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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코로나19 사망자와 환절기 사망자 등이 급증하며 화장 수요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3월 17일 오후 경기도의 한 화장장 모니터에 화장 현황이 표시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사망자와 환절기 사망자 등이 급증하며 화장 수요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3월 17일 오후 경기도의 한 화장장 모니터에 화장 현황이 표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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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39)씨는 아직도 지난해 5월 24일만 떠올리면 마음이 무너진다. 어머니 임종을 지키지 못하고 시신 확인도 못한 채 마지막 모습을 '뼛가루'로 받아 든 기억이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진 사망자에 대한 '선화장 후장례' 지침에 따라 A씨 어머니는 사망 몇 시간 후 화장터로 옮겨져 화장됐다.

당시 A씨 가족은 같은 날 함께 확진된 후 자가격리 중이었다. 격리 기간은 2주였다. A씨와 비슷한 날 확진된 어머니는 확진 8일 후, 가족 모두가 격리 중이던 때 전남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숨졌다. 보건당국은 어머니가 사망한 병원 출입부터 가족들이 격리됐던 생활치료센터 외출까지 모두 '불법'이라며 제지했다. 

임종 소식에 곧장 집을 나온 A씨 아버지에게 보건소는 "경찰 대동해서 체포할 테니 격리해라"라고 명령했다. 이를 무시하고 병원에 도착했으나 보건소 연락을 받은 의사가 아버지 출입을 막았다. 아버지는 무릎을 꿇고 "징역을 가라면 갈 테니 제발 아내를 2분만이라도 보여달라"고 호소했다. 그렇게 아버지는 가족 중 유일하게 어머니를 봤다. 음압병동 유리창을 통해 15m 떨어진 곳에 흰 천을 덮고 누워 있는 아내를 바라봐야만 했다. 

이후 A씨 가족은 화장 후 유골함을 받으면서 어머니를 다시 볼 수 있었다.

"죽은 사람에게 바이러스가 나오나? 이렇게 수의도 못 입히고 염도 못할 줄 몰랐다. 얼굴 확인조차 못할 줄도 몰랐다. 어머니 병원 입원 후 한번을 못 보다가 뼛가루로 만났다. 방호복, 보호장구 다 있는데 왜 이렇게밖에 못하나?"

A씨는 "가슴에 대못이 박힌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정부의 '선화장 후장례' 지침에 따라, 코로나19에 확진돼 사망한 가족의 시신을 제대로 거두지 못하고 화장부터 시킨 유족들은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 1월부터 '선장례' 방식으로 지침은 바뀌었으나, 선화장 후장례 방침이 1년 11개월이나 유지되면서 적지 않은 유족에게 트라우마를 안겼단 지적이 나온다. 

입원부터 단절되는 가족들, 임종도 못 지켜
 
23일 코로나19 거점전담병원인 평택 박애병원의 중환자실이 빼곡히 들어찬 중증환자 병상과 의료진으로 붐비는 모습이다
▲ 위중증 환자 역대 최다....붐비는 중환자실 23일 코로나19 거점전담병원인 평택 박애병원의 중환자실이 빼곡히 들어찬 중증환자 병상과 의료진으로 붐비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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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2일 아버지의 '선화장'을 겪은 B(35)씨도 "그 날 이후로 제대로 웃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유독 돈독했던 그는 "얼굴도 못 보고 유골을 받았는데, 사실 진짜 돌아가셨는지 어디에 살아계신지 모르겠다"라며 "내가 다 놓고 죽으면 아빠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아이와 남편에게 웃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라고 말했다. 

유족의 상처가 더 깊은 이유는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면회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 확진 후 심각한 호흡곤란을 겪어 중환자실에 입원했던 B씨의 아버지는 지난해 12월 26일부터 1월 12일까지 치료받다 사망했다. B씨는 "돌아가신 것도 미칠 것 같은데, 숨도 제대로 못 쉬고 홀로 중태에 빠져 힘겹게 싸우는 동안 가족이 단 한 번도 옆에 가지 못하고, 마지막에 손 한 번 잡아주지 못했다는 게 가슴이 미어진다"라며 "사랑한다는 말도 마지막에 못했다. 바로 화장을 했으니 시신을 두고도 못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지난 3월 15일 아버지를 떠나 보낸 유족 C(40)씨는 요양병원에 있던 아버지가 대학병원 중환자실로 이송될 때, 병원 입구에서 10초 동안 아버지를 본 게 마지막이다. 그마저 본인이 직접 아버지를 이송하는 119 대원에게 후송될 병원을 물어본 뒤 찾아갔기에 가능했다. 이후 격리된 아버지를 한 달 동안 보지 못하다가 임종 직전 CCTV 면회가 허가돼 마지막 모습을 모니터로 봤다.

화장 외의 절차도 유족에겐 상처로 남았다. 사망자는 의료용 팩에 밀봉돼 병원 안치실로 이동한 뒤 그대로 관에 옮겨진다. 화장터로 옮겨질 때 운구도 가족이 할 수 없고 장례지도사가 진행한다. 운구 직전 차량에서 관을 내릴 땐 보건소 방역 담당자들이 소독제를 먼저 분사한다. 관이 화장터 내로 옮겨질 동안에도 가족들은 관 가까이 접근할 수 없다. '명패'만 받아들고 화장이 끝나길 기다려야 한다.

유족도 정부 지침에 따른 결정이란 걸 알지만 터져나오는 울분을 억누르기 어렵다고 했다. A씨는 "임종 전 시행한 심폐소생술 때문에 어머니 코와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는데, 이걸 닦지 못한 채 그대로 비닐로 들어가 화장됐다"며 "화장터로 들어가기 전 운구 내내 바퀴벌레 죽이는 것처럼 소독제를 분사해 '그만 쳐라'고, 또 '어떻게 관도 못만지게 하느냐'고 울면서 소리쳤다"고 말했다.

WHO '코로나 사망자 화장해야 한다'에 "미신"

한국 정부는 2020년 2월부터 확진된 사망자의 장사 방법을 화장으로 제한했다. 코로나19 사망자 장례관리지침의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해 화장을 원칙으로 한다'는 조항이다. 또 사망 직후 화장을 먼저 하고 장례 절차를 치르는 '선화장 후장례'를 권고했다.

그러나 보편적인 장례 방식은 아니다. 2020년 12월 기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의 관련 지침은 "코로나19 감염 여부가 매장과 화장 사이 선택에 영향을 줄 필요가 없다"며 "사망자 가족이나 친구의 의견이 존중돼야 한다"고 돼 있었다. 이라크, 터키, 이스라엘 등도 코로나 감염병 기간 동안 시신을 땅에 묻는 매장을 유지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2020년 3월 24일 코로나 희생자 매장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전염병으로 사망한 사람의 시신을 화장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건 '흔한 미신'에 가깝다고 밝혔다. WHO는 또 코로나 전파는 주로 비말, 밀접접촉, 매개물에 의해 이뤄지며 공기 전파에 대한 증거는 아직 없고, 사체로부터 코로나 감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증거도 아직 없다고 밝혔다.

허윤정 아주대 교수(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는 지난해 4월 '코로나19로 사망한 환자의 화장 장례에 대한 의견'이란 논문에서 선화장 후장례는 과학에 근거하지 않았고 유족이 애도할 충분한 시간도 주지 않기에 변경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코로나19 연구의 광풍과 출판 전 논문(preprint)의 도입으로 엄청난 수의 연구들이 보고되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사체로부터 코로나19가 감염되었다는 보고는 없다"며 "강요되는 화장을 진행하기 위한 위로금 성격의 지원보다는, 염습과 수의 입히기와 같이 고인에 대한 충분한 추모를 도와줄 수 있는 노고를 지원하기 위한 방향으로 장례비용의 집행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고 밝혔다.

장례절차 죄책감, 우울증·불면증 남아
 
코로나19 사망자가 늘어나 전국 화장장의 장례수요가 폭증한 가운데 3월 16일 오후 광주 영락공원 화장장 앞에 장례 행렬이 대기하고 있다.
 코로나19 사망자가 늘어나 전국 화장장의 장례수요가 폭증한 가운데 3월 16일 오후 광주 영락공원 화장장 앞에 장례 행렬이 대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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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 1월 20일 코로나19 사망자 장례관리지침을 개정하며 통상적인 장례 절차인 '선장례 후화장'을 허용했다. 오는 4월부터는 매장 등 화장 외 장사 방법도 허용된다.

지난해 12월 18일 어머니를 떠나 보낸 D(34)씨는 "지침이 변경되기 불과 한 달 전 어머니를 선화장으로 힘들게 보냈다"며 "가족들은 장례 절차 내내 '시신에 바이러스가 나오느냐'고 분통을 터뜨려왔다. 이렇게 바뀔 수 있는 거라면 고인을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유족들은 뭐가 되느냐"고 말했다.

'선장례' 방식은 지침 변경에도 불구하고 최근 급증한 사망자 수 때문에 당장 현장에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C씨는 지난 3월 15일 아버지가 사망했으나 화장시설로부터 "너무 많은 관이 밀려 있어 화장을 먼저 해야 한다. 1시간 내로 결정해라"라는 통보를 받았다. "지금 안 하면 7일 후 화장을 해야 한다"는 시설 측 입장에 C씨 가족은 빈소도 정하기 전에 화장을 결정해야 했다.

B씨는 "마지막에 의료진의 도움으로 영상통화를 했었는데 그때 기관절개로 말도 하지 못하는 아버지 혀가 움직였고, 눈에 눈물도 고였던 기억이 눈에 아른거린다"며 "슬픔과 회한에 사무친다. 아직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 트라우마 센터에 전화 상담도 받아 봤다"고 말했다.

A씨도 "길가다가도 어머니 연배의 사람이 지나가면 가슴이 철렁한다. 죄책감과 우울함이 커서 정신과 상담을 받으려고 한다"며 "아버지도 수면제 없이 잠에 들지 못하신다. 장례 절차에서 받은 상처의 트라우마가 심한데, 국가에서 어떤 지원책을 마련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태그:#코로나 유족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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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기자입니다. 제보 young@ohmynews.com / 카카오톡 rockyrkd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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