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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자료사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자료사진)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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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모직 1 : 삼성물산 0.35'  

8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간부진의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 9차 공판. 이날 공판의 화두는 재판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의 합병 비율이었다. 재판엔 삼성증권 IB본부 이사로, 현직 '삼성맨'인 이아무개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씨는 합병 당시 삼성물산TF 소속으로 일하며 회계법인에 '적정 합병비율 보고서'를 도출하도록 지시한 인물이기도 하다.

'삼성물산TF' 소속 직원이 왜? 

피고인으로 출석한 이 부회장은 다소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휴정 중에는 검찰 석으로 다가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거나, 검사들의 어깨를 두드리는 모습도 보였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부터 줄곧 검찰 수사를 받아온 이력이 있긴 하지만, 유무죄를 다투기 위해 법정에 나온 피고인 입장을 생각하면 의아한 모습이었다.

검찰도 이 부회장 인사에 반응하기는 했지만, 공판 중엔 합병 비율 보고서의 실체를 파고들어갔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제일모직에 유리한 합병 비율을 완성하기 위해 피고인들이 삼성증권 IB본부를 통해 회계법인으로 하여금 무리한 양사 평가보고서를 만들었다고 보고 있다. 

이날 재판에선 증인이 합병 상대사인 삼성물산 담당자로부터 삼정 회계법인이 만든 보고서를 받고, 이를 상대 회사 평가사인 안진 회계법인에게 전달한 과정이 제시됐다. 2015년 5월 20일의 증인이 제일모직 TF 소속 삼성증권 동료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이다.

"(안진이) (삼성)물산 가치를 낮추면 상대적으로 (제일)모직 가치를 증대할 부담이 덜한데 잘 안 내리네요. 안진과 회사에 삼정 결과를 넌지시 알려주면서 내일 오전까지 마무리하도록 합시다."
 

검찰은 삼성물산TF 소속인 증인이, 삼성물산에 유리한 합병 비율이 아닌 제일모직을 위해 이미 고정된 비율을 요구하는 듯한 뉘앙스에 주목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주주들은 이해 관계가 달라 그 회사의 입장에서 제대로 평가할 필요가 있는데, 이를 (공유하며) 검토하는 건 (고정 비율에 맞게) 가치를 낮추기 위한 의도로 밖에 이해가 안 된다"는 주장이다.

증인은 자신이 이메일에서 언급한 '(안진이 삼성물산 가치를) 안 내리네요'라고 표현한 것은, 자신의 말이 아니라 안진이 삼정과 달리 업무 수행이 더뎌 답답한 상황을 묘사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 검찰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따져 물었다. "기한 내 특정 결론을 내린 보고서가 안 나오니 '왜 못 만들어내냐'는 취지가 아니냐"는 의문이다.

결국 안진 소속 회계사가 '울며 겨자먹기'로 적정 합병비율 보고서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측에 보내며 외부 공개를 꺼린 대목도 공개됐다. 기존 평가 값보다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였다.

이는 지난 1일 검찰의 재주신문 과정에서도 잠시 언급된 바 있다. 당시 검찰은 "안진 측에서는 합병 비율 내 평가 결과를 맞춰야한다는 전제 하에 진행하다 보니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결론이 나오지 않아서 삼성물산 측에 문제제기를 했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증인의 주장은 그의 상사인 1차 증인 한아무개씨와 다르지 않았다. 참고를 위한 약식보고서일 뿐, 중요한 내용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오히려 안진 측이 결과값 도출에 애를 먹어 자신에게 의존했다고도 했다. 증인은 "사실 좀 (안진 측이) 귀찮기도 했다"면서 "선의로 (삼성물산 측) 결과값을 알려준 거고, 그 이상은 안진이 알아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은 단순히 "회계법인 요청에 따라 소극적 관여만 했을 뿐"이라는 취지다. 향후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안진 측 회계사도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인 만큼, 사실 공방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재판부가 이재용 재판서 '김학의 파기환송' 언급한 까닭

검찰 : "이걸 국민이 납득하겠나? 재판장님, 증인이 법정에 나오기 전 변호인 내지 삼성 측 증인들과 접촉했는지 확인해주시길 석명 부탁드립니다."

변호인 : "자꾸만 국민을 말씀하시는데 언론플레이 아닙니까? 의혹을 이야기하면서 왜 권리를 제한하려 하는 지 이해가 안 됩니다."
 

한편, 이날은 재판 시작과 동시에 검찰과 변호인이 세게 맞붙었다. 재판 직전 검찰이 낸 의견서 때문이었다. 검찰은 현직 삼성증권 소속인 증인이 오너 일가 대주주 재판의 증인으로 참석하는 만큼 검찰 주신문 전 변호인들의 증인 면담은 절제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변호인들은 곧바로 반발, "대법원이 변호인 면담을 보장하고 있고, 증인 신문 시작 전 사실 관계 확인이라도 할 기회를 보장해 달라"고 항변했다. 검찰은 증인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고 다시 반박했다. "(증인 중) 피고인 측 소속 회사 직원이 많다"면서 "무제한 접촉이 우려되는 측면이 있다. 변호인은 절차를 정해 접촉하고, 피고인 측에서도 변호인 외 다른 방식의 면담은 자제하는 게 맞다"고 맞섰다.

이에 재판부가 중재에 나섰다. 최근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의 뇌물수수 혐의 관련 유죄 판결을 파기환송한 대법원의 사례도 언급했다. 대법원은 지난 6월 10일 김학의 사건에서 검찰이 공판 전 증인과 접촉한 사실을 들어 증언이 오염됐을 경우 그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관련 기사 : 결국 풀려난 김학의, 대법원 파기환송... "증언 신빙성 의심" http://omn.kr/1tu31

재판장인 박정제 판사는 "우리 대법원의 시각이 미국이나 일본처럼 완전히 (사전면담을) 허용하는 것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면서 "김학의 사건에서 검찰에 (사전면담에) 대해 엄격히 한 부분도 있고, 형사소송법적 시각에서 굉장히 신중하고 민감하게 짚어야할 문제인 것 같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향후 변호인과 검찰 측의 추가 의견을 수렴한 후 따로 입장을 정리하기로 했다.

태그:#이재용, #삼성전자,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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