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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확기를 맞은 장미는 날마다 따야 한다. 시쳇말로 부모 상중에도 따야 한다. 하지만 레드향은 다르다. 오늘 못 따면, 내일 따도 된다. 모레 따도 큰 지장을 받지 않는다.
천만일 씨의 하우스에서 만난 레드향. 언뜻 감귤과 흡사하게 생겼다. 감귤보다 조금 크고 색깔이 더 붉다. 감귤과 한라봉의 교배종이다.
 천만일 씨의 하우스에서 만난 레드향. 언뜻 감귤과 흡사하게 생겼다. 감귤보다 조금 크고 색깔이 더 붉다. 감귤과 한라봉의 교배종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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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인가 했는데, 아니다. 껍질이 감귤의 것보다 더 붉다. 감귤의 '사촌'쯤 돼 보인다. 크기는 감귤보다 조금 더 크다. 옆으로 퍼진 생김새 덕분에 껍질을 벗기기가 수월하다. 알맹이도 굵고 통통하다.

입 안에서 느껴지는 과육이 부드럽다. 금세 상큼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진다. 달달하면서도 상큼한 맛이 기분까지 좋게 한다. 과즙이 풍부하고 당도도 높다. 식감 자체가 좋다. 더 먹고 싶은 맛이다.

레드향이다. 감귤과 한라봉의 교배종이다. 비타민이 듬뿍 들어있는 겨울 대표 과일이다. 시장에서도 잘 나가는, 격이 다른 과일이다.

상큼한 맛을 지닌 레드향. 과즙이 풍부하고 당도도 높다. 식감 자체가 좋다.
 상큼한 맛을 지닌 레드향. 과즙이 풍부하고 당도도 높다. 식감 자체가 좋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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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일 씨가 주렁주렁 열린 레드향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천 씨는 장미의 대체 작목으로 레드향을 선택했다.
 천만일 씨가 주렁주렁 열린 레드향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천 씨는 장미의 대체 작목으로 레드향을 선택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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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일(54)씨. 전라남도 강진군 칠량면에서 레드향을 재배하고 있다. 부산에서 살다가 지난 2000년 강진으로 옮겨왔다. '남도답사 일번지'로 알려진 강진은 그의 처가 마을이다. 부인(강미순·54)의 태 자리다.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사업도 했었죠. 강진에서 장미를 재배하던 아내의 친구가 있었는데, 휴가 때마다 와서 자랑을 하더라고요. 장미 자랑을요."

친구의 유혹(?)에 이끌려 강진으로 온 천씨 부부는 곧바로 장미를 재배했다. 2600㎡짜리 시설하우스 3동이었다. 아내 친구의 말처럼 재미가 쏠쏠했다. 돈도 꽤 벌었다.

하지만 장미 값이 갈수록 심상치 않았다. 생산비는 여전히 많이 들어가는데, 값은 떨어졌다. 최근에는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영향도 크게 받고 있다.

천만일 씨가 가꾸고 있는 장미. 천 씨는 귀농 이후 줄곧 장미를 재배했다. 지금도 재배하고 있다.
 천만일 씨가 가꾸고 있는 장미. 천 씨는 귀농 이후 줄곧 장미를 재배했다. 지금도 재배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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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일 씨가 장미 하우스에서 장미의 가지를 손질하고 있다. 천 씨는 귀농 이후 줄곧 장미를 재배해 왔다.
 천만일 씨가 장미 하우스에서 장미의 가지를 손질하고 있다. 천 씨는 귀농 이후 줄곧 장미를 재배해 왔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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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의 1로 줄었어요. 예전엔 꽃집에서 10만 원, 5만 원짜리 꽃다발도 많이 나갔는데, 김영란법 시행 이후에 안 나간다고 해요. 꽃다발 하나에 서너 송이를 꽂던 장미를 한두 송이 꽂고요. 아예 인조 꽃으로 대체하기도 하고요."

장미 판매량이 줄어듦에도, 농가의 부담은 더 늘었다. 팔리지 않은 꽃을 저온 저장까지 해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뿐만 아니다. 장미는 본디 시설비가 많이 들어가는 품목이다. 일손도 많이 필요로 한다. 수확도 출하기엔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해야 한다. 겨울철 난방비 부담도 크다. 로열티도 비싸게 줘야 한다. 유행도 탄다. 재투자 부담도 크다.

천씨가 작목 전환을 고민한 이유다.

천만일 씨가 레드향을 재배하고 있는 하우스의 토양을 살피고 있다. 지난해 12월 29일이다.
 천만일 씨가 레드향을 재배하고 있는 하우스의 토양을 살피고 있다. 지난해 12월 29일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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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레드향 하우스. 천만일 씨는 이 잡초를 모두 손으로 거둬 들인다.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레드향 하우스. 천만일 씨는 이 잡초를 모두 손으로 거둬 들인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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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씨는 레드향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주변에서 재배하는 농가가 없어, 재배법을 익히기가 쉽지 않았다. 직접 물 건너 제주도의 선진 농가를 여러 번 찾아갔지만, 만족할 만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

"방법이 있습니까. 맨땅이지만, 부딪힐 수밖에요. 어깨 너머로 보고, 관련 책자를 뒤적거렸죠. 묘목을 사와서 심어놓고 관찰도 하고요."

먼 안목으로 레드향을 선택했다. 시설하우스 1동의 장미를 뽑아내고, 레드향을 심었다. 3년 전이었다.

수확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2년째 하고 있다. 지난달 시작한 수확은 오는 2월 말까지 계속 할 예정이다. 수확량은 한 그루당 12∼15㎏씩, 모두 1.2∼1.5t을 예상하고 있다. 앞으로 농업기술센터의 도움을 받으면 수확량이 훨씬 늘 것으로 보고 있다.

레드향이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천만일 씨는 이 하우스에서 레드향을 오는 2월까지 수확할 예정이다.
 레드향이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천만일 씨는 이 하우스에서 레드향을 오는 2월까지 수확할 예정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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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일 씨의 부인 강미순 씨가 레드향을 수확하고 있다. 이들이 농사 짓고 있는 전남 강진은 강 씨의 친정 마을이다.
 천만일 씨의 부인 강미순 씨가 레드향을 수확하고 있다. 이들이 농사 짓고 있는 전남 강진은 강 씨의 친정 마을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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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은 ㎏에 1만 원씩 받는다. 3㎏, 5㎏, 10㎏씩 담는다. 그동안 다져온 인맥을 토대로 대부분 직거래로 판다. 한 번 맛을 본 소비자들도 다시 주문을 해온다. 공판장까지 가져 갈 물량도 안 된다. 판로 걱정은 하지 않는다.

"좋습니다. 생산비가 적게 들어요. 장미의 10분의 1쯤이요. 노동력과 난방비도 장미의 4분의 1밖에 안 들어가요. 재투자 비용 부담도 없고요.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품목입니다."

천씨의 말이다. 수확도 장미보다 한결 수월하다. 수확기를 맞은 장미는 날마다 따야 한다. 시쳇말로 부모 상중에도 따야 한다. 하지만 레드향은 다르다. 오늘 못 따면, 내일 따도 된다. 모레 따도 큰 지장을 받지 않는다.

소득은 장미와 별반 차이가 없다. 조수익은 차이가 나지만, 실질 소득은 엇비슷하다. 매력 있는 품목이다. 천씨가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이유다.

천만일 씨가 레드향을 가득 담은 바구니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천만일 씨가 레드향을 가득 담은 바구니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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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천만일, #레드향, #귀농귀촌, #칠량장미, #강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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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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