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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뭐든 혼자 하는 것을 잘한다. '혼밥'이라는 말이 생기기 전부터 나는 혼자 해장국을 사 먹으러 다녔다. 시장통에 있는 허름한 식당의 가운데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앉아서 "아줌마! 선지 듬뿍 넣어 주세요"를 외치는 씩씩한 젊은 여자에게 주인아주머니는 늘 인심이 후했다.

또 나는 혼자 영화관에 가는 것도 좋아한다. 사방에 피가 튀고 시체들이 나뒹구는 좀비, 액션물을 좋아하는 내 영화 취향에 동조해 줄 만한 친구가 딱히 없기 때문이다. 내 친구들은 죄다 달짝지근한 로맨틱 코미디를 선호하고, 손발이 오글거리는 걸 못 참는 나는 또 그것을 딱 질색한다. 결국, 나는 내가 보고 싶은 영화가 개봉하면 혼자 영화관으로 향한다.
 
몇 해전 초겨울 수락산에 올랐다가 찍었네요. 안전에 유의하면서 찍었습니다.
▲ 수락산에서 몇 해전 초겨울 수락산에 올랐다가 찍었네요. 안전에 유의하면서 찍었습니다.
ⓒ 조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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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한두 차례는 훌쩍 여행도 떠난다. 작년에는 여수에 다녀왔는데 혼자서 신나게 해상 케이블카를 탔고,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과 함께 거북선 모형에 올라 노를 젓는 포즈로 사진도 열심히 찍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수산물 시장에 들러 산낙지와 해삼을 사 먹었는데 그 맛이 또 기가 막혔다.

이런 나를 두고 나는 '독립적'이라 주장하지만, 엄마는 '궁상맞다!'고 일축하신다. 그러나 혼자서도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함께일 때도 더 크게 더 많이 행복할 수 있다는 내 철학은 여전히 확고하다.

혼자서 무슨 재미로 영화를 봐? 혼자서 식당에 앉아 밥 먹는 건 좀 민망하지 않아? 그렇게 망설이는 사이에 당신이 보고 싶은 그 영화는 막을 내리고 계절 별미를 맛볼 기회는 내년으로 미뤄지는 것이다. 그건 좀 억울하지 않나.

그런데 이렇게 혼자서도 잘 노는 내가 아직 도전해 보지 못한 종목이 하나 있다. 바로 '혼산'이다.

요즘 2030세대 등산이 유행이라고?   

나는 십수 년 전부터 주말이면 취미 삼아 종종 산에 오르곤 했다. 당시 내가 살았던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수락산이, 또 거기서 조금만 더 가면 도봉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등산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은 아니다. 간혹 산 입구에 발을 딛는 순간, 반드시 정상을 찍고야 말겠다면서 전의를 불태우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쉽게도 내게는 그런 승부욕은 없다.

나는 봄이면 꽃구경, 가을이면 단풍 구경하러 소풍 삼아 놀이 삼아 산을 찾는 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마다 옆에 누군가 있었다. 이번엔 꼭 혼자 가봐야지, 마음을 먹었다가도 틀림없이 함께하고 싶은 얼굴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한때 죽고 못 살던 친구와 사소한 오해로 서먹서먹해졌을 때, 최근 무슨 일엔가 마음이 상해 잔뜩 풀이 죽은 동료를 위로할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을 때, 혹은 하는 것마다 실수투성인 내 자신이 너무 싫어진 어느 날 너그러운 사람에게 기대어 투정부리고 싶을 때, 나는 떠오르는 얼굴을 향해 전화를 걸어 무턱대고 묻곤 한다.

"이번 주말에 나랑 같이 등산 갈래?"

누군가와 함께 사는 얘기, 속상했던 얘기, 연예인 누가 예쁘고 요즘 드라마는 뭐가 재미있고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산에 오르다 보면 평소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 눈에 들어온다.

먼저 사는 데 바빠서 남의 상처를 헤아리지 못했던 나의 옹졸한 마음이 보이고, 그다음엔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상대의 눈에서 나를 향한 순순한 호감이 보인다.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정직한 알맹이를 내어놓는 순간의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나는 좋은 동반자와 함께 산에 오른다.

그래서 내게 산은 혼자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셋이 더 좋은 곳이다. 힘들 때는 함께 쉬고, 짐이 무거울 때는 나누어 지면서 그렇게 좋은 사람들과 함께 산을 오르다 보면, 내가 사랑받고 있구나, 내가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에 절로 흐뭇해진다.
 
요즘 20~30대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난데없이 등산이 유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진은 인스타그램에 #산스타그램 해시태그를 검색한 모습.
 요즘 20~30대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난데없이 등산이 유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진은 인스타그램에 #산스타그램 해시태그를 검색한 모습.
ⓒ 인스타그램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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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얼마 전 요즘 20~30대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난데없이 등산이 유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코로나19로 실내에서 즐길 거리가 마땅치 않으니 캠핑이나 등산과 같은 야외 활동이 부쩍 늘었다는 것이다. 

특히 혼자 하는 등산을 일컫는 '혼산'이 하나의 놀이처럼 번지는 추세라고 한다. 너도나도 '혼산'하는 셀카를 자신의 SNS에 올리다 보니 '산'과 '인스타그램'을 더해서 '산스타그램'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이다.

그동안 등산을 즐기는 계층이 기성세대에 한정되어 등산이 '어른들만의 놀이'로 취급받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야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함께 즐길 만한 건강한 놀이문화가 형성되는가 싶어 반갑기 그지없다.

이번 주말은 '혼산'으로 정했다

한동안 코로나19의 기세가 좀 꺾이는가 싶더니, 요즘 들어 수도권을 중심으로 다중시설 이용자 가운데 확진자가 속속 나오고 있어 걱정이다. 이럴 때, 클럽이나 감성 주점에 모여 왁자지껄한 밤 문화를 즐기기보다 혼자 혹은 둘이서 조용히 산을 찾아 노는 것을 택한 젊은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 산에 오르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산을 마냥 만만하게 볼까 봐 걱정스럽기도 하다. 산은 불의의 사고가 일어나기 쉬운 장소다. 자신이 지금 오르려는 산의 지형과 특성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또, 산에 오르려는 목적이 가벼운 산책인지 격렬한 운동인지 확실히 정한 다음, 적당한 복장과 준비물을 갖추고 산에 올랐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치지 않는 것 또한 산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다.

벌써 몇 달째, 별다른 야외활동을 못 하고 있다. 타고난 집순이인 나도 상쾌한 공기가 부쩍 그리운 요즘이다. 날이 더 더워지기 전 주말에라도 기필코 '혼산'에 도전해 봐야겠다. 혼자 놀기의 달인인 내가 이럴 때 '혼산'을 놓친다면 이만저만 손해가 아닐 테니 말이다.

태그:#혼산, #혼자하는 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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