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형: "설거지를 깨끗하게 해놨어요. 나는 스스로 우렁 신랑이다. 그녀가 없을 때 설거지를 해놓고 모른 척 해놓고 있어야지, 이벤트 느낌으로 했는데 너무 좋아하는 거야. 바보 같이 칭찬에 약해서 다음에 또 한 번 해줄까? 어느 날처럼 습관이 되다 보니까 어떻게 되냐면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아예 안 하시더라고요."
(중략)
이혁재: "가만히 놔뒀어?"
박준형: "그럼 어떡해. 모든 재산을 그녀가 갖고 있는데."
(MBN <속풀이쇼 동치미> 2018년 6월 9일 방송분)

 
 MBN '속풀이쇼 동치미'(2018.6.9.)의 한 장면.  "'남편이 집안일을 모르는 척하는 이유가 있다?'라는 주제로 남성 출연자들이 자신의 경험담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남편이 집안일을 도와주기 시작하면 아내가 계속 시킨다'라는 전제로 한 남성 출연자는 단지 아내를 위한 하나의 이벤트로 설거지를 했을 뿐인데, 서서히 설거지 뿐 아니라 아이들 등교 준비까지 자신이 하도록 아이들을 동원해 부추겼다고 이야기한다."

MBN '속풀이쇼 동치미'(2018.6.9.)의 한 장면. "'남편이 집안일을 모르는 척하는 이유가 있다?'라는 주제로 남성 출연자들이 자신의 경험담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남편이 집안일을 도와주기 시작하면 아내가 계속 시킨다'라는 전제로 한 남성 출연자는 단지 아내를 위한 하나의 이벤트로 설거지를 했을 뿐인데, 서서히 설거지 뿐 아니라 아이들 등교 준비까지 자신이 하도록 아이들을 동원해 부추겼다고 이야기한다." ⓒ MBN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지난 13일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에 의뢰해 진행한 '방송프로그램의 양성평등실태조사: 예능 및 생활정보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보고서 결과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현재 국내 예능 및 생활정보 프로그램에서 성차별 문제가 심각하게 드러난다"고 평가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예능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남성 진행자 비중이 높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동시에 "수치적 균형을 맞추기 위해 여성을 일종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것을 경계해야 하며, 방송 내용의 성평등 재현을 위한 질적 균형의 문제가 끊임없이 사회적으로 담론화 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근거로 전문가들은 "방송사별로 살펴봤을 때 지상파 3사나 케이블 TV와 비교해 종합편성채널(종편)의 남녀 출연자의 비중 차이가 낮았지만 이는 종편 채널의 대다수 예능 프로그램이 중장년층 여성을 고정 출연자로 해 진행되는 토크쇼 형식에 집중되어 있어 포맷 형식에 따른 결과이지 성평등적 관점에서 여성 출연자를 많이 등장시켰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제시했다. 즉 양성평등 실태조사에서는 양적인 수치만이 아니라 질적인 고려까지 함께 되어야 한다는 걸 지적한 것이다.

특히 예능 프로그램에서 "생계에 대한 책임은 남성, 집안일은 여성의 몫이라는 전통적인 성 역할이 많은 프로그램에 자연스럽게 내재화되어 있었다. 남성은 가정의 관리 상태에 대해 호통을 치거나, 평가하거나, 칭찬하는 모습으로 나타났고 내조하는 여성에 대한 찬사가 많았다"고 진단했다.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에 의하면 이번 방송프로그램의 양성평등 실태조사는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전문편성채널 중 2018년 5월 방송된 프로그램 가운데 39개 예능 프로그램과 20개 생활정보 프로그램 2회 분량을 기준으로 총 118편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6월 10일 하루에만 성차별적 프로그램 다수 방영돼
 
 SBS '미운우리새끼'(2018.6.10.)의 한 장면. 초대손님으로 등장한 한 여성 출연자는 싱글 남성 진행자에게 “남자는 여자 없으면 안 돼, 애야, 아무것도 못해, 아무리 돈이 있고 권력이 있어도 부인 없으면 안 돼. 나이들어봐, 약 챙겨주고, 병원 같이 갈 사람이 최고다, 그거 중요해”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는 "이는 여성의 내조와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남성들을 미숙하거나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키는 불완전한 존재로 강조하면서, 이러한 불완전성을 채워주는 역할이 여성의 몫임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SBS '미운우리새끼'(2018.6.10.)의 한 장면. 초대손님으로 등장한 한 여성 출연자는 싱글 남성 진행자에게 “남자는 여자 없으면 안 돼, 애야, 아무것도 못해, 아무리 돈이 있고 권력이 있어도 부인 없으면 안 돼. 나이들어봐, 약 챙겨주고, 병원 같이 갈 사람이 최고다, 그거 중요해”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는 "이는 여성의 내조와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남성들을 미숙하거나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키는 불완전한 존재로 강조하면서, 이러한 불완전성을 채워주는 역할이 여성의 몫임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 SBS

 
김수미: "남자는 여자 없으면 안 돼, 애야. 아무것도 못해, 아무리 돈이 있고 권력이 있어도 부인 없으면 안 돼. 나이들어봐, 약 챙겨주고 병원 같이 갈 사람이 최고다. 그거 중요해." (SBS <미운 우리 새끼> 2018년 6월 10일 방송분)

보고서는 총 118편의 방송분을 분석하면서 예능과 생활정보 프로그램 속 성차별 문제를 지적했다. 그 중에는 SBS 인기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도 포함돼 있었다.

2018년 6월 10일 해당 방송분을 두고 보고서는 "여성의 내조와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남성들을 미숙하거나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키는 불완전한 존재로 강조하면서, 이러한 불완전성을 채워주는 역할이 여성의 몫임을 강조한다"며 "이때 여성은 남성을 위한 도구적인 존재이자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로 위치지어진다"고 주장했다.

또 동일한 날 <미운 우리 새끼>는 남성 출연자의 이상형을 물으며 여성 연예인 A와 B 중 '아침에 일어났을 때 옆에 누가 있었으면 좋겠냐'라는 장면을 등장시킨다. 보고서는 이를 두고 "남성중심적 시각에서 여성을 선택 가능한 상품처럼 객체로 상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TV조선의 <모란봉클럽>에서는 여성 출연자들의 미모를 칭찬하는 것으로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자막에는 '오늘따라 눈부신 여성 회원들의 미모'라는 문구를 달았다. 방송 중 '김태희급 외모' '미모 실화냐' 등 발언과 자막이 등장했다.
 
 TV조선 '모란봉클럽'의 한 장면(2018.6.10.)  첫 시작부터 여성 출연자들의 미모를 칭찬하는 것으로 출발해 방송 곳곳에서 ‘김태희 급 외모’, ‘미모 실화냐’ 등의 외모중심적인 발언과 자막을 다수 보여주고 있다.

TV조선 '모란봉클럽'의 한 장면(2018.6.10.) 첫 시작부터 여성 출연자들의 미모를 칭찬하는 것으로 출발해 방송 곳곳에서 ‘김태희 급 외모’, ‘미모 실화냐’ 등의 외모중심적인 발언과 자막을 다수 보여주고 있다. ⓒ TV조선

 
보고서는 이렇게 정형화된 소개 방식을 두고 "연예인, 전문가, 일반인 등 여성 출연자의 직업에 상관없이 칭찬의 의미를 담은 인사말 정도로 자연스럽게 건네지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외모중심의 사고방식이 내재화되어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양성평등 실태조사 보고서는 ▲성 역할 고정관념의 재생산 ▲왜곡, 과장된 방식으로 강조되는 여성성/남성성 ▲외모중심주의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 ▲남성 중심적 사고에 따른 성차별적 표현 등 다수의 사례를 지적했다. 조사 대상이 된 어떤 방송사도 예외 없이 성차별적인 장면이나 대사가 등장했다.

"<밥블레스유> 전형적 여성의 모습 강조 안 해"
 
 올리브TV <밥블레스유> 스틸 사진

올리브TV <밥블레스유> 스틸 사진 ⓒ CJ E&M

 
반면 해당 보고서는 올리브TV의 <밥블레스유>를 주목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서는 <밥블레스유>를 두고 "40~50대 여성 출연자들로 구성되어, 시청자들의 고민을 들어주며 위로할 만한 음식을 추천해 주는 것을 기본 포맷으로 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주목하는 이유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여성으로서의 모습을 강조하지 않고, 여성 출연자 개개인의 특성과 매력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다"라고 말했다.

이어 "뚱뚱한 여성이 수영복을 입고 등장하는 장면은 그동안 미디어에서 좀처럼 다뤄지지 않았으며, 등장한다고 해도 보통은 개그 프로그램에서 과장된 이미지의 왜곡된 방식으로 재현하면서 희화화하거나 조롱의 대상이 되곤 했다"며 "이에 반해 <밥블레스유>에서는 몸매에 상관없이 수영복을 입은 여성 출연자들이 등장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전문가들은 "대안으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책임을 진 제작 주체의 인식 변화가 성평등 재현의 핵심적 목표"라고 지적한 뒤이어 "여성 캐릭터의 개발, 새로운 장르의 개발 등이 주요 과제"라고 제안했다.

보고서 전문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연구 보고서란을 통해 볼 수 있다.
예능 속 성차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보고서 밥블레스유 미운 우리 새끼 속풀이쇼 동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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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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