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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이 구매한 우유를 장바구니에 담고 있다.
 지난 18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이 구매한 우유를 장바구니에 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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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서 물건을 집어 오는 '피커'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물류센터에서 물건을 담고 포장하는 사람은 생각해봤지만, 나도 종종 이용하는 '마트' 매장에서 온라인 배송을 위해 물건을 찾고, 집고, 포장하는 사람이 있다니.

온라인 유통업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대형마트들은 기존의 오프라인 매장을 활용하기로 했다. 월마트 모델이다. 온라인으로 고객이 상품을 주문하면 오프라인 매장의 상품 중 주문에 따라 물건을 담고 분류하고 포장해 배송하는 방식을 활용하는 것이다. 롯데마트의 스마트스토어, 이마트(SSG닷컴)의 PP센터, 홈플러스의 이커머스 부서 등이 그것이다.

이미 형성된 오프라인 매장을 일종의 물류센터로 활용하는 것이므로 물류센터 시공에 드는 비용과 기간, 관리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대부분의 마트 오프라인 매장이 전국 도심에 위치하므로 배송 거리를 단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강점이 있다. 특히 신선식품 익일·당일 배송을 주요 경쟁력으로 한다(김성혁, 이문호, 권혜원, 장진숙, 유통·물류산업 노동의 변화와 대응,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2020).

4차 산업혁명이니 언택트니 클릭 하나로 물건이 집 앞에 도착한다지만, 당연히도 누군가 물건을 생산해냈을 뿐 아니라, 누군가 수많은 물건 더미 속에서 내가 주문한 것들을 찾아내고 담아 포장, 배송해 내 집 문 앞에 도착하는 것이다. 요술은 없다.

홈플러스 이커머스 부서에서 일하는 오변순씨를 지난 17일 만났다. 그는 서울 강서점에서 일하다 최근 이커머스 부서 통합, 대형화에 따라 가양점으로 옮겼다. 

"한 번에 6명의 장을 대신 보는 거죠"
 
마트 매장에서 대형 트롤리로 온라인 배송 물품을 집품(피킹)하고 있는 노동자
 마트 매장에서 대형 트롤리로 온라인 배송 물품을 집품(피킹)하고 있는 노동자
ⓒ 오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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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커머스 부서 일은 얼마나 하셨어요? 

"만 7년 넘었어요. 처음에는 이렇게 크지 않아서 '배달' 제품 집품하는 식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많이 커졌죠. TV에서 이마트 직원이 방송에 나와서, '고객님이 주문한 것을 내가 내 거 산다고 생각하고 담는다'라는 얘기를 하는 것 보고, '신기하다, 저런 데도 있구나' 생각을 했었지요. 친구가 '자리 났는데 한번 가볼래?'했을 때, 그때 본 게 생각나서 해보자 했던 게 벌써 7년이 됐네요."

-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일하시는지 잘 상상이 안 가기도 하는데요. 일하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주십시오.

"고객 대신 장을 본다고 생각하면 돼요. 원래 오더별 패킹이라고 해서, 주문한 고객 각각의 물건을 담았어요. 주문한 고객마다 번호가 매겨져요. 그 번호를 바구니에 붙이고, 한 번에 6개의 바구니를 트롤리에 담아서 매장으로 끌고 나갑니다. 한 번에 6명의 장을 보는 거죠.

팀패드라 부르는 단말기에 물건 위치에 따라 순서대로, 각각의 바구니에 어떤 물건을 담아야 할지가 떠요. 예를 들어 17번 진열대에 꿀, 참치캔 등이 있으면, 단말기에 1번 바구니 꿀 2개, 2번 바구니 참치캔 10개 이런 식으로, 뜨는 순서대로, 바코드로 입력하면서 담습니다. 이렇게 오더별로 장을 볼 땐 '패킹' 업무는 따로 필요 없었어요. 한 고객의 바구니에 바로 직접 담으니까, 담아온 것을 그대로 내놓으면 됐거든요. 주문이 많은 고객에게는 바구니가 2~3개 배당되기도 하고요."  

- 그렇게 담아온 물건의 배송은 어떻게 되는 거죠?

"저희는 하루에 3차로 물건이 나갑니다. 오전 10시, 오후 2시, 5시인데요, 고객들이 주문할 때 상품을 받고 싶은 시간대를 셋 중 하나에 체크하면 그때 배달하는 방식입니다. 저희는 아침 7시 반 출근 4시 반 퇴근인데, 첫 번째 차량이 오전 10시에 나가려면, 일은 최소한 20분 전에는 마무리해야 해요.

안 그러면 배송 시간이 부족하니까, 맞추려면 바쁘죠. 10시에 나가는 물량이 보통 가장 많은데, 오전 2시간 동안 담아서 내보내니, 이 첫 번째 출차까지가 가장 바빠요. 이렇게 내놓으면 이걸 각 구역을 담당하시는 배송기사들이 맞게 담겼는지 검수한 뒤 트럭에 싣고 나가죠."

- 한 번 차가 나갈 때 대략 몇 개의 물건을 담당하게 되나요?

"몇 개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물건이 한 개라고 해도 10개 묶음 1개일 수도 있고, 정말 작은 물건 한 개일 수도 있잖아요. 개수로 말하기가 어려워요. 대신, 한 번 차가 나갈 때 매장을 최소 열 번 정도는 도는 것 같아요.

일반 매대에 있는 상품이랑 신선 가공 상품이랑 냉동 제품을 구분해서 담아야 하거든요. 먼저 화장지, 과자, 라면 등 일반 매대에 있는 상품을 담는데, 한 바퀴 돌면서 6개 바구니 담긴 트롤리 다 채우면 갖다 놓고, 다시 새 바구니 6개 가지고 한 바퀴 돌고 이런 식이죠. 일반 제품 최소 4바퀴, 우유나 채소 같은 신선에서 4번 정도 도는 게 최소예요. 휴가, 병가자 있으면 일반 제품만 6, 7번 돌기도 해요."

"총량 패킹으로 바뀐 뒤... 2만보 걷던 거 1만5천보 걷지만"
 
고객 대신 장 본다고 하면 간단한 일처럼 느껴지지만, 매일 1만 5000보 이상 걷고, 중량물도 상당히 취급한다.
 고객 대신 장 본다고 하면 간단한 일처럼 느껴지지만, 매일 1만 5000보 이상 걷고, 중량물도 상당히 취급한다.
ⓒ 오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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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매장이 바뀌면서 큰 변화가 있었다고 들었어요.

"제가 강서점에서 일할 때는 오더별 패킹을 했었는데, 지난 6월 초 가양점으로 옮기면서 총량 패킹으로 변경됐어요. 대형화한다고 두 군데 부서를 가양점으로 통합한 거거든요. 이마트도 총량 패킹으로 하고 있다는데요, 그 차수에 내보내야 할 상품 전체 명단을 받아서 모두 가져온 다음, 고객별로 나눠 담아 내보내는 시스템이죠.

예를 들어, 예전에는 한 바퀴 돌 때 내가 담당한 6개 바구니 중 라면을 주문한 사람이 있으면 그만큼 담고, 다시 다음 6개 바구니 중에 라면이 또 있으면 다시 가서 담아야 했잖아요. 그러니까 걸음 수는 예전이 더 많긴 했어요. 지금은 아침에 가면 전체 양이 나와 있으니까, 한 명이 가서 라면을 몇십 몇백 개를 담아와요. 다른 사람은 휴지, 세제 담아오고 이런 식으로 분담을 하죠.

그다음 이걸 다 모아놓고, 5단 48열로 총 240개의 칸이 있는 ㄷ자 형태로 된 진열대로 분리합니다. 진열대 칸마다 각각 고객들의 주문 번호가 붙어 있어서, 단말기로 다시 확인하면서 주문 별로 물건을 집어넣어 고객 한 명의 물건을 담아 내보내는 시스템이 됐습니다."

- 두 시스템 사이의 차이는 어떤가요? 

"금천점에서 먼저 바뀌었는데 거기 친구가 좋은 건 딱 하나 있다고 했거든요. 원래 2만 보 걷던 거, 1만5천 보 걷는다고. 저도 걸음 수는 줄었는데, 그거 말고는 좋은 점이 없어요.

바뀐 뒤로 노동강도가 훨씬 높아졌어요. 그런데 속도가 더 나는 것도 아녜요. 예전에는 바로 각각 고객별 바구니에 담았으니 따로 포장하는 일은 없었는데, 지금은 이걸 다시 분류하고 그걸 다시 내려서 한 고객마다 포장해야 하니 분류 시스템이 좀 더 자동화되면 모를까, 지금은 시간도 더 걸리는 것 같아요.

중량물 부담도 더 커졌어요. 무거운 제품과 아닌 것을 돌아가면서 맡긴 하지만, 쌀이나 물 등 무거운 물건을 담당하는 날 중량물 부담이 너무 커요. 모아 온 물건을 거치대에 넣었다 빼는 작업도 한번 더 해야 하기 때문에 이로 인해 늘어나는 부담도 무시할 수가 없어요.

또 예전에는 소소한 재미가 있었거든요. 한 고객의 물건을 고르니까, 사과 담으면서도 '나는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은데, 고객님한테는 더 좋은 거 담아야 하나?' 이런 생각도 하고, 꼭 내가 먹을 것처럼 조금이라도 유통기한 긴 것 고르기도 하고 이런 재미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 시절이 애틋해요. 지금은 왕창 담아와서 정신없이 분류하니까요."

"저도 모르게 소리를..."
 
마트 매장에서 집품해온 물건들을 마트 후방에서 고객별로 분류한다. 에어컨도 없이 좁은 공간에서 분류작업하는 노동자들
 마트 매장에서 집품해온 물건들을 마트 후방에서 고객별로 분류한다. 에어컨도 없이 좁은 공간에서 분류작업하는 노동자들
ⓒ 오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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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상이나 근골격계 질환도 많을 것 같아요.

"저희는 매일 1만5천 보에서 2만 보씩 걷잖아요. 제가 병원 가서 얘기하면, 의사 선생님이 너무 많이 걷는다고 하셔요. 무거운 거 들고 많이 걸어서 연골 같은 게 닳는다고요. 나중에 관절염 생기면 이것도 산재예요.

최근 옮긴 가양점은 공사가 다 끝나지 않아서, 아주 비좁은 장소에서 일하고 있거든요. 담아온 물건을 잔뜩 가지고 와서 이 칸 저 칸에 넣어야 하니까 서로 부딪히고, 진열대에 부딪히고 난리죠. 어제도 1.5리터짜리 음료수 12개 묶음 들다가 가슴을 탁 맞았어요. 엑스레이 찍었더니 '금은 안 간 것 같다'고 하셨는데, 오늘 운전할 때 운전대를 왼쪽으로 돌리기 힘들더라고요."

- 온라인 중심으로 시장이 개편되면서, 마트들이 경쟁적으로 여러 변화를 추진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저희가 가양점으로 옮기게 된 거나, 총량 패킹으로 바꾸게 된 거나 다 그런 변화지요. 이런 대형화 추세는 아마 계속될 거라 해요. 그런데 이런 변화 과정에서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고 우리를 일하게 해요. 저희만 해도 가양점이 공사와 준비가 다 안 끝났는데,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더 힘든 것이거든요. 물건 분류하는 공간에 냉방기도 없어서 너무 더웠어요. 한참 항의해서 겨우 냉풍기 몇 대 들어왔어요.

분류하는 공간이 외부 물류 하차하는 곳과 연결돼 있어서, 옆에 지게차 지나가고 정말 위험해요. 물건 수집해오는 매장 있는 층과 분류하는 층이 달라서 엘리베이터로 이 상품들을 날라야 하는데 엘리베이터 두 대 중 한 대는 고장 상태예요. 며칠 전에는 너무 더운데, 엘리베이터에서 카트를 밀어서 내리는 게 잘 안 되니까,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게 되더라고요. '너희들은 개미야, 일개미. 일만 하면 돼.'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여기 패킹하는 장소가 현대화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요즘 마트 의무휴업제도 폐지 때문에 시끌시끌한데 어떠신가요?

"일요일에 쉰다는 건 가족하고 시간 보낼 수 있다는 게 제일 좋은 점이에요. 휴일에 누가 일하고 싶어요, 쉬고 싶지. 한 달에 주말 8번 중 딱 두 번 쉬는 건데, 그것마저 빼앗으려고 하니 싸워야지요. 지금 출근 시간이랑 점심시간에 피켓시위하고 있습니다. 다들 이건 절대 안 된다고 하고 있어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최민씨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9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마트_노동자, #이커머스, #여성_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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