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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 중구 을지로6가에 있는 국립중앙의료원을 국방부가 소유한 중구 방산동 일대 주한미군공병단 부지로 신축 이전하자는 제안을 28일 발표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국립중앙의료원(오른쪽)과 미군공병단 부지의 모습.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 중구 을지로6가에 있는 국립중앙의료원을 국방부가 소유한 중구 방산동 일대 주한미군공병단 부지로 신축 이전하자는 제안을 28일 발표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국립중앙의료원(오른쪽)과 미군공병단 부지의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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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로 온 나라가 곤욕을 치렀던 2015년 7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는 이런 대화들이 오갔다.

남인순 의원(새정치민주연합) : 감염병 전문병원 논의는 이번 회기에서는 하기 어렵다, 이런 뜻으로 봐야 되나요?

장옥주 보건복지부 차관 : 저희가 생각하기에는 7월 달에 공청회를 해서 논의를 좀 하고 그 기반으로 해서 검토를 했으면 합니다.

김용익 의원(새정치민주연합) : 복지부가 도대체 평소에 뭐 하고 있었는데 이런 것도 판단을 못 해서 공청회를 하겠다는 것입니까? 하기 싫으면 하기 싫다고 얘기를 하세요. 이러이러해서 기재부 돈을 못 따서 하기가 어렵다든지 복지부가 하고 싶지 않다든지 솔직히 얘기를 해, 무슨 공청회야? (7월 1일 보건복지위 법안심사소위)

김성주 의원(새정치민주연합) : '감염병 전문병원을 설립․운영한다'라고 하는 법 수정안이 나와 있어요. 그런데 그것도 안 되고 그냥 '둘 수 있다'는 정도로 여지를 남겨 주라는 게 복지부의 공식 입장인가요?

장옥주 차관 : 감염병 전문병원을 하겠다는 의지는 있지만, 여러가지 방식이 있기 때문에 지금 정부의 입장은 '둘 수 있다'로 규정을 했으면 합니다. (7월 6일 같은 위원회 법안심사소위)


당시 장옥주 보건복지부 차관은 7월 21일 추가경정예산을 조정하는 국회 예결특위 소위원회에 가서는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은 필요하지만, 이 부분은 굉장히 예산도 많이 들고 운영의 효율성도 기해야 되기 때문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보건복지부는 감염병 전문병원의 필요성에 대해 총론적으로는 동의를 표하면서도 각론에 들어가서는 자구 수정을 요구하거나 "공청회가 필요하다", "신중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는 핑계를 대며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결국 보건복지부의 뜻대로 감염병 전문병원 예산 101억 원은 삭감됐다.

당시 예산 삭감에 화가 나 예결특위 야당 간사인 안민석 의원이 한 말은 오늘의 시점에서는 '예언'에 가깝다.

"2009년에도 정부에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을 제안했을 때도 이런저런 이유로 묵살당했습니다. 이번에도 정부는 이런저런 이유로 전문병원 설립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1년 후에, 3년 후에, 5년 후에 또다시 이런 혼란이 왔을 때 지금 전문병원을 반대했던 정부의 책임자들은 역사적인 책임을 져야 될 것입니다."

논란 끝에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 근거를 담은 법 개정안이 그해 말 국회를 통과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까지 논의만 무성하다.

'중앙·권역별 감염병전문병원 설치'는 문재인 대통령 공약

서구 의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인류가 대부분의 전염병을 통제 가능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학계에 존재했다. 에볼라 바이러스와 한타 바이러스 등 20개가 넘는 신종 감염병이 등장하고 사스와 메르스, 조류인플루엔자의 습격을 연달아 받는 21세기에 들어서자 낙관론은 자취를 감췄다.

최근 벌어진 '코로나19' 사태는, 평시에는 감염병에 대한 체계적 연구를 시행하고, 비상시에는 대규모로 발생할지 모를 환자들을 수용해야 할 감염병 전문병원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중앙·권역별 감염병전문병원 설치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당선 후에 내놓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도 이 공약의 실천 의지를 담았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2017년 2월 서울 을지로6가의 국립중앙의료원을 감염병 전문병원 1호로 지정하는 고시를 발표했다.

문제는 중앙의료원의 노후화다. 1983년과 1990년 건물을 부분 보수하고 병상 수를 늘리는 리모델링이 없지 않았지만, 병원이 처음 문을 연 1958년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개원 60년이 지난 지금은 시설과 인력 확충에 투자를 아끼지 않은 '빅4' 대형병원과의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그러나 공공성 유지라는 목표에 치중하다보니 정부의 재정 지원에만 의지하는 구조가 고착됐다.

중앙의료원에 계획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3년부터 서초구 원지동 서울추모공원 안에 국가 보건의료를 총괄하는 '국가중앙병원'을 지어 이전하려고 했다.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18층 건물에 700개의 병상(음압병상 100개 포함)을 갖춘 국내 최대의 공공병원이 세워졌어야 했다.

그러나 2014년 말 어렵사리 사업계획안을 승인 받은 후 돌발 변수가 생겼다. 원지동 부지는 경부고속도로와 붙어있는 탓에 소음 등으로 인한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지난해 6월 부적합 판정을 받은 것이다.

소음의 영향을 받는 600m 구간에 방음터널을 설치하는 방안도 검토됐지만 한국도로공사는 "12차선 도로 위에 방음터널을 설치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공사를 강행하면 병원 부지를 90% 이상 축소하거나 단층 건물만 지을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되면 의료원 이전 효과는 없게 된다.

중앙의료원의 원지동 이전이 무산되면서 의료원 자리에 서울의료원 분원을 세워 강북의 공공의료 인프라를 보완하려던 서울시의 계획도 함께 틀어졌다.

박원순 시장 "옛 주한미군 공병단 부지에 감염병 전문병원과 중앙의료원 짓자"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장(오른쪽)은 4월 28일 오전 서울시청 온라인 브리핑에서 “중앙의료원을 방산동 미군 공병단 부지로 이전하자”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제안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장(오른쪽)은 4월 28일 오전 서울시청 온라인 브리핑에서 “중앙의료원을 방산동 미군 공병단 부지로 이전하자”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제안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 서울시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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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박원순 시장이 지난 4월 28일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에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다. 중구 방산동 옛 주한미군 공병단 부지에 감염병 전문병원과 국립외상센터를 포함한 중앙의료원을 새로 짓자는 것이다.

원래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가 들어섰던 이 땅은 1951년 6월 주한미군 극동지구 공병단에 징발됐다. 미군이 평택기지로 이사 가면서 서울대와 서울시, 국방부의 소유권 분쟁이 일었다가 최종적으로는 국방부에 낙착됐다.

공병단 부지(4만2096㎡)는 지금의 중앙의료원(2만7573㎡)보다 넓고, 중앙의료원과 불과 200~300m 거리에 있어서 교통 접근성도 좋다. 박 시장의 기자회견에 배석한 의료계 관계자들도 박 시장의 제안을 적극 지지했다.

"중앙의료원의 원래 기능과 역할과 상관없이 방향을 못 잡고 17년 간 표류한 상황에서 박원순 시장의 결단은 대한민국 공공의료의 큰 전환점이 될 것이다. 지난 100일 동안 중앙의료원의 기능에 빈틈이 없다고 볼 수 없지만, 그 틈을 이제라도 메우고 감염병 대응 역량을 정상화해야 한다." (정기현 중앙의료원 원장)

"지금까지 전 세계 112개 국가에서 281만 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되고 약 2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나는 사태 초기 우리나라에서도 중국처럼 환자 수가 폭발할 것을 걱정했는데, 오늘은 백일상 차려놓고 축하해도 좋은 날인 것 같다. 미군 공병단 부지에 감염병 전문병원을 설립하고 '헬스 시큐리티'를 국민건강의 보루로 삼겠다는 서울시의 선언은 그 상징성이 매우 크다." (오명돈 중앙임상위원회 위원장)


중앙의료원은 원지동 이전이 논의될 때는 "직원들 출·퇴근이 불편하다"는 이유 등을 들어 마지못해 따라오는 인상을 줬다. 그러나 이번에는 초기 단계부터 서울시와 적극적으로 보폭을 함께 맞추고 있는 셈이다.

인천시와 경기도도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 제안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감염병 전문병원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방정부 간 유치전이 본격화되는 측면도 간과할 수는 없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2018년 지방선거에서 '감염병 전문병원 유치'를 일찌감치 공약으로 내걸었고, 박남춘 인천시장도 지난 4월 2일 정세균 국무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질병 관리를 위한 최첨단 읍압 병실과 별도 격리시설이 인천국제공항 지원단지에 갖춰져 있다"며 감염병 전문병원의 설립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나백주 서울시 시민건강국장은 "일본 도쿄, 미국 뉴욕, 독일 베를린 등 다른 나라의 감염병 전문병원들도 접근을 높이기 위해 대도시에 짓는다"면서 "감염 위험 차단 조치를 철저히 하고있음은 물론"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이번 기회에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의 첫 삽을 뜨지 않으면, 2015년 메르스 사태처럼 시간이 갈수록 유야무야될 것을 걱정하고 있다.

서울시 핵심 관계자는 "박 시장의 제안이 갑작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이미 정부 부처와 물밑 대화를 충분히 한 후에 내놓은 것"이라며 "코로나19 국면이 지나면 '감염병 병원에 투자가치가 있냐'는 얘기가 또 나올 것이기 때문에 21대 국회에서 속도감 있게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적절한 타이밍에 제안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4월 29일 오후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과 관련해 보건복지부와 실무 협의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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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서울의 공공의료 ②] http://omn.kr/1nfv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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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감염병전문병원, #박원순, #국립중앙의료원, #미군공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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