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헤어질 결심> 한 장면

영화 <헤어질 결심> 한 장면 ⓒ CJ ENM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금욕(禁慾)에는 두 가지 뜻이 숨어있다. 하나는 금지된 욕망이라는 뜻,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욕망을 억제하기 위해 참는다는 뜻이다. 접근해선 안 될 위험한 욕망에 접근한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박찬욱 감독의 신작 <헤어질 결심>은 금욕과 욕망의 대치에 관한 가장 정교한 은유이며, 어쩌면 그가 지금까지 추구해온 작품 세계의 마침표를 찍는 대단원의 막일지도 모르겠다.

먼저 본격적인 작품 이야기를 하기 전에 박찬욱 감독의 영화 스타일을 잠깐 짚고 갈 필요가 있겠다. 박찬욱 감독이 자신의 작품 속에서 한결 같이 다루는 주제는 다름 아닌 '욕망'이다. 그것도 매우 본질적이면서도 파괴적인 욕망을 갈망한다. 영화 <올드 보이>(2003)에서는 남매와 부녀 간의 근친상간을 다루고 있으며, <박쥐>(2009)에서는 뱀파이어가 된 신부가 성적 욕망을 탐닉하는 내용이 등장하고, <아가씨>(2016)에서는 여성과 여성 간에 이루어지는 동성연애를 다룬다.

언뜻 보아도 박찬욱 감독의 작품에 등장하는 욕망은 금기시된 욕망이 주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금기된 욕망에 대한 탐구가 욕망을 향한 적극적인 변호는 아니라는 점이다. 어떤 식으로든 박찬욱 감독의 작품 속에서 금기된 욕망을 탐닉한 캐릭터들은 파멸을 맞이하게 되고, 그 대가로 삶의 가장 중요한 것을 내놓거나 심지어 목숨까지 잃는다.

여기서 중요한 건 욕망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그러한 욕망 위에 서있는 우리 인간에 대한 문제다. 그런 점에서 박찬욱 감독이 욕망을 통해서 말하려고 하는 메시지는 비교적 명확하다. 그걸 깨닫기 위해서는 먼저 '존재하고 있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으면, 그게 진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부터 시작해야 한다.
 
 영화 <헤어질 결심> 한 장면

영화 <헤어질 결심> 한 장면 ⓒ CJ ENM


관습과 윤리가 인간 내면의 본성을 가로막는다

<헤어질 결심>은 산에서 추락한 한 변사자의 시신으로부터 출발한다. 사건을 맡은 형사 해준(박해일)은 망자의 부인이 중국에서 건너온 젊은 여성임을 깨닫고 그녀를 유력 용의자로 지목한 뒤 수사를 시작한다. 하지만 피의자가 된 서래가 서에 출두하자 해준은 곧 그녀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조금씩 빼앗기게 되고, 서래 또한 친절한 해준에게 호감을 보인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어느 순간 서래가 자신을 밤잠까지 설쳐가며 따라다닌 사람이 해준밖에 없었음을 깨닫게 되는 시점부터다. 서래는 피의자인 자신을 감시하기 위해 잠복수사를 펼치며 밤새 건너편 옥상에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해준에게 뜻밖의 따뜻함을 느낀다.

중국에서 들어와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를 불안 속에서 불편한 자세로 잠을 청하던 그녀에게, '믿을만한 사람'이 멀찍이 거리를 둔 채 그저 지켜보는 일은 그녀에게 오히려 안정감을 줬던 것이다. 더구나 누군가가 자신을 들여다보기 위해 이토록 관심을 가져주는 일이 아마도 생에 처음이었을, 그런 관심을 서래는 사랑의 감정으로 바꾸어 '심장을 가지고 싶다'고 나지막이 되뇌인다.

죽도록 원하는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의 상충.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마침내 해준이 서래의 의도를 알고 집에 찾아갔을 때, 증거가 담긴 휴대폰을 건네주며 '나는 붕괴됐다'고 하는 말의 저의는 불륜이라는 도덕적 결함을 떠안고도 서래를 좋아한 일, 형사와 피의자라는 사회적 관계에서 직업윤리를 등한시한 일, 결국 자신의 행동이 서래에게 놀아난 것임을 깨달았음에도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어쩌면 그 모든 일을 저지른 자기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본인에 대한 환멸까지 겹친, 한 인간의 총체적 붕괴 상황을 나타낸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그런 붕괴로 모든 것이 말끔히 사라져 버린 게 아니라는 점이다. 서래가 해준에게 했던 말처럼, 그토록 위험하고 처연하며 파멸적인 사랑이 있었음에도 사랑이 끝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영화 <헤어질 결심> 한 장면

영화 <헤어질 결심> 한 장면 ⓒ CJ ENM


"여기서는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하면 좋아하는 것을 그만둡니까?"

해서는 안 될 일이라며 의식 속에 뿌리 깊이 박힌 관습과 윤리가 있더라도, 어떤 욕망은 내 안에 그대로 잔존한다. 그런데 만약 소위 금욕이 지시하는 '정상 상태'라는 것이 나의 행복과 거리가 멀다면, 오히려 금욕하지 않는 것이 나의 행복과 가깝다면 어떨까. 어떤 욕망이 마땅히 추구할만한 것이지만 소위 세계의 질서라는 것이 원하는 그림과 내 욕망과 어긋날 때, 나는 외면의 껍데기들이 지시하는 가치가 아닌 자기 자신의 솔직한 욕망을 편들 수 있을 것인가.

적어도 서래의 눈에 비친 해준의 모습은, 사랑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사람과 다를 게 없다. 그래서 그녀는 이번엔 거꾸로 자신이 파멸할 것을 알고도 해준을 다시 만나기 위해 살인사건을 꾸미고 사건을 조사하러 온 해준 앞에 피의자가 되어 나타난다.

'헤어질 결심'이라는 영화 제목은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결심을 말하기도 하지만, 더 '깊은 곳'에서의 의미는 나를 주저하게 만드는 외면의 그 모든 속박으로부터의 헤어짐을 결심한다는 의미가 있다. 세상이 사랑을 관두라고 해서 단박에 수긍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잊어버릴 것인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보다는 '마음이 시키는 일'에 더 의미를 두고 세상과는 정반대의 선택을 하지 않을까.

비단 사랑 이야기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어떤 것, 어떤 일이 세상과 맞지 않다며 눈치 보며 감추지는 않았을까. 혹시라도 그렇게 금기의 선을 철저히 신봉하며 금욕하는 삶을 살았다면 이제는 금지하려고 애썼던 욕망을 다시 들여다볼 차례다. 너무 늦어버린다면, 우리의 의식 저 깊은 곳에 가라앉아 다시는 보지 못할 테니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황경민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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