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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태안유족회(회장 정석희)는 한국전쟁 발발 72주기를 맞아 지난 12일 유족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태안군청 대강당에서 제14회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태안군합동추모제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는 그동안의 추모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유의미한 장면이 연출돼 유족들의 심금을 울리며 또 한번의 감동을 선사했다. 

[장면①] 우익 희생자측인 자유총연맹 태안군지회장 첫 참석
 
(사)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태안유족회는 지난 12일 태안군청 대강당에서 유족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4회 태안군합동추모제를 엄수했다. 정석희 태안유족회장이 제를 올리고 있다.
▲ 태안민간인희생자 추모 (사)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태안유족회는 지난 12일 태안군청 대강당에서 유족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4회 태안군합동추모제를 엄수했다. 정석희 태안유족회장이 제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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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추모식에서는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 추모식장을 찾아 유족들로부터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주인공은 함용훈 한국자유총연맹 태안군지회장. 한국자유총연맹은 우익으로 분류되는 국민운동단체로서, 태안군지회는 적대세력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 10여 명을 포함한 177명의 위패가 모셔진 자유수호탑에서 매년 10월 말 '자유수호 희생자 합동 위령제'를 올리고 있다.
  
한국자유총연맹 태안군지회에서 민간인 희생자 합동추모제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민간인 희생자 태안군유족회는 자유수호 희생자 합동 위령제가 열릴 때마다 추모화환을 보내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자유총연맹 측에서는 묵묵부답이었다. 하지만 이번 열 네 번째 추모제에 함용훈 지회장이 직접 참석함으로써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정석희 유족회장도 함용훈 지회장의 참석에 의미를 부여하며 각별히 소개했다.

정 회장은 "나라를 잘못 만나서 피해를 입은 같은 처지임에도 그동안 만나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대화를 못했다. 그동안 유족회에서는 조화로만 대신해 추모의 뜻을 보내고 있다. 함용훈 지회장의 참석에 다시 한 번 고마움을 전한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정 회장은 전국에서 한달음에 달려온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도 챙겼다. 이번 1추모제에는 경산코발트광산희생자유족회를 비롯해 아산, 보은, 고양 금정굴 희생자 유족회 등에서 추모화환을 보내는 동시에 직접 추모제에 참석하며 아픔을 함께 나눴다. 

정 회장은 또한 고령, 청주, 공주, 강화, 김포, 마산, 골령골, 합천, 해남, 홍성, 충남유족회와 대구10월항쟁유족회 등 추모제에 참석한 전국 민간인 희생자유족회를 일일이 거론하며 유족회장들의 활동사항도 자세히 설명했다. 

정 회장은 "유족들을 자세하게 소개하는 것은 이 자리를 빌려 전국유족회들이 서로 알고 유대관계를 이어가기 위함"이라고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장면②] 영화 <태안> 구자환 감독에 감사패 전달한 태안유족회
 
영화 <태안>을 제작한 구자환 감독이 태안군유족회로부터 감사패와 함께 200만원의 후원금을 지원받았다.
▲ 감사패 받은 구자환 감독 영화 <태안>을 제작한 구자환 감독이 태안군유족회로부터 감사패와 함께 200만원의 후원금을 지원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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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제14회 추모제에서는 영화 <태안>을 만든 구자환 감독에게 감사패와 함께 200만 원의 후원금이 전달됐다. <태안>은 추모제가 열린 12일 기준 관객수 1026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태안을 비롯한 창원 등 공동체상영을 통해 관람한 관객은 제외한 숫자다.

태안유족회로부터 뜻깊은 감사패를 받은 구자환 감독은 패에 걸맞는 의미있는 제안으로 유족들의 마음을 달랬다.

구 감독은 "민간인 학살사건 만큼은 이념적인 문제나 정치적인 문제로 접근하면 안된다. 오직 생명존중과 인권의 문제로 접근해야 만이 화해가 가능하다"며 "국가지정추념일을 만들어 민간인학살 사건을 국민이 알도록 해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 역사를 만들어가길 기대한다"고 했다.

[장면③] 민간인 학살을 '전쟁범죄'로 최초 규정한 신기철 소장
 
신 소장은 전쟁터였던 적이 없었던 태안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돌아가셨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 태안민간인학살에 대해 발언하는 신기철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연구소장 신 소장은 전쟁터였던 적이 없었던 태안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돌아가셨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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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모제에는 진실화해위원회의 1기 팀장을 지낸 신기철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연구소장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정석희 유족회장은 "민간인 학살을 '전쟁범죄'라고 최초로 규정한 인물"이라고 신 소장을 소개하기도 했다.

신 소장은 '경찰과 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국방부에서 발간한 <한국전쟁사>와 전국 각지에 세워진 승전비와 기념관엔 승리한 전투로 왜곡된 채 기록돼 있다'면서 그의 저서 <전쟁의 그늘>을 통해 이를 바로 잡으려 노력해왔다. 부제도 '거짓 기록에서 찾은 6.25전쟁 잔혹사'로 표현했다.

신 소장은 "진실화해위위원회 1기 당시 팀장을 할 때 태안민간인 학살사건을 잘 알고 있고 보고서도 제 손을 거쳤기 때문에 잘 안다"면서 "처음에 태안경찰서에서 명단이 나왔을 때 굉장히 놀랐다. 어떤 자료인지 잘 알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민간인학살) 명단 보고 조사결과 보고 가장 놀랐던 것 중 하나인데 이쪽에 인민군이 지나갔던 적이 없었다. 전쟁터였던 적이 없었다. 충남지역, 호남지역에서는 인민군이 지났지만 큰 전투가 없었다. 태안은 더 했다"면서도 "전쟁이 일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돌아가셨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계속 고민을 해왔다"고 했다.

이어 "민간인학살 자체가 전쟁과 직접 연결이 돼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세계적인 학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이다"라며 "사회적 갈등이 있더라도 흔히 하는 좌우갈등이 있지만 사람을 죽일 정도는 아니었다. 전쟁이 벌어졌다면 전쟁의 영향이 아니더라도 국가의 갈등이 지역사회까지 내려와서 서로 증오하게 만들었다"고 안타까워했다.

끝으로 신 소장은 "그런 관련성에 대해서 분명히 국민들이 인식을 하고, 그런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전쟁이 우리 일 같지 않지만 확대돼 나간다는 것, 잘 지켜봐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한다"며 "태안이라는 곳의 피해의 본질을 알고 있다. 이를 기초로 해서 평화를 지향하는 노력을 곳곳에서 만들어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장면④] 태안신문 <태안 그후Ⅱ> 발간
 
감상문쓰기 수상자들이 구자환 감독, 정석희 유족회장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영화 <태안> 감상문 입상자들 감상문쓰기 수상자들이 구자환 감독, 정석희 유족회장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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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번 14회 합동추모제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태안신문>이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후원을 받아 2년간 추진해 온 영화 <태안>의 공동체상영 감상문을 한데 엮어 <태안 그후Ⅱ>를 발간했다.

<태안신문>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10개 중·고등학교를 찾아 공동체상영을 하며 태안의 아픔을 알렸다. 영화를 관람한 학생들은 영화를 보며 느낀 그 아픔을 감상문에 고스란히 녹여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감상문을 기반으로 시상이 진행됐다. 엄격한 심사를 거친 결과 태안고등학교 홍민경 학생이 충남도지사상을, 태안여고 윤수현 학생이 충남도교육감상을, 안면고 가우은 학생이 충남도의회의장상을, 태안여중 김보미 학생은 태안군수상을, 태안여고 김수아 학생은 태안군의회의장상, 태안고 배예교 학생은 태안교육장상, 안면중 조서윤 학생은 태안신문 대표이사상, 태안고 이원경 학생은 태안유족회장상을 각각 수상했다. 이들에게는 부상으로 태안유족회가 장학금을 수여하며 고마움을 전했다.

이날 수상자를 대표해 감상문 낭독에 나선 태안여중 김보미 학생은 민간인학살 희생자와 유족들의 아픔을 감상문에 잘 녹여내 태안유족들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왜 난 알지 못하였는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태안이라는 땅에 감추지 못할 과거가 존재한다는 것을...  따뜻한 온기가 있고 웃음이 넘쳐나는 나의 터전 깊숙한 곳엔 차갑고 어두운 민간인 희생자분들이 있다는 사실을 난 이 영화를 통해 깨달았다. 나는 왜 태안이라는 땅의 밝은 면만을 보고 어두운 부분은 못 보았는가 아니 왜 외면했던가.

(중략) 평소에 자주 가서 즐겨 놀던 바다가 하나 있었다. 나의 시각에서 바라본 그 바다는 물이 고우며 항상 아름다운 빛을 띠고 있었다. 그 바다는 평생을 행복하게 살아온 줄 알았다. 하지만 영화를 본 후 나의 시각에서 바라본 바다는 처음 본 것처럼 생소하게 느껴졌다. 이 아름다운 곳에서 많은 희생자분들이 계실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바다를 바라보며 한 번 더 생각해보았다. 지금은 너무 예쁜 바다이지만 과거엔 파란색이 아닌 빨간색이 존재했을 거란 것을. (중략) 더 이상 아픈 과거가 지속되지 않게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한다. 민간인 희생자분들의 억울함과 유족들의 슬픔을!" 


신문웅 편집국장은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의 일로 누구도 말을 해주지도 않고 금기시했던 사실을 아이들에게 90분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역사적 진실을 알렸다"며 "<태안 그후Ⅱ>는 한국전쟁 당시 아픔의 진실과 변화된 청소년들의 마음이 담긴 태안의 역사적 기록으로 영원히 남길 기대한다"고 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태안신문에도 실립니다.


태그:#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태안군합동추모제, #보도연맹, #부역혐의, #영화 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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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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