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의 조태오 영화 <베테랑>

영화 <베테랑>의 조태오는 2015년을 유아인의 해로 만들어줬다 ⓒ CJ E&M


유아인은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베테랑>에서 조태오 역할을 맡아 2015년을 유아인의 해로 만들었다. 재벌가에서 태어나 사람을 도구로만 생각하는 조태오는 2015년 영화계 최고 악역 캐릭터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악역을 맡았지만, 유아인의 주가는 가파르게 상승했고 호감도는 증가했다. 조태오라는 캐릭터 자체만 보면 도저히 옹호하기 힘들고, 호감이 가기 힘든 캐릭터지만 유아인은 뛰어난 연기력으로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주인공보다 돋보이는 악역이 된 것이다.
주인공보다 돋보이는 악역, 브라운관으로

 남궁민의 남규만 드라마 <리멤버 : 아들의 전쟁>

남궁민 역시 악역을 맡은 후 가장 큰 전성기를 맞는 중이다. 사진은 SBS <리멤버>의 남궁민 ⓒ SBS


이런 현상은 드라마에서도 이어졌다. 남궁민은 SBS <냄새를 보는 소녀>에 이어서 SBS <리멤버>에서도 악역을 맡으며 데뷔 후, 가장 큰 전성기를 맞이했다. SBS <리멤버>에서 남궁민은 살인을 저지르고 그것을 덮으려 수많은 악행을 자행하는 '재벌 2세 남규만'을 소화해냈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둔감한 소시오패스에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일어나면 분노조절장애까지 일으키는 모습이 <베테랑>의 조태오보다 한 단계 더 진화한 악역이라는 평가마저 받았다.   상대적으로 호흡이 긴 드라마에서 악역을 맡아 이미지는 더욱 각인됐지만, 남규만의 비호감지수가 올라갈수록 남궁민에게 쏟아지는 찬사 역시 따라 올라갔다. 남궁민은 드라마의 이미지를 이용해 광고 촬영을 하는 등 악역을 통해 대세 스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김범 이로준 SBS <미세스캅2>

김범은 사채 업계 최고의 회사 EL 캐피탈의 대표이사 이로준 역을 맡았다. ⓒ SBS


마지막으로 김범 역시 SBS <미세스캅2>에서 악역을 맡으며 호평을 얻고 있다. 사체 업계 최고의 회사 EL캐피탈 대표이사 이로준 역을 맡은 김범은 앞의 두 캐릭터와 마찬가지로 자본과 권력의 최고 정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는 살인을 저지르고도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나가며 주인공인 고윤정(김성령 분)과 대척점에서 드라마의 긴장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고 있다. 드라마의 인기는 생각보다 저조하지만 김범의 악역 연기에 있어서만큼은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남배우들의 이유 있는 '연기 변신'

한때 미남 스타들은 인기를 얻기 위해 로맨틱 코미디나 멜로, 혹은 정의감에 넘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미남 스타들의 행보는 단순히 주인공이 아닌 주인공과 비등하거나 더 높은 존재감을 자랑하는 악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악역 지수가 높으면 높을수록, 배우에 대한 평가 역시 달라진다. 그들이 작품 안에서 보여주는 존재감이 그만큼 강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남 스타들이 선택한 악역 스타일에도 일정한 공식이 존재한다. 조태오 남규만 이로준 그들은 '생활 밀착형' 악역이 아니다. 이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실감 있는 악역이라기보다는 권력의 최정점에 서서 자본을 마음대로 굴릴 수 있는 역할을 맡았다. 이런 역할은 시청자들이 현실에서 만나기도 어렵고 분노를 투영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작품에서의 존재감은 클지언정, 배우 자체의 이미지 하락은 적다. 회식자리에서 성추행하거나 부하의 공을 가로채는 직장상사, 혹은 시집살이를 주도하는 시누이 같은 역할은 배우 자체에 대한 호감도마저 떨어뜨릴 수 있다. 이들은 시청자들이 현실적인 분노를 일으키게 할 만한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대 권력을 가진 그들은 현실에서 사람들이 직접 대적하는 인물은 아니다. 그런 이유로 그들은 악역이라는 역할로 받아들여질 확률이 높다. 또한 그들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고급스러운 의상과 스타일을 선보인다. 악역이더라도 후줄근한 스타일과 능력도 없이 야망만 큰 캐릭터보다는 자신을 충분히 꾸미고 정제된 생활방식을 고수하는 역할이 '미남'의 이미지를 지키기에는 용이하다.

마지막으로 그들의 선택은 자신의 이미지를 연기파 배우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유아인의 연기력은 꾸준한 호평을 받았으나 <베테랑> 이후 그의 연기력에 대한 평가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격상됐다. 남궁민 역시 이전부터 연기력에 대한 찬사는 끊이지 않았다. 악역을 제대로 소화하면 대중에게 각인되는 정도가 크다. 그만큼 눈에 띄는 역할이기 때문에 연기력에 대해 대중이 더욱 확실히 인지하게 되는 통로가 되어 주는 것이다. 극의 긴장감이 넘치는 장면마다 등장하는 악역은 더는 주인공의 들러리가 아니다. 그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는 캐릭터인 것이다.

여기에 전제되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연기력이다. 주인공을 긴장시키고 시청자마저 빠져들게 하는 마력 같은 매력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캐릭터에 대한 이해와 몰입을 바탕으로 한 연기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미남 스타들이 단순히 스타에 머물지 않고 배우로 거듭나기 위한 매개체로 악역을 선택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 일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우동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남궁민 유아인 김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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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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