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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현지시간) 그리스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에비아섬의 구브스 마을로 산불이 접근하며 시뻘건 불길과 연기가 치솟고 있다. 기록적인 폭염의 영향으로 그리스에서는 지난달 말부터 모두 55건의 산불이 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8일(현지시간) 그리스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에비아섬의 구브스 마을로 산불이 접근하며 시뻘건 불길과 연기가 치솟고 있다. 기록적인 폭염의 영향으로 그리스에서는 지난달 말부터 모두 55건의 산불이 난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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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토의 땅 시베리아의 5월 기온이 39도를 넘어서더니 여름이 오자 지중해 휴양지들이 불타고 있다. 대형 산불은 이미 그리스와 터키, 스페인, 포르투갈, 알제리, 모로코 일부 지역을 강타했다. 

미국 서부는 50도 가까운 불볕더위로 농사지을 물이 부족해 차떼기로 물을 훔쳐 가는 물 도둑까지 등장했다. 체리가 그을리고 물고기들이 뜨거운 강물 속에서 산 채로 익어간다. 국제연합(UN)은 코로나19 다음의 대재앙은 '기후변화 폭염'이라는 골자의 보고서를 준비하고 있다.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라 2021년 8월 중순 바로 지금 이 시각 지구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화'들이다.

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체감 지수는 '날씨가 많이 선선해졌네' 하는 덕담 속에 떨어져 간다. 과연 '불타는 지구'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남의 일에 불과할까? 며칠 전 한식 백반을 먹다 이런 문구를 봤다. 구인난과 식재료비 폭등으로 인해 이제부터 쌈 채소 더 시키면 돈을 내야 한다는. 

실제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8월 둘째 주 농산물 거래 동향 자료를 보면 기후 피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마늘의 경우 올해 생산량이 평년보다 5.3% 줄어든 데다 재배면적까지 줄어 7월 경매가는 전년 대비 33.8%, 평년 대비 40.6% 오른 kg당 5114원이었다. 

여름 과일 수박은 폭염 피해에 따른 작황 부진과 출하 지연으로 평년에 비해 37.7% 올랐고 저온성 작물인 시금치는 폭염 피해로 지난주에 비해 무려 69% 올랐다. 상추와 얼갈이 배추도 폭염으로 수량이 줄었다. 

물론 전년보다 농사가 잘된 풋고추는 가격이 떨어졌고 고랭지 무와 배추도 평년과 엇비슷한 수량으로 안정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현장 농민들은 확실히 농사짓기 어려워졌다는 말을 하고 있다. 앞으로는 농산물 가격 상승 자체를 탓할 게 아니라 오히려 평년과 비슷한 가격을 유지해준 농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하지 않을까? 정말 큰 문제는 국제 곡물가 상승에 있다.

수확 시작한 미국 봄밀의 11%만 좋은 상태
      
미 농무부(USDA)는 최근 미국 6개 주 3600여 농가에서 봄밀(봄에 파종해 여름 가을에 수확하는 밀)의 생육상태를 살펴본 결과 전체의 11%만 '좋음' 또는 '아주 좋음'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지난해 같은 시기 조사에서는 69%가 '좋음' 혹은 '아주 좋음'이었다. 

CNN 비즈니스는 가뭄 때문에 워싱턴주에서 수확 중인 봄밀의 93%가 '나쁨' 혹은 '매우 나쁨'이었다고 전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해외농업관측을 하고 있는 김지연 팀장은 미국산 봄밀의 경우 생육 초기에 잡은 생산 전망보다 더 안 좋은 수확량을 보이고 있다며 최근의 밀 가격상승을 설명했다. 

"밀 같은 경우 미국 봄밀이 생육 초기부터 가뭄 때문에 생산량 감소가 전망됐었는데, 봄밀 재배지역에서 가뭄을 겪고 있는 지역의 비중이 99%로 조사되는 등 생육상황이 더 악화되었습니다."
 
미 농무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7일 기준 미국 봄밀 생산량의 약 99%가 가뭄을 겪는 지역 내에 있다.
 미 농무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7일 기준 미국 봄밀 생산량의 약 99%가 가뭄을 겪는 지역 내에 있다.
ⓒ 미 농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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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난 7월 세계 식량 가격은 전년 같은 달 대비 31% 상승했다. 신시아 로젠츠바이크 컬럼비아대학교 지구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최근 발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보고서를 인용해 "대가뭄이 산업화 이전보다 70% 이상 더 자주 발생하고 있다"며 "기후 위기로 전 세계 농부들이 받고 있는 피해가 우리의 식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김지연 팀장은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3대 주요 곡물(밀, 옥수수, 콩) 가격의 최근 동향을 이렇게 설명했다. 

"국제 곡물 가격이 작년 하반기부터 올해 5월까지 옥수수를 중심으로 상승세를 보여오다 21년산 주요 곡물의 생산량 증가 전망으로 6~7월에 하락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미국 북서부 지역과 유럽 일부 주산지의 가뭄 지속에 따른 생육상황 악화 우려 때문에 밀 생산량이 하향 조정됨에 따라 밀을 중심으로 다시 가격이 상승했습니다." 

어떤 게 더 오르고 빠질지 예측하기 힘든 불확실성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2019년 기준 45.8%(채소 포함)이며 주요 곡물의 자급률은 콩 26.7%, 옥수수 3.5%, 밀 0.7%이다.

농산물 생산자 가격, 2008년 이래 가장 빠른 속도로 상승

곡물가 상승으로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이다. '굶주림' 하면 아프리카의 저개발 국가만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런데 지난 9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해 유럽과 북미주 선진국에서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UN이 집계를 시작한 2014년 이후 크게 늘어났다고 밝혔다. 

2019년 조사에서는 전체 인구의 7.7%가, 2020년 조사에서는 전체 인구의 9%에 가까운 사람들이 '어느 정도' 또는 '심각한' 식량 불안정에 처한 것으로 조사됐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충격에 취약계층의 먹거리 빈곤이 더 심해졌다는 것이다.

앞으로 더 심각해질 거라는 견해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크레이그 군데르센 일리노이대 농업·소비자경제학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보다 팬데믹 이후가 더 걱정"이라며 "정부의 모든 부양책들은 인플레이션을 이끌어 식량 가격을 치솟게 할 것이고 인플레이션이 높아지면 취약계층 가정에 엄청난 부담이 가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기에 '기후위기'라는 변수까지 겹치면 불확실성은 더욱 커진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학자 크리스티안 보그먼은 농산물 생산자 가격이 2008년 이래 가장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며 선진국 식품소비자 가격이 2022년 말까지 평균 4.5% 포인트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여기에 올해 미국 곡창지대의 가뭄 등 기상 이슈들을 감안한다면 식품 가격이 얼마나 상승할지 현재로서 예측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도 먹거리 공공성 확대해야
 
35도 안팎에 이르는 무더위가 이어진 지난 7월 21일 서울역 광장에서 한 노숙인이 그늘에서 휴식하고 있다.
 35도 안팎에 이르는 무더위가 이어진 지난 7월 21일 서울역 광장에서 한 노숙인이 그늘에서 휴식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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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취약계층의 문제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굶는 사람이 어디있느냐는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지난 2017년에 발표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조사 보고서에는 전체 가구의 8.2%, 수급자 가구 중 15.5%가 영양 섭취 부족자로 분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보희 먹거리연대 집행위원장은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며 그 비율은 더 늘어났고 기후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는 지금 먹거리 취약계층의 문제는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사람들은 우리나라에 더 이상 굶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고 다들 먹거리는 넘쳐난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우리나라에서 먹거리가, 굶는 사람을 포함해서 먹거리를 충분하게 공급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해마다 숫자가 늘어나고 있어요."

이 위원장은 먹거리의 '양' 뿐 아니라 먹거리의 '질'을 잘 봐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먹거리를 먹느냐의 문제가 있어요. 건강한 먹거리를 먹어야 되거든요. 실제로 사회복지쪽 통계를 보면 소득분위 제일 밑에 있는 분들이 고혈압, 비만, 당뇨 등 먹거리로부터 발생하는 관련 질병에 상대적으로 많이 시달립니다. 가난할수록, 소득이 낮을수록 건강한 먹거리를 먹기보다는 인스턴트나 가공 식품에 의존하게 되거든요."

세상이 아무리 빨리 변해도 사람은 때가 되면 배고파진다. 먹어야 살고 잘 먹으면 행복하다. 그런데 먹을게 기후변화로 녹록지 않다. 없는 사람은 더 빨리 느낄 거라고 한다. 이제 먹거리도 사회적으로 챙겨야하지 않을까. 경제발전 5개년 계획처럼, 국가먹거리 5개년 계획, 10개년 계획 이렇게...

[참고자료]
Mattt Egan, 'Get used to surging food prices: Extreme weather is here to stay' (CNN Business, 2021. 8.13)
E.Terazono 'Pandemic plunges families into food poverty in world's rich economies' (Financial Times, 2021. 8.9)
강명윤, '기후 위기로 전 세계 식량 가격 급등한다' (더나은미래, 2021. 8.17)
김은광, '팬데믹에 선진국 시민도 식량위기' (내일신문, 2021. 8.10)
'주요 농산물 주간거래동향'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2021. 8.15)
이계임 등 '정부의 취약계층 농식품 지원체계 개선방안'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보고, 2017.10)

태그:#기후변화, #식량안보, #먹거리 공공성, #먹거리 취약계층, #식량자급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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