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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기간 시민단체 활동가와 변호사로 활약하다 도의원이 됐다. 시민단체 출신 변호사라는 다소 이례적인 삶의 경로와 그에 따른 시각으로 경기도를 새롭게 경험하고 있다. 의정활동 중 마주하는 사안을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내고자 한다.[기자말]
노조원 차량 및 수상한 차량의 정문 차단기 통과 시 현관 및 총무계로 신속히 연락 → 본관 현관문 폐쇄, 총무계 직원 비상근무 실시

국가 주요 보호시설의 보안규정일 것처럼 보이는 위 규정은 대통령실도, 국정원도, 국방부도 아닌 경기도교육청의 청사방호 매뉴얼이다. 모든 도민에게, 국민에게 개방돼야 할 경기도교육청에서 "수상한 차량의 정문 차단기 통과 시" "본관 현관문을 폐쇄"하고 "총무계 직원의 비상근무가 실시"된다. 수상한 차량이 교육청에 들어오는데 이 정도 방호는 가능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경기도교육청 남부청사 전경.
 경기도교육청 남부청사 전경.
ⓒ 경기도교육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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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제는 이 '수상한 차량'에 대한 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오로지 정문 경비 직원의 판단에 따라 어떤 차량은 졸지에 수상한 차량이 되고 탑승자들은 출입의 통제를 받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수상한 차량 앞의 표현인 "노조원 차량"이다. 경기도교육청은 노조원의 차량을 수상한 차량과 동일시 하고 있다. 오히려 "노조원 차량"을 "수상한 차량"이 수식해 주고 있다는 해석이 더 적확할 것이다. 노조원 차량 등이 정문을 통과하면 즉시 현관문을 봉쇄하고 총무계 직원이 비상근무에 돌입하는 것이 지금 경기도 교육청의 태도다.

경기도교육청에 확인한 결과, 해당 내용은 2021년 8월께 '구체화'됐다고 한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16일 통화에서 "일반적으로 모든 기관은 시설방호계획을 마련해놓는데, '수상한 차량 통과시 현관문 폐쇄 등' 조치에 대한 내용은 지난해 8월께 구체적 방침으로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청사 경내 천막농성 등이 있었던 점이 배경이라고 한다. 

소통 표방했지만... 노조원 10여 명을 경찰 기동대 100여 명이 '진압'
 
지난 10일 경찰기동대가 경기도교육청에서 최진선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 경기지부 지부장을 체포하고 있다.
 지난 10일 경찰기동대가 경기도교육청에서 최진선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 경기지부 지부장을 체포하고 있다.
ⓒ 학비노조 경기지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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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인수위 백서에서 '소통·공감 경기도교육청'을 내걸었다. 전임 이재정 교육감 시절 문제의 내용이 방호계획에 들어갔다 할지라도 스스로 내건 슬로건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선 소통과 공감에 노동조합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노조원이 나타나면 문을 걸어 잠갔다. 소통과 공감은 언어도단이 됐다. 

그리고 경기도교육청의 이런 노동조합를 향한 불통은 결국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 경기도 지부장이 경기도 교육청 현관에서 경찰 기동대에게 폭력적으로 연행되는 불상사를 만들어냈다.

지난 10일 학비노조는 11월 25일로 예정된 전국 총파업을 앞두고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서 동시 기자회견을 열었다. 경기지부도 경기도교육청 현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임태희 교육감 면담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미 현관문은 잠겨 있었다. 이에 더해 총무과 직원들이 스크럼을 짜 이중으로 노조의 접근을 막았다. 게다가 당시 임태희 교육감은 교육청에 있지도 않았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조합원들이 현관 쪽으로 돌아서면서 총무과 직원들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곧바로 대기하고 있던 경기도 남부경찰청 소속으로 추정되는 기동대 100여 명이 진입해 조합원들을 현관으로 밀어붙였다. 조합원들은 고작 10여 명이었다. 게다가 지부장을 제외하고 모두가 여성이었다. 경찰이 들어오자 총무과 직원들은 신속히 빠져나갔다.

총무과 직원들과 실랑이는 있었지만 특별한 불법행위는 없었다. 기자회견이었기에 사전신고도 필요 없었다. 백 번 양보해 불법집회라고 판단했다면 3회에 걸쳐 해산을 명령한 후 강제 해산을 시도해야 했다.

그러나 경찰은 해산 명령도 없이 토끼몰이식으로 10여 명에 불과한 조합원들을 현관으로 밀어붙여 가둬 버렸다. 그리고는 이에 항의하던 지부장을 끌어내 바닥에 깔아뭉갠 뒤 팔을 꺾어 수갑을 채우고 연행했다.
 
지난 10일 경찰기동대가 경기도교육청에서 최진선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 경기지부 지부장을 체포하고 있다.
 지난 10일 경찰기동대가 경기도교육청에서 최진선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 경기지부 지부장을 체포하고 있다.
ⓒ 학비노조 경기지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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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의 청사 진입은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경기도교육청이 관할 경찰서인 수원중부경찰서에 기동대 파견 요청을 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학비노조 경기지부에 따르면, 당시 기동대는 경기도교육청에 오전 10시에서 10시 30분 사이에 도착해 대기하고 있었다. 경찰 쪽에 확인해보니 보통 기동대의 출동은 최소 하루 전인 9일엔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수원중부서 정보계 형사가 경기도교육청 총무과 직원과 병력 지원에 관한 대화를 나눈 것은 10일 오전 10시 1분이었다. 그것도 기동대 투입은 언급하지도 않고, "기자회견 후 청사 내 진입이 예상되는데 병력을 보낼까요?" 정도의 대화였다고 한다. 이는 지난 14일 필자가 경기도의회 경기도교육청 행정감사 도중 교육청 관계자에게 확인한 내용이다. 

젊은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이태원 참사를 대한 경찰의 태도와는 너무나도 대비된다. 경찰 기동대가 고작 10여 명의 조합원들의 기자회견엔 100여 명의 병력을 보냈으니 말이다. 심지어 경기도교육청의 어떠한 요청도 없었다고 한다.

경기도의회 교육행정위원회는 경기도교육청에서 경찰 기동대에 의해 기자회견을 한 조합원들이 무참히 진압당하고 연행된 사건에 대해 총무과와 교육협력국을 불러 강력히 항의했다. 그 자리에서 총무과 직원은 "노조의 청사 진입은 교육감실 점거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폈다.

이번 사건은 노조원의 차량을 수상한 차량과 동일시 하고 노조 조합원의 청사 출입을 교육감실 점거로 간주하는 경기도교육청 태도와 집회와 시위에 대한(이번 사건은 집회도 시위도 아닌 기자회견이었다) 경찰의 태도가 만들어낸 합작품일 것이다.

소통하는 경기도교육청을 만들겠다는 임태희 교육감의 행보는 정작 노조를 "수상한 사람"으로 취급하고, 단순 기자회견에 기동대가 투입되는데도 신경조차 쓰지 않는 불통이었다.

덧붙이는 글 | 김광민 기자는 현직 변호사로 경기도 의회(교육행정위원회)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임태희, #학비노조, #기동대, #경기도 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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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다. 민변 부천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기도 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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