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레드카펫에서 시민 감독들과 포즈를 취한 정윤재 대표(가운데).

영화제 레드카펫에서 시민 감독들과 포즈를 취한 정윤재 대표(가운데). ⓒ 망우별빛영화제


영화제만 가면 그렇게 커피를 권하는 남자가 있었다. 커피만 권한 게 아니었다. 독립예술영화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자랑하는 건 예사. 영화 현장에 대한 이해도 무척이나 높았다. 이 남자, 부산과 전주, 부천을 비롯해 한국의 알 만한 영화제에서 게스트 라운지를 운영해온 빈스로드 정윤재 대표다.

정 대표는 지난해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송해 1927>을 제작한 제작자이기도 하다. 현재 기획 중이거나 제작 중인 작품도 여럿 된다. 커피 권하는 남자가 영화 권하는 남자가 됐다. 그 정 대표의 직함이 또 하나 늘었다. 바로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개최된 '망우별빛영화제' 총괄PD다.

맞다. '망우별빛영화제'는 지역·시민 영화제다. 빈스로드를 중랑구에서 운영 중인 정 대표는 지난해 연말 개관한 중랑미디어센터의 산파 역할을 도맡기도 했다. 망우역사공원에서 진행된 망우별빛영화제는 그 중랑구와 함께 기획하고 서울시로부터 예산을 따낸 지역 영화제이자 중랑마을다큐 및 시민영화아카데미와 학생들이 제작한 단편을 상영하는 시민 영화제이기도 하다. 서울시 내에서도 흔치 않은 지역·시민·자율이 기조를 이룬 구 단위 영화제인 셈이다.

또 알뜰하게 예산을 집행하는 가운데 기성·신인 감독들의 단편 5편을 직접 제작지원까지 했다. 이를 기반으로 개막작 형태로 단편 옴니버스 5편, 시민영화 아카데미 작품 16편, 초청 형태로 <아치의 노래, 정태춘>을 포함해 총 22편을 무료로 상영했다.

지난 2일 저녁 망우역사문화공원에서 열린 개막식엔 류경기 중랑구청장 등 지역 정치인들과 시민들 300여 명이 참석했다. 영화 상영 외에도 시민참여형 행사들이 다수 열렸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7> 등을 작업한 김인영 음악감독의 영화 영상음악 강연을 시작으로, 1318 청소년상상발전소와 그룹 진우철의 공연, 플리마켓, 특수분장, 페이스페인팅 체험 부스 등이 마련됐다.

"시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꿈꾸고, 영화제도 그런 모습이 돼야 한다"는 정 대표를 영화제 개막일이던 지난 2일 오후 만났다. 총괄PD로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손님을 맞는 모습이 여느 영화제 집행위원장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다음은 정 대표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지난 2일 망우별빛영화제 개막식 현장. 단편을 제작한 감독들과 배우들.

지난 2일 망우별빛영화제 개막식 현장. 단편을 제작한 감독들과 배우들. ⓒ 하성태

 
 지난 3일 망우별빛영화제 <아치의 노래, 정태춘> 상영 현장.

지난 3일 망우별빛영화제 <아치의 노래, 정태춘> 상영 현장. ⓒ 망우별빛영화제

 
- 지난 2021년 12월 중랑미디어센터가 개관했다. 산파 역할을 한 것으로 아는데 망우별빛영화제 중 어느 쪽이 먼저 시작된 건가.
"미디어센터가 이후에 생겼고, 기획은 영화제가 먼저였다. 3년 전인 2019년에 중랑구 마을협치과와 같이 기획을 한 거다. 그 당시 영화제작을 하고 빈스로드도 운영 중이었는데 중랑구와 일을 한 건 처음이었다. 처음엔 가볍게 논의가 되다가 2020년 '서울시에 제안을 하자', '예산이 큰 부분은 제안을 하자'고 해서 협치과와 같이 기획을 했다.

구 차원에서 서울시에 기획안을 넣고 승인까지 2년 정도 걸린 거 같다. 이후 그 예산이 협치과가 아닌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집행됐다. 작년에 서울시에서 옛 망우리 공원이 구로 이관되면서 망우역사공원이 설립됐거든."

- 그 예산 집행은 작년에 이뤄진 건가.
"영화제 운영 자체가 올해 상반기에 결정됐고, 예산도 집행도 마찬가지였다. 그 이전 기획은 계속 하고 있었고, 기획서도 써놨었긴 했지만 그 예산이 집행되면서 스타트가 됐고, 구체적으로 실행에 들어갔다. 그래도 중랑구 입장에서는 협치를 해야 하니까 문화관광과에서 영화제를 진행해야 할지 고민이 좀 있었다.

결국 작년 신설된 '망우리 공원과'와 같이 하게 됐다. 협치과와 망우리 공원과랑 같이 하던 와중에 작년 겨울에 중랑미디어센터가 개관했고, 미디어센터에서 장비, 공간 등을 지원받았고, 시민영화아카데미도 센터 내에 만들어서 같이 하게됐다."

- 아무래도 미디어센터와의 협업이 영화제에도 많은 도움이 됐겠다.
"센터 내 시민영화아카데미에서 단편영화 14편이 나왔다. 미디어센터가 없었으면 많이 힘들었을 거다. 센터 장비나 공간이 확보돼 있었고, 또 센터장이 적극적으로 도와준 거다. 일요일 쉬는 날인데도 공간도 열어주고 그랬으니까. 예산을 받은 건 아니지만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주셨다는 생각이 든다."

- 미디어센터와의 협업 과정을 좀 더 부연해 준다면. 
"구청 홍보과에서 근무하셨던 분이 센터장으로 오셨는데 방송국 PD 출신이다. 그러니까 영화 드라마 시스템을 알다보니 미디어센터 설립 전에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 같은 곳을 소개시켜주기도 했고.

지역 영화제를 한다고 하니 작년 말부터 적극 도와주겠다고 하셨다. 청소년 영화학교도 중랑미디어센터에서 공간과 장비 지원도 해 주고, 우리 망우별빛영화제도 마찬가지였고. 개막작 단편 5편 제작에도 센터가 장비를 대여해주셨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센터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알차게, 내실있게, 협치의 정신으로 
 
 망우별빛영화제를 찾은 시민 감독들.

망우별빛영화제를 찾은 시민 감독들. ⓒ 망우별빛영화제

 
- 예산은 얼마였나.

"총 2억이다. 알차게 썼다. 개막식이나 홍보 마케팅 포함해서 기획사 비용이 들어가니까. 내가 구조적으로 거기까진 할 수 없으니까 영화 제작 쪽에 집중했다."

- 관과 처음부터 영화제를 함께 기획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협치과가 매우 협조적이었고, 다른 과는 영화제 자체를 이해시키고 설득시키는 일에 시간이 좀 들긴 했다. 각 과 별로 조율할 것도 있었고. 그 예산으로 다행히 단편영화 5편을 제작지원을 했고, 시민영화아카데미에도 소액이지만 제작비를 지원했다. 또 윤재호, 이제한, 이상우 감독들이 시민영화 워크샵을 운영해서 영화를 제작할 수 있었다. 시민들이 너무 좋아하더라. 수강료는 무료고 강의료는 되도록 많이 주도록 했고."

- 시작하는 영화제들이 그렇듯 향후 지속이 관건일 텐데.
"협치 예산이 내년에 어떻게 편성될지가 관건이다. 다 쪼그라들고 없어지고 그래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구의 의지가 가장 중요할 거 같다. 중랑구에서 이런 영화제는 처음이니까. 단편영화 제작지원하고 시민들을 교육한 영화로만 영화제를 운영하는 건 최초다. 구가 의지를 발휘해서 계속 운영됐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다."

- 올해 영화제를 잘 하는 방법이 최선이겠지.
"그렇지. 잘 해서 시민들이 필요하다 생각하면 영화제는 계속될 수 있지 않겠나. 모든 영화제가 그렇듯이 개막식이 중요하니까 좀 더 잘 하고, 단편영화 제작지원한 영화가 시민들이 봤을 때도 공감하면 좋을 것 같다. 영화제가 첫 회로 다 만족시킬 순 없으니까. 행정 쪽에서도 마음에 들어서 구에서 이런 영화제가 필요하다 생각하면 계속 유지될 수 있을 것 같다.

- 큰 영화제가 아니라 지역 기반을 탄탄하게 쌓아야 한다는 과제가 쉽지 않아 보인다.
"중랑구 지역에서 활동을 오래해 왔다. 5년, 6년 전엔 어린이 대상 영화 교육도 했었다. 그 영화들도 작은 축제에서 상영을 하기도 했다. 작년엔 혁신교육지구로 청소년영화학교도 하고 영화제도 하니까 그런 에너지가 더 생기더라. 청소년영화학교는 중랑구청하고 동부교육청 예산으로 강사비나 촬영 제작 실비를 집행할 수 있었다. 보조금 사업 말고 향후 위탁 사업으로의 전환을 요청한 상태고 그러려고 노력을 하시는 것 같다."

- 중랑구 지역 기반으로 영화제든 미디어센터든 활동하고 있는데.
"지역에서들 사람들이 많이 도와주니까 참 좋다. 예를 들어, 청소년영화학교 같은 경우도 학교에서 로케이션을 빌려주셔서 다행히 학교에서 촬영할 수 있었고 취지가 좋다는 걸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신다."

- 서울 내에서만 볼 때 기존 문화나 영화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곳과는 또 다른 특성이 있을 것 같다.
"맞다. 순수성도 있고 문화적 토양이 적다보니 영화제나 영화학교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을 때 한 번 해 보자 하는 동력이 생기는 것 같다. 우선 영화문화가 없었으니까."

시민 지역 기반 영화제가 꿈꾸는 미래와 현실 
 
 망우별빛영화제 개막식 현장.

망우별빛영화제 개막식 현장. ⓒ 하성태

  
 개막식 레드카펫에 포즈를 취한 정윤재 총괄PD.

개막식 레드카펫에 포즈를 취한 정윤재 총괄PD. ⓒ 하성태

 
- 영화제 얘기를 다시 해 보자. 프로그램이 애매하기도 했겠다. 초청을 하기에도 좀 그렇고.
"초청은 처음부터 생각을 안 했다. 국내에서 시민영화제 같은 느낌의 별로 없다. 처음부터 시민영화제로 하고 싶었는데 협의 과정에서 지금이 됐다. 시간도 부족하고 여러 가지 이슈가 있었는데 단편을 계속해왔던 감독이나 영화인들과 계속 소통을 해왔으니까 같이 해보자고 했었다. 다른 시민 단편들은 청소년영화학교나 마을학교에서 작년에 제작한 작품들이고."

- 개막 단편 제작은 어땠나. 중랑구만의 특색, 공간을 이쪽에서 소화하는?
"그렇다. 촬영은 90% 가까이 중랑구 내에서 이뤄졌다. 장소 대여가 안 되는 곳은 어쩔 수 없었지만. <찌개> 같은 경우는 찌개 가게의 느낌이 있어서 예외였지만 나머지는 대부분 중랑구에서 찍었다고 보면 된다. 내용은 자율성을 줬다. 첫 회니까 감독님들이 작업한 시나리오를 존중했다."

- 영화제의 구조나 특성상 내용 면에 있어서도 신경이 쓰일만 한데.
"그러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틀에 갇히게 된다. 창작의 영역은 터치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다. 중랑구도 그런 부분을 많이 이해하고 도와줬고. 그래서 다행히 단편 5편 모두 다르고 특색있게 나온 거 같다."

- 그럼에도 관의 특성이 작용했을 법한데. 같이 영화제를 만들어 간다는 마인드는 어땠나.
"시나리오는 들여다 보지. 이거 찍을 수 있어요? 라고 문의도 하시고. 그런 부분은 감독들과도 조율하고. 같이 시나리오 보면서 로케이션 부분 신경쓰고. 촬영할 때도 현장에 오고. 크면 크고 작으면 작은 예산이지만 제작을 할 수 있다는 부분이 중요했다. 미디어센터에 장비가 있고 적극적으로 도와주셔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부족한 부분은 내부나 대여할 수 있었고. 제작비에도 자율성을 부여하려고 노력했고, 연출비도 다 가져가시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창작자는 작품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서 더 노력을 하긴 하지만. <할아버지짱> 같은 경우는 <브로커> 조감독 출신인 일본인 후지모토 신스케다. 촬영도 <브로커>에 참여했던 분이 도와주셨고."

- 일본인인 신스케 감독은 어떻게 섭외했나
"이상우 감독과 원래 알았던 분이다. 이제한 감독은 평소 친분이 있던 이광국 감독 소개로 알게 됐고. <찌개> 윤재호 감독은 저랑 계속 작업을 해 왔고, 각본을 쓴 <라디오 스타>나 <왕의 남자>의 최석환 작가도 단편 작업 과정에서 섭외를 했고.

김서진 감독은 뮤지컬 형태의 재밌는 영화를 만드는 분이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송해 1927>이 초청됐을 때 만났는데, 다른 감독님 소개로 만났다. 연극 연출 하다 영화쪽 작업을 하고 계시는 분인데 영화제 자체가 재밌겠다 싶으셔서 같이 합류하게 됐다. 다른 일정 때문에 아쉽게 같이 못한 유명 감독님도 계시고."

- 감독님들 같은 경우는 자기 작품이 확실한 분들도 있다. <엄마는 창녀다> 등으로 유명한 이상우 감독이나 <뷰티풀 데이즈> <파이터>는 물론 <송해 1927>을 함께한 윤재호 감독도 그렇고.
"윤재호 감독 <찌개>는 입양에 관한 이야기이다보니 시나리오 회의를 몇 번 같이 했었다. 배우들도 신인인데 즐겁게 작업했다. 기성 감독이기도 하고 부담도 됐지만 신뢰가 중요했다. 제일 중요한 건 시나리오를 가지고 예산 안에서 작업하는 것도 중요했고. 한정된 예산 안에서 찍을 수 있는 감독을 찾는 것도 마찬가지고. 물론 스케줄이 맞아야 했고. 사실 너무도 좋아했다. 제작지원금을 통해서 영화를 제작하고 상영할 수 있다는 거 자체가.

다른 작품들도 다채롭다. <할아버지이짱>은 <브로커> 조감독이 촬영한다니까 배우 분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경우고. <묘소의 환상> 배우 분들은 작가이고 처음 영화를 촬영했는데 그래서인지 약간 추상적인 작품이 나왔고. <닮은 둘>은 지역 내 딸과 아버지 이야기인데 딸은 영화에 대한 미래를 꿈꾸는 친구인데 이재한 감독과 다큐와 극 경계에 있는 실험적인 작품이 완성됐다.

<엄마는 더위가 싫다고 하셨어> 이상우 감독은 워낙 장르적으로 넘나드는 분이다 보니 짧은 시간 안에 영화적으로 잘 만들어줬다. <찌개> 윤재호 감독은 또 인물을 워낙 잘 살리는 분이다보니 신인 배우들이 돋보일 수 있도록 잘 연출했다. 원래 최석환 작가 시나리오가 참 좋았고. 아, (양)익준이 형은 카메오로 참여해줬다."

- 지역과 시민 기반 영화제의 총괄PD를 맡았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한다면.
"시민 지역 영화제를 꿈꾼 이유가 있다. 국회의원이든 지역 내 정치인이든 영화제를 함께하면서 봉사하고 참여하고 했으면 했다. 다 지역구니까. 그런 모습들을 보여줘야 시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 되는 거니까. 나는 그걸 꿈꾸고 있고, 영화제도 그런 모습이 돼야 한다. 앞자리도 시민들에게 열어주는 그런 영화제를 꿈꾼다. 구청장님도 원래 고기 파티도 같이 하며 참여할 계획이었고.

제일 좋은 건 구에 영화 축제가 생긴 거다. 시민들도 영화아카데미가 생겨서 좋아했는데 프로들한테 배우니까 너무 좋아하더라. 그런 부분들이 지속됐으면 좋겠다는 게 시민들의 이야기다. 영화제의 존속이야 계속 하고는 싶지만 내뜻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망우별빛영화제 정윤재 영화제 망우역사문화공원 중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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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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