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시대>의 송지원은 조사 같은 인물이다. 명사나 동사처럼 단독으로 의미를 갖지 않지만, 문장 속에 남아 다른 성분을 이어주는 품사같은 인물. 또 없으면 문장으로 성립하지 않는 문법 단위.

송지원도 마찬가지다. 이 캐릭터가 빠지면 일단 이야기가 성립하지 않는다. 극 중에서 송지원은 다른 등장인물들을 돕고 이들 사이에 대화를 유도한다. <청춘시대> 속 여성들은 송지원의 "귀신을 본다"는 거짓말 덕에 각자의 상처를 떠올린다. 박은빈은 자신이 연기한 송지원이라는 캐릭터를 "수호천사"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송지원이라는 인물 자체만 놓고 보면 많은 것들이 생략돼있다. 송지원은 왜 자꾸 거짓말을 하는지. 정말 귀신을 보는 게 맞는지. 그 의문은 끝내 해소되지 않은 채 <청춘시대>는 끝났다.

 JTBC 금토드라마 <청춘시대>에서 송지원 역의 박은빈이 2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JTBC 금토드라마 <청춘시대>에서 송지원 역의 박은빈이 2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JTBC 금토드라마 <청춘시대> 송지원 역의 박은빈을 2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 이정민


16부작 드라마가 편성 과정에서 12부로 줄어들게 됐을 때, 가장 많이 피해를 입은 배역은 송지원이었다. 박연선 작가는 지난 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송지원 에피소드가 4회 정도 날라갔다"며 "기회가 된다면 송지원 이야기를 한 번 더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 작가는 "우리가 상대방을 안다고 그 비밀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다"라며 송지원의 빈칸 또한 의도된 것임을 알렸다. 박은빈은 듬성듬성 빈칸이 뚫린 "송지원이라는 캐릭터의 개인 서사를 채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송지원 혼자만 개인 스토리가 없다. 과거에 대한 단서는 예전에도 거짓말을 했다는 것뿐이었다. 얘는 왜 거짓말을 할까. 왜 남에 일에 참견하며 오지랖을 부릴까. 그 의문점이 나를 한가득 메웠다. 과연 어디까지가 거짓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내가 송지원에게 매력을 느낀 건 그가 알 수 없는 양면성을 가진 인물이라서다."

지난 2일 서울 강남에서 <청춘시대> 송지원 역할의 배우 박은빈을 만났다. 그와 1) '<청춘시대>의 송지원' 2) '배우 박은빈' 3) '현실 세계의 청춘들'의 교집합을 하나씩 채우면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박은빈이 가진 3가지 정체성

ⓒ 고정미


[하나] (<청춘시대>의 송지원)∩(현실 세계의 청춘들)

 JTBC 금토드라마 <청춘시대>에서 송지원 역의 박은빈이 2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송지원이라는 캐릭터는 정말일까? 거짓일까? 그는 내게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 이정민


- <청춘시대>는 2016년을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려내 많은 호평을 받았다. 많은 시청자들이 송지원이라는 캐릭터에도 공감했는데.
"일단 연애 못하는 분들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않았나 싶다. 대학교에 입학해서 수많은 미팅과 소개팅을 거친 인물이 송지원이기도 하고. 음담패설과 음주가무를 즐기는 것도 그렇다. 보통 남학생을 대표하는 성격이지만 여자들도 구애받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송지원이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양성(性)성이 있는 인물이라고 봤다. 처음에 감독님께 '여성성과 남성성이 양극단에 있다면 송지원은 어느 쪽에 있습니까'라고 물었는데, 남성성 100%라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송지원이 남자 같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분명히 여자임을 본인도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오히려 양성평등을 외치면 외쳤지 젠더에 관해 편견을 가질 거라 보지 않았다."

- 송지원은 자기 자신을 무척 사랑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자기 사진을 액자에 끼워 학보사 책상에 올려놓는 캐릭터다. 
"자존감 100퍼센트였다. (웃음) 사진이 너무 정면을 바라보고 있어 당황스러운 나머지 '감독님 왜 이런 영정사진 같은 게 올라와 있죠?'라고 물었다. 감독님이 '이제 알았니? 너 귀신이야'라는 농담을 하시더라. 현장에서도 항상 '송지원은 대체 뭘까' 추측했다. 그런데 송지원은 정말 개인의 책상 위에 증명사진을 버젓이 올려놓을만한 그런 인물이었다!"

- 극 중에서 그런 송지원의 '자기애'를 잘 나타내는 장면을 꼽을 수 있을까?
"유은재(박혜수 분)가 송지원을 우러러보는 시퀀스가 초반에 등장한다.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대신 가서 따져주고 맞서 싸운다. 그 장면이 '송지원은 이런 사람이다'라는 걸 본격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라 생각한다. 현장에서 스태프들이 다들 '아 이 장면이 이렇게 나왔구나'라면서 만족스러워했다."

- 실제 후배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집에 왔을 때, 박은빈이라면 어떻게 할까? 
"나는 내 일에 있어서는 유은재 같은 부분이 있기 때문에 '하하 예 좋아요'라면서 참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번은 제 선배가 구두를 샀는데, 직원이 한 사이즈 작게 요구를 했다더라. 한 사이즈 작게 신어도 된다면서. 그런데 발이 아팠던 거다. 그래서 같이 가게에 갔다. '이거 아직 신지 않았는데 사이즈 교환 되는 거 아니냐'고. 내 일이었다면 못 했겠지만, 남을 잘 챙기려는 편이고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물론 송지원처럼 "시정하십시오!" 이러진 않고 '다시 해주시면 안 돼요...?'라고 부탁을 하겠지만." (웃음)

[둘] (<청춘시대>의 송지원)∩(배우 박은빈)

 JTBC 금토드라마 <청춘시대>에서 송지원 역의 박은빈이 2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완벽히 다른 사람이 되는 그 고통의 순간을 환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나를 발견해가는 것이지 않나." ⓒ 이정민


- 이미 여러 인터뷰를 통해 "송지원과 나는 완전 다른 인물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내 모습 중 일부가 송지원에 녹아든 부분이 있다"는 다소 상반된 대답을 했다.
"일단 음담패설을 하거나 음주가무를 즐겁게 여기는 모습은 완벽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말투라든지 리액션들, 어찌 보면 약간은... 애교가 섞인 모습들은 굳이 내가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지 않다. (웃음) 그런 모습을 귀엽다고 해주시는 걸 보고 '아 그래요~? 그럼 이런 부분은 저라고 해볼까요?'라고 생각했다." (웃음)

-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새로운 캐릭터가 된 건데 그 느낌은 어떤가.
"성장통? 같은 부분이 있었다. 캐릭터에 대해 확신하기 전까지 어떤 캐릭터를 만나든 낯설고 힘든 순간이 분명 있다. 그 순간을 넘으면 잘해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고 막연한 믿음도 있었던 것 같다. 또 그런 고통의 순간들을 환영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나를 발견해가는 것이지 않나."

- 그 '막연한 믿음'은 오랜 시간동안 연기를 해오면서 쌓아온 걸까?
"지금이었기에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몇 년 전에 송지원이라는 캐릭터가 내게 왔다면 과연 해냈을까 의문이다.
그리고 해낼 수 있었을지도. 지금에서야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 같다. 말씀하신 그대로 스스로를 알아가면서 쌓였던 것이기도 하다."

- 송지원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박은빈의 재발견'이라는 말을 듣고 있다. 지금까지 본인이 쌓아온 필모그래피와도 상당히 다르고 성격도 완벽히 다른데 거기서 오는 괴리 같은 게 있을 것 같다.
"내 자신을 연기한 적은 한 번도 없기 때문에 캐릭터마다 괴리감은 항상 있다. 완벽히 같을 수는 없고 나 역시도 여러 가지 다면성을 갖고 있고. 늘 다른 캐릭터를 연기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괴리감은 항상 짊어지고 가는 것 같다. 설령 싱크로율이 0%라도 그 연기를 해내야 하는 게 직업인이지 않나. (웃음) 그래서 나를 알려고 더 노력한다. 나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캐릭터도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 인생을 제대로 살아내야 다른 인생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셋] (배우 박은빈)∩(현실 세계의 청춘들)

 JTBC 금토드라마 <청춘시대>에서 송지원 역의 박은빈이 2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은빈은 말했다. "내게 가장 큰 화두는 '나는 누구인가'이다." ⓒ 이정민


- 박은빈은 1998년 SBS 드라마 <백야 3.98>로 데뷔했다. 학업에 충실하기 위해 한 해 쉬었던 것을 제외하면 매년 작품을 성실하게 해왔다. 사실 요즘 청춘들과 접점이 있을까 싶었다.
"나도 청춘이다! 또래들과 학교생활을 함께 해왔기 때문에 그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나 또한 다르지 않다. 나도 일하지 않을 때는 취업 준비생과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청춘들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깨닫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찾고 그것이 자신에게 행복을 주는 것인지 등을 고민하지 않나.

그게 잡히지 않았을 때 힘들고. 다들 궁극적으로는 행복해지기 위한 삶을 살기 위해 고통스러운 게 아닌가 싶다. <청춘시대>가 비단 20대 여성만이 아닌 남성들, 10대들, 남녀노소 공감이 된다고 했던 게 꼭 청춘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폭넓게 공감을 받고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 그런데도 배우 박은빈은 비교적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걸 찾은 셈이다.
"아마 내 가장 큰 화두는 '나는 누구인가'일 것이다. 특히나 다른 인물들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해 중심이 필요했던 것 같다. 대학생이 된 후로 본격적으로 정체성을 알고자 하는 시도들이 있었다. 그 시도가 끝난 게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누구나 자신의 모습과 직면하게 됐을 때 흔들린다고 생각한다. 내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런 걸 '하고 싶은데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고들 한다.

- 무척 공감할 수 있는 말이다.
"맞다. 아마 다들 공감할 거다. 하지만 어른들은 '뭔 말이냐, 하고 싶으면 하고 싶은 거지'라고 하신다. 더 많은 인생을 살아오셨으니 조언을 해주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청춘들에겐 누군가가 내 인생의 행로를 결정해주었으면 하는 마음과 그렇지 않은 마음이 공존한다. 누군가 나를 의지할 수 있게 이끌어줬으면 좋겠는데, 또 그냥 따라가기는 싫고 내 길을 찾고 싶고…. 그런 양가적인 감정을 나 또한 갖고 있기에 공감할 수 있다. 나도 청춘이고 (웃음) 청춘들의 고민을 한아름 끌어안고 산다."

 JTBC 금토드라마 <청춘시대>에서 송지원 역의 박은빈이 2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은빈은 현재 차기작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그를 좋은 드라마에서 되도록 빨리 보고 싶다는 생각은 나만의 바람이 아닐 것이다. ⓒ 이정민


송지원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을지 모를 '편집된 10분'
12부작 드라마도 아쉬운데, 거기에 매 회 10분 정도씩 편집됐다. 송지원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었던 장면들 역시 편집됐다. 박은빈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감독님께서 힘드시더라도 재편집을 하셔서 (웃음) DVD 같은 게 나올 수만 있다면 좋겠다."

마침 공식적으로는 아니나 <청춘시대> 블루레이 수요 조사도 이뤄지고 있다고 하니 그것이 아주 불가능한 바람은 아닐 것이다.

"마지막에 편집이 됐지만 극에서 예은(한승연 분)이 송지원에게 그렇게 말한다. '너 사랑 못 받고 자랐지? 그러니까 관심 받으려고 그런(거짓말 한) 거 아니야?'라고. 그래서 내가 '아닌데? 나 오빠 둘에 딸 하나라 엄청 사랑받고 자랐어'라고 대답한다. (이 장면은 송지원이 유은재에게 '사람마다 사정이 있고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신과 이어진다. - 편집자 주) 이 신은 어찌 보면 송지원이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유일한 단서 중 하나다.

물론 그것 자체도 정말 사실일까 싶었다. 자기 자신을 숨기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캐릭터가 송지원이 아닐까 싶었다. 마지막까지 '비밀 대방출'하자고 돋우면서 정작 자기 자신은 싱거운 이야기를 한다. 첫 회에 나왔던 것처럼 '말할 수 있는 비밀'과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는데 다른 하우스메이트들은 말할 수 없었던 비밀도 끄집어내 해결한다. 하지만 극에서 관찰자와 화자의 역할을 대신했던 송지원은 끝까지 자신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자신의 비밀을 철저하게 숨기고 끝내는구나 싶었다. 또 그래서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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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에서 인포그래픽 뉴스를 만들고 있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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