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상담계의 두 거물이 만났다. 샤머니즘을 대표하는 배우 겸 무속인 정호근, 이성과 과학을 대표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이 <금쪽상담소>에서 만남을 가졌다.
 
15일 방송된 채널A <오은영의 금쪽상담소>에는 정호근이 출연하여 "힘든 이야기만 듣고 사니까 삶이 지친다"라는 뜻밖의 고민을 털어놨다. 수많은 작품에서 주로 선굵은 악역 전문 조연배우로 남다른 존재감을 발휘했던 정호근은, 지난 2014년 갑자기 신내림을 받았다고 고백하며 무속인의 걸을 걷기 시작하여 어느덧 8년차가 됐다. 유튜브 채널에서 그가 진행을 맡고있는 <심야신당>은 무속인의 관점에서 출연자의 기구한 사연을 듣고 운명을 해석해주는 컨셉트로, '무속계의 오은영'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

오은영과 정호근의 첫 만남
 
 채널A <오은영의 금쪽상담소> 한 장면.

채널A <오은영의 금쪽상담소> 한 장면. ⓒ 채널A

 
'무속파' 정호근과 '의학파' 오은영은 첫 만남부터 눈을 잘맞추지 못하고 어색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상대해 온 두 사람도 이날 만큼은 평소와 달리 약간은 긴장된 기색을 드러냈다.
 
먼저 말문을 연 정호근은 "오은영 선생님을 실제로 보니까 확실히 화면과 실물이 다르다. 실제의 눈매가 굉장히 고혹적이다. 눈이 보물"이라며 극찬했다. 

이어 정호근은 오은영의 근황이나 프로그램의 미래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남다른 촉을 드러냈다. 정호근은 "금쪽상담소가 얼마나 잘 될까.라는 PD의 질문을 받고 "앞으로 2년간은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이후는 이야기 안했다. 인기가 올라가고 시청자들의 호응을 받는다면 계속 갈 수 있을 것"이라며 덕담을 전했다.
 
정호근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신기를 느꼈다고 고백했다. 정호근은 신내림을 받은 사람들이 겪는다는 신병을 앓게 되면서 원인을 알 수 없는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다가 굿을 하고나서 차츰 완화되었다며 "(무속인의 길에 들어선 것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라고 털어놨다. 

오은영은 의료인의 입장에서 "빙의, 신내림도 의학적으로 하나의 현상으로 본다"라고 설명하면서도 "질병 진단 분류에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정신건강의학 차원에서 보는 신내림 증상은 환청, 환시 등으로 조현병의 초기 증상과 비슷하지만 사회적 역할수행이 어려워지는 사고장애이기에, 빙의와는 증상의 본질이 다르다고.
 
오은영은 실제로 신내림 증상을 호소하던 무속인들과 상담한 경험이 있다고 고백했다. 반대로 정호근 역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을 상담해 본 경험이 있었고, 의사마저도 정호근의 신기를 인정하고 감탄했다고.
 
정호근은 무속인으로서 겪어야 하는 고충에 대하여 밝혔다. 정호근은 극심한 피로감으로 식사조차 제대로 하기 어렵다고 고백하며 그 이유로 "아픈 사람도, 사고로 간 사람의 고통도, 사망 당시의 모든 통증을 그대로 느껴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무속인의 특성상, 대부분 타인의 힘든 고민을 들어줘야 하는 경우가 많았고, 상담시간을 넘겨서까지 정호근에게 매달리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기껏 상담을 다 마치고나서 화를 내거나 막말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무속인으로서의 숙명으로 받아들이려고 했지만 견디기 힘든 일상을 반복하며 갈수록 몸과 정신이 모두 피폐해졌다. 
 
상담 자체를 일이자 업으로 생각하는 오은영 역시 정호근의 고충에 공감했다. 정호근은 오은영에게 "내담자에게 진단과 충고를 해줬을 때, 화를 내는 환자는 없냐.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하시냐"라고 질문했다. 오은영은 "있다"라고 답하면서도 "의사는 환자나 환자의 가족과 치료를 함께 진행한다. 정호근은 일반인이 못보는 것을 보는 무속인으로서 상담한 후 해결책을 주도적으로 제시하는 입장"이라며 의사와 무속인의 차이를 설명했다.
 
정호근은 하루의 대부분을 신당에서 보낸다고 설명하며 기껏해야 어둠 속에서 의자에 앉아 침묵하고 휴식을 취하거나, 가끔 자전거를 타는 것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의 전부임을 고백하여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쉬는 날에도 계속되는 연락에 휴대전화를 내려놓을 시간이 거의 없다고.

오은영은 정호근에 대하여 "본인을 찾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책임감으로 가득한 삶"이라고 평가했다. 사전 검사 결과 정호근은 민감한 성격에 예술적이고 창의적인 기질이 강한 것으로 드러났다. 오은영은 정호근이 타인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도움을 주려는 성향이 강하다고 분석하면서도, 한편으로 "직업의식을 넘어서서 과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라고 우려했다.
 
정호근은 이른바 '공수'라고하여 무속인들이 신의 이야기를 대신 전하면서 겪는 고충을 밝혔다. 정호근의 입장에서는 순간적으로 지나가서 기억나지 않는 공수가 대부분이지만, 어쨌든 자신의 입으로 한 이야기이기에, 내담자에게 어떤 중요한 일에 관한 호언장담이라도 하고 나면 결과가 나올때까지 극도로 불안하다고. 정호근은 신당 앞에서 "제발 제 말에 책임질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한다고 이야기했다.
 
듣고있던 오은영은 정호근이 "다른 사람의 운명까지 책임지려고 한다"라고 지적했다. 정호근은 인정하며 자신의 말 때문에 타인의 운명까지 결정될 수 있는 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다며 "남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고백했다. 오은영은 "인간 정호근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존재해야만 자신의 역할을 다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러지못할때는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은영을 이를 '강박적 도움'이라고 규정하며 무리해서 타인을 돕겠다는 강박이 오히려 '나'를 해칠수 있음을 경고했다. 정호근이 더 힘들어진 것도 바로 그러한 강박으로 인한 육체적-정신적 고갈 때문일수 있다는게 오은영의 진단이었다.
 
 채널A <오은영의 금쪽상담소> 한 장면.

채널A <오은영의 금쪽상담소> 한 장면. ⓒ 채널A

 
알고보니 정호근이 무속인의 길을 받아들인 것은 가족 때문이었다. 할머니도 무속인이었다는 정호근은 그동안 배우 일에 지장이 생길까봐 신내림을 애써 감추고 거부해왔으나, 그러면 자식들에게 대물림될 수 있다는 이야기에 가장으로서 희생을 감수했다는 것.

또한 정호근은 다섯 자녀 중 첫째 딸과 막내를 잃은 참척의 고통을 간직하고 있었다. 내담자중에 아픈 아이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유독 동질감을 느낀다고. 정호근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라고 이런 시련을 주신 것일까"라고 지나간 시간을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정호근은 자녀들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못해 한때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했음을 고백했다. 도로에 뛰어든 순간, 돌연 아내의 울고있는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체험을 했다고. 마음을 다잡고 집으로 돌아갔더니 아내는 정말로 울고 있었다. 오은영은 의사로서의 입장에서 "가슴아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건 정호근의 탓이 아니다"라며 위로했다.
 
현재 아내와 세 자녀는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정호근은 가족의 행복을 위하여 20년째 기러기 아빠의 삶을 감수하고 있었다. 가족들이 미국으로 간데는 정호근의 신내림도 영향이 있었다. 정호근은 신병으로 피폐해진 아빠의 모습을 차마 보여줄수 없었다며 가족을 미국으로 보내고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밝혔다. 결국 정호근은 가족들이 해외에 있을 때 신내림을 받았다. 가족들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정호근의 입장을 존중하고 자녀들 역시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오은영은 "자녀들만을 원하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한 아빠의 마음으로 희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호근은 동의하며 "그래서 더 당당해지고자 했다. 내가 당당해야 우리 아이들도 더 당당할 거라고 생각했다"라고 답했다. 오은영은 이를 아틀라스 증후군(완벽한 남편 혹은 아빠의 역할을 하려는데서 오는 스트레스)이라고 설명하며 지나친 책임감이 주는 부작용에 대하여 충고했다.

배우로서의 정호근

한편으로 정호근은 무속인으로 유명해기전부터 이미 배우로서 인정받은 베테랑이었다. 특히 얄미운 악역 연기는 대체불가로 평가받을 정도였다. 정호근은 배우로서의 삶에 자부심을 드러내며 "악역이나 작은 역할도 잘해내려고 전심전력을 다했다, 연기하러 들어가는 것을 전쟁터에 나간다고 생각했다"라고 고백했다. 
 
한편으로 "나이를 먹고 인생도 연기도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면서도 본의아니게 무속인의 길을 걷게 되면서 사실상 연기경력이 끊긴 데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최근 출연섭외가 끊긴 이유에 대하여 정호근은 "방송국에서 무속인은 드라마에 출연시키지말라는 조항이 있다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정호근은 다시 태어나면 배우 VS 무속인, 무엇을 선택하겠냐는 질문에 고민하다가 "좀더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로 거듭나고 싶다"라는 바람을 밝혔다. 
 
정호근은 무속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후 인간관계에 있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전했다. 동료 배우나 지인들과 멀어지게 된 것은 물론이고, 주변에서 수군거리거나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정호근은 "무속인이라는 이유로 내 직업이 왜 손가락질을 받아야 할까"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편으로 정호근은 "내가 어떻게 해야 우리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을까"라며 나보다 가족을 먼저 걱정하는 애틋한 부정을 드러냈다.
 
오은영은 "굉장히 외로우셨겠다"라고 이야기하며 정호근의 외롭고 고립된 삶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정호근은 어릴 때는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부모님을 걱정했고, 성인이 되고 가정을 꾸려서는 가족을 걱정해야 하는 시간들을 돌아보며 "난 젊었을때부터 마음이 편한 적이 없었구나"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오은영은 타인이 아닌 '인간 정호근'으로서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것, 세 가지를 생각해보게 했다. 곰곰이 생각하던 정호근은 좋은 카메라 구입, 사랑하는 아내에게 잘해주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달 동안 마음껏 즐겨보는 것을 떠올리며 그때도 "아내만 꼭 있으면 된다"라며 사랑꾼의 면모를 드러냈다. 

오은영은 '신내린 연기력 정호근'이라는 은영매직을 전하며 정호근의 새로운 삶을 기원했다. 정호근 역시 은영매직이 새겨진 선물쿠션을 들고 "신당에서 항상 옆에 두고 함께하면서 오은영 선생님의 노고와 발전을 소망하겠다. 출연자 분들 모두 잘되시길 바란다"라며 덕담을 전했다.

항상 주변을 먼저 걱정하고 희생하면서 외롭고 고립되었던 삶, 무속인을 바라보는 세상의 편견을 벗어나 '인간이자 배우'로서의 삶을 찾고싶은 정호근의 이야기는 시청자들에게도 잔잔한 여운을 남겼다.
금쪽상담소 오은영 정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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