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작가 시점'은 늘 카메라 뒤에 서 있지만 방송국 구석구석을 누비는 방송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대한외국인' 김성원 작가 MBC에브리원 예능프로그램 <대한외국인>의 김성원 작가.

MBC에브리원 예능프로그램 <대한외국인>의 김성원 작가. ⓒ 이정민

 

외국인이 우리 것을 배우는 게 아니라, 외국인에게 한국인이 도전을 한다고? 우리나라 문화로? 그 역발상에서 시작됐다.


2018년 MBC에브리원 <대한외국인>을 처음 기획했다는 김성원 작가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은' 외국인들과 한국인이 대결을 펼친다는 역발상에서 프로그램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방송에선 멘사 출신 아나운서가 탈락하기도 하고, 명문대 출신 연예인이 초반 단계에서 맥 없이 무너지기도 한다. 그만큼 한국에 대해 한국인보다 외국인들이 훨씬 더 잘 알고 있다는 것.

그 의외성은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을 주목하게 만드는 요소가 됐다. <대한외국인>의 기획작가 김성원씨를 지난 8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요즘은 한국인들보다 외국인이 한국을 더 많이 연구하더라. 우리는 우리 것이기 때문에 잘 모르는 것 같다. 한국인이 외국인에게 도전하는 방식이 재밌지 않나. 그리고 여러 프로그램을 접목하려고 했다. <퀴즈가 좋다>처럼 한 단계씩 올라가는 방식을 활용한 거지. 한국에 6개월도 살지 않은 외국인은 1단계에 두고 30년 정도 산 외국인은 10단계인 것이다. 한국인이 그 분들과 붙는다는 역발상이 재미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스튜디오에 있는) 피라미드 구조는 <프로듀스 101>을 보고 떠올렸다. 프로듀스 시리즈의 형태와 역발상, 그게 접목된 거였다.


그러나 외국인에게 깨지는 한국인 출연자들이 많다 보니, 의외로 섭외가 쉽지 않기도 했단다. 김성원 작가는 "외국인 섭외는 어렵지 않았다. 요즘 한국 방송에 출연하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도 많다"면서도 "오히려 처음에는 한국 연예인 섭외가 잘 안 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1라운드 탈락되면 (창피해서) 어떡하겠나. 문제를 가르쳐 달라고 연락 온 적도 있었다(웃음). 그런데 문제를 어떻게 가르쳐주나. 한국인들이 초반에는 연전 연패했지. '외국인들이 저렇게 잘해?'라는 반응이 많았던 게 기억에 남는다"고 덧붙였다.

4년째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대한외국인>은 사실 처음엔 지상파 예능국에서 거절당한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MBC에브리원 채널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으니,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김성원 작가는 "(같은 채널의)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와 원투 펀치가 되기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특히 김재훈 피디와 합이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시청자 입장에서도 알기 쉬운 한글, 한국 관련 문제들이라 장수 프로그램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엔딩 크레디트를 장식하다 

김성원 작가의 손에서 탄생한 기획은 <대한외국인>뿐만이 아니다. tvN 인기 예능 프로그램 <해치지 않아> <해치지 않아X스우파> <줄 서는 식당> <노포의 영업비밀>뿐만 아니라 채널A <요즘 육아-금쪽같은 내 새끼>, JTBC <풍류대장-힙한 소리꾼들의 전쟁> <용감한 솔로 육아-내가 키운다>, iHQ <돈쭐내러 왔습니다>, TV조선 <기적의 인생> <기적의 습관> 등 많은 사람들이 즐겨 보는 수많은 프로그램들의 엔딩 크레디트에 '기획작가 김성원'이라는 이름이 올라 있다. 그는 "때에 따라 다르다"면서도 크레디트에 이름이 오른다고 해서, 매주 제작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기획작가라고 쓴 건  내가 처음이었다. 요즘 후배들은 크리에이터라고 쓰기도 하더라. 메인작가와 기획작가는 다르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렇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저는 여러 프로그램을 하니까 한 프로그램에 전념할 수 없다. 제가 전념한다고 해서 프로그램이 잘 되는 것도 아니다. 제가 자주 가지도 않으면서 이름만 제일 처음에 올라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들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고, 그렇다고 이름을 안 낼 수는 없다. 그래서 기획작가라는 이름을 올려둔 것이다. 사람들은 '저게 유행인가보다', '일부러 그렇게 하나보다'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건 아니다.


이어 김성원 작가는 "지금은 방송작가들이 살아남으려면 계속 기획을 해야한다"는 말로 자신의 현재를 소개했다. 최근 매 방송마다 화제를 모으고 있는 <요즘 육아-금쪽같은 내 새끼>도 기획부터 캐스팅, 콘셉트, 출연자 섭외 등 처음에는 제작 전반에 참여했지만 현재는 프로그램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있다고.

<금쪽같은 내 새끼>는 오은영 정신의학 박사와 함께 대한민국 부모들의 육아 고민을 공유하고 가정 내 문제점을 찾아 올바른 솔루션을 제공하는 포맷의 프로그램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부는 물론, 2030세대 미혼 남녀들에게까지 열렬한 호응을 얻고 있다. 
 

잘못한 게 아니라 방법을 모른다고 짚어주는 데서 (사람들이) 위로를 받는 것 같다. 부모한테 하는 말이지만 나한테 하는 말이기도 하고. 다들 외롭고 채워지지 못한 부분이 있는데 (오은영 박사가) 채워주는 것 같다.


사실 <금쪽같은 내 새끼>가 처음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던 것은 아니었다. 방송 초반부에는 한동안 1%대 시청률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점점 사람들이 프로그램의 진정성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최근 방송분에서는 4%대까지 치솟았다(닐슨코리아 유료가구 플랫폼 기준).

김성원 작가는 '금쪽이' 가족 출연자들이 "방송에 나오길 잘했다"고 말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그 프로그램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애프터(방송 후 관리)를 굉장히 섬세하게 한다. 방송되고 나면 버리는 게 아니라, 이렇게 인연을 맺으면 계속 연락하고 오은영 선생님 말고도 연계 상담센터에 연결해주기 때문에 그런 정성이 시청자에게도 느껴진 것 같다. 사실 그 팀이 제일 (일하기는) 힘들다. 사연을 선정할 때도 그렇다. 가정 내 문제를 전 국민에게 오픈해야 하니까 조심스럽지. 제작진에게도 고민이 많다. 우리가 건드리지 못할 정도의 영역일 땐 손을 안 댄다. 방송이 아니라, 정신과 의사의 마음으로 접근해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거지. 방송이 자극적으로 세게 나간다면 시청률은 잘 나오겠지만 그런 걸 신경쓰면 프로그램이 망가진다.

 
"국악에서도 스타 탄생해야"
 

'대한외국인' 김성원 작가 MBC에브리원 예능프로그램 <대한외국인>의 김성원 작가.

ⓒ 이정민


한편 대중음악에 국악을 접목해, 우리 음악이 가진 멋과 매력을 무대에 내세운 JTBC <풍류대장-힙한 소리꾼들의 전쟁>은 시즌2가 더욱 기대되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몇 년 전부터 국악을 방송에서 활용해보고 싶었다던 김 작가는 트로트가 뒤늦게 빛을 발하는 것을 보며, 국악 역시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단다.

김 작가는 "국악에도 새로운 스타가 탄생해야 하지 않겠나"라며 "시즌1으로는 디딤돌만 만들겠다는 생각이었다. 의외로 반응이 괜찮아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과거에도 서태지의 '하여가'라든지, 국악에 접목한 가요들이 있었다. BTS도 국악 스타일을 시도했고. 한류 파워가 생기면서 국악이 조금씩 주목받기 시작하더라. 이날치, 앰비규어스 댄서들도 화제를 모았고 <오징어 게임>도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조금씩 자신감이 생겼다. 트로트가 어느날 (흥행이) 되더라. 트로트가 되니까, 이것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

국악계에도 젊은 사람들도 많고 잘하는 사람들도 많다. 어릴 때부터 전통을 이어가겠다는 일념 하나로 노력해온 사람들의 열정이 대단하지 않나. 하지만 먹고 살기 힘든 현실이다. 처음 논의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국악은 너무 생경해서 접었다. 그 뒤에 이날치 밴드가 유명세를 얻고 나서 다시 얘기를 했지. 그 사이에 트로트가 대박 났고, 트로트에서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 중 국악 출신이 많더라. 송가인씨도 그렇고.


<대한외국인> <금쪽같은 내 새끼> <풍류대장> 등 김성원 작가가 만들어낸 프로그램들에는 대부분 실험적인 시도가 조금씩 가미되어 있다.

지난해 연말 종영한 tvN <해치지 않아> 역시 그랬다. 시즌3까지 제작되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주역들을 예능에 불러들이면서 채널을 넘어선 '컬래버레이션'을 탄생시킨 것. 특히 드라마에서 잔인한 '빌런'(악당)으로 등장했던 배우들의 순하고 소탈한 면모들은 단연 화제가 됐다. 김성원 작가는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채널간, 드라마와 예능의 '크로스오버'를 시도해 본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방송사를 뛰어넘은 게 새로웠지. 물론 그런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건 드라마를 통째로 가져온 것이지 않나. <펜트하우스> 속 악역의 이미지를 역으로 이용해서 '우린 사실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라는 콘셉트를 재미있게 봐주신 것 같다. 처음에 프로그램 제목이 <해치지 않아>라고 했더니 (출연자들이) 빵 터져서 웃더라. 폐가로 보낸 건 '펜트하우스'에 살던 상류층이니까, 인생 역전으로 오히려 안 좋은 집에 가서 일을 작살나게 한 거지(웃음). 극적으로 완벽하게 짜여진 세계에 있다가, 자기들끼리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해야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온 것도 역전되어 보이고. 방송적으로 크로스오버를 시도한 거지.

 
"회사 다니는 것보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대한외국인' 김성원 작가 MBC에브리원 예능프로그램 <대한외국인>의 김성원 작가.

▲ '대한외국인' 김성원 작가 MBC에브리원 예능프로그램 <대한외국인>의 김성원 작가. ⓒ 이정민

 
매일 아침 포털사이트 관심 섹션을 유심히 살펴보고, TV 방송부터 넷플릭스 등 OTT, 유튜브, 아프리카tv까지 콘텐츠라면 가리지 않고 섭렵하고, 회의에 참석하고 캐스팅을 위해 연예인과 관계자를 만난다.

김성원 작가의 하루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를 만큼" 바쁘고 정신 없다. 30여 년 전 평범한 직장인이었다는 김 작가는 그렇게 10여 개 프로그램에 이름을 올리는 방송작가가 되었다. 30년 전 당시를 "적성에 되게 안 맞고 회사에서도 저를 안 맞아 했다"고 웃으며 회상한 김 작가는 "MBC에서 코미디 작가를 공채로 뽑는다더라. 그 소식을 듣고 회사다니는 것보다는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예능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콩트, 코미디 쇼 이런 류였다. 지금처럼 리얼 버라이어티 그런 게 없었지. 저도 학생 때 연극을 해봤기 때문에 대본을 어떻게 쓰는지 아니까.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대본을 한 번 써보고 나서 옆의 동료 직원에게 물어봤다. '재밌어?' 재미 없다고 했으면 안 냈을 것이다. 읽어나 봤겠나. 재밌냐고 재촉하듯 물으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어떻게 합격하게 된 거다.

당시 유명했던 송창의 PD가 '힘든 일이다, 밤새고 그런다. 괜찮겠냐'고 해서 '괜찮다' 하고 들어갔는데 아버지가 '왜 의료보험은 안 되냐'고 물으시더라. 하하하. 프리랜서란 개념이 없었을 때였다. 주변에서도 반대가 많았다. 안정적으로 60살까지 다닐 수 있는 회사를 (왜 버리냐) 했는데 나중에 (안정적인 대기업을 택한 친구들은) 다 잘려나갔다. 세상이 바뀌어서 지금은 이게 훨씬 더 잘된 선택이구나 생각하고 있다.


물론 두려움도 있다. 김성원 작가가 다작을 하는 이유다. 김 작가는 "예전에는 시즌제가 없었다. 한 프로그램이 2~3년, 길면 5년 넘게 방송을 하니까 두세 개만 해도 괜찮았지만 요즘은 시대가 바뀌었다. 대부분 시즌제이기 때문에 금방 방송이 끝나버린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기획이 의외로 재밌다. 하던 프로그램을 계속 꾸려나가는 것도 재밌지만, 새로운 걸 계속 만들어나가는 게 저는 너무 재밌다"며 환하게 웃었다. 

현재는 유튜브나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예선을 치르는 새로운 '대학가요제'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라는 김성원 작가는 앞으로도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시청률보다는 재미가 있는 프로그램을 하려고 한다. 처음에는 코미디 작가로서 웃기는 게 최고의 가치인 줄 알았다. 내게 코미디를 가르쳐주신 분이 있다. 안우정 PD라고 '울 엄마', '허리케인 블루' 등 유명하신 코너를 다 만드신 분이었는데, 중요한 건 웃음이 아니라 재미라고 하시더라. 슬픔도 재미일 수 있고 페이소스도, 깔깔대는 웃음도 재미가 된다고. 그때부턴 생각을 달리하게 됐다. 슬픈 장르인데 재미는 있나. 이건 리얼인데 재미가 있나. 이거 오디션인데 재미있나. 재미라는 게 모든 장르 위에 포함돼 있는 것이었다. 다만 장르적인 차이가 있는 거지. 그런 걸 염두에 두고 프로그램을 생각한다.

김성원 대한외국인 해치지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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