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에 종영한 tvN 주말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는 방영 기간 내내 많은 인기를 얻은 화제의 드라마였다. 사실 <사랑의 불시착>과 <도깨비> 등 시청률 20%를 넘는 드라마를 2편이나 배출했던 tvN에서 <갯마을 차차차>의 최종회 시청률 12.665%는 대단한 수치라고 할 수 없다(닐슨코리아 기준).

하지만 tvN과 제작사 스튜디오 드래곤, 지티스트는 <갯마을 차차차>가 만들어낸 성과에 연일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바로 OTT시장에서의 큰 성공 덕분이다. 코로나19 이후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시장의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는데 <갯마을 차차차>는 넷플릭스 월드랭킹에서 상위권에 오르며 크게 선전했다. 특히 동남아시아와 서아시아 일부 국가들에서는 그 유명한 <오징어 게임>을 제치고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력도 양심도 뛰어난 여성 치과의사가 서울을 떠나 동해안 어촌마을에서 치과를 개업하며 벌어지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담은 <갯마을 차차차>는 2004년에 개봉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각색한 작품이다. 바로 지나치게 긴 제목 때문에 흥행에서 손해를 봤다고 평가받는 고 김주혁과 엄정화 주연의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이하 <홍반장>)이다.
 
 <홍반장>은 개봉 당시 여러 악재들이 겹치면서 전국 83만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홍반장>은 개봉 당시 여러 악재들이 겹치면서 전국 83만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 플레너스시네마서비스

 
너무 일찍 떠나버린 아까운 배우

엄정화의 동생 엄태웅, 김용건의 아들 하정우처럼 유명 연예인을 가족으로 두고 있는 배우들 중에도 가족의 후광을 마다하고 자수성가해 좋은 배우로 성장하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60년대 후반부터 배우활동을 시작해 사극과 현대극을 넘나들며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했던 고 김무생 배우의 차남 김주혁 역시 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업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 대중들에게 사랑 받는 좋은 배우로 성장했다. 

1998년 S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김주혁은 <은실이>,<카이스트> 등에 출연했다가 SBS와의 전속기간이 풀리면서 본격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시작했다. 2001년 영화 <세이예스>를 통해 스크린에 데뷔한 김주혁은 2002년 < YMCA 야구단 >에 이어 2003년엔 <싱글즈>에서 고 장진영과 멜로연기를 펼치며 주목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김주혁은 여세를 몰아 곧바로 또 한 편의 로맨틱 코미디 <홍반장>에 출연했다.

<싱글즈>에 함께 출연했던 엄정화와 김주혁이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춘 <홍반장>은 '착한 코미디'라는 호평 속에도 전국 83만 관객에 그치며 큰 흥행은 하지 못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하지만 김주혁은 2005년 가을 김은숙 작가의 <프라하의 연인>에 출연하며 시청률 30%를 기록했고 그 해 11월에 개봉한 김현석 감독의 <광식이동생 광태>도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스타배우로 성장했다.

2008년 <아내가 결혼했다>, 2010년 <방자전> 등에 출연하며 주가를 높인 김주혁은 <구암 허준>을 끝낸 2013년 12월 KBS의 예능프로그램 <1박2일>의 고정멤버로 투입됐다. '평소 재미 있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던 김주혁이 과연 예능에 어울릴까' 라는 우려도 많았지만 김주혁은 뜻밖의 예능감을 뽐내며 <1박2일> 시즌3의 상승세를 견인했다. 김주혁은 2015년 <1박2일> 하차 후 <비밀은 없다>,<공조> 등에 출연하며 배우로서도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김주혁은 2017년 9월 드라마 <아르곤>을 끝낸 지 한 달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 교통사고를 당해 4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유작이 된 영화 <독전>에서 소름 끼치는 악역연기를 선보인 김주혁은 2017년과 2018년에 걸쳐 대한민국의 3대 영화제(청룡,대종상,백상) 남우조연상을 모두 휩쓸었다. 그리고 오는 10월30일은 이제 보고 싶어도 다시는 볼 수 없는 영원한 '구탱이형' 김주혁이 세상을 떠난 지 4년째 되는 날이다.

욕설·외설 없는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
 
 <홍반장>에서 순수한 매력을 뽐낸 고 김주혁은 이제 더 이상 관객들에게 신작을 선보일 수 없다.

<홍반장>에서 순수한 매력을 뽐낸 고 김주혁은 이제 더 이상 관객들에게 신작을 선보일 수 없다. ⓒ 플레너스시네마서비스

 
평의사의 인권을 위해 시위용으로 내민 사표가 즉석에서 수리되는 바람에 졸지에 직장을 잃은 정의로운 치과의사 윤혜진(엄정화 분)은 바다가 보이는 작은 어촌 도시에서 치과를 개업했다. 혜진은 새로 살 집과 치과 자리를 구하는 과정에서 훤칠한 키에 수려한 용모를 가졌지만 주는 거 없이 미운 홍반장(김주혁 분)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혜진은 가는 곳마다 다른 일을 하고 있는 홍반장을 만나면서 사사건건 부딪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혜진은 진료를 하던 중 동네 양아치 도라이버(강성필 분)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이 때 김밥배달 알바를 하던 홍반장이 동네 양아치 무리들을 혼내주며 혜진을 돕는다. 혜진과 홍반장은 그날 밤 술을 함께 마시면서 친구가 되고 잔뜩 술에 취해 밤을 함께 보낸다(물론 <홍반장>은 착한 영화이기 때문에 두 사람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는 두 사람이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됐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진다).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혼자가 된  홍반장은 동네 쌀집 할아버지의 양아들로 입양돼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동네 어른들의 사랑 속에 선한 마음씨를 가진 청년으로 자란 홍반장은 삭막한 도시생활에 익숙한 혜진에게는 적응하기 힘들면서도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캐릭터다. 여기에 영화적 재미를 위해 대학 졸업 후 마을로 돌아오기까지 3년 간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미스터리도 등장한다.

사실 <홍반장>은 전혀 다른 성격과 취향을 가진 남녀가 만나 가까워지는 과정을 그린 수 많은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홍반장>이 관객들에게 새롭게 다가갈 수 있었던 이유는 자극적인 장면 없이도 이야기가 부드럽게 진행되는 강석범 감독의 깔끔한 연출과 배우 엄정화와 김주혁의 매력 때문이었다. 특히 김주혁은 재주도 많고 비밀도 많은 능청스러운 동네 반장 역할을 찰떡 같이 소화하며 관객들을 만족시켰다.

대종상 여우조연상 수상한 김가연
 
 홍반장에서 친구 따라 시골로 내려온 간호사 미선을 연기한 김가연(왼쪽)은 <홍반장>으로 대종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홍반장에서 친구 따라 시골로 내려온 간호사 미선을 연기한 김가연(왼쪽)은 <홍반장>으로 대종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 플레너스시네마서비스

 
영화에서는 혜진이 사표를 내는 과정부터 시골마을에 치과를 개업하기 까지의 과정을 약 25분 만에 일사천리로 보여준다. 하지만 현실에서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면 젊은 여성 혼자 연고도 없는 지역에 치과를 개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치과에서는 의사 못지 않게 중요한 업무를 담당해야 하는 간호사를 채용해야 하는데 혜진은 이 부분에서 큰 고민 하나를 덜었다. 마침 간호사가 직업인 절친 미선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선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친구로서 아주 바람직한 역할을 담당했다. 딱히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 받은 것도 아닌데 친구를 따라 시골 병원으로 자리를 옮겼고 친구의 썸남 뒷조사까지 자처한다.

미선을 연기한 김가연은 이제는 배우보다 임요환의 아내로 더 유명하다. 특이하게도 배우가 아닌 MBC공채 개그맨(무려 '컬투'가 그녀의 동기다)으로 데뷔했던 김가연은 1999년 드라마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에 출연하며 배우로 전업했다. 김가연은 김지운 감독의 <반칙왕>에서 송강호가 짝사랑하는 동료직원으로 출연했고 <홍반장>을 통해 대종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형사반장 전문배우' 기주봉은 <홍반장>에서 혜진의 아버지인 윤회장을 연기했다. 일당을 받고 일일 애인 역할을 하는 홍반장을 못 마땅해 하지만 홍반장의 철학(돈을 받으면 상대가 어려워하지 않고 부탁할 수 있고 나도 기분 좋게 친구를 도와줄 수 있다)을 듣고 금방 설득 당한다. 하지만 홍반장이 바둑에서 자신을 이기려 하자 "말로만 어르신 하지 말고 어르신 대접을 하란 말이야"라며 불 같이 화내다가 끝내 바둑판을 엎어 버린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홍반장 강석범 감독 고 김주혁 엄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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