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A <블랙: 악마를 보았다>의 한 장면.

채널A <블랙: 악마를 보았다>의 한 장면. ⓒ 채널A

 
죄없는 두 어린 소녀의 목숨을 앗아간 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죄수가 있다. 그는 본인이 억울한 누명을 썼다며 무죄라고 주장하고 있다. 자신과 관계된 언론사들과 구치소장, 심지어 국가에 이르기까지 무차별 고소를 남발하기도 했다. 그는 대체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며,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5월 20일 방송된 채널A 범죄다큐스릴러 <블랙: 악마를 보았다>(아래 블랙)에서는 2007년에 발생한 '안양 초등생 유인 살해사건'을 조명했다. <블랙> 제작진은 2021년 가을, 방영을 아직 준비하던 시점부터 한 사형수로부터 무려 편지를 9통이나 받았다. 편지의 주인공 정성현은 2007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초등학생인 고 이혜진과 우예슬양을 납치살해한 진범이었다.
 
안타깝게도 두 소녀는 실종된 지 무려 77일 만인 2008년 3월 11일, 사망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체포된 정성현은 술을 마시고 환각물질을 흡입한 상태로 길에서 우연히 만난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가 성추행했고 이를 은폐하기 위하여 잔혹하게 살해한 것.
 
정성현은 제작진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정성현은 "형사소송법상 저는 재심을 청구할 권리가 있기 때문에 자기 죄를 거부하는 것은 권리의 행사이고 위법사항이 아니다.(중략) 저는 하지 않은 행위를 하였다고 누명썼고 과정에서 증거조작이 있었다.(중략) 이러한 사실관계를 전부 공개하고 공론의 장에서 다시 따져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정성현은 "제작진에게 편지를 쓰는 이유는 그래도 사실을 보도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제작진은 정성현의 주장에 대한 사실확인을 위하여 당시 검찰, 경찰, 변호인 등 20명이 넘는 사건 관계자들과 접촉했다. 그런데 모두 '정성현'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듣는 순간 학을 떼는 반응을 보이며 인터뷰를 거절했다고.
 
알고보니 정성현은 사형선고 후 최근까지도 툭하면 고소와 고발을 남발한 것이 드러났다. 자신을 살인범이라고 보도한 수많은 언론사 기자들을 고소했고, 심지어 대한민국을 상대로도 소송을 진행했다. 정성현 사건 수사에 참여했던 권일용은 "정성현과 엮이는 순간 피곤해진다는 소문이 나 있다"고 설명했다. 제작진 역시 고소에 휘말릴 수 있다는 부담을 감수하면서 정성현의 무죄주장을 객관적으로 명명백백히 따져보기 위하여 방송을 결정했다.
 
방송을 준비하면서 가장 민감한 부분은 자칫 유가족의 아픔을 다시 건드릴 수 있다는 걱정이었다. 고 이혜진양의 어머니는 "시간이 흘러서 다시 꺼내는 것이 힘들긴 하지만, 정성현이 끝까지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면 방송을 통하여 그의 죄를 세상에 알려달라"고 부탁했다고.
 
정성현의 진짜 얼굴
 
 채널A <블랙: 악마를 보았다>의 한 장면.

채널A <블랙: 악마를 보았다>의 한 장면. ⓒ 채널A

 
사건 당시 정성현은 39세로 컴퓨터 수리와 대리운전을 하며 생계를 이어왔다.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저 열심히 사는 평범한 청년같았지만 그에게는 숨겨진 진짜 얼굴이 따로 있었다. 정성현이 거주하던 집 주변에는 초등학교가 있었고, 이웃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여자아이들에게 종종 과자도 주고 친절하게 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압수수색 당시 정성현의 집 컴퓨터에서는 놀랍게도 총 1400여 개의 음란동영상과 1만여 개가 넘는 음란 사진이 발견됐다. 이 중에는 아동을 대상으로 한 음란동영상과 사람을 실제로 잔혹하게 살해하는 모습이 담긴 스너프 동영상도 있었다. 정신감정 결과 정성현에게는 성적 가학증 및 소아 기호증이 의심된다는 진단이 나왔다.
 
정성현은 아동 포르노 소지에 대한 질문을 받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다. 형사님도 포르노 보면 더 자극적인 거 원하지 않나"고 뻔뻔하게 변명했다. 정성현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삐뚤어진 성적환상이 급기야 현실에서 충동적인 범행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
 
정성현은 범행 당일날 음주와 환각물질을 흡입한 뒤 외로움과 성적 충동을 느껴 여자를 성추행할 것을 마음먹고 밖으로 나서서 범행 대상을 물색하다가 두 피해자 소녀를 만났다. 정성현은 강아지를 핑계로 소녀들을 집안으로 유인한 뒤 강제추행했고 범행이 들통날 것을 우려하여 잔혹하게 살해했다. 심지어 시신을 토막내 훼손하고 이혜진양의 시신은 경기도 수원의 야산에 우예슬양의 시신은 시화호 인근의 하천에 유기됐다.
 
아동성범죄자의 대표적인 범행 수법이 '도움 요청'이고, 이는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이용하여 도덕심과 동정심을 유발하여 유인하는 것이다. 또한 일반적인 성범죄자들이 주로 다른 지역에서 범행을 시도한다면, 아동 성범죄자들은 주변에서 범행대상을 물색하는 경우가 많기에 평소에 알고 지내면 '가까운 이웃'이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성현의 집앞 골목길은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의 등굣길이었다.
 
하지만 정성현은 편지에서 아이들에 대한 납치와 성추행, 살인을 모두 부정했다. "시신을 유기하였다고 살인죄가 되는 것은 아니고, 제가 피해자를 죽일 아무런 이유가 없다. 제가 납치하는 것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 정성현은 "당시 검사나 국민이나 쇼킹한 것을 원했고, 특히 검사가 그런 이야기를 무지 좋아하길래 그냥 만들어준 것 뿐이고 사실이 아니다. 이제는 무죄증거를 제가 갖고 있어서 살인죄를 인정할 수 없다"라고 주장하며 사건 당시의 자백과 진술을 전면 부정했다.

정성현 주장의 핵심은 '시신을 유기-훼손한 것은 맞지만 살인은 하지 않았다'는 것. 무죄 주장의 근거는 '유인-살해의 목격자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우리는 "희대의 망언이다. 상식적으로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라며 분노했다.
 
정성현은 편지에서 '환각상태에서 집 주변을 돌아다녔는데 정작 집을 나온 기억은 없으며 이미 죽은 사람을 주워온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는 등 이해할수 없는 내용을 늘어놓았다. 시신을 유기한 이유는 환각물질을 흡입한 것이 드러날까 두려워서였다고.

"정성현 주장, 희대의 망언"
 
 채널A <블랙: 악마를 보았다>의 한 장면.

채널A <블랙: 악마를 보았다>의 한 장면. ⓒ 채널A

 
정성현의 해명을 살펴보면 공교롭게도 납치-살인에 일어난 부분만 생각이 안 난다고 주장하는 선택적 기억상실이었다. 백 번 양보해서 본인이 모르는 시신이 집안에 있었다고 해도 그 시신을 잔혹하게 훼손하고 유기한 행동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환각상태라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서 본인이 결코 살인을 하지 않았다는 확신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또한 정성현은 경찰이 증거를 조작해 누명을 썼다면서 그 근거로 피해자들을 약취-유인한 장면이 담긴 CCTV 조작, 국과수 부검 결과를 조작한 성추행 누명, 허위 자백 강요 등을 주장했다. 정성현은 편지에서 "양심도 없는 경찰, 순거짓말이나 하고 허위서류 작성하고. 그 당시 안양경찰서 국민을 속인 것"이라면서 경찰을 맹비난했다.
 
권일용은 CCTV 조작 의혹에 대하여 정성현이 피해자들을 약취-유인하는 모습이 찍히지 않은 것은 맞지만, 이는 애초에 정성현과 피해자들이 접촉한 해당 장소가 정성현이 지목한 곳과는 전혀 다른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이는 공소장과 판결문에도 명시되어있다.

정성현은 CCTV가 없는 집앞 골목길에서 피해자들을 유인했기 때문에 화면에 잡히지 않은 것, 정성현은 당시 CCTV 수사보고서에서 '특이 수사단서 없음'이라는 기록을 보고 증거가 조작됐다는 확신에 빠졌다. 또한 정성현이 지목한 또다른 장소인 오피스텔앞 CCTV에서 피해자들이 발견되었다는 주장은, 실제는 해당 아이들이 아니었고 정성현이 일부 언론의 오보를 접하고 그대로 인용한 것이었다.
 
국과수가 성추행 증거를 조작했다는 주장은 어떨까. 당시 국과수 부검결과를 인용한 판결문을 보면 피해자의 생식기에서 성추행이 의심되는 인위적인 외상성 손상이 발견됐다. 정성현은 국과수에 여러 차례 민원을 제기하며 부검 소견이 곧 성추행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며, 경찰의 조작된 의견서가 증거로 채택되어 유죄가 인정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경찰과 검찰 조사 과정에서 본인의 진술과 성추행 사실을 인정한 반성문과 국과수 조사 결과 등 종합적인 판단으로 강제추행 유죄 판결을 내렸다.
 
정성현은 경찰의 의도적인 불법행위와 사건 조작이 있었다고 주장하며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권일용 프로파일러에게 답변을 요구했다. 권일용은 검거 당시 현장 상황을 회상하며 당시 정성현이 "끌고가면서 아이들이 소리라도 질렀다면, 누가 내다보기라도 했다면 끝까지 끌고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폭로했다. 이는 본인의 입으로 죄를 스스로 고백한 것.
 
또한 권일용은 현장에서 발견된 피해자의 혈흔, 범행도구로 사용된 톱 등을 증거로, 당시 경찰의 수사력이 범행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며 정성현의 주장이 터무니없다고 반박했다.
 
정성현은 "경찰이 잠도 안 재우고 진술을 강요했다"고 주장하며, 강아지로 아이들을 유인했다는 내용은 "1994년 미국에서 벌어진 아동살해범 매건 살해사건이 떠올라서 지어서 말한 것"이라며 변명했다. 정작 정성현은 재판 당시에는 증거 조작이나 허위 진술을 주장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영장실질심사에서 모든 범행 사실을 시인했었다.
 
 채널A <블랙: 악마를 보았다>의 한 장면.

채널A <블랙: 악마를 보았다>의 한 장면. ⓒ 채널A

 
정성현에게는 이 사건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또다른 범죄가 있었다. 2004년 군포 부녀자 상해치사 사건이었다. 정성현은 전화방 도우미 여성과 성매매를 하다가 다툼 끝에 그녀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했다. 당시에는 밝혀지지 않은 미제 사건으로 남았지만, 이후 안양 초등생 사건으로 수사를 받게되면서 두 사건 모두 정성현의 범행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하지만 군포 사건이 '살인'이 아닌 '상해치사'로 판명된 이유는 이미 4년이나 지난 시점이라 범행의 '고의성'을 입증할 증거가 불충분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정성현에게 '살인의 고의성을 증명할 근거가 없다면 이미 결론이 난 사건도 뒤집을 수 있다'는 학습효과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성현은 2008년 3월 16일 긴급 체포됐다. 정성현은 수사 과정에서 범행을 부인하거나 횡설수설 진술을 번복하는 일을 반복했으나 이틀 만에 결국 모든 죄를 인정하고 눈물을 흘렸다. 아동성범죄자들의 특징 중 하나가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파렴치한 범죄인지 인식하고 있기에 범행을 합리화하거나 사회적 지탄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보인다고.
 
재판부는 정성현에게 "어린이를 상대로 납치-성폭력 및 살해를 저지르는 극단적인 범죄는 우리 사회에 존재해서는 아니되도록 하는 것이 법원의 책무"라며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14년이 지나도 형은 집행되지 않았다.
 
피해자의 아버지는 딸을 잃은 슬픔에 하루하루를 술로 지새우다가 벌써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남은 유가족들도 아직 고통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정작 범인인 정성현은 반성은 커녕 오히려 뻔뻔하게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는 게 씁쓸한 현실이다. 항상 냉철함을 유지하던 권일용 프로파일러도 "정성현의 편지 문구가 하나씩 거론될 때마다 가슴에 분노가 치밀어서 감정을 누르기가 힘들다"며 씁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정성현이 이제와서 편지를 통하여 얻고자한 것은 무엇일까. 정성현의 편지를 보면 '정권도 바뀌고 사형도 집행될 수 있다. 일부 기자들이 저의 실명을 거론하며 사형집행 1순위라고 언급하는 기사도 나오는데 이제 저도 이판사판'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혹시나 언젠가는 사형집행이 될 수도 있다는 정성현의 불안감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힘없는 아이들을 무참히 살해해놓고, 정작 본인의 죽음은 두렵고 싫은 내로남불 범죄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재심은 규정상 기존의 판결을 뒤집을 수 있는 명백한 새 증거가 나온다거나, 증거 위조-직무에 관한 죄 등의 근거를 입증하지 않는 한 결코 불가능하다.
 
정성현의 황당한 주장을 굳이 조목조목 해명하고 반박하는 과정이 필요했던 이유는, 끝까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피해자와 유가족에 대하여 사과하지 않는 범죄자의 몰염치함을 지적하고 결코 잊지 않기 위해서다. 세상에는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용서받지 말아야 할 잘못도 있다. 정성현의 사형 판결이 번복되거나 그가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정성현의 사형은 아직 집행되지 않았지만, 2022년 현재 그에게는 다시 한 번 사회적인 사형선고가 내려진 셈이다.
블랙 악마를보았다 정성현 안양초등생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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