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간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성장해온 부산국제영화제가 부산시의 압력으로 인해 운명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영화계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외치며 결사항전 분위기입니다. 당장 올해 영화제 개최조차 점점 불투명해지는 상황입니다. 백척간두의 위기에 서 있는 부산국제영화제, <오마이스타>는 누구보다 이 사태를 애가 타며 지켜보고 있는 젊은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전달합니다. 그 열 번째로 <철원기행>의 김대환 감독입니다. [편집자말]
부산을 뒤덮은 영화의 물결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을 하루 앞둔 30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인근 수영2교에 영화제를 알리는 'BIFF'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는 1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10일까지 세계 75개국 304편의 작품이 해운대 영화의전당과 센텀시티, 남포동 등 6개 극장 35개 스크린에서 상영되며 해운대 비프빌리지와 남포동 비프광장 야외무대인사, 오픈토크, 영화의전당 두레라움광장 등 어느 해 보다 풍성한 작품과 프로그램으로 관객을 찾아간다.

▲ 부산을 뒤덮은 영화의 물결 지난해 9월 30일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 전날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인근 수영2교에 영화제를 알리는 'BIFF'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 유성호


2014년 2월

폭설이 내리던 강원도에서 <철원기행>을 촬영하던 중 스태프 한명이 저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감독님은 완성하면 어떻게 할 계획이에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당연히 부산영화제에 접수를 해봐야겠죠?" 스태프는 고개를 끄덕였고 저는 잠시 생각에 빠졌습니다. 지금 촬영을 잘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의심이 생기기도 했고, '정말 부산영화제를 가게 되면 소원이 없겠다…'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습니다. 그렇게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2006년 4월

저에게 있어서 부산과의 첫 만남은 군 입대를 두 달여 정도 앞둔 시점에 이뤄졌습니다. 친구들끼리 무궁화호를 타고 새벽에 도착한 부산은 저희들을 반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우산이 쓸모없을 정도로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고,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의 강풍이 몰아치고 있었습니다. 광안리 해변에 앉아 태양을 마주보며 맥주를 마시려 했던 계획은 당연히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부산을 느껴야 된다는 집념 하에 시장을 돌아다니며 소주와 함께 회를 먹고, 소주와 함께 밀면을 먹고, 소주와 함께 돼지국밥을 먹었습니다. 미련하게 비를 맞으며 돌아치던 순간이었지만, 그때의 이미지들은 선명하게 남아 인생의 큰 추억으로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놀던 때에도 들었던 부산영화제의 대한 생각은 엄청난 감독님들이 오시는 세계적인 영화제였습니다. '나는 언제쯤 영화를 들고 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조차 거만하게 느껴질 정도로 경외감이 드는 영화제였습니다. 그럼에도 건방지게 '다음에 올 때는 내가 만든 영화와 친구들과 함께 왔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었습니다.

2014년 8월

미용실에서 이발하던 중 전화가 왔습니다. 부산영화제 뉴커런츠 섹션에 확정되었다는 전화였습니다. 전화를 받고 너무 놀라 머리를 자르다 말고 소리를 지르며 여자 친구와 방방 뛰었습니다. 그 전까지 단편영화 두 편을 만들어서 수많은 영화제에 제출을 했었습니다만, 돌아오는 연락이라고는 항상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라는 내용의 문자였습니다. 때문에 부산영화제 측의 전화는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영화제 초청을 받는 순간이었습니다. 드디어 처음으로 영화제에 초청이 되었는데, 그것도 부산의 뉴커런츠라니…. (뉴커런츠 부문은 부산영화제의 유일한 경쟁 부문으로 아시아의 주요 신인 감독을 대상으로 한다. - 편집자 주)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철원기행>이 상영된 직후 열린 관객과의 대화 시간.  출연 배우들과 김대환 감독(좌측)의 모습.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철원기행>이 상영된 직후 열린 관객과의 대화 시간. 출연 배우들과 김대환 감독(좌측)의 모습. ⓒ 김대환 제공


2014년 10월

부산에서의 하루하루는 믿을 수 없는 순간들이었습니다. 제 인생에서의 첫 상영을 영화의 전당에서 하고, 관객과의 대화를 나누며 격려를 받고, 밤에는 파티에 참석하여 국내외 대단한 분들을 만나고, 마무리로 포장마차에서 달콤한 술을 마시고, 축제의 마지막 날에는 수상까지 하게 되고.

상상도 못한 날들의 연속이었던 부산은 제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때를 생각하면 입 꼬리가 자연스레 올라가게 됩니다. 그 후 제 삶은 많이 변했습니다. 조금 늦었지만 <철원기행>은 개봉을 앞두고 있고, 전 다음 작품을 만들기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떨리고 걱정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즐거운 상상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아픈 친구를 보는 심정으로

이렇듯 제 인생을 바꿔놓았던 부산영화제가 지금 매우 불안해 보입니다. 젊은 영화인들에게 경외의 대상이고 커다란 꿈인 부산영화제가 처한 현실이 믿기지가 않습니다. 2014년 당시에 불거졌던 일이 작금의 사태까지 오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고,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해외에서 어떻게 바라볼까 생각하면 창피하지 않습니까? 정치에서도 눈살 찌푸리게 하는 진영논리가 영화제까지 들어와 이렇게 파행을 되게 하다니요.

누군가가 영화를 만들 때 '지금 이 상황에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영화를 만들어도 되나?'라는 생각을 할까봐 두렵습니다. 용기 있게 자신 있게 만들어야하는 영화가 누군가의 눈치를 살피게 되는 지경이 되어버리면 어찌되겠습니까?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마음대로 만들지 못하고, 알 수 없는 잣대를 놓고, 이리 살피고 저리 살피며 만들게 된다면 무슨 영화가 만들어지겠습니까? 지금의 현실 속에서 그런 생각이 들게끔 하는 상황 자체가 현실이 되어가는 것 같아 두렵습니다.

지금 저는 위풍당당했던 건강한 친구가 시름시름 앓게 되고 병색이 완연해져가는 모습을 옆에서 바라만 보고 있는 심정입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그래도 나아가는 친구를 보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힘내라고 응원하고 어깨를 토닥거리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아 너무나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그래도 반드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올 거라고 확신합니다. 다시 부산에 가서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도록 영화제가 하루 빨리 건강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적극적으로 응원하겠습니다.

김대환 감독은 누구?


올해로 서른한 살인 김대환 감독은 단편 <소풍 안내 서비스>(2010)와 <부자면접>(2011)의 연출로 영화계 입문했다.

이후 <철원기행>(2014)로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진출했으며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뉴커런츠상을 수상했다.


[BIFF를 지지하는 젊은 목소리]
[① 백재호] 부산시민 여러분, 부디 부산국제영화제 지켜주세요
[② 이승원] 누가 BIFF라는 오아시스를 소유하려 하는가
[③ 이근우] "저는 이 영화 부산국제영화제에 낼 거예요"
[④ 조창호] 서병수 시장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한 장의 사진
[⑤ 박석영] 저는 믿습니다, BIFF 키워온 부산 시민들을
[⑥ 이돈구] 부산국제영화제는 내게 기적이다
[⑦ 박홍민] 영화제 제1명제: 초청되는 영화에는 성역이 없다
[⑧ 지하진] 영화 속 유령들까지 부산영화제를 지킬 것이다
[⑨ 이광국] 부산시장님, 많이 외로우시죠?

* 우리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지지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지키기 백만서명운동 사이트' (http://isupportbiff.com)에서 관련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isupportbiff 

부산국제영화제 김대환 철원기행 부산 B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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