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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2월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최순실 뇌물 관련 뇌물공여 사건 항소심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 뇌물공여 사건 항소심 재판 출석하는 이재용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2월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최순실 뇌물 관련 뇌물공여 사건 항소심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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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경영권 승계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항소심 법정에서 한 말이다. 지난 1심에서 "경영권 승계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했던 것에 비하면, 아예 '모르쇠'로 입장을 바꾼 것이었다.

오는 5일 이 부회장의 항소심 선고 역시 핵심 쟁점은 뇌물 혐의다. 이미 1심에서도 이 부회장에 대해 뇌물과 횡령죄 등의 일부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5년이 선고됐다. 1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을 '승계작업'의 주체로 봤고, 승계작업의 성공으로 인한 이익을 가장 많이 볼수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 규정했다.

이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독대가 이뤄졌고, 이후 정유라 승마지원 등 '부정한 청탁'과 함께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라는 대가를 얻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1심 재판부가 이같은 부정한 청탁과 대가를 모두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제기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등 개별 현안 11개에 대해선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됐다는 증거가 없다는 등을 이유로 부정한 청탁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여러 정황을 봤을 때 이 부회장이 하나의 포괄적 현안인 '경영권 승계'를 박 전 대통령에게 '묵시적'으로 청탁했다고 봤다. 

명시적 청탁은 명시적인 의사표시에 의한 부정한 청탁을 의미한다. 또 묵시적 청탁의 경우 명시적이지 않더라도 청탁의 대상이 되는 직무관련성, 대가성 등을 서로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번 항소심에선 어떤 판단이 내려질까. 법조계에선 1심에서 인정되지 않았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이 '부정한 청탁'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항소심에서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삼성 합병을 개별 현안으로 청탁했다는 정황이 새롭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① 삼성 → 청와대에 합병 청탁했나. 안종범 수첩 증거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지난해 7월 4일 오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삼성그룹 전·현직 임원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지난해 7월 4일 오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삼성그룹 전·현직 임원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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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특검이 법원에 제출한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업무수첩 일부. 안 전 수석은 지난 2015년 7월 자신의 수첩에 '<장 사장> 박창균'이라고 적었다. 박창균은 중앙대 교수로 당시 국민연금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 위원이었으며 '장 사장'은 장충기 전 삼성전자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을 의미한다.

2015년 7월 17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위한 주주총회 전인 7월 6일, 장 전 차장은 김종중 전 삼성전자 미래전략실 팀장(사장)에게 신인석 전 중앙대 교수(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를 만나고 오라고 했다. 이날 장 전 차장은 안 전 수석에게 '신인석 약속'이라는 취지로 문자를 보냈다. 신 전 교수와 안 전 수석은 '토요회'라는 모임을 통해 이미 친분이 있던 관계였다.

박창균 교수의 증언에 따르면, 그 무렵 신 전 교수는 박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 합병이 삼성의 지배구조와 관련해 아주 중요하다. 삼성이 국가 경제에 있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업이니 신중하게 좀 판단해달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에게 "청와대 뜻이라네요"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당시 삼성 합병은 합병비율 불공정 문제 등의 문제가 있었으나 국민연금 전문위가 아닌 공단 내부 투자위원회로 회부돼 찬성 의결이 났다. 박 교수는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삼성 합병 1심 공판에 증인으로 나와 "전문위로 회부됐다면 삼성 합병이 반대로 결정됐을 것"이라며 "경영권 승계가 워낙 중요한 삼성 입장에선 투자위가 전문위보다는 상대적으로 쉽게 보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검 관계자는 "이 부회장 측은 한 번도 합병에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나 보건복지부에 청탁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해왔으나 안종범 수첩에 장충기 전 차장과 박창균 교수가 기재돼있다. 안 전 수석은 청와대 관계자이며 박 전 대통령의 대리인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사람"이라며 "삼성 합병이 개별 현안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밝혔다.

② 문형표-홍완선 항소심에서 '박근혜 합병 지시' 인정

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이 부회장의 '부정한 청탁'이었음을 증명해 줄 핵심 판결도 선고됐다. 문형표 전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기금 운용본부장의 항소심 판결이다.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판사 이재영)는 지난해 11월 14일 문 전 장관과 홍 전 본부장에 원심과 같은 형량인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지만, "(문 전 장관이) 박 전 대통령의 '이 사건 합병 안건에 대해 국민연금공단의 의결권 행사 문제를 잘 챙겨보라'는 지시가 있음을 적어도 인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해 3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향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해 3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향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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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판결은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대가관계를 명시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1심 재판부와 달리 삼성 합병에 박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음을 명시하면서 이 부회장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게 됐다.

③ 충분히 청탁할 시간은 있었다, '0차 독대'

이밖에 이 부회장 측에서 그동안 주장해왔던 개별 현안을 청탁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논리도 빈약해졌다. 특히 이번 항소심에서 2014년 9월 12일,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청와대 안가에서 단독면담을 했다는 이른바 '0차 독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0차 독대는 '문고리' 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이 "2014년 하반기에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이 안가에서 독대를 했다"고 인정하면서 이 부회장의 공소장에 새로 추가됐다. 지난 30일, 안종범 전 수석도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0차 독대에 힘을 실어줬다.

안 전 수석은 0차 독대 전날인 9월 11일, 김건훈 전 청와대 행정관으로부터 '삼성 참고자료-말씀참고 포함' 등을 받아본 부분에 대해 "보통 독대를 하면 박 전 대통령이 참고할 자료를 올려드려야 한다. 이 파일이 그것인지 정확하게 말할 순 없지만 (말씀참고 등) 독대에서 쓰는 용어와 비슷했던 것 같긴 하다"고 증언했다.

0차 독대가 인정되면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에게 '부정한 청탁'과 '뇌물에 대한 합의'에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삼성 측 "명시적, 묵시적 청탁 공허한 말장난으로 보여"

 1심 선고 받은 삼성 전 임원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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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청탁한 '개별 현안'으로 인정된다면 이 부회장의 형량과 이미지에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1심에서 뇌물공여 혐의 중 승마지원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만 유죄로 인정됐다. 특검 관계자는 "1심에선 재단 부분을 대가성이 명확하지 않다며 무죄로 봤는데 항소심에서 삼성 합병이 개별 청탁으로 인정된다면 재단 부분을 무죄로 선고하기 쉽지 않다"고 밝혔다.

또, 이 부회장의 이미지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이 부회장은 지난 1심 피고인 최후진술을 통해 "서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에 손해를 끼치며 욕심을 내진 않았다"며 "이런 오해와 불신이 풀리지 않으면 삼성을 대표하는 경영인이 될 수 없다"고 울먹였다.

삼성 변호인단인 이인재 변호사는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1심 공판을 통해 어떤 개별 현안에 대해서도 명시적, 묵시적 청탁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며 "명시적·묵시적 청탁은 공허한 말장난으로만 보인다"고 주장했다.


태그:#이재용, #삼성물산, #제일모직, #박근혜, #항소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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