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요코하마 국제경기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남자축구 8강전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 후반전 멕시코의 코르도바가 골을 넣은 뒤 동료 선수들과 기뻐하고 있다. 2021.7.31

31일 요코하마 국제경기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남자축구 8강전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 후반전 멕시코의 코르도바가 골을 넣은 뒤 동료 선수들과 기뻐하고 있다. 2021.7.31 ⓒ 연합뉴스

 
올림픽 메달을 목표로 한 김학범호가 극심한 수비 불안을 노출하며 세계 축구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한국 올림픽 축구대표팀은 31일 일본 요코하마에 위치한 요코하마 인터내셔날 스타디움에서 열린 멕시코와의 2020 도쿄올림픽 8강전에서 3-6으로 패했다.

이로써 2012 런던올림픽 이후 9년 만의 동메달 재현에 실패했다.

공격에서 고군분투한 이동경

이날 한국은 지난 경기와 마찬가지로 4-2-3-1을 가동했다. 황의조가 원톱에 선 가운데, 2선은 김진야-이동경-이동준으로 구성됐다. 허리는 김동현-김진규가 받쳤고, 포백은 강윤성-박지수-정태욱-설영우, 골문은 송범근이 지켰다. 멕시코는 베가-마르틴-안투나를 최전방에 놓는 4-3-3 포메이션으로 한국에 맞섰다.

초반부터 두 팀 모두 강도 높은 압박을 구사하며 중원 장악을 위해 노력했다. 한국은 좌우 윙어 김진야,  이동준이 날카로운 돌파와 침투로 파울을 얻어내는 등 멕시코 수비를 위협했다. 수비 라인도 대폭 상향 조정하며 공간을 좁힌 채 멕시코의 빌드업을 억제했다.

그러나 멕시코의 개인 돌파와 기민한 침투를 막지 못했다. 전반 12분 왼쪽에서 로모가 올린 크로스를 반대편의 베가 머리로 전달됐다. 베가는 문전으로 헤더 패스를 연결, 쇄도하는 마르틴이 마무리지었다.

한국은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측면을 활용한 적극적인 공세를 가했다. 결국 전반 20분 곧바로 승부의 균형추를 맞췄다. 왼쪽에서 김진규가 내준 패스가 아크 정면의 이동경에게 연결됐다. 이동경은 오른발로 슈탕하는 척 수비수를 속인 뒤 왼발로 감아차며 골망을 흔들었다.

이후에도 이동경은 존재감을 발휘했다. 전반 24분 직접 박스 안으로 드리블하며 수비수 2명을 제치고 시도한 오른발 슈팅은 골문 오른편으로 빗나갔다. 전반 28분에는 수비 뒷공간 스루 패스로 황의조의 슈팅을 도왔다.

완전히 붕괴된 수비 조직력, 멕시코에 대량 실점으로 완패

하지만 순간적인 방심과 수비 불안이 화를 불렀다. 전반 30분 베가가 한국 압박이 엷어진 틈을 타 수비 뒷공간으로 크로스를 찔러줬고, 로모가 마무리지었다.

추가 실점에 그치지 않고 한국은 또 다시 집중력 부족을 드러냈다. 전반 37분 강윤성이 공중볼 경합 과정에서 멕시코 공격수를 손으로 밀치며 페널티킥을 내준 것이다. 전반 39분 키커로 나선 코르도바가 성공시키며 멕시코가 3-1로 앞서나갔다.

한국은 결정적 기회를 무산시켰다. 설영우의 롱패스를 받은 이동준이 박스 안으로 쇄도하며 골키퍼와 일대일로 맞섰지만 오른발 슈팅은 오초아 골키퍼 선방에 막혔다. 전반 45분 이동경의 절묘한 왼발 프리킥 슈팅을 다시 한 번 오초아 골키퍼가 선방했다.

김학범 감독은 후반시작하자마자 3선 미드필더 김동현과 김진규를 모두 교체시켰다. 페널티킥을 내준 강윤성도 교체 아웃 대상자였다. 그 대신 권창훈, 원두재, 엄원상을 교체 투입하며 공격적인 변화를 꾀했다. 

후반 1분 만에 엄원상의 기습적인 슈팅으로 분위기를 끌어올리더니 후반 6분 이동경이 강력한 왼발슛으로 만회골을 터뜨리며, 추격의 불씨를 살렸다.

그러나 후반에도 수비 불안이 발목을 잡았다. 후반 9분 세트피스에서 마르틴의 헤더골을 허용했다. 후반 18분에는 코르도바의 중거리 슈팅이 크로스바를 스치고 골문으로 들어갔다.

김학범 감독은 엄원상을 불러들이고, 이강인을 넣으며 반전을 모색했다. 이강인은 2선에서 특유의 볼 키핑과 탈압박을 선보였을 뿐 동료들은 체력 저하를 드러냈다.

멕시코는 한 골을 더 추가했다. 후반 39분 라이네스의 개인 돌파 이후 아기레가 오른발 터닝슛으로 골네트를 흔들었다. 한국은 후반 46분 코너킥 상황에서 황의조의 헤더로 한 골을 만회했지만 크게 벌어진 점수차를 좁히지 못했다.

악수가 된 와일드카드 김민재 선발, 수비 불안 결정적 이유

멕시코는 북중미 축구의 맹주로 손꼽힌다. 월드컵과 올림픽 등 주요 국제대회에서 멕시코와 자주 맞닥뜨린 바 있다. 특히 올림픽에서는 앞선 다섯 차례 맞대결에서 한국이 3승 2무로 우위를 점했다. 2012 런던올림픽, 2016 리우올림픽에 이어 3회 연속 멕시코와 인연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만난 멕시코는 강했다. 공격수들은 화려한 개인기와 패스 플레이로 한국 수비진을 유린했다. 한국의 높은 수비 라인을 효과적으로 공략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한국은 1차적으로 3선에서 수비 보호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포백 수비진은 줄곧 위험에 노출됐다. 김학범 감독은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 원두재 대신 김동현-김진규로 구성한 3선 조합을 처음 가동한 것이 패착이었다.

이뿐만 아니다. 좌우 풀백 강윤성, 설영우는 일대일 마크에서 약점을 노출했고, 크로스와 침투를 쉽사리 허용했다. 센터백 듀오 박지수-정태욱 역시 난조를 보였다.

사실 수비 불안은 예견된 일이었다. 당초 김학범 감독은 와일드카드로 김민재를 낙점하고, 최종 소집 훈련에서 김민재를 중심으로 한 수비 전술을 점검했다. 그러나 유럽 이적을 추진 중인 김민재의 차출 가능성은 지극히 낮은 상황이었다.

결국 이적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원 소속팀 베이징 궈안은 김민재의 차출을 거부했다. 결국 도쿄 출국 하루를 앞두고, 김민재의 합류가 무산됐다. 이에 대타로 박지수가 긴급하게 도쿄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아무래도 기존 수비수들과 손발을 맞출 시간적 여유가 크게 부족했다.

물론 조별리그에서는 3경기 1실점을 기록, 표면적으로는 수비 불안을 해소한 것처럼 비춰졌는데, 실상은 달랐다. 뉴질랜드는 수비 위주의 전술을 고집했고, 한국에 대패를 당한 루마니아와 온두라스는 퇴장을 당하며 수적인 열세에 놓였다. 이러다보니 한국 수비진들은 위험상황에 직면할 일이 많지 않았다. 역대 최상의 조편성의 수혜를 입으며 2경기 연속 대승을 거둔 것이 한편으로는 독이되고 말았다.

8강에서 만난 멕시코의 공격력은 한국 수비를 농락하기에 충분했다. 국제 대회에서 수비력을 갖추지 못하면 좋은 성적을 내기란 불가능하다. 김학범 감독은 이번 대회 출전을 앞두고 "사고 한 번 치겠습니다"라고 자신감을 보였으나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욕심이었다. 

※ 2020 도쿄올림픽 남자축구 8강전 (요코하마 인터내셔날 스타디움, 일본 요코하마 – 2021년 7월 31일)
한국 3 - 이동경 20' 51' 황의조 91+'
멕시코 6 - 마르틴 12' 54' 로모 30' 코르도바(PK) 39' 코르도바 63' 아기레 84'


선수명단
한국 4-2-3-1 : 송범근 - 설영우, 정태욱, 박지수, 강윤성(46'엄원상, 73'이강인) - 김진규(46'원두재), 김동현(46'권창훈) - 이동준, 이동경, 김진야 - 황의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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