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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 변호인은 '사형은 잔인한 형벌'이라며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헌법에 인간은 존엄하다고 돼 있다. 흉악범도 존엄하다는 거다'. 또 '여러 연구결과 범죄예방에도 큰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오판으로 잃게 된 생명은 돌이킬 수도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에 반해 법무장관을 대리한 변호사는 헌법에 보장된 정당한 제도라며 맞섰습니다. '죽음에 대한 본능적 공포 감안한다면 사형의 범죄 예방 효과는 크다'."

2009년 6월 12일 헌법재판소에서 처음으로 열렸던 공개변론 소식을 전한 당시 MBC 뉴스의 한 토막이다. 지난 14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사형제 공개변론 보도의 요지 역시 2009년과 대부분 비슷했다. 김형태 변호사는 이번에도 청구인 측 변호인으로 그 자리에 섰다. 법무부 역시 피청구인으로 사형제 존치를 여전히 주장했다. 달라진 것이라면 2009년 '사형의 범죄 예방 효과'를 설파했던 법무부가 이번에는 '응보(응징과 보복)적 정의'를 강조했다는 정도다.

4시간 31분... 그 마지막 발언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오른쪽부터) 김형태, 박수진, 좌세준, 박은하 변호사가 형법 41조 1호와 250조 2항 중 '사형' 부분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의 공개 변론을 준비하고 있다.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오른쪽부터) 김형태, 박수진, 좌세준, 박은하 변호사가 형법 41조 1호와 250조 2항 중 "사형" 부분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의 공개 변론을 준비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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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을 사이에 두고 비슷한 격론이 펼쳐지던 그 자리에 윤지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처장도 있었다. 그는 공개변론이 펼쳐진 4시간 31분 내내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을 지켰다고 했다.

지난 15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윤 사무처장은 "4시간 31분이란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았고 지루하지도 않았다"면서 "매년 보고서도 내고 있고 관련 문서도 많이 읽고 그랬지만, 그것과 현장에서 집약된 이야기로 듣는 것은 또 다르더라. (사형제 폐지를 둘러싸고) 법 감정이나 여론 이야기 많이 나오지만, 시민들에게 제대로 정보를 주고 묻는다면 다른 답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설명했다.

윤 사무처장은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을 묻는 질문에 공개변론 막바지 이상혁 변호사의 발언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우리는 사형수 석방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위해 운동하는 것이다, 그 존엄성을 국가가 빼앗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 내가 사형제 폐지 운동을 하는 이유가 바로 그렇다는 생각에 가장 인상 깊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앞서 4시간 동안 펼쳐졌던 법리적 격론보다 훨씬 강렬하게 다가왔다는 설명이다.

윤 사무처장은 "그동안 여러 번 사형제 폐지 특별법이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정말 국회의원들이 법안을 만들려고 노력했는지 묻고 싶다"면서 "사형제 폐지는 서로 '옳으니 그르니' 하는 이런 문제가 아니라 결국 의지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주요 문답.

응보와 의지
 
지난 14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사형제 위헌 여부 공개변론 현장에서 윤지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처장이 쓴 메모. 오랫동안 사형제 폐지 운동을 한 이상혁 변호사가 그 날 공개변론 막바지에 한 발언 내용이다.
 지난 14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사형제 위헌 여부 공개변론 현장에서 윤지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처장이 쓴 메모. 오랫동안 사형제 폐지 운동을 한 이상혁 변호사가 그 날 공개변론 막바지에 한 발언 내용이다.
ⓒ 윤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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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들지 않았나.

"힘들었는데 사실 (그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중요한 포인트들을 공개 변론 과정에서 다 짚었기 때문에, 사형제 폐지 운동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 정리를 하고 배우기도 했다. 이런 방향에서 내가 활동하는구나, 그런 의지를 다지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지루하지 않았다. 헌법재판관들도 여러 질문을 했고 그에 응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단순하게, 각자 입장만 변론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조금 더 여러 관점에서 사형제 폐지 관련 논의하는 시간, 전체 절반 정도는 마치 토론을 보는 듯한, 그런 시간이었다."

- 공개 변론이 끝나고 헌법재판소에서 나오면서 가장 먼저 스쳤던 생각은?

"'이번에는 정말 (사형제 폐지가) 됐으면 좋겠다, 제발',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사형제 폐지를 둘러싸고 이야기가 많이 된 지 벌써 20년을 훌쩍 넘은 것 같다. 사형이 마지막으로 집행된 것이 1997년,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다. 2020년 말에는 유엔 총회에서 사형집행 모라토리엄(유예) 결의안에 최초로 찬성표를 던졌다. 국제사회에서 '우리는 사형제 폐지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보인 것이나 다름없지 않나. 그랬는데, 아직도 여전히 응보(응징과 보복) 논리로 (사형제 폐지 반대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 공개변론 현장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그날 마지막에 헌재에서 변호인단 양측에 발언 기회를 줬는데, 사형제 폐지 측 참고인 중 한 분이 말씀하셨다. 연세가 가장 지긋하시고, 사형제 폐지 운동을 가장 오래 하신 걸로 알고 있는 이상혁 변호사였다. '우리는 사형수 석방 운동을 하는 게 아니다'고 하시더라. 살인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석방운동을 한다는 오해를 사형제 폐지운동 하는 쪽에서 많이 받지 않나.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위해 운동하는 거'라고, '그 존엄성을 국가가 빼앗을 수 없다는 거'라고 하시는데... 1분 정도 말씀하셨을까.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날 가장 인상깊은 말이었다. '아, 그렇지. 내가 사형제 폐지 운동을 하는 이유가 그렇지'."

- 그날 공개변론 과정에서 스스로 정리된 부분도 있었다고 했는데.

"작년 말 108개국이 법률적으로 사형제를 완전히 폐지했고, 올해 파푸아뉴기니도 폐지하면서 (사형제 폐지 국가가) 109개국이 됐다. 이게 전 세계적 흐름인데,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사형제 논의 촉발이 보통 큰 범죄가 일어났을 때 이뤄지지 않나. 본인이나 주위 사람이 피해자가 될까 걱정하는 마음이 당연히 들고 그게 일반적인 감정이지만, 그걸 가라앉히고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사실 별로 없다.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서 '대체 형벌이 있다면 사형제 폐지에 찬성하느냐'고 물었더니 응답자의 3분의 2가 찬성하는 쪽으로 답했다. 매년 보고서도 내고 있고 관련 문서도 많이 읽고 그랬지만, 그것과 현장에서 집약된 이야기로 듣는 것은 또 다르더라. (사형제 폐지를 둘러싸고) 법 감정이나 여론 이야기 많이 나오지만, 시민들에게 제대로 정보를 주고 묻는다면 다른 답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입법부 이야기도 하고 싶다. 그동안 여러 번 사형제 폐지 특별법이 발의됐고, 그때마다 법사위(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벽을 넘지 못했다고 보통 표현하고 그러지 않나. 하지만 입법 주체들, 국회의원들이 사형제도 폐지 법안을 통과시키고자 진정으로 노력했는지 묻고 싶다.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헌재에 와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다."

- 결국 의지를 다지는 시간?
"수첩에 적었던 이상혁 변호사의 말, 그것이었다. 서로 '옳으니 그르니' 이런 문제가 아니다. 정말, 인간의 생명은 기본권이고, 한 번 앗아가면 되돌릴 수 없는 권리 아니냐. 그래서 사형제 폐지는 꼭 필요하다. 결국 의지의 문제다."

태그:#윤지현, #사형제, #이상혁, #응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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