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서래 역을 맡은 배우 탕웨이.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서래 역을 맡은 배우 탕웨이. ⓒ CJ ENM


 
"칸에 오니 기자 여러분들 어떻습니까?"
 
제법 또렷한 발음으로 탕웨이가 테이블 의자에 앉자마자 물었다. 질문의 몫은 기자의 전유물이 아님을 깨닫는 찰나, 그가 바로 이어서 말한다.

"외신의 평가가 좋아서 이 영화를 몰랐던 분들이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 기쁘다."
 
그렇다. 24일 오후(현지시각) 프랑스 칸영화제 팔레 데 페스티벌 인근 호텔에서 만난 탕웨이는 전날 있었던 프리미어 상영의 여운을 나름 만끽하는 것처럼 보였다. 

중국 국적의 송서래(탕웨이)는 한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생활을 했을 뿐인데 공교롭게 두 명의 남편이 사망했다. 그녀를 조사하는 형사 장해준(박해일)은 본능적으로 (그녀에게) 끌리게 되고, 자신의 평소 가치관을 배반할 정도로 깊이 서래의 삶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독특한 인생관
 
 영화 <헤어질 결심> 관련 이미지.

영화 <헤어질 결심> 관련 이미지. ⓒ CJ ENM


 
모든 대화를 한국어로 해야 하는 만큼 탕웨이는 국어 문법을 따로 공부할 정도로 해당 역할을 파고들었다. 스타 배우로서 단순히 대사와 억양을 잘 외워 연기하면 될 일이었지만 탕웨이는 "조금이라도 내가 맡은 역할을 이해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랬다"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그렇게 태어난 송서래라는 캐릭터는 박복한 삶임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간다. 까딱하면 살인죄로 기소될 판이지만, 과감하게 해준을 만나기 위해, 그의 마음을 사기 위해 또다른 일을 벌인다. '한 마디라도 하려면 살인 사건이라도 생겨야 하죠'라는 말을 남기면서.

응당 남자를 홀린 팜므파탈은 곧 상대방을 파멸로 이끌고 만다. 이게 고전 누아르의 공식이라면 서래는 후반부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파멸이 아닌 진실한 사랑임을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다.  
 
"이 대사를 외울 때 엄청 힘들었다. 어떤 말은 입에 딱 붙는 게 있는데 살인사건이라는 말이 외워지지 않더라. 한글을 창조하신 분이 그 단어를 만들 때 심혈을 기울인 게 아닐까(웃음). 아마 이건 외국인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피의자와 형사의 사랑이라는 표현만 보고 윤리적 비판을 할 수도 있겠다. 탕웨이는 "(남편을 두명이나 잃은) 독특한 인생이니까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이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독특한 인생이 독특한 사랑을 만든다. 독특한 서래가 독특한 경찰을 만났다. 이런 상황이 아니라면 그런 사랑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떠도는 인생이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성격이 생겼고, 그런 삶이 만들어졌다. 구사일생이라는 말이 있잖나. 인생의 마지막 단계까지 가서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달관하면 모든 것에서 평온해질 수 있지 않을까. 여기 오기 전에 파리에 잠깐 머물렀는데 비둘기가 길과 강 사이에 서서 뭔가를 먹고 있더라. 더러운데 먹어도 괜찮나 생각이 들었지만, 갑자기 비둘기를 보며 서래가 생각났다. 바로 그녀는 그런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지 않았을까."

"서래와 닮은 부분 많다"
 
 제75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영화 <헤어질 결심>의 박찬욱 감독 및 배우 박해일, 탕웨이가 레드카펫을 밟고 있다.

제75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영화 <헤어질 결심>의 박찬욱 감독 및 배우 박해일, 탕웨이가 레드카펫을 밟고 있다. ⓒ CJ ENM


 
그래서였을까. 탕웨이는 극중 서래가 자신의 실제 모습과 닮은 부분이 많다고 반복해서 강조했다. "사람이 많은 곳에 있을 때 나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 때, 뭔가 하나가 잡히면 끝까지 해내려 하는 성격이 비슷하다"라며 "서래는 사실 호기심이 충만한 사람이고 다른 사람을 관찰하길 좋아하는데 그런 게 닮았다"라고 말했다.
 
박찬욱 감독과 처음 작업한 탕웨이는 앞서 기자 콘퍼런스에서 "<헤어질 결심>을 하고 나서 인생의 완성을 경험한 것 같다"는 소감을 전한 바 있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물었다.

"어제(23일) 프리미어 상영에서 갑자기 든 생각"이라며 탕웨이는 "머리가 띵하는 느낌이었다. 마지막 자막이 올라가는데 마음이 꽉 찬 느낌이 들더라. 그래서 옆에 계신 감독님께 감사하다고 말한 것이다"라고 당시 감정을 전했다.
 
"감독님의 작품은 다 봤다. 새 작품이 나올 때마다 영화를 이렇게도 찍을 수 있구나 생각이 들더라. 외부의 다른 게 침범할 수 없는 감독님만의 독특한 세계가 확실히 있다는 게 모든 작품에서 느껴졌다. 사실 박찬욱 감독과 박해일 배우의 빅팬이다.  (웃음) 일단 콘티가 너무 좋았다. 만화책을 좋아하는데 만화처럼 돼 있더라. 손을 어디까지 들어야 하는지까지 정확하게 담겨 있었다. 그래서 언어가 통하지 않아 혹여나 현장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박 감독님은 어떤 국가와도, 어떤 사람과도 작업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 작품 촬영 초반에 일주일 노동 시간을 52시간으로 철저히 지켜야 하는 이슈가 있었다. 제 입장에선 좀 당황스러웠는데 그렇게 스케줄의 변화가 있어도 감독님은 동요하지 않고 평시처럼 다 받아들이시더라. 그런 모습이 연기자에게 큰 안정감을 준다. 이런 느낌을 받은 건 두 번째다. 첫 번째는 <황금시대>의 허안화 감독님이었다."

 
탕웨이는 <헤어질 결심>을 두고 "세 사람이 함께 걸어온 길"이라고 표현했다. 그 여정의 끝은 행복일까. 이 영화는 오는 6월 29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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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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