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창동계올림픽 3주년을 맞아 당시 함께했던 사람들을 만납니다. 출전했던 선수들과 그해 겨울을 평창에서 보낸 이들을 만나 평창이 어떤 의미인지 물어봤습니다. '다시, 나의 평창'의 아홉 번째 주인공은 패럴림픽 두 개의 메달을 획득하며 국민들에게 패럴림픽에 대한 관심을 이끌었던 크로스컨트리 스키 금메달리스트, 신의현 선수입니다.[기자말]
 노르딕스키 신의현 선수가 17일 오후 강원도 평창 올림픽메달플라자에서 열린 크로스컨트리 남자 7.5km 좌식 부문 수상식에서 받은 금메달을 기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노르딕스키 신의현 선수가 2018년 3월 17일 오후 강원도 평창 올림픽메달플라자에서 열린 '평창동계패럴림픽' 크로스컨트리 남자 7.5km 좌식 부문 수상식에서 받은 금메달을 기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 이희훈


올림픽 폐막 후 이어지는 패럴림픽은 올림픽만큼 큰 주목을 받지 못한다. 특히 경기 중계 등의 측면에선 그런 상황이 더욱 도드라진다.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당시 한 선수의 메달 획득 소식은 이런 분위기를 일순간 바꿔놨다. 그 주인공은 크로스컨트리 스키 신의현 선수로, 그는 동메달을 따냈다.

당시 신의현 선수는 기자들에게 "패럴림픽 중계가 더욱 잘 되었으면 한다"는 말을 남겼다. 이후 패럴림픽의 감동 순간들이 그의 염원을 타고 안방으로 전달되었다. 그런 덕분이었을까? 신 선수는 모든 국민들이 TV를 통해 그를 보고 있는 가운데 금메달을 따내는 기록을 써냈다. 동계 종목 첫 금메달이었다. 신 선수는 '평창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려준 전령사로 국민 모두의 기억에 남았다.

뜨거웠던 패럴림픽이 막을 내린 지도 벌써 3년이 흘렀다. 현재 신의현 선수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2020-2021 시즌 막바지였던 지난달, 슬로베니아에 머물고 있었던 신의현 선수를 전화로 만났다.

"노르딕스키, 땀 흘린 만큼 성적이 나오네요"
 
신 선수는 지난 4월 초 시즌을 마치고도 계속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 탓에 훈련이 어려웠으니 올해 더 열심히 하겠다는 것. 그는 4월 말까지 핀란드에서 계속 훈련을 이어가다가 귀국을 할 것이라 알렸다. 

지난해와 올해는 그에게 아쉬움을 남긴 시기였다. 신의현 선수는 패럴림픽이 끝난 직후는 몇 달간 행사와 방송 출연은 물론, 각계각층에서 시상하는 상의 주인공이 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이후 겨울부터 훈련을 이어갔고, 2년 차와 3년 차에는 본격적으로 베이징 동계 패럴림픽을 준비하려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탓에 훈련과 경기를 원활하게 이어가지 못했다. "집에서 훈련을 하다가 이제 '나가서 훈련을 할까'하면 코로나 때문에 나가지 못했다"던 그는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패럴림픽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며 "훈련량이 부족한 것이 아쉽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면 잘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부족한 훈련량만큼 그를 안타깝게 한 것은 평창 크로스컨트리 경기장 설질이나 시설이었다. 신 선수는 "(설질이나 시설이) 패럴림픽 때와 비교해 좋지 못하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관리가 덜 된 것 같다"라며 "그래도 이 경기장에서 패럴림픽도 나가고, 금메달도 따고 했잖나. 훈련을 하려고 평창 경기장에 서면 2018년 때의 생각이 나서 기분이 좋다. 벌써 그때가 추억이 되었다"라며 웃었다.

"한국도, 장애인 스포츠에 신경을 썼으면 했죠"
 
 2020/2021 시즌 경기에 출전했던 신의현 선수.

2020/2021 시즌 경기에 출전했던 신의현 선수. ⓒ 신의현 선수 제공

 
평창 패럴림픽에 대한 첫 기억을 묻자 그는 2018년 3월 9일 개회식 당시 대한민국 선수단 입장 때 기수로 나선 것을 떠올렸다.

"그때 의족을 신고 걷다 보니 걸음걸이에 많이 신경을 쓰게 되었어요. 다른 생각 없이 '잘 걸어야겠다, 태극기도 높이 들어 올려야겠다'라는 생각만 했었죠. 그리고 맨 앞에서 휘청거리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그때는 걸음걸이에만 집중했었어요. 경기장에 입장했을 때 관중 분들이 응원의 함성을 크게 내주셔서 힘을 많이 얻었습니다."

3월 10일 열린 첫 경기도 그에겐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이다. 신 선수는 "직전 월드컵에서 메달을 따내기도 해서 기대를 많이 했다. 긴장도 되고, 욕심도 많이 났다"면서 "그때 출전했던 경기가 바이애슬론이었는데, 사격하는 데 총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간 탓에 아쉬운 결과가 나온 것 같았다"라고 회상했다.

아쉬운 경기를 뒤로하고 돌아가면서 '남은 경기들을 잘 하자'라고 생각했다는 그는 "그렇게 첫 경기에서 마음을 달랜 덕분에 메달을 땄던 것 같다"며 웃었다. 그때의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그는 바로 다음 날인 11일 크로스컨트리 15km 종목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신의현 선수는 '조금 더 할 걸'이라는 아쉬움이 남았단다. 이유를 묻자 그는 "앞의 선수와 8초 남짓 차이가 나서, 조금만 더 했으면 메달 색을 바꾸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었다"고 답했다.

"애국가 꼭 울리겠다던 약속, 폐회 직전에 지켰죠"

메달을 딴 이후에도 그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신 선수는 패럴림픽 기간 당시 "경기장에 애국가를 꼭 울릴 수 있게 하겠다"라고 약속했다. 그런데 그 약속을 폐회 직전인 17일에 지키게 되었다. 그가 크로스컨트리 7.5km 종목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것이다.

"그때는 마지막이니까 최선을 다하고, 모든 것을 쏟아붓자고 생각했어요. 사실 경기를 하는데, 코치님이 계속 '5초'라고 하시는 거예요. 가장 잘 하는 친구에게 5초 뒤지나 싶어서 더 열심히 뛰었는데, 경기가 끝나고 나니까 5초 앞서 있었더라고요. 경기장 안에서 죽겠다는 각오로 경기를 뛰었는데, 그 각오가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신의현 선수는 "금메달이 확정된 후 기분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라며 "그때 '경기장에 애국가를 울릴 수 있게 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이 비로소 들더라"고 금메달을 따낸 순간을 떠올렸다. 

포디움에 올라 애국가를 들었을 때의 기분은 어땠을까. 그는 "처음에 다쳤을 때, 어머니가 고생하셨을 때 생각이 났다"면서 "(메달 딴 뒤)어머니께서는 그저 웃으시면서 '잘했다'고 안아주셨다. 참 감사했다. 어머니도 내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그 순간 참 기쁘셨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신의현 선수는 평창 패럴림픽에서 두 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렇다면 그에게 평창 패럴림픽은 어떤 의미로 남았을까.

"사고를 당해서 어렵게 살았고, 장애인이 된 순간 세상에 쓸모없던 인간이 되었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삶의 의미가 사라진 것 같았죠. 그래도 운동을 만나서 나라를 위해 출전했고, 결국은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이잖아요. 그래서 평창 패럴림픽에서 태극마크를 달았던 것이 정말 뜻깊고 기뻤던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패럴림픽 이후 크게 오르지 못해 아쉬웠다는  신 선수는 "그래도 조금씩 변화가 있는 것 같다. 장애인 체육계에서도 요구를 하는 것으로 안다. 한 번에 바뀔 수는 없지만, 중계를 더욱 많이 해주면 더욱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지 않을까 싶다"라며 말을 이었다. 

"어떻게 보면 장애인 스포츠의 스토리가 비장애인들의 스포츠 못지않아요. '죽다 살아난 사람들의 스토리'잖아요. 사회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까 싶어요. KBS 같은 공영방송에서 중계, 아니라면 보도라도 많이 해주고, 매스컴에서 관심을 이끌어주어서 국민들이 더욱 주목할 수 있게 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 패럴림픽 땐 바이애슬론에서 금메달 따야죠"
 
신의현 선수와 오랜 시간 함께 한 종목은 크로스컨트리다. 양다리를 의족에 의지했던 그는 운동을 시작하기 전엔 스키는 막연히 탈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앉아서 스키를 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장애인도 못 하는 스포츠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궁금한 점이 생겼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들이 '스키' 하면 떠올리는 알파인 스키를 그는 타본 적이 있을까. 신 선수는 "내려가는 것이 위험해 보이기도 하고, 부상 위험도 있다 보니 알파인 스키엔 도전 못하고 있다"면서, "그런데 내가 설령 알파인 스키까지 잘 타면, 다른 스키 선수들은 어떻게 하겠냐"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사실 신의현 선수는 다른 종목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평창 패럴림픽이 끝난 후 '도쿄 패럴림픽에서는 핸드 사이클에 도전해보겠다'고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장애인 선수들 중엔 동계와 하계 모두에서 복수의 종목에 출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 각오가 지금도 유효한지 물었다. 하지만 신의현 선수는 "두 마리 토끼는 한 번에 잡기가 어렵더라"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그렇게 두 종목에 모두 도전해보려고 했는데, 쓰는 근육이 다르다 보니까 두 개의 종목을 함께 하는 데 어려움이 컸다"라며 "두 가지를 함께 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도 잘하는 크로스컨트리 스키에 더욱 집중을 해서 베이징 패럴림픽 때 잘하자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며 말했다.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크로스컨트리, 바이애슬론에서 한 개씩 금메달을 얻어내, 두 개의 금메달을 따내는 것이다. 신의현 선수는 "두 번째 패럴림픽 금메달은 바이애슬론으로 얻어내고 싶다. 지난 평창 동계 패럴림픽 때에는 바이애슬론에서 메달이 없었는데, 이번에 메달을 획득하며 만회하고 싶다"고 말했다.

"딸은 태권도 선수, 제 오래전 꿈 이뤄주는 것 같아요"
 
 2020/2021 시즌에 나선 신의현 선수의 모습.

2020/2021 시즌에 나선 신의현 선수의 모습. ⓒ 신의현 선수 제공

 
신의현 선수가 말하는 자신의 강점은 정신력이다. 그는 "승부욕이 크다. 나보다 잘 하는 선수들을 보면 이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자다가도 나보다 성적이 좋은 선수들의 얼굴이 떠올라 잠에서 깨곤 한다"라며 "그런 승부욕이 더욱 성적을 높일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의 또 다른 원동력은 가족이다. 그의 동반자인 아내가 가장 큰 도움을 준다. 신의현 선수는 "두 달 이상 해외에 나가 있다 보니 아내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하는 경우도 많고, 2년 전에 셋째 아이가 태어나 더욱 힘들 것이다"라면서 "그런데 아내가 잘 아이들을 돌봐주는 덕분에, 그리고 힘든 부분이 있을 때 부모님이 많이 도와주신 덕분에 내가 운동에 전념할 수 있다"라고 가족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운동의 길에 접어든 '딸 자랑'도 빼놓지 않았다. 신의현 선수의 첫째 딸은 태권도 선수이다. 체육중학교에서 미래의 국가대표를 꿈꾸며 운동에 매진하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사실 저도 다치기 전에는 격투기 종목 쪽으로 운동을 할까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그 부분을 딸이 이루어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딸이 같은 운동선수이다 보니 제가 경험했던 것도 이야기하고, 힘들어할 때 조언해 주기도 해요. 딸도 올림픽 메달을 목표로 열심히 해서 아빠는 패럴림픽 메달, 딸은 올림픽 메달을 함께 거는 '부녀 선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마지막 질문은 그에게 '패럴림픽', 그리고 '평창'과 '메달'에 대해서 듣고 싶었다. 신의현 선수는 이렇게 대답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평창은 제게 '꿈의 장소'입니다. 꿈을 이루기 위한 무대도 되었고,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열린 동계 패럴림픽에서 메달도 따냈잖아요. 앞으로 평창에서 언제 또 올림픽이며, 패럴림픽이 열리나 싶어요. 그런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는 기회, 역사 속의 무대에서 처음으로 메달을 수확했으니 꿈이 이루어진 느낌입니다.

그리고 패럴림픽은 아직 제 '꿈'이죠. 운동을 시작하면서 처음 가진 꿈이 패럴림픽에 나가는 것이었고, 그 꿈이 이뤄지자 메달을 따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을 모두 이루어냈네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멈추지 않을 거예요. 베이징에서 2연패를 거두는 것이 새로운 꿈입니다.

마지막으로 메달은 '내가 꿈을 이룬 증명' 같습니다. 나중에 메달이 없으면 '내가 패럴림픽 선수로 나서서 이만큼 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어렵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앞으로도 더욱, 또 노력을 해서 '내가 이번에도 잘 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인증서처럼 메달을 목에 걸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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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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