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굴 이야기>의 한 장면.

<금정굴 이야기>의 한 장면. ⓒ 전승일

 

"2년 전 우연히 찾은 전시회에서 본 제주 4․3의 생존자들이 그린 그림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학살 당시 아이의 기억에서 멈춘듯해 보였다. 현재는 노인이 된 70년전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 사건을 그려냄으로써, 제주4․3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기억의 세대 전승과 전달 방법에 대해 고민하며 제작했다." - (단편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메이.제주.데이.> 강희진 감독 제작 노트 중

제주4.3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만든 강희진 감독의 제작 의도다. <메이.제주.데이.>는 2020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뉴스타파펀드' 첫 지원을 시작으로, 이후 2021년 전주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인디포럼 등 국내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영하며 작품성을 인정 받고 제주4.3을 알리는 데 기여했다.

지난 4월 제주4.3 70주년을 맞아 개최한 '4.3과 친구들 영화제'에서 상영했을 당시,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했던 인디스페이스 원승환 관장은 <메이.제주.데이.>의 영화적 가치를 높에 평했다. 원 관장은 "애니메이션이란 장르를 활용해 4.3을 몰랐던 관객들의 이해를 돕는데 용이할 수 있다"라며 "국내는 물론 제노사이드에 관심을 기울이는 해외 관객들에게도 쉽게 다가가는 보편성을 획득한 작품"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Korean GENOCIDE'란 영제가 인상적인 전승일 감독의 <금정굴 이야기>도 <메이.제주.데이.>와 주제와 소재, 형식을 일정 부분 공유하는 18분 36초짜리 단편 애니메이션이다. 맞다. 지난 28일 폐막한 19회 EBS국제다큐영화제(EIDF)가 최근 '방송불가' 결정을 처분을 내려 영화계 안팎의 반발을 사고 있는 바로 그 작품이다(관련 기사 : EIDF 단편 '금정굴 이야기' 방송불가 판정한 EBS).

EBS의 이런 결정이 아니었다면 예정됐던 28일 지상파 전파를 통해 시청자들을 만났을 <금정굴 이야기>는 실제 어떤 작품일까. 과연 '한국의 군대와 경찰은 1950년 7월부터 10월까지 최소 10만 명의 민간인을 아무런 재판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학살했으며 미군은 이를 묵인·방조했다'는 전반부 자막이 방송심의에 관한 '공정성'과 '객관성'을 심하게 위배하는지, 그 자막 하나로 방송불가 결정을 내린 것이 온당한지 확인해 봤다. 정치적 의도와 예술에 대한 무지란 표현이 떠올랐다.  

문제의 자막은 핑계일 뿐 
 
 <금정굴 이야기>의 한 장면.

<금정굴 이야기>의 한 장면. ⓒ 전승일

 

'이 영화는 1950년 고양시 금정굴에서 발생한 대규모 민간인 집단학살에 대한 실화이다.'

짐작하다시피, 이 단편은 길게 에둘러 갈 생각이 없다. 단편이란 형식 자체가 그렇다. 시작을 여는 자막부터 직설적이다. 구성진 우리 가락에 이어 연이은 총성이 귓가를 찌른다. 그림으로 형상화된 1950년 금정굴 집단학살 희생자들의 신발을 마주하다 보면 <금정굴 이야기>란 타이틀이 떠오른다.

뒤를 잇는 것이 누군가는 국부라고 부르는 이승만의 등장이다. 1948년 이승만 대통령 대통령 취임 및 미군정 통치, 분단과 한국전쟁이란 당시 한반도 정세를 빠르게 설명하고는 문제의 그 자막이 흐른다.

한국전쟁 당시 기록 사진 및 영상, 총성과 함께다. 뒤이어 전쟁통에 철교를, 인도교를 폭파하면서까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국민들을 버리고 도망쳤던 이승만의 만행과 그 만행의 실행자가 이승만의 총애를 받던 미군 대령이란 누군가들의 흑역사를 아로새긴다. 그 통치자의 만행으로 피난가던 민간인 800여 명이 사망했다는 비극적 사실을 재확인한다. 

1950년 인천 월미도 미군 폭격 사건, 1948~54년 제주4.3, 1950년 노근리 학살 사건, 1950년 청주와 청원 보도연맹 학살 사건. 제주4.3을 필두로 전쟁 전후 자행됐던 갖가지 민간인 학살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금정굴 이야기>가 총체적으로 조명하고자 하는 사건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음을 우리는 안다.

지난 2007년 7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고산돌 외 75명을 포함한 153명 이상의 고양지역 주민들이 한국전쟁 중인 1950년 10월 9일부터 10월 31일 사이에 부역혐의자 및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고양경찰서 경찰관에 의해 고양시 소재 금정굴에서 집단총살 당하였다"라고 이야기했다. 고양 금정굴 학살사건이 '경찰에 의한 불법적인 집단학살 사건'임을 영화는 분명히 한다. 

"56년 전 우리들의 부모 형제들은 아무 죄 없이 끌려가서 무참히 금정굴에서 학살되어 암매장 됐습니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저희 유족들의 마음은 더욱 찢어지는 것 같고 천갈래 만갈래 정말 찢어지는 심정 뭐라 다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현재 시점. 중간중간 카메라가 담지 못하는 학살의 현장을 애니메이션으로 극화하는 이 다큐멘터리가 유가족을 만난다. 2006년 금정굴 학살 희생자 합동 위령제에 참석한 유족 서병규 할아버지는 1995년 현장에서 발굴한 희생자 유골이 12년 동안 서울대학교 의과대 창고에 방치 중이라며 하루속히 합동 묘소와 위령탑에 안치해야 한다고 절규한다.

금정굴 사건은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1950년 10월 발생했다. 민간인 학살 사건이 대체로 그러했듯, 유골을 최초 발굴하기까지 4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로부터 또 11년이 흐른 2006년 합동 위령제가 열릴 때까지 그 유골은 방치되다시피 했다. 그리고 <금정골 이야기>가 EIDF에 선보이기까지 또 16년이 걸렸다. 어쩌면 이 다큐는 그 무수한 시간들의, 무심한 세월들의 이야기일지 모른다.

시간과 애도
 
 <금정굴 이야기>의 한 장면.

<금정굴 이야기>의 한 장면. ⓒ 전승일


2006년 위령제 연단에 섰던 유족 서병수 할아버지는 2021년 87세가 됐다. 아버지, 큰형, 셋째형을 잃었을 사건 당시 할아버지 나이는 15살이었다. 이 역시 민간인 학살 사건의 진상 규명 과정에서 볼 수 있는 흔하고도 아픈 풍경이다. 국가를 상대로 사과를 요구하고, 진상 규명에 앞장서고, 유골 발굴에 힘을 기울이는 유족들은 대부분이 70대 이상 노년 층에 접어들었다.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낼 수 없는 사망자들도 적지 않다.

"저는 40대 중반에 금정굴 학살 진상규명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활발하게 운동을 했는데, 지금은 나이가 들고 늙어서 그렇게 못합니다. 금정굴 위령사업이 제대로 안 되고, 너무 안타깝습니다."

2021년 금정굴 학살 희생자 합동 위령제에 참석한 유족 마임순씨도 이제 75세가 됐다고 한다. 카메라 앞에 선 유족들의 인터뷰는 다큐가 취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론일 수 있지만 그게 꼭 그렇지 않다. 시간과, 세월과 싸워야 하는 유족들의 이러한 목소리를 기록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한민국 현대사가 남긴 제노사이드의 현재를 환기시키는 역사적 기록일 수 있다.

물론 <금정굴 이야기>의 방법론은 그 기록에 멈춰서지 않는다. 고통스러울지언정 사진에 담길 수 없었던 그때 그 현장을 애니메이션으로 형상화한다. 그 고통을 끊임없이 현재화하는데 유용한 것이 바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갖가지 장면으로 구성된 애니메이션이란 방법론이다.

현재의 우리라도 피해자를 보듬어야 한다는 듯이 웅크려 앉은 이를 쓰다듬는 듯한 애니메이션 장면이 인상적인 것도 그래서다. 감독의 의도가 녹아있는 이 애니메이션 장면들이야말로 현장의 재구를 넘어 우리가 제노사이드 안팎을 성찰하고 애도해야 하는 연유를 예술적으로 제시하는 동시에 진실 규명을 위한 동참을 촉구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께서 기차 타고 고양시에 오셨는데, 여기 금정굴에서 돌아가셨다는 게 너무 슬퍼요. 저 쪽에 그림이 있었는데, 손을 묶고 땅 속에 떨어져서 생을 마감하신 게 너무 슬퍼요."

위령제에 참석한 한 꼬마 소년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묻어난다. 할아버지도 아닌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겪었을 참혹한, 아니 전쟁의 참혹함이란 적당한 수사로 다 표현할 수 없을 학살의 진면목을 이 3세대 유족 소년은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그건 당사자성을 띨 수 없는 우리도 마찬가지이리라. 공동체의 망각과 기억 사이에서 점점 희미해져가는 민간인 학살을 향한 진상 규명의 목소리가 3세대, 4세대에까지, 비당사자들에게 이어지는 것이야말로 <금정굴 이야기>가 하고자하는 주제요, 이를 예술로서 승화시키는 작품들의 존재 이유일 터다.

영화 밖 EBS의 퇴행
 
 EIDF 2022 공식 포스터.

EIDF 2022 공식 포스터. ⓒ EBS

 

"<금정굴 이야기>는 EBS가 설명한 것처럼 압축과 은유를 통해 표현한 18분 분량의 단편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이다. 이런 작품에 대하여 '객관적 자료 제시나 데이터에 대한 출처 표시' 등을 요구하며 '방송불가' 결정을 한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억압이다."


지난 26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이 EBS의 <금정굴 이야기> 방송불가 결정을 규탄하며 발표한 성명서 중 일부다. 그러면서 민변은 "EBS 심의위원회의 위와 같은 행보에 대하여 규탄하며, <금정굴 이야기> '방송불가' 결정을 즉각 철회하고, 방송 일정을 다시 편성할 것을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일요일인 8월 28일 예정대로라면 <금정굴 이야기>가 EBS를 통해 전국의 시청자들과 만났을 터다. EIDF는 평소 전 세계에서 벌어진 제노사이드 관련 다큐들을 다수 선보였고, 지금도 평화와 인권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무수히 출품된 다큐멘터리 영화제다.

이번 EBS의 <금정굴 이야기> 방송불가 결정은 그런 EIDF 자체를 반인권적인 영화제로 둔갑시킨 자멸 행위이자 역사적 퇴행이라 할 수 있다. 방송불가 결정을 내린 EBS 심의위원들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고, 예술적 무지를 한탄할 수밖에 없다. 

공교롭게도, <금정굴 이야기>는 지난 26일 막을 내린 제22회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네마프 2022)에서 대안영상예술부문 한국경쟁부문 작품상을 수상했다.

국내 유일의 영화와 전시를 아우르는 뉴미디어아트 대안영상축제인 네마프 2022는 선정 이유로 "재판 과정도 없이 억울하게 학살당한 실제 사건을 다큐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해 깊은 인상을 남기며 호평을 받았다"라고 밝혔다.

향후 <금정굴 이야기>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할 관객들은, EBS의 납득 못할 이번 결정을 어떻게 판단할까. 
금정굴이야기 EBS EI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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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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