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내쉬 감독

스티브 내쉬 감독 ⓒ AP/연합뉴스

 
NBA(미 프로농구)의 전설 스티브 내쉬가 '2022-2023 시즌 감독 1호 경질'이라는 불명예 기록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스포츠전문매체 ESPN 등 미국 현지 매체들은 지난 2일 보도를 통하여 "브루클린 네츠가 내쉬 감독을 경질했다"고 전했다. 브루클린은 자크 본 코치가 당분간 감독대행으로 팀을 지휘할 것으로 알려졌다.
 
캐나다 국적의 내쉬는 현역 시절 NBA를 대표하는 포인트가드였다. 정규시즌 MVP 2회(2005-2006), 8번의 올스타와 5번의 어시스트 1위, 올 NBA팀 7회(퍼스트팀 3회, 세컨드-서드팀 각 2회)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포인트가드로서 뛰어난 패스와 경기운영능력은 물론이고 슛쟁이의 상징인 180클럽(야투 성공률 50%+3점슛 성공률 40%+ 자유투 성공률 90% 이상)이나 기록한 일급슈터이기도 했다. 내쉬는 지난해 NBA 사무국이 창립 75주년을 맞아 선정한 리그 역사상 '위대한 선수 75인'에도 당당히 포함되며 역대급의 반열에 오른 슈퍼스타로 인정받았다.

내쉬는 국내 농구 팬들 사이에서는 '승상'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MVP까지 차지한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우승은 커녕 파이널진출 경험도 전무한 불운했던 커리어를 두고 마치 '삼국지'의 제갈량을 연상시킨다는 데서 유래한 별명이다. 축구광으로도 유명한 내쉬는 은퇴 후 손흥민이 소속된 토트넘 홋스퍼의 열혈 팬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국내 팬들의 호감을 사기도 했다.
 
내쉬는 2015년 현역 은퇴 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선수 육성 컨설턴트 직책을 거쳐 2020년 9월 브루클린 네츠의 신임 감독으로 부임했다. NBA에서 보기드문 슈퍼스타 출신 감독의 탄생이었다. 여기에 브루클린이 케빈 듀란트-카이리 어빙-제임스 하든 등 NBA의 슈퍼스타들을 잇달아 영입하여 강력한 우승후보로 부상하던 상황이어서 내쉬의 행보는 초미의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내쉬와 브루클린의 만남은 결과적으로 대실패로 끝났다. 내쉬는 4년 계약의 절반을 갓 넘긴 시점에서 불명예스러운 경질 통보로 감독직을 내려놓게 됐다. 내쉬로서는 우승에 실패한 것은 물론이고 현역 시절 쌓아놓은 이미지와 명성에도 큰 흠집을 남긴 게 더 뼈 아프다.
 
표면적으로 내쉬가 브루클린에서 거둔 성적은 나쁘지 않다. 내쉬는 정규리그에서만 161승(94패)를 수확하고 부임 두 시즌 연속으로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었다. 하지만 '슈퍼팀'으로 꼽히던 브루클린은 이 정도 성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팀이 아니었다.
 
내쉬는 부임 첫해 브루클린을 동부 2위로 올려놓았으나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우승팀이 되는 밀워키 벅스에게 석패했다. 2021-22시즌에는 후반기 11연패의 역주행 대참사로 플레이오프 탈락 위기까지 몰렸다가 플레이인 토너먼트를 거쳐 기사회생했지만, 어렵게 올라간 PO 1라운드에서 보스턴 셀틱스에 굴욕적인 0-4 스윕패를 당했다.

이미 지난 시즌 1라운드 탈락 시점에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내쉬 감독의 교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으나 구단은 일단 그를 재신임했다. 하지만 올시즌 우승후보로 꼽히던 브루클린이 듀란트의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2승 5패로 동부 15개구단중 12위까지 처지자,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구단도 결국 내쉬에게 칼을 빼들었다.

내쉬의 실패는 '슈퍼스타 출신 지도자들이 감독으로서는 성공할 수 없었던 이유'의 전형적인 패턴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내쉬는 은퇴 후 변변한 지도자 수업이나 코치 경력 없이 곧바로 감독직을 맡았다. 우려한 대로 내쉬는 선수단 장악과 소통, 전술, 위기관리 등 모든 면에서 경험 부족을 드러내며 감독으로서는 낙제점에 가까웠다.

내쉬의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꼽힌 것이 선수 혹사와 전술의 유연성 부족, 그리고 슈퍼스타에 대한 통제력 부재다. 이는 한국농구에서 스타 출신 감독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히는 이충희, 이상민, 현주엽 등과도 흡사하다.
 
내쉬는 경기 시간이 48분에 이르는 NBA에서 주전급 선수들을 별다른 관리없이 걸핏하면 40분 이상 굴리고 에이스 의존도가 높기로 악명이 높았다. 에이스인 듀란트는 몇해진 아킬레스건 파열이라는 중상을 입어 조심스러운 출전시간 관리가 필요했지만, 내쉬는 인터뷰에서 "듀란트를 많이 뛰게 하고 이기는 것과 덜 뛰게 하고 지는 것 외에 우리 팀에 다른 옵션은 없다"는 희대의 어록을 남겼다. 심지어 하든은 햄스트링 부상으로 걸어다니기도 힘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출전을 강행해야했다. 내쉬의 브루클린이 시즌 후반기와 플레이오프로 갈수록 체력적인 문제를 드러내며 힘을 쓰지 못한 이유다.
 
전술과 경기운영 능력도 엉망이었다. 밀워키와의 2021년 동부 2라운드 7차전에서는 승부처에서 작전타임을 활용하지 못하고 체력이 떨어진 듀란트를 계속 뛰게 하다가 에어볼을 날리며 허무하게 탈락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이듬해 보스턴과의 플레이오프에서는 자신의 수비코치 출신이었던 이메 우도카 감독에게 전술적으로 압도 당하며 별다른 반격 한 번 해보지 못하고 허무하게 무너졌다.
 
특히 가장 치명적이었던 것은 슈퍼스타들을 전혀 통제하지 못하는 내쉬의 리더십 부재였다. 이는 스타 출신 감독의 단점으로서도 이례적이다. 보통 스타 출신 감독들은 지나친 자존감과 눈높이로 현역들을 몰아붙이다가 갈등을 빚는 경우는 있어도, 슈퍼스타들의 입김에 끌려가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 이는 오히려 현역 시절 명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무명 선수 출신 감독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인데, 내쉬는 듀란트-어빙 등과 비교해도 커리어에서 크게 뒤질 게 없는 슈퍼스타였다.
 
내쉬는 팀의 간판선수인 듀란트와 골든스테이트 시절에 인연을 맺어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내쉬의 브루클린 감독 부임에 듀란트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정도였다. 어빙은 내쉬가 감독으로 부임하자 "우리 팀은 감독이 필요없다. 나나 듀란트도 감독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폭탄발언으로 대놓고 감독의 권위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음에도, 내쉬 감독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브루클린은 지난 2년간 라커룸 내부에서 많은 문제가 일어났다. 기행으로 유명한 어빙은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거부하며 출전정지를 당하여 팀 전력에 큰 피해를 입혔고 트레이드 요구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어빙과 갈등을 빚던 또다른 슈퍼스타 하든은 내쉬 감독과 구단의 대처에 실망감을 느끼고 태업을 하다가 끝내 필라델피아로 떠났다. 설상가상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던 듀란트조차 비시즌에 트레이드를 요청하며 내쉬 감독과의 관계가 틀어졌음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내쉬 감독은 거듭된 파행에도 스타 선수들에게 쓴 소리를 하거나 라커룸을 강하게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브루클린은 내쉬를 선임할 당시 스타선수들과 두루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그의 소통과 친화력에 높은 점수를 줬다고 밝혔지만, 컨설턴트로서는 몰라도 리더로서는 오히려 슈퍼스타들의 입김에 끌려다니는 무능한 면모만 드러내고 말았다는 평가다.
 
내쉬와 정반대의 사례로 디펜딩챔피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사령탑 스티브 커는 현역 시절 시카고 불스 왕조의 일원이었지만 선수 개인의 위상은 백업 3점슈터에 불과했다. 하지만 감독으로서는 스테판 커리, 드레이먼드 그린, 클레이 톰슨, 조던 풀 등 스타플레이어가 즐비한 골든스테이트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왕조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훌륭한 선수로서의 자질과, 훌륭한 리더-감독으로서 요구하는 덕목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 내쉬가 남긴 씁쓸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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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내쉬 NBA 스타출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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