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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한솔 정의당 서대문구의회 의원(당 서대문구 지역위원장)이 고 노회찬 의원을 기리는 추모의 글을 <오마이뉴스>에 보내와 싣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편집자말]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 정의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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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어느 날 '삼성X파일' 보도를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당시 다니던 대학의 이사가 소위 삼성 떡값검사 중 한 명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의 이름은 김두희. 검찰총장을 끝으로 퇴임한 그는 삼성이 재단으로 있는 대학에서 편안한 말년을 보내던 중이었다. 이건 정의가 아니지 싶어 뜻 맞는 다른 학생들과 함께 퇴진 운동을 벌였다.

검찰수장까지 지낸 거물을 감히 건드려서일까. 자신들이 삼성직원이라 굳게 믿는 교직원들은 물론 관할서 정보과형사, 심지어 국가정보원 직원이라는 사람까지 찾아와 너 하나 망가뜨리는 건 일도 아니라며 철 지난 협박을 해댔다. 스물다섯 두려울 것 없는 청년이었던 나는 더 크게 목소릴 높였고, 결국 김두희 이사는 스스로 물러났다.

이 과정을 눈여겨 지켜본 한 사람, 바로 삼성X파일을 폭로한 장본인 노회찬 의원이었다. 그는 자신과 함께 일할 것을 권했고, 망설일 게 무에 있는가 하며 졸업과 동시에 의원실로 들어갔다. 한 명의 진보정당 청년당원이 본격적으로 정치에 입문한 것이다.

선거유세 후 모셨던 중국집, 그와의 '마지막 식사' 될 줄이야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 입구에 추모의 글이 적힌 메모가 가득차 있다.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 입구에 추모의 글이 적힌 메모가 가득차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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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처음 연을 맺은 이래로 지난 13여 년 동안 그와의 이러저러 사연들이 한둘일까만, 그중에서도 호되게 야단맞던 기억들이 유독 선하다. 때로 가해졌던 그의 꾸중 없이, 그로부터의 배움 없이 내가 지금의 나일 수 있을까. 긴 시간 그와 함께 하며 나도 저렇게 훌륭한 진보정치인이 되고 싶다는 꿈이 시나브로 자란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간 진보정치 불모지나 다름없던 지역구에 몇 해 전 뿌리내리고 일구기 시작하며, 나는 그에게 배운 것이 너무나 많음을 새삼 더욱 느꼈다. 마음을 담아 국민을 대하는 그의 화법은 내게 지역구민을 대하는 교과서나 다름없었고, 유불리 고려 없이 항상 옳음을 쫓는 그의 태도는 곧 나의 지표가 되었다. 유머와 해학에 진정이 담기지 않으면 재미도 울림도 주지 못함을 몇 년에 걸쳐 그에게 배운 나는 지역구민들로부터 유쾌하고 신실한 정치지망생으로 차차 인정받을 수 있었다.

내가 지역에서 정의당 후보로 세 번 도전할 때마다 그는 어떻게든 바쁜 일정에 틈을 내 도우러왔다. 이번 선거 때도 당연하다는 듯 와준 그는 시장을 함께 돌며 "임한솔 품질보증서 노회찬입니다" 외쳐주었다. 그런 그를 유세 후 식당으로 모시며 사장님 들으라고 크게 말했다. "대표님, 여기가 제 지역구에서 제일 맛있는 중국집입니다!"

그는 대단한 미식가로 대중에 알려졌는데, 내가 보기엔 조금 틀렸다. 나는 그와 수없이 많은 곳에서 함께 식사하며 단 한 번도 그가 음식을 맛없게 먹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는 땀 흘려 조리한 이의 수고와 정성을 생각해 어떤 음식이건 항상 맛있게 먹고는 SNS에 최고의 맛집이라 자랑했고, 그런 그를 많은 국민과 당신의 지역구민들은 늘 아끼고 사랑했다. 나도 내 지역구민들에게 사랑받고픈 마음에 자연스레 그처럼 말하고 행동한 것이다. 그날 그가 지은 미소가 마치 자네 나에게 잘 배웠군 하는 칭찬처럼 보여 뿌듯했다. 이것이 그와의 마지막 식사가 될 줄이야.

"자네 그렇게 하면 안 돼" 그의 꾸중이 벌써 그립다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과 필자인 정의당 임한솔 서대문구의회 의원의 모습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과 필자인 정의당 임한솔 서대문구의회 의원의 모습
ⓒ 임한솔 구의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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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훗날 소임을 충분히 다하고 홀가분하게 은퇴한 그를 종종 찾아봬 많이 배운 덕에 저도 정치인으로 제구실하고 있노라 감사드리고 청출어람 아닌지요 농도 하는 모습을 종종 즐거이 상상했었는데, 영원히 상상으로만 남게 됐다. 그렇게 되기까지 아직 들어야 할 질책이 많이 남았는데... 자네 그렇게 하면 안 돼 하는 그의 꾸중이 벌써 그립다.

진보정치 2세대 혹은 3세대쯤 되는 나는 1세대인 그에게 많은 것을, 모든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가 남긴 짙은 자취와 그와의 지난 기억들을 통해 앞으로도 계속해서 배울 것이다.

허나, 그에게 하나만은 배우지 않겠다. 감당키 버거운 어려움에 처했으나 함께 해온 이들에게 누가 될까 염려해 모든 것을 홀로 짊어지기로 한 안타까운 그의 결정만은 배울 수 없다. 평생을 주저함 없이 거악에 맞선 그의 삶은 곧 나의 삶이 될 것이나, 더 이상 자신을 돌보지 않기로 한 마지막 판단은 언젠가 직접 뵙고 따져 여쭈겠다. 왜 그때 나를 이해 못했냐며 또다시 꾸중 듣더라도 말이다.

그때 들을 꾸중이 그것 하나이길 바라며, 이제 원치 않는 작별을 고해야겠다. 언제나 닮고 싶었던 나의 스승이여 안녕히. 부디 편히 쉬소서.


태그:#노회찬, #정의당, #삼성X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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