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간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성장해온 부산국제영화제가 부산시의 압력으로 인해 운명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영화계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외치며 결사항전 분위기입니다. 당장 올해 영화제 개최조차 점점 불투명해지는 상황입니다. 백척간두의 위기에 서 있는 부산국제영화제, <오마이스타>는 누구보다 이 사태를 애가 타며 지켜보고 있는 젊은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전달합니다. 그 네 번째로, <다른 길이 있다>의 조창호 감독입니다. [편집자말]
 2015년 2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개막선언을 하는 서병수 시장

지난해 2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개막선언을 하는 서병수 시장. 해마다 10월이면 부산에서는 수많은 영화같은 일이 일어났지만, 서 시장이 취임한 이후에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는 또다른 의미에서 참 영화같다. ⓒ 부산국제영화제


행복했다. 국내 극장 개봉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동시대 감독의 작품들을 골라 관람 시간표를 짜던 기억. 밤이면 해운대에서 그 감독들과 마주 앉아 영화 감상을 전하고, 만든 과정을 전해 들으며 수줍게 내 영화의 상영시간표를 전하던 기억까지.

첫 연출작인 <피터팬의 공식>이 2005년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 상영이 확정됐을 때 '그렇다면 심사위원장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내 영화를 보게 된단 말인가?' 생각하며 설레던 기억도 있다. 계속된다. 2012년 부산영화제에선 <홀리 모터스>의 상영이 끝난 후 레오스 카락스 감독과 같은 승강기에 타서 숨 막혀하던 시간이 있었다. 또 지난해 부산영화제 때는 <아야즈의 통곡>을 만든 하디 모하게흐의 손을 나도 모르게 움켜쥐고 존경을 표하기도 했다. 이미 세 작품을 만든 나는 그때, 순수했을 것이다. 파티에서 줄리엣 비노쉬의 옷깃이 스쳤을 때 그 닿은 자리를 보며 넋을 놓고 있었던 시간도 잊을 수 없다.

 영화 <다른 길이 있다>의 포스터.

영화 <다른 길이 있다>의 포스터. ⓒ 조창호

이번에 만든 작품 <다른 길이 있다>는 어떤가! 촬영을 끝내고 돈이 떨어져 어쩔 줄 몰라 할 때, 부산국제영화제가 운영하는 ACF(아시아 시네마 펀드)에 선정되어 무사히 영화를 완성하는 은혜를 입지 않았던가. 수 많은 영화 중 <다른 길이 있다>를 세 번이나 봤다는, 취향이 이상하다고밖에 볼 수 없는 관객의 고백을 떠올리는 것도 부산국제영화제에서의 나의 행복한 경험에 포함된다. 그렇게 매 해 10월이 되면 부산에서는 영화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런데… 나는 또 다른 이유로 영화 같은 일에 놀라고 있다. 사실은 비통하다. 부산시는 이런 저런 이유를 대서 부산국제영화제를 탄압하고 있지만 '눈 가리고 아웅'이다. 다들 아마도 알고 있을 것이다. 서병수 부산시장도, 그와 함께 모략하는 무리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일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세월호 사고를 다룬 <다이빙벨>을 상영하면서 시작된 것임을.

비상식적이다. 시가 영화제 상영 프로그램에 관여하는 일도, 정치적인 이유로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내쫓는 일도 말이다. 가히 문화 융성을 표방한 부산시장답다고 해야하나? 그렇게 한다고 해서 영화가 감춰진다 생각하는 것도 참 웃긴 일이다. 현재 <다이빙벨>은 유튜브에서만 92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도대체 성년식(20주년)을 맞은 영화제에 대한 부산시의 간섭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쪽팔리지 않으려면

쓰던 시나리오를 멈추고 이 글을 쓴다. 동료, 선후배 영화인들도 삼삼오오 모여서 거리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다른 문화예술계 분들도 뜻을 모으고 있다. 전 세계 영화인들이 부산국제영화제를 응원하고 지지성명을 내고 있다. 이정도면 국제적인 민폐다. 가장 큰 폐는 아마 부산국제영화제를 찾는 관객과 부산시민이 될 것이다.

이미 부산시는 이겼다. 나는 <다이빙벨>과 같은 영화를 (사실 정치적인 영화도 아닌데) 못 만들 것 같다. 탄압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런 영화를 받아들고 고민해야 할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에게 미안해서.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졌지만 그들도 사실은 상식이 있다고 믿는다. 모두가 알고 있는 상식을 그들만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영화제의 독립성은 상식이다. 우리가 넘겨짚을 수 있는 어떤 작용이 있지 않았을까. 이쯤이면 작금의 사태가 그들의 예상치를 벗어나 한참 잘못 돼 가고 있음을 느낄 거다.

용기를 갖고 멈추는 건 쪽팔린 일이 아니다.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계속 하는 게 진짜 쪽팔린 거다.

아래 사진은 영화 <다른 길이 있다>로 최근 참여했던 브졸국제아시아영화제의 폐막식 모습이다. 서병수 시장과 함께 우리 모두가 30초만이라도 이 사진을 보길 권한다. 사진과 함께 그 밑에 있는 사진설명도 읽으면 이해가 더 잘 될 것이다. 그리고 부디 그 뜻을 헤아렸으면 좋겠다.

그만 멈춰주시길 서병수 시장께 간절히 빈다. 비통함에 빠진 내 행복을 돌려주시길 간절히 빈다.

 "I SUPPORT BIFF" 최근 열린 2016 브졸국제아시아영화제 폐막식 모습. 모든 사람들이 작은 종이를 들고 있다. 단상에 서있는 세명 뿐 아니라, 뒤편에 앉은 수많은 관객들까지. 거기엔 'I SUPPORT BIFF'라는 말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지지합니다!" 단상에 서 있는 세 사람은 왼쪽부터 장 마크, 마틴 집행위원장과 프로그래머 바스티앙이다.

"I SUPPORT BIFF" 최근 열린 2016 브졸국제아시아영화제 폐막식 모습. 모든 사람들이 작은 종이를 들고 있다. 단상에 서있는 세명 뿐 아니라, 뒤편에 앉은 수많은 관객들까지. 거기엔 'I SUPPORT BIFF'라는 말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지지합니다!" 단상에 서 있는 세 사람은 왼쪽부터 장 마크, 마틴 집행위원장과 프로그래머 바스티앙이다. ⓒ 조창호 제공


조창호 감독은 누구?

1972년생인 조창호 감독은 1996년 영화 <세 친구>의 연출부로 영화계에 입문, <파란대문> <인터뷰> 등의 조감독을 거쳤다.

이후 <피터팬의 공식>을 연출하며 2005년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에 진출했고, 지난해 <다른 길이 있다>로 역시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진출했다.

[BIFF를 지지하는 젊은 목소리]
[① 백재호] 부산시민 여러분, 부디 부산국제영화제 지켜주세요
[② 이승원] 누가 BIFF라는 오아시스를 소유하려 하는가
[③ 이근우] "저는 이 영화 부산국제영화제에 낼 거예요"

추신 : 우리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지지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지키기 백만서명운동 사이트' (http://isupportbiff.com)에서 관련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isupportb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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