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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3일, 장애인 지하철 시위가 52일 만에 재개되었다. 장애인 권리 보장을 위한 시위는 시민들의 출퇴근 시간대에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에 승하차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장애인 지하철 시위를 둘러싼 시민들의 여론은 찬성과 반대로 팽팽하게 갈렸고,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장애인 권리보장이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지난 6월 1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도 후보들은 장애인 버스 요금 무료, 장애인 콜택시와 중형특장차로 확충 등 장애인 권리 보장과 관련한 공약을 내놓았다. 후보들이 제시한 공약은 대부분 이동권과 관련된 정책에 머물렀다.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자." 장애인 지하철 시위에서 주요 의제로 떠올랐던 구호다. 장애인들은 이동권 외에 다른 권리들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기자들은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지체장애인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으로 나누어 제도적, 인식적으로 이들이 느끼는 부담과 불편함을 전한다.

이동권 보장 받지 못하는 이들에겐 대중교통은 '고통' 
 
당산역에 위치한 서울보건 마사지센터에서 시각장애인 채수용씨를 인터뷰한 후 찍은 사진
 당산역에 위치한 서울보건 마사지센터에서 시각장애인 채수용씨를 인터뷰한 후 찍은 사진
ⓒ 김도영, 이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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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장애인 권리예산 반영 촉구를 위해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를 진행했다. 이번 시위는 지체장애인의 문제에 집중했지만, 다른 유형의 장애인 또한 이동에 다양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각장애인 채수용(48)씨는 버스 이용에 있어 한 번에 여러 버스가 정류장에 접근할 경우 버스정보 음성 안내 시스템만을 통해서는 도착한 버스를 식별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또한, 알맞게 탑승했는지 버스 기사에게 물어도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일 때 답답함을 느낀다고 밝혔다. 채씨는 말했다.

"일부 외곽 지역으로 나가게 되면 정보 음성 안내가 나오지 않는 정류장이 있고, 일부 마을버스의 경우에도 음성안내가 나오지 않아 불편함을 겪습니다. 버스를 탔을 때 교통카드 찍는 단말기의 위치가 통일됐으면 좋겠어요. 버스마다 단말기가 통일된 공간에 위치하지 않아 헤맬 때가 많거든요."

채씨는 지하철 이용과 관련하여 지하철역의 '점자블록'이라 불리는 선형블록의 문제점도 언급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는 서울시 소재 지하철역의 선형블록이 설치 기준을 준수하고 있지 않음을 꾸준히 비판해 왔다. 채씨도 이에 공감했다.

"대부분 역 안에 있는 블록들이 너무 중구난방이라 초행길일 때 어려움이 있었어요. 지하철역 중 환승 구간에 블록이 없는 곳이 있어 이 문제를 해당 호선 담당 기관에 해결을 요청했지만, 노선 구간별 담당 운영 주체가 달라서 다들 미루기만 하더라고요."

지하철을 주로 이용하는 청각장애인 유지아(가명)씨는 지하철 안내 음성을 원활히 들을 수 없었던 문제점을 언급했다. 보청 장치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보청기를 통해 소리를 인식하지만 어떤 의미인지는 전혀 몰라요. 보청기도 기계이다 보니 바람 소리와 같은 잡음이 들린다고 생각하면 돼요. 그냥 귀로 듣는 소리와 보청기를 통해 듣는 소리는 다르니까요. 안내방송 또한 기계에서 나오는 소리이기에 다른 사람은 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에겐 굉장히 불편한 잡음으로 들려요."

유씨는 보청기기 전용 방송 장치 설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지하철 내부의 전광판이 자주 고장 나 현재 위치가 어딘지 모를 때가 많아 기웃거릴 때가 있었다고 부연했다. 

22년 4월 기준, 서울시 내에서 '정도가 심한 보행상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장애인 콜택시의 전체 수량은 632대다. 하지만 한정된 배차 수량 때문에 대기시간이 매우 길다는 한계를 갖는다. 하지만 한정된 배차 수량 때문에 대기시간이 매우 길다는 한계를 갖는다.

장애인 콜택시를 주로 이용하는 지체장애인 김민석(가명)씨는 "콜택시를 기다리는 시간이 기본 1시간, 최대 3시간이 소요되는데 대기하라는 웹 발신 문자만 4시간 받으며 기다린 적도 있어요. 오후 3~4시만 되면 콜택시 기사들이 퇴근해서 그 시간대에 집 가기가 힘들어요"라고 토로했다. 

교육과정 전반에서 난관에 봉착한 장애인

지하철 시위에서 전장연은 교육권 보장을 위한 예산 확대도 요구했다. 교육기본법 제4조에 따르면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 또는 신체적 조건 등을 이유로 교육에서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한다. 그럼에도 장애인에게 교육기본법의 내용은 그럴싸한 수사에 불과한 실정이다. 법률보다 통계가 장애인이 직면한 문제를 핍진하게 드러내고 있다.

e-나라지표 '학력별 인구비율 및 학력별 취업률'에 따르면 한국의 2020년 기준 25~64세 연령 인구의 39%가 고등학교 이상 학력을 가지고 있었고, 51%가 고등교육 이상의 학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0년 장애인실태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25~64세 장애인의 45%가 고등학교 이상의 학력을 가지고 있었고 23.9%만이 고등교육 이상의 학력을 가지고 있었다. 장애인에게 대학 문턱을 넘는 일은 여전히 어려운 셈이다.

장애인이 직면한 교육의 문턱은 대학에만 있지 않다. 초·중·고를 입학할 때마다 장애인은 난관에 봉착한다. 일반 학교에 입학하고 싶더라도 장애인을 받아줄 정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2021년 기준 서울 시내에 320개 고등학교 중 국공립학교는 120개교이고 사립학교는 200개교가 있다. 그런데 국공립학교의 70% 이상이 특수학급을 설치한 반면 사립학교의 경우 5.5%에만 특수학급이 설치돼 있다.

특수학교에 다니는 지체장애인 김민석씨는 일반 학교에 입학하고 싶었던 심정을 토로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일반 학교에 가봤어요. 그런데 정원이 적다는 이유로 학교는 입학을 반려하더라고요. 대한민국의 현실이 그렇죠 뭐…"

채수용씨는 "특수학급이 있는 학교와 입학 정원이 모두 제한된 상황에서 장애인이 갈 수 있는 학교는 굉장히 제한적"이라며 "모든 학교에 특수학급이 설치돼 대부분의 장애인이 일반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입학을 했다고 능사가 아니다. 교육과정 역시 난관의 연속이다. 특수학교마저 장애인을 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유지아씨는 "농학교임에도 수어를 하지 못하는 교사들이 있다"며 "발화를 연습시킨다는 명분으로 수어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이에 그는 "장애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비장애인과 같은 모습으로 교화하려는 듯한 교육과정에 문제를 느꼈다"고 부연했다.

배움에 필요한 교재 제공이 미흡하다는 문제를 짚은 이도 있었다. 채씨는 "수업을 따라가려면 교재가 필요한데 점자 교재를 개인이 알아서 확보하도록 방치하는 수업도 있었다"며 "그런 수업은 녹음에 의존해서 시험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취재원들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는 교육과정 안에서 서로가 상대편을 이해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입을 모았다. 유씨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할 경우 당장은 편할 수 있겠지만 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서로를 이해할 기회를 차단한다"고 했다.

채씨는 "비장애인에게 장애인이 처한 문제를 왜 이해하지 못하냐고 나무랄 수 없다"며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여건을 마련하지 못한 탓에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갈등이 불거진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일터에서도 장애인 노동자의 '사투'는 계속된다
 
서울중구에 위치한 '카페 스윗'이다. 청각장애인 유지아(가명)씨가 바리스타로 근무하고 있다.
 서울중구에 위치한 "카페 스윗"이다. 청각장애인 유지아(가명)씨가 바리스타로 근무하고 있다.
ⓒ 신한금융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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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권이란 단순히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넘어 사회의 독립된 구성원으로서 경제활동을 통해 자아를 실현할 권리를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인 장애인의 노동 현황을 살펴보면, 2021년 기준 경제활동참가율이 37.3%, 고용률이 34.6%로 전체인구의 경제활동참가율과 고용률에 비해 현저히 낮다. 

정부는 1990년부터 '장애인의무고용제도'를 통해 기업 및 기관의 장애인 고용을 독려하고, 장애인의 구직활동을 지원하는 다양한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혜택을 누리는 것에도 장애 유형 및 등급에 따라 차이가 존재한다.

유씨는 실제로 구직과정에서 장애인 취업박람회 등을 통해 장애인을 고용하는 기업에 대한 정보를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반면 채씨는 시각장애인의 경우 웹 이용 자체가 힘들어 취업 정보 접근이 쉽지 않고, 특히 자신과 같은 중장년층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고 지적했다.

더욱 큰 문제점은, 애초에 장애인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범위 자체가 제한된다는 점이다. 지체장애인 김씨는 장애 특성상 '몸을 쓰는' 직업은 물론, 지식이나 기술을 습득하여 '머리를 쓰는' 직업조차도 접근이 쉽지 않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지체장애인에 직업기술을 가르치는 전문기관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업체 또는 기관에 고용되어 일하는 과정에서도 어려움은 계속된다. 청각장애인 유씨는 현재 일하는 카페에서는 수어를 통해 직원들과 대화가 가능하지만, 이전 직장에서는 소통상의 어려움으로 회의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이처럼 주요 업무에서 배제되다 보니 장애인 노동자는 커리어를 쌓는 것도, 직장 내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일거리가 고정적이지 않고, 소득이 불안정한 점 또한 큰 어려움이다.

채씨가 종사하는 안마업의 경우, 수당제로 운영되어 고객 수에 따라 급여가 들쑥날쑥하다. 이러한 불안정성을 해결하기 위해 채씨는 보건소 같은 공공기관에서 시각장애인 안마사를 채용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보건소에 보면 어르신들 많이 오시잖아요. 물리 치료도 받으시고 진료도 많이 오시니까 그런 데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안마 바우처를 한다든지... 그러면 우리 생계에 대한 안정도 생기고 여러 가지 좋은 점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소통의 어려움과 고용의 불안정성보다도 더욱 본질적인 문제점은 장애인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이다. 청각장애인 유씨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직업 활동의 어려움으로 꼽았다.

"소통이야 서로 마음과 의지만 있다면 필담이든, 수어든, 바디랭귀지든 사용해서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청각장애인 자체를 본인이랑 동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상처를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채씨 역시 마찬가지다. 채씨는 손님에게 안마를 해주기 위해 방에 들어갔는데, 돌연 손님이 '시각장애인이냐'고 묻고는 '안마를 받지 않겠다'며 환불을 요구했던 일을 회상하며 가장 서러웠던 경험이었다고 밝혔다.

인터뷰 내용을 종합해보면, 제도적으로 장애인의 편의 생활과 관련된 시설의 확충이 지속적해서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가령 버스 안내 음성 및 전광판, 특수 학급의 확대, 생활지원사 지원 서비스와 같은 것이다.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경험과 이를 통한 장애인 인식개선이다.

시각장애인 채씨는 '어려서부터 장애가 있는 친구들과 어울려봐야 커서도 장애인들을 대하는 데 전혀 선입견이 없다'고 말했다. 청각장애인 유씨는 '청각장애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 때문에 일하면서 곤혹을 겪는다'고 전했다.  

건양 사이버대 아동복지학과 김지운 교수는 '장애인 차별금지 및 인권 보장에 관한 담론'에서 "장애인의 모든 생활영역에서의 평등한 실현을 위해서는 사회통합을 이루는 것이 급선무이며 장애인이 소외집단이 아니라 비장애인과 같이 사회 속에서 더불어 삶을 살아가는 공동체라는 인식개선,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모든 생활영역에서 인권과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지방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태그:#장애인 권리, #이동권, #노동권, #교육권,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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