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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에나 어쩌다 가끔 여유롭게 TV를 볼까. 바쁘게 살다 보니 그나마 매일 챙겨 보는 것은 뉴스뿐, 시간 맞춰 시청하는 드라마나 프로그램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본방을 보고자 채널을 돌리기도 하고, '다시보기'로 챙겨보기도 할 정도로 좋아하는 프로그램 몇 개가 생겼습니다.

흔히들 '미우새'라고 하는 SBS의 <미운 우리 새끼>도 그중 하나인데요. 지난해 가을 어느 날 딸이 틀어준 이후 즐겨보고 있습니다. 전원을 켜고 끌 때나 만지곤 하던 리모컨을 붙잡고 'TV 다시 보기'를 시도해 그동안 보지 못했던 몇 편을 몰아서 보기까지 했을 정도로 좋아하게 됐습니다. 

요즘 결혼 적령기라는 30대 중반에만 장가갔어도 학부모는 되었을 나이의 장가 못간(?) 총각들이 벌이곤 하는 '참 철딱서니 없다' 싶을 정도로 엉뚱한 짓들이 재미있더라고요. 결혼해 애 낳고 잘살고 있는 자식일지라도 부모로선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겠는데, 가뜩이나 혼자 살아 어설프기 짝이 없는 아들의 일상을 지켜보며 내비치곤 하는 미우새 맘들의 날것 그대로의 반응도 흥미롭고요. 그래서 확 와 닿는 것들은 없지만 그저 재미있게 볼 때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본방을 놓쳐 지난주 금요일에 다시보기로 본, 41회차 미우새(6월 18일 방송분)는 보는 내내 자꾸 지난날들을 떠올리게 하더니, 요즘 며칠 참 마음 복잡하게 하고 있습니다.

<미운 우리 새끼> 한 장면
 <미운 우리 새끼> 한 장면
ⓒ SBS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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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우리 새끼>의 한 장면
 <미운 우리 새끼>의 한 장면
ⓒ SBS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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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같은 며느리"를 희망하는 엄마들에게 게스트로 출연한 박명수씨가 "세상에 딸 같은 며느리는 제가 본적이 없어요!"라고 강하게 맞받아치는 것으로 시작된 미우새 엄마들과의 설전(?)을 보고부터입니다. 

박명수 씨는 "며느리들이 원치 않아요!"란 자신의 말에 여전히 "며느리를 딸처럼 만들면 된다. 나는 할 수 있다. 시엄마가 잘하면 다 따라오게 돼있어!"라며 딸 같은 며느리 운운하는 엄마들에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건 힘들어요! 너무 잘해주는 거 며느리들이 싫어해요!"라고 '토'를 다는 것으로 '며느리는 절대 딸이 될 수 없음'을 강하게 주장했는데요. 

글쎄요? 미우새 엄마들의 희망처럼 딸 같은 며느리가 정말 가능할까요? 아니면 박명수씨의 말처럼 딸 같은 며느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떤 노력을 해도 그건 너무 힘든 일일까요?

며느리를 딸처럼 여긴다고요? 누가 딸한테 이런 일을...

"딸이 없어서 늘 섭섭하다. 그래서 아들 장가보내면 며느리를 딸처럼 여기며 살고 싶었다. 그러니 너도 친정 부모님처럼 생각해라!"

남편은 삼형제 맏이입니다. 시부모님은 인사드리러 간 제게 이처럼 말씀하시더군요. 어리석게도 그 말에 감격하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이런 시부모님이 있을까' 싶었고, '딸처럼 생각하고 싶을 정도로 내가 마음에 든다는 거구나!' 싶어 감사함까지 가지게 됐습니다. 그래서 결혼하고서도 한동안 '우리 시부모님은 나를 딸처럼 생각하시는 그런 분들, 그래서 행복한 결혼생활'임을 자랑하곤 했습니다. 심지어는 주변 사람들의 걱정 어린 충고와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첫째가 백일 무렵이었을 때 시댁으로 들어가 함께 살았습니다.

구태여 들어가 부모님 모시고 살 필요가 없었는데도 어머니의 "딸처럼 여기고 싶다"는 말에 감사한 나머지 "함께 살고 싶다"는 어머니의 뜻만으로 함께 살기 시작한 상황을 이야기하자니 그때의 악몽이 떠오르네요. 돌도 되지 않은 첫째를 밤새 수유하고 돌보며 지친 몸으로 날이면 날마다 몇 번씩 뚝배기 밥을 지어야만 했던 날들이.

당시 시아버님과 시동생은 거의 30~40분 간격으로 출근하거나 했습니다. 어머니는 "뚝배기로 금방 지은 밥이 맛있다"며 매일 아침 6시부터 한 사람씩 나갈 때마다 뚝배기 밥을 지어 먹이도록 고집하시더군요. 밤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곤 했는데, 게다가 몇 달 후 당신의 이종 조카까지 함께 살게 하며 밥 해먹이게 하더군요. 물론 한마디 상의는커녕 언질조차 없이.

아이 키우기 가장 힘든 시기인 돌 무렵까지 거의 1년 가까이 계속됐는데, 당신의 딸이라면, 아니 저를 단 한번만이라도 딸처럼 생각했다면 과연 그렇게 하셨을까요? 며느리에 대한 예의가 조금이라도 있는 분이라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지난 이십여 년간의 결혼 생활 중 시부모님과 있었던, 정말 단 한 번만이라도 진심으로 딸처럼 생각했다면 절대 그러지 말았어야 할 참으로 섭섭한 일들을, 생각만으로도 화가 치미는 일들을 어찌 다 말할 수 있을까요. 이야기하자니 참으로 치사한 한편, 스스로에게 침 뱉는 꼴이 되어 꾹꾹 눌러 참으며 가슴앓이해야만 했던 그런 일들을 말이지요.

뚝배기는 다른 용도로 쓰일 때도 있다
 뚝배기는 다른 용도로 쓰일 때도 있다
ⓒ KBS 다큐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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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의 예의로 대해주세요" 이 말에 후회는 없다

대부분의 며느리들이 그러는 것처럼 처음 몇 년은 갓 결혼한 새댁이라 섭섭하거나 부당한 일을 당해도 멋모르고 참았습니다. 나 하나 참으면 될 걸 공연히 드러내 집안 시끄러워지는 것이 싫어 그냥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결혼 초기 몇 년, 어머니는 자신의 뜻이 이뤄지지 못할 때면 어김없이 이해 못할 행동까지 하시곤 했거든요.

'그래도 자기 엄마인데 남편은 또 얼마나 속상할까?'의 생각으로 남편이 불쌍해 참기도 했습니다. 아들만 셋인 남편을 소개할 때면 "딸 없는 시어머니들은 딸 가진 부모 심정을 몰라 시집살이 더 시킨다더라"와 같은 말을 듣곤 했지만 "사람 나름. 내가 잘하면 잘해주시겠지" 쪽이라 참곤 했는데, 그게 '경험에서 나온 말이구나'를 뼈저리게 실감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여하간 1년 정도 함께 살면서, 그리고 결혼 햇수가 늘어날록 '며느리는 절대 딸이 될 수 없구나'를 뼈저리게 느끼고, 확인하는 일이 쌓여갔습니다. 당신 스스로 며느리는 절대 딸이 될 수 없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알면서, 아니 딸이란 생각은 전혀 없으면서 나처럼 어수룩한 며느리들을 길들이려는 계산 빤한 속셈의 말이란 생각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결혼으로 인한 가족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일부 시부모들의 이기적인 욕심인 것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결혼 10년차가 지날 무렵까지도, 형편상 해주지 못하는 부분임에도 스스로 기대하신 것을 해주지 못하면 습관처럼 "며느리를 딸처럼" 운운하시더군요. 당신의 마음이나 잘못은 나 몰라라 하고, 딸과 같지 못한 제 탓만 하면서 말이죠.

"제게 더 이상 딸 같은 며느리 어쩌고 하지 마세요. 어머니의 딸로 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거든요! 전 어머니의 며느리이지 딸이 아니잖아요. 그러니 며느리의 예의로 대해주세요!"

그런 어머니께 더 이상 참을 수도 없고, 참고 싶은 마음도 없어서 결혼생활의 위기를 느낄 무렵인 2001년 어느날, 위와 같이 요구했습니다. 때문에 그로부터 2년 반 동안 차로 10분쯤 거리에 살면서도 전혀 모르는 남남으로 소식을 끊고 살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어머니와 관계가 그리 좋지 못한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때 절대 딸이 될 수 없음에도, 그러기를 바라며 '선 긋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머니께 잘 요구한 것이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결혼생활이나 가족관계가 유지될 수 있는 그렇게 요구했던 덕분이란 생각이고요.

며느리는 '남의 딸'이다

시어머니 때문에 마음 앓이가 심했다
 시어머니 때문에 마음 앓이가 심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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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며느리에 대한 바람'은 딸이 없는 데서 비롯된 순수한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사람인 이상 부족한 것이 많은 만큼 당신이 바랐던 며느리가 아니어서 섭섭할 때도 많았겠지요. 너무 제 입장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고요. 그런데 여하간 지난 이십여 년간의 결혼 생활에서 분명하게 깨달은 것은 '딸과 같은 며느리는 절대 있을 수 없다. 며느리는 절대 딸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요구해서는 안 된다'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시부모는 물론 시댁 식구들과의 좋지 못한 일을 겪을 때마다 뼈저리게 후회하곤 했던 것은 '딸 같은 며느리'를 착각해, 아니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바람직한 관계를 위한 거리두기와 길들이기'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남들에게 드러내놓고 갈등하는 고부관계는 아니었지만 며느리인 저로선 마음앓이가 심했습니다. 때문인지 주변인들의 고부문제에 나도 모르게 솔깃해지곤 했는데요. 며느리로 살아오며 느낀 것들은 우리 사회는 시부모님에 대한 예의는 당연하게 강요되지만 며느리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 그에 대한 인식조차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딸처럼까지 대해주지 않아도 며느리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만 지켜도 고부 갈등은 많이 사라질 것이라는 겁니다.

너무 며느리 입장으로만 생각한다고요? 솔직히 내 배 아파 낳은 자식도 내 맘 전혀 모르는 것 같고 내 마음대로 해주지 않을 때가 더 많던데, 생판 모르는 사람이었던 남의 자식에게, 그것도 세대 차이를 느끼는 것이 당연한 며느리나 사위가 내 자식 같기를 바라는 것 그 자체가 모순 아닌가요? 웃어른으로 아랫사람에게 그러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아랫사람들에게 어느 정도의 강요나 희생을 당연하게 요구하는 부당한 횡포입니다.

이제 둘째도 성인입니다. 저도 머잖아 며느리와 사위를 가족으로 받아들여야겠지요. 시집살이도 살아본 사람들이 시킨다는 말도 있던데요. 하지만 저는 절대 우리 어머니처럼 '딸 같은 며느리'는 원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며느리나 사위는 그에 맞는 예의를 갖춰 대할 생각이고요. 며느리를 벗어나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는 제가 먼저 거절할 생각입니다. 며느리는 남의 딸이니까요!


태그:#미우새(미운우리새끼), #박명수(방송인), #딸 같은 며느리, #고부갈등(시집살이), #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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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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