~7세에 해당하며, 이미 자신과 이성의 신체적 차이를 비롯한 성적 지식을 습득한 나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공감해 2022년 6월부터 '공중위생관리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령을 통해 목욕실·탈의실의 이성 출입 금지 연령을 기존 만 5세에서 만 4세로 낮추었다. 

법적으로 만 4세까지는 남아가 여성 목욕탕이나 화장실에 출입하는 데에 문제가 없다지만, 이는 법률의 관점일 뿐이다. 법이 아니라 같이 욕탕을 쓰는 여성, 특히 4세 미만 또래 여아의 안전과 모욕감 또한 존중되어야 한다. 애가 보는 건데 뭐 어떻냐고? 그건 본인 생각이시고, 다른 이용자들의 불편이 아니꼽다면 집에서 씻기시거나 남편에게 맡기시면 된다.

그렇다. 지금껏 이 문제를 논하는 데에 쏙 빠져 있었던 존재. 바로 애 아빠다.

아빠의 문제

양육 문제를 이야기할 때면 엄마의 양육 태도가 도마 위에 오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특히 아들의 신체와 시민 의식과 관련해서는 아빠의 역할이 핵심이다. 남아의 노상 방뇨나 여탕 및 여자화장실 출입은 '일부 개념없는 엄마들'이 일으키는 문제가 아닌 육아노동 분담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아빠의 문제다. 애초에 아들이 아빠와 함께 화장실이나 목욕탕에 갈 수 있다면 해결될 문제이기 때문이다. 

시민의식, 공공 위생, 타인 특히 여성의 의사와 개인 공간을 존중할 줄 아는 남성을 만드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의 교육이며 특히 아버지의 역할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아빠가 아들을 조신하게 길러야 아이가 사람다운 사람이 된다.

아들이 아빠와 함께 화장실이나 목욕탕에 갈 수 없는 집도 있다는 항변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사회복지 차원에서 논하고 찾아야 한다. 남아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고, 아이의 어머니를 포함한 여성 시민에게 불편과 위험 부담을 떠안기는 형태여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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