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내게도 꽤 많은 과거들이 생겨났다. 과거를 떠올릴 때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지금 아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지 않았을까 후회가 밀려들곤 한다. 그리곤 남은 삶의 시간 동안 이를 만회해 보리라 다짐하게 된다. 그런데 죽음 직전에 이런 생각이 든다면 어떨까. 아마도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견디기 힘든 절망감에 빠질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지금 여기를 살면서도 종종 두려운 마음이 올라오곤 한다.
 
하지만 지난 8일 종영한 JTBC 드라마 <한 사람만>을 보면서 나는 이런 두려움을 조금 덜 수 있었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호스피스에 입소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마는 '모든 삶은 타당하다'는 진한 위로를 전했다.
  
 죽음을 앞둔 세 여자가 삶을 통합해가는 이야기를 다룬 JTBC <한 사람만>의 한 장면

죽음을 앞둔 세 여자가 삶을 통합해가는 이야기를 다룬 JTBC <한 사람만>의 한 장면 ⓒ JTBC

 
늘 화만 냈지만
 
드라마의 주인공 인숙(안은진)은 늘 굳은 표정으로 살아온 인물이다. 뇌종양 선고를 받고 호스피스에 입원하기 전까지 그녀는 "길고양이처럼 경계하며 살았다"(16회)고 고백한다. 인숙의 이런 날 선 마음은 주로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 성자(고두심) 앞에서 짜증과 분노로 표현되어 왔다.
 
인숙은 성자가 길에서 물건을 주어 오는 것도 싫고, 몸에 좋다며 귤껍질을 우려낸 물을 주는 것도 짜증스럽기만 하다. 성자가 만들어주는 음식들도 너무 투박해 맘에 들지 않는다. 늘 툴툴거리기만 하고 지내온 인숙은 시한부 선고를 받고 호스피스에 입소한 뒤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성자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되지만 충격 속에서도 인숙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인숙의 도망을 돕고, 집까지 전세를 주고 귀하다는 약을 사들인다.
 
성자와 인숙은 13회 마침내 재회한다. 쫓기다 호스피스로 돌아온 인숙에게 성자는 전세금과 맞바꾼 약을 건넨다. 하지만, 인숙은 이 때도 마찬가지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성자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약을 던져 버린다. 성자도 이번엔 상처를 받고 한동안 인숙을 보러오지 않는다. 그러자 인숙은 성자를 걱정하며 우천(김경남)에게 이렇게 말한다.
 
"후회할 거야. 할머니한테 화 내면서 계속 생각했어. 죽을 때 엄청 후회하겠지. 이 장면이 계속 떠오를 거야. 그러면서 계속 화를 냈어. 나는 평생 할머니한테 화만 냈어." (14회)
 
아마도 이는 지독한 후회였을 것이다. 할머니의 사랑을 알고 있으면서도 퉁명스럽게 대할 수밖에 없었던 지난 모든 날들에 대한 후회 말이다. 그런데 이 말에 우천은 이렇게 답한다.
 
"안심이 되니까. 예쁘게 보이려고 하지 않아도 되잖아. 그래도 사랑해주니까." (14회)
 
이 말은 후회를 긍정으로 바꿔주는 말이었다. 인숙이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인정해주고, 지난 행동을 타당화해주는 이 말은 아마도 인숙의 마음에 후회 대신 감사를 샘솟게 했을 것이다. '나는 정말 못된 손녀였어'가 아닌 '있는 그대로 나의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할머니가 있어서 참 행복했어'라고 말이다.
 
이렇게 자신의 지난 행동을 긍정하게 된 인숙은 마침내 15회 할머니에게 "화만 내놓고 미안하단 말도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할머니의 간절한 바람대로 수술을 받고 희망을 조금 더 품어보기로 결심한다.
  
 인숙은 할머니가 자신에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도 되는 안정감을 선사했음을 깨닫는다.

인숙은 할머니가 자신에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도 되는 안정감을 선사했음을 깨닫는다. ⓒ JTBC

 
내가 원한 자리는 아니었지만
 
세연(강예원)은 자신의 성 정체감을 숨긴 채 이성 간의 결혼생활을 이어온 인물이다. 대학시절 동성의 선배를 사랑했지만 엄마의 차가운 시선에 그 사랑을 포기하고 만다. 그 후 세연은 결혼을 하고 시어머니를 모시며, 아이를 갖기 위해 애쓰는 가부장제 속 여성의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백혈병 진단을 받고 죽음을 앞두고서야 지난 삶이 자신의 자리가 아니었음을 깨닫고는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죽음을 맞이하고자"(10회) 남편과 이혼을 결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연은 종종 화가 난다며 이렇게 말한다. "너무 늦어버린 건 아닐까?" 이는 자신의 자리에서 살지 못한 지난 날에 대한 진한 후회이자 분노였다. 세연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떠나지 못했던 그 순간을 되뇌며 스스로에게 분노한다.
 
한편, 세연의 남편 영찬(한규원)은 이런 세연을 이해하지 못한다. 세연을 놓아주지도 않으면서 세연이 떠난 후 어머니를 모실 방도만을 생각하던 영찬은 어느 날 우연히 세연이 기록한 어머니 간병일기를 본다. 그 속엔 그 자리에서도 진심을 다한 세연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리곤 세연이 맞지 않는 자리에서도 최선을 다해 살아왔음을 깨닫고는 미안함에 몸서리친다.
 
이를 깨달은 영찬은 13회 세연을 찾아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원한 자리는 아니었지만, 그 자리에서 당신은 똑같았어."

이 말은 세연의 지난 시간에 대한 존중이었다. 자신의 자리가 아니었음에도, 진실한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고 최선을 다하는 그 삶의 자세만큼은 바로 당신이었다는 이 말은 세연에겐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내가 원한 삶은 아니었을지라도,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순간에 나 자신으로 존재했음을 깨달은 세연은 마침내 분노를 녹여낸다. 
 
이 후 세연은 시어머니와도 인사를 나누고, 자신의 지난 시간을 긍정하며 삶을 차분하게 정리한다. 물론, 이혼을 통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아마도 세연은 충만한 마음으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랑받으려고 애쓴 나를 사랑하기
 
부모에게 버림받은 상처로 인해 모두의 관심을 받으려고 애 써오다 폐암으로 시한부를 선고받은 미도(박수영)는 스스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있지. 평생 사랑받고 싶었어. 그게 어떤 건지 알아? 개 같은 거야. 하루 종일 주인만 기다리고 그러다 없어지면 불안해서 난리치고. 어떻게든 관심받으려고 꼬리치고 애교 부리고. 그래서 그런가? 이상하게 개만 보면 짜증이 나더라고. 너무 사랑받으려고 하잖아." (9회)
 
이 말은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가 가득 담긴 말이었다. 미도는 사랑받고 싶어하는 자신에게 진절머리가 나면서도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지표(한규원)에게 집착한다. 지표의 사랑이 사라질까봐 전전긍긍하며 지표가 한 짓들을 알면서도 진실을 보지 않으려 한다. 이런 미도에게 세연은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조언한다.
 
"뭔가 무겁다고 생각하면 그냥 놔버려. 막상 놔버리면 무게를 알게 되는 것 같아." (15회)
 

미도는 이 말을 마음에 담는다. 그리고 그토록 꽉 쥐고 있었던 타인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는다. 그러자 용기가 생긴다. 지표의 본모습을 직시하고, 그토록 혐오했던 스스로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를 깨닫는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공허함에 늘 사랑을 갈구했던 자신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마침내 스스로를 보듬어 안는다.
 
"근데 이제 악플 하나도 안 무서워요. 저는 이제야 저를 사랑하는 법을 알았거든요." (16회)

미도의 마지막 고백은 참으로 뭉클했다.
  
 미도는 마침내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

미도는 마침내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 ⓒ JTBC

 
<한 사람만>의 세 주인공은 이렇게 자신의 삶을 긍정하며 통합해간다. 세연과 미도는 평온하게 마지막을 맞이했고, 인숙은 삶의 가능성을 한번 믿어보기로 한다.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두 달 동안 나 역시 나의 과거들을 조금 더 긍정하게 된 것 같다.
 
이들처럼, 과거에 대한 후회를 나에 대한 이해로 바꾸어갈 때 우리의 삶은 보다 충만해지지 않을까. 때로는 후회스럽고, 부끄러운 순간들을 피해갈 수 없겠지만 그 때 우리에겐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들은 그 당시의 나로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니 과거를 조금은 넓은 시야로 바라보자. 우리가 살아온 모든 순간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를 기억하고 나의 과거에 화해의 손을 내밀어 보면 어떨까? 그럴 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을 앞둔 미도, 세연, 인숙이 그랬듯 말이다. 모든 삶은 타당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한사람만 안은진 박수영 강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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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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