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노래자랑 진행자 방송인 송해

전국노래자랑 진행자 방송인 송해 ⓒ 이희훈


"시골영감 처음 타는 기차놀이라 하! 차표 파는 아가씨와 실갱이 하네! 이 세상에 에누리 없는 장사 어딨어? 깎아 달라고 졸라대니 아이고 내 팔자!"

"수고했어. 이제 빨리 학교로 가!"


웃음이 와르르 터졌다. <전국노래자랑> 예심 첫 무대, 두 명의 중학생들이 무대 위로 올라오더니 쑥스러운지 연신 꺄르르 대다가 몸을 이리저리 흔들면서 노래 '서울구경'을 부른다. 몇 마디 부르기도 전에 심사위원이 "수고하셨습니다!"를 외치자 이들은 웃으면서 다급히 무대 아래로 내려간다.

<전국노래자랑> 1차 예심 참가자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20초에서 30초 사이, 무반주로 불러야 하는 1차 예심에서 참가자들은 노래를 잘 하면 30초 이상 노래를 부를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대체로 여지없이 "수고하셨습니다!"는 소리를 듣고 무대 아래로 내려간다.

'땡' 대신 '수고하셨습니다'로 불합격 통보

 리허설을 보며 원고를 정리하던 송해는 출연자들에게 다가가 마지막으로 손발을 맞췄다.

리허설을 보며 원고를 정리하던 송해는 출연자들에게 다가가 마지막으로 손발을 맞췄다. ⓒ 이희훈


지난달 14일, 인천 남구청에서 열린 <전국노래자랑> 예심에는 약 400팀의 참가자가 무대에 올랐다. 이 중 방송에 참여하는 팀은 약 15팀. 약 27:1의 높은 경쟁률이다. 한 번은 예심에만 2300팀이 모인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웬만큼 노래 좀 한다 싶은 사람도 어김없이 "수고하셨습니다" 행이다. 그냥 떨어뜨리기 아쉽거나 떨려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판단한 경우 즉석에서 심사위원이 다른 노래를 추천해주기도 한다.

"'불합격!' 이렇게 말하면 기분 나쁘니까 '수고하셨습니다!'라고 합니다. 일단 볼거리가 많고 눈에 띄어야 해요. 노래를 잘하지만 떨어지는 분들도 계시고 간혹 소주 잔뜩 들고 와서 '나 왜 떨어트렸어!'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기분 나빠하지 말고 즐기세요."

5살부터 90살이 넘는 참가자까지 남녀노소 모두 온갖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나와 자신의 기량을 뽐낸다. 비록 1차 예심에서 떨어지더라도 최선을 다한 참가자에게는 관객들의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성이 쏟아진다. 간혹 심사위원의 불합격 판정에 납득하지 못하는 관객들은 "아니 목소리도 좋고 잘 하는구만 (왜 떨어트려)" 하면서 탄식하기도 한다.

 지난 14일 인천광역시 남구청에서 KBS <전국노래자랑> '인천 남구편' 예심 심사가 열렸다. 참가자들이 예심 시작에 앞서 번호표를 발급받고 있다. 이날 인천광역시 남구편 1차 예심에는 총 400팀의 참가자가 몰려 성황을 이루었다.

지난 14일 인천광역시 남구청에서 KBS <전국노래자랑> '인천 남구편' 예심 심사가 열렸다. 참가자들이 예심 시작에 앞서 번호표를 발급받고 있다. 이날 인천광역시 남구편 1차 예심에는 총 400팀의 참가자가 몰려 성황을 이루었다. ⓒ 유지영


 지난 14일 인천광역시 남구청에서 KBS <전국노래자랑> '인천 남구편' 예심 심사가 열렸다. 이날 인천광역시 남구편 1차 예심에는 총 400팀의 참가자가 몰려 성황을 이루었다.

지난 14일 인천광역시 남구청에서 KBS <전국노래자랑> '인천 남구편' 예심 심사가 열렸다. 이날 인천광역시 남구편 1차 예심에는 총 400팀의 참가자가 몰려 성황을 이루었다. ⓒ 유지영


웬만큼 노래를 잘 해서는 힘드니 다른 장기를 갖고 나와 승부를 보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1차 예심에서는 장기나 사연을 뺀 채로 오로지 무반주 노래와 퍼포먼스로만 승부를 본다. 노래에는 영 자신이 없는지 하던 노래를 멈추고 심사위원들을 향해 "여기서 팔굽혀펴기하면 안 돼요?"라고 묻던 한 참가자는 "노래를 마저 하라"는 말에 성급히 '태세 전환'을 해 노래를 끝마쳤다.

1차 예심을 통과한 참가자는 어떨까? 예심에서 합격하면 '딩동댕' 실로폰 소리 대신 '2차 예심지'를 한 장 준다. 종이를 받자마자 기뻐서 다리를 동동 구르면서 야단법석을 떠는 참가자들을 두고 무대 아래서는 다시 와하하 웃음이 터진다. 이미 다른 민요 대회에서 3번 이상 대상을 수상했다고 하는 어느 90대 '실력파' 남성 참가자는 예심에 합격했다면서 환하게 웃어보인다.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더라도 얼마든지 <전국노래자랑>에 참여할 수 있다. 실제로 이날 현장에는 2차 예심을 위해 적어야 하는 인적 사항 및 노래 곡명을 적지 못해 현장 자원가의 도움을 받은 참가자도 있었다. 가히 '전국민의'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은 풍경이다. 예심은 총 2차까지 하루종일 치러진다.

변장하고 3번이나 예심에 참가하기도

1차 2차 예심을 치른 며칠 뒤, 근처 야외 무대에서 <전국노래자랑> 본선이 개최된다. 녹화가 시작되는 오후 1시가 되면, 준비된 의자가 동날 정도로 붐빈다. 관객들에게는 <전국노래자랑> 마크가 새겨진 종이 선캡과 응원용 풍선이 제공된다. 이런 풍경은 몇 십년 동안 이어져온 <전국노래자랑>만의 고유한 '트레이드 마크'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전국노래자랑> 팬들은 리허설 때부터 무대 맨 앞에 자리를 잡고 진을 친다.  한글로 '전국노래자랑'이라고 수를 놓은 모자를 쓴 한 관객은 태극기를 펄럭이면서 리허설 때부터 격한 응원을 한다. 어떤 관객은 그간 <전국노래자랑>에 나왔던 초대가수들과 찍은 사진을 붙여둔 커다란 사진첩을 양 팔로 들고 무대 아래를 활보한다. 먼 곳에서부터 오로지 <전국노래자랑> 무대를 보기 위해서 모인 '골수' 관객들이다.

인천 남구에 산다는 이경임씨는 <전국노래자랑> 무대가 보이는 나무 그늘에 돗자리를 펴고 앉았다. 그는 온가족을 데리고 <전국노래자랑> 본선 현장에 구경을 왔다. 이씨는 "내 나이가 <전국노래자랑> 볼 나이지 않나. 평소에 즐겨본다"면서 미소를 지었다. 이상헌씨는 "교회에 가지 않을 때는 <전국노래자랑>을 악착같이 보려고 한다"면서 "오늘 근처에서 녹화한다길래 송해 선생님 얼굴 보러 왔다. 91세인데 너무 정정하시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원조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호출되는 엠넷 < 슈퍼스타K >에 버금가는 끼와 재능을 가진 참가자들로 <전국노래자랑> 무대는 한층 풍성해진다. <전국노래자랑>은 1950년대 < KBS배 라디오 전국노래자랑 >을 거쳐 1980년 11월부터 TV를 통해 38년째 방송되고 있다. 전국을 순회하면서 숨은 '노래' 고수들을 찾아내 이들의 노래 실력을 뽐낼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주는 <전국노래자랑>. 2009년 처음 시작한 < 슈퍼스타K >에 비하면 이 프로그램은 오디션 프로그램계의 '원조의 원조의 원조'쯤 될 것이다.

실제 방송 출연만 3만여 명, 예심 심사에만 85만 명, 총 녹화 관객수 천만 명 이상을 자랑하는 이 국내 최장수 프로그램은 여전히 동시간대 시청률 1위의 위용을 자랑한다. 그만큼 세대별로 폭넓은 사랑을 받다 보니 출연자 경쟁도 치열하다.

 지난 3월 KBS <전국노래자랑> '광주광역시 남구' 편에 최초로 외계인 백댄서가 나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송해는 방송에서 "누구나 다 <전국노래자랑>에 나오고 싶어한다. 진행을 하다 보니 외계인이랑 이야기할 기회도 온다"며 웃었다.

지난 3월 KBS <전국노래자랑> '광주광역시 남구' 편에 최초로 외계인 백댄서가 나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송해는 방송에서 "누구나 다 <전국노래자랑>에 나오고 싶어한다. 진행을 하다 보니 외계인이랑 이야기할 기회도 온다"며 웃었다. ⓒ KBS


1991년에는 "안경을 쓰고 옷을 바꿔입는 등 나름대로 변장을 하고 하루에 세 번이나 예심에 참가한 사람"도 있었고 1993년엔 출연자가 키우는 흰사슴과 함께 무대에 오르는 등 이른바 <전국노래자랑> '진기록'도 있다. 지난 5월에는 38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전국노래자랑> 최초로 '외계인'(분장을 한 출연자)이 무대에 올라 베테랑 진행자 송해의 눈길을 사로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매주 같은 방송처럼 보이지만 <전국노래자랑>의 역사는 해가 거듭할수록 새로 쓰이고 있다.

"송해를 복귀시켜라" 송해의 존재감

 송해의 전국노래자랑 녹화 현장에 인천 미추홀구 주민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송해의 전국노래자랑 녹화 현장에 인천 미추홀구 주민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 이희훈


1988년 5월 진행자 송해가 처음 무대에 오른 이후로 30년이 넘게 이 프로그램은 지금 우리가 보는 모습 그대로다. 1994년 송해에서 다른 진행자로 한 번 교체가 되자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시청자들의 "복귀시키라"는 강력한 항의 끝에 송해는 진행자 자리에서 내려온 지 반 년만에 <전국노래자랑> 진행자로 돌아왔고, 그 후로는 명실상부 <전국노래자랑>을 대표하는 MC로 자리잡게 된다. 현장에서 만난 대다수의 시민들은 "오늘 송해를 보러 왔다"고 답했을 정도다.

"사회자 송해씨가 무대에서 녹화 시작을 알린 직후 첫번째 출연자인 20대의 정윤미씨가 민속주인 머루주를 송씨에게 건네주며 "못 부르더라도 '땡'하지 말아달라"고 청탁, 노래를 불러 합격신호인 '띵똥땡' 소리를 듣고 퇴장했다." (1990년 <동아일보>)

"남녀노소가 똑같이 맨땅에 앉아서 공연을 즐기다 흥에 겨우면 아무때나 일어나 어깨를 들썩일 수 있는 '열린 마당'에서 진행하는 덕분이다. 더구나 한낮이므로 굳이 조명도 필요없다. 그런 무대에 오케스트라의 반주는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또 올해 일흔을 맞는 원로 코미디언 송해씨가 횟수로 10년째 지키고 있는 격의 없는 무대에는 근엄한 표정의 기관장이나 유명 인사는 결코 어울리지 못한다. 물론 이 '유랑극단'이 가는 곳마다 '높은 분'들의 출연 요청이 쇄도하지만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 프로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국민가수'들이기 때문이다." (1996년 <한겨레>)

몇십 년간 이어진 안정된 진행은 <전국노래자랑>을 어쩌다 한 번씩 돌아오는 지역(마을) 축제로 자리잡게 만들었다. 또 변하지 않는 구성 덕분에 시청자들은 보다 출연자들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나날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폐지되는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 비해 간단하기 짝이 없는 <전국노래자랑>이 폐지되지 않고 이토록 오랫동안 사랑받는 비결이 무엇일까. 몇십 년 동안 전국을 순회하면서 쌓아둔 단단한 팬층, 10대부터 90대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통합, '악마의 편집'이 없는 예측 가능한 경쟁, 또 안정적인 진행이 결합한 것이 아닐까.

 송해가 "전국~~~~ 노래자랑~~~~"을 외치자 시작된 밴드의 연주에 관중석은 곧 뜨겁게 달아올랐다.

송해가 "전국~~~~ 노래자랑~~~~"을 외치자 시작된 밴드의 연주에 관중석은 곧 뜨겁게 달아올랐다. ⓒ 이희훈


현존하는 한국 최장수 MC인 송해는 여느 때처럼 이른 아침 결선 현장에 나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진출한 참가자들을 격려한다. "예심에 통과하신 분들은 모두 다 1등"이라는 송해의 찬사 한 마디에 긴장한 채 있던 결선 참가자들은 모두 반색했다. 송해는 '사랑의 배터리'를 부르기로 한 참가자를 보면서 "오늘 초대 가수로 홍진영이 오니까 '사랑의 배터리'로 한 번 겨루어 봐"라면서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콩트를 준비한 참가자는 송해의 바로 앞에서 직접 리허설을 하고 조언을 얻기도 한다. 출연자들이 무대 위에서 아낌 없이 제 실력을 발휘하도록 긴장을 풀어주는 진행자 송해의 방식이다.

리허설이 모두 끝났다. 해가 높이 떴다. 녹화 시간으로 예정된 오후 1시가 되자 송해가 무대 위로 올랐다. 그리고 외쳤다. "전구우우우우욱!" 그 다음은 시청자들이 모두 아는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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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노래자랑 인천 남구편 예심 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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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응답' 어머니 이일화, 어색한 이선균... 이런 모습 반갑네

[장수 기획 ⑨-3] 알아두면 쓸데없지만 유용한 <출비>의 트리비아들

지상파 영화 소개 프로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출발! 비디오 여행>(아래 '출비')은 그만큼 비하인드 스토리도 많다. 지난 기사에서 제작진과 김경식 이하 진행자들이 밝힌 <출비>의 장수 비결을 전했다면, 이번 글에서는 <출비>에 얽힌 흥미로운 사실을 공개한다. 영화 관련 트리비아(사소한 정보들, trivia)처럼 일종의 <출비> 트리비아다.장시간 <출비>와 호흡을 맞춰온 외주제작사 아피아 프로덕션의 최현진 팀장은 "진행자와 성우 분들의 합이 무엇보다 좋기에 이 프로가 장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김경식씨는 특출한 표현력과 입담, 서인 아나운서는 애드리브를 잘 받는 묵직함, 양승은 아나운서는 높은 대본 이해도가 있다"며 출연진의 장점을 전했다. "어떤 영화라도 이해하기 쉽게, 그리고 재밌게 담는다"는 게 최 팀장이 밝힌 <출비>의 제작 방향이었다. 여기에 다른 프로와 차별점을 덧붙이자면 바로 음악. 프로그램 시작과 끝에 나오는 시그널 음악뿐이 아니라 '신세개' 등 각 코너별로도 영화 음악이 아닌 상징적인 음악이 들어가곤 한다. 최현진 팀장은 "영화와 해당 코너를 잘 드러내는 좋은 음악들을 선택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라 말했다.아래는 24년 역사인 <출비>에 얽힌 사소하고 쓸데 없어 보이지만 알아두면 쓸모 있(을지도 모르)는 정보다. - 홍 아나운서는 <출비>의 전신 <비디오 산책> 때인 1993년 10월 30일부터 2004년 2월 29일까지 <출비>의 진행을 맡았다. 양승은 아나운서는 2009년 5월 30일부터 현재까지 진행을 맡고 있다.- <출비>를 거쳐 간 여성 진행자는 총 10명. 내로라하는 아나운서 틈에 이 세 배우가 있었다. 특히 이일화는 1994년 10월 23일부터 1998년 4월 19일까지 3년을 훌쩍 넘는 동안 진행을 맡았다. 배우 김연주는 1999년 5월 23일부터 1999년 10월 10일까지, 서민정은 2004년 5월 9일부터 2005년 4월 17일까지 진행자로 함께 했다.- 오행운 피디가 <무한도전>에 나와 했던 말이다. 부스 더빙을 제외한 스튜디오 녹화시간은 진행자 별로 15분 정도가 걸리는 게 맞다. 녹화 시간이 짧을 수 있는 이유로 제작진은 "일반 세트장이 아닌 크로마키(초록색 혹은 파란색 판을 배경으로 특정 화면을 입히는 기술)를 고수했기 때문"이라 전했다.- 오행운 피디는 "크로마키 방식 역시 20년 정도 된 거 같은데 제작비 압박도 있었고, 나름 그땐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오 피디는 "20년 제작비 보다 오히려 지금이 조금 더 낮은 수준"이라며 "다른 피디가 오기 전에 <출비>의 제작비를 올려놓는 게 숙원사업"이라 힘줘 말했다.- 두 사람 모두 유명 상업영화 감독이다. 이들은 잠시 <출비> 제작진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성우 김구는 그룹 코요태의 원년 멤버였다. <출비> 1000회 특집에서 밝힌 바 있다. 다만 전문 성우로 시작한 게 아니기에 스스로 성우로 불리기를 좀 부담스러워 하는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 배우 이선균은 2002년 5월 5일부터 5월 19일까지 3주간 해당 코너를 진행한 적이 있다. 그에 앞서 개그맨 문경훈, 배우 안선영, 개그맨 고명환(이상 진행 순서) 등이 해당 코너를 맡았었다.- 이에 대해 오행운 피디는 "처음 시작했을 때 비디오 테이프 시대라 그렇게 제목을 지었겠지만 지금이야 말로 진짜 '비디오'(video) 시대가 아닌가"라며 "제목이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고, 바꿀 이유가 없다"고 답했다.- <시네마천국>은 총 14차례 소개됐다.송강호씨 미안해요... 24년차 <출발! 비디오여행>의 반성'영화 대 영화'가 이런 풍자까지? 김경식도 쫄게한 멘트들

'고백'도 술술... 스타들 무장해제 시킨 '라디오스타' 비결

[장수기획 ⑪] MBC <라디오스타> 한영롱 PD 인터뷰

너무 심각하지 않으면서 너무 가볍지도 않기, 쉽게 물어보기 힘든 것들을 시원하게 질문하기, 한결같이 재미있기. 이 어려운 것들을 12년 동안 해온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매주 수요일 밤 방송되는 MBC 예능 <라디오스타>다. 시작은 <황금어장>이었다. 무릎이 닿기도 전에 모든 걸 꿰뚫어 본다는 '무릎팍도사'가 <황금어장>의 메인 코너로 주름잡던 2007년 5월, '라디오스타'는 또 다른 서브 코너로서 '무릎팍도사'에 붙어서 시작했다. 5분짜리 코너였으니 '붙어서'라는 표현이 너무한 건 아닐 것이다. 그러다가 2011년 자투리 코너가 아닌 독립적인 프로그램으로서 <황금어장>을 잇게 됐다. 그렇게 12년차가 됐다. 지난 16일에는 '갑자기 분위기 육백회' 특집을 방송했는데, <라디오스타>답게 600회를 거룩(?)하게 기념하는 대신 피식 웃게 하는 '깨발랄 B급 콘셉트'로 꾸며졌다. 육씨라서 초대된 육중완을 비롯해 한다감, 이태리, 피오가 출연해 600이란 숫자에 자신의 삶을 애써 끼워맞추며 MC들과 재기발랄한 시간을 만들었다. 12년차 장수 프로그램, 믿고 보는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은 MBC <라디오스타>(아래 '라스'). 지난 21일 오후 서울 상암 MBC에서 라스를 연출하는 한영롱 PD를 만나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봤다. MC들과 함께 나이 들며 성숙해진 라스 <라디오스타> 녹화는 매주 수요일에 진행된다. 네 명의 MC들이 네 명의 게스트들에 관해 궁금한 것이 다 다르고, 대본에 있는 이야기만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녹화에 들어가 봐야 그 회차의 분위기를 알 수 있다. 한 PD는 "현장 분위기는 방송으로 보시는 텐션 그대로"라며 "급하고 빠르게, 치고 들어갈 틈 없이 토크가 진행된다. 저희 제작진이 차마 못 물어봤던 이야기, 대본에 없는 것도 현장에서 MC분들이 그냥 물어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라스'가 보여준 거침없는 돌직구 질문들은 대본에 없는, MC들의 즉흥 질문이었던 적이 많았던 것이다. 이것이 자연스럽게 '라스'의 힘이 됐다. MC들이 게스트와 이야기를 해나가면서 생겨나는 궁금한 부분들을 그때 그때 주저 없이 묻기 때문에 시청자도 속시원함을 느낀다. 대본에 없는 것도 물어보니까 제작진이 꽤 편집을 많이 하겠다 싶었는데 한 PD는 고개를 저었다. 솔직함은 '라스'의 개성으로 자리잡았다. 시청자가 궁금해 할 것들을 직설적으로 묻는 솔직함은 어떤 프로그램도 흉내낼 수 없는 '라스'만의 강점이다. 하지만 그 솔직함이 자칫 선을 넘으면 상처를 주는 독설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제작진은 그 부분을 많이 신경쓰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독설을 넘어 성숙한 라스를 위해 따로 노력하는 점이 있을까. 이 질문에 한 PD는 주저 없이 "사전 인터뷰"라고 답했다. 예전에는 사전 인터뷰가 없었고 전화로 게스트를 인터뷰했는데 요즘은 녹화 전에 직접 만나서 길게 이야기를 듣는다. 게스트 본인과 대화하면서 '이 사람이 이런 캐릭터구나', '우리가 몰랐던 이런 포인트가 있는 분이구나' 하고 사전에 많이 파악하려고 하고, 그걸 대본에 녹인다고 했다. 네 MC의 토크 스타일 '라스'하면 네 MC 김국진-윤종신-김구라-차태현의 케미스트리가 매력 포인트다.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MC가 많은 편인데, 그들은 어떤 게스트가 나와도 웬만큼 재미를 끌어올릴 수 있는 베테랑들이다. 한 PD는 "요즘 편집하면서 현장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자, 저 텐션을 방송으로 그대로 보여주자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대본은 간단한데 네 명의 MC들이 마치 역할극을 하듯 각자 포인트를 잡아 풍성하게 이야기를 이어가고, 또 서로가 서로를 잘 안다. 한 PD는 "그게 12년을 같이한 합이 아닐까"라며 "신기하다"고 덧붙였다. '라스'는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의 토크쇼가 아닌데도 의외로 깊은 고민을 토로하는 게스트가 많이 있었다. 이런 독특한 분위기를 구축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한 PD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MC들도 되게 성숙해지셨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 대답에서 '라스'가 고민하는 지점이 거듭 선명하게 보였다. 12년 전부터 그랬듯 '라스'는 '라스'답게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독설도 하고 게스트를 짓궂게 놀리기도 하지만, 그 선을 어떻게 성숙하고 노련하게 잘 탈 것이냐는 매번 가지고 가는 숙제였다. MC들이 가볍게 던지는 한 마디가 게스트의 고민 해결에 큰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다. 이럴 수 있는 배경에 대해 한 PD는 "진심에서 나오는 것이라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댓글 같은 걸 보면 '김구라는 맨날 이혼, 공황이야기만 한다' 그러시는 분들도 계신데 실제로 김구라씨는 '나 생각보다 마음이 힘들고 나 이렇게 아파, 너도 아프니?' 하고 다가가는 솔직한 분"이라며 "그래서 게스트분들도 자기의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놓는 게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MC들은 어떨까. 한 PD는 "김국진씨는 정말 믿고 가는 맏형"이라며 "게스트 네 명 중에 누구 한 명에 꽂혀서 말하지 않고 골고루 챙겨 주시니까 안정적으로 믿고 가는 분"이라고 했다. 이어 윤종신에 대해선 "공감형 토커"라고 표현하며 "게스트의 이야기를 풀어서 해석하는 것이 김구라씨 스타일이면, 윤종신씨는 '너는 그렇구나' 하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풀어간다"고 설명했다. 차태현에 대해선 "정말 신기한 게, 게스트들이 차태현씨를 보고 이야기한다"며 "예능에 많이 안 나와 봐서 불안해 하는 게스트들이 차태현씨를 보고 안정감을 얻더라. 리액션을 워낙 잘해 주신다. 게스트의 이야기를 듣느라 대본을 잘 안 볼 정도로 대화에 몰입하고, 숙제를 하듯 게스트 공부도 많이 해 오신다"고 말했다. 녹화 현장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복불복", "랜덤"이라고 표현한 한 PD는 게스트와 MC의 합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게스트가 아무리 재미있고 웃긴 사람이라도 네 MC와 합이 잘 안 맞으면 재미가 안 터진다. 월드컵 스타 섭외 비하인드 게스트 섭외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매주 게스트가 초대되어 이야기를 풀어가는 프로그램인 만큼, 섭외를 할 때 무엇에 중점을 두는지 물었다. 한 PD는 곧장 "시의성"이라고 답했다. '라스'는 미리 녹화를 해서 쌓아두는 게 아니라 방송 일주일 전에 바로 녹화를 하는데, 이것도 시의성 때문이다. 한 PD는 "무언가가 화제가 됐어도 시의성이란 게 일주일이면 사라져서 이것이 가장 신경 쓰이는 점"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라스'를 찾은 게스트들을 돌아보면 단연 월드컵 스타들이 돋보였다. 조현우, 김영권, 이용, 이승우 선수가 월드컵 직후 게스트로 출연해서 높은 시청률을 보였는데, 그들을 어떻게 섭외했는지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당시 독일전이 끝난 게 밤 12시 30분이었는데 새벽 1시에 제작진이 바로 현지로 전화를 했고 섭외에 성공한 것이다. 선수들이 한국에 오자마자 다음날 만나서 사전 인터뷰를 하고 그 주에 바로 녹화를 떴다. 토크쇼가 아니라 '캐릭터쇼' '라스'가 다른 토크 프로그램과 차별화된 지점은 무엇일까. 이 물음에 한 PD는 "라스는 토크쇼의 모양새는 하고 있지만 토크쇼는 아닌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서의 캐릭터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게스트의 인생 이야기를 쭉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매력'을 찾아내는 작업을 한다. 대본을 쓸 때도 에피소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재미있는 포인트를 잡아서 쓴다. 제작진 중에는 모니터를 하는 스태프가 따로 있는데, 게스트가 정해지면 그 사람의 데뷔 이후 방송들과 자료들을 싹 다 찾아서 모니터 한다. 다른 방송에서 했던 이야기를 빼기 위해서다. 이것이 라스가 특별히 노력하는 부분이었다. 한 PD에게 '라스'의 장수비결, 인기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라스는 보장된 재미가 있는 것 같다"고 답하며 "기복이 많이 없는, 믿고 보는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고 생각한다. 미친 듯이 재밌는 회차는 있어도, 어느 회차가 미친 듯이 재미없네? 하는 건 없다"고 답했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은 어떻게 설정하고 있을까. 한 PD는 "이 이야기는 '라스'에서 할 수 있겠다, 다른 프로그램 말고 '라스'에서만 편하게 말할 수 있겠다 하는 이미지가 생기면 고마울 것 같다"며 "익숙한 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너무 많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전히, 틀어놓고 보면 (반드시) 재미있는 그런 프로그램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물었다. "'라스' 피디로 산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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