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방송된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은 중화요리 고수와 자장면 만들기 경연을 펼쳤다.

지난 30일 방송된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은 중화요리 고수와 자장면 만들기 경연을 펼쳤다. ⓒ SBS


대한민국이 '쿡방' 빠졌다. TV만 켜만 삼삼오오 모여서 요리를 하고, 음식을 먹는다. 배우도, 가수도, 모델도, 개그맨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요리를 잘해야 프로그램을 주도한다는 사실이다. 맛있게 먹으면 더욱 좋다. 심지어 전문 요리사까지 방송에 출연하여 예능 캐릭터가 되길 마다치 않는다. 그야말로 '쿡방' 열풍이다.

시청자의 기호에 맞춰 방송이 제작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시청자가 감동한다면 당연히 오디션 프로그램이 범람하고, 육아 예능이 바람을 타면 아이들을 방송 전면에 내세우는 건 프로그램을 만드는 제작사와 방송사의 생리이다. 마찬가지로 '먹방'과 '쿡방'이 인기를 끌면, 요리 잘하는 연예인을 섭외하거나 전문 요리사를 통해 그럴듯한 '그림'을 만든다. 인기에 편승하는 것은 쉬운 길이다. 굳이 멀리 돌아서 갈 필요도 없거니와 고생을 자처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너나 할 것이 '쿡방'만을 향해 내달린다는 점이다. 새로 기획된 프로그램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명확한 기존 프로그램마저 '쿡방'에 동참하는 건 과연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스스로 색깔을 포기하면서까지 대세에 편승하려는 모습을 보면 누구를 위한 방송인지 생각하게 된다. 이게 정말로 시청자가 원하는 바일까.

지난 30일 방영된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은 중화요리의 고수를 스튜디오에 모아 25인분 짜장면 만들기 경연을 펼쳤다. 전문 요리사가 스튜디오에서 요리를 만들고, 이를 연예인이 중계하는 모습은 마치 JTBC <냉장고를 부탁해>를 떠올리게 했다. 일반인 출연자가 장기를 뽐내며 웃음과 감동을 안기던 프로그램이 졸지에 뻔한 쿡방으로 전락한 것이다. 물론 다른 '쿡방'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스타킹>은 '쿡방의 1인자'인 백종원까지 섭외하며 그림 만들기에 나섰고, 결과적으로 '요리킹'이 되어버렸다.

 ‘먹방’과 ‘쿡방’을 연상케하는 <힐링캠프> ‘미식캠프’ 특집.

‘먹방’과 ‘쿡방’을 연상케하는 <힐링캠프> ‘미식캠프’ 특집. ⓒ SBS


지난 1일 방영된 SBS <힐링캠프> 역시 마찬가지다. 이날 <힐링캠프>는 MC와 게스트가 팀을 이뤄 삼시세끼를 해결하는 '미식캠프' 특집으로 꾸며졌다. 직접 요리하는 콘셉트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먹방'과 '쿡방'을 절묘하게 버무린 특집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간 <힐링캠프> 출연자가 MC를 위해 요리하며 '쿡방'으로의 변신(?)을 꾀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대놓고 '먹방'의 장을 마련했다는 점은 정체된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돌파구 혹은 처절한 몸부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 덕(?)에 그간 <힐링캠프>가 쌓아온 '힐링의 가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지만 말이다.

<힐링캠프>가 '미식캠프'를 마련한 것이야말로 지금의 현실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한 번 유행을 타면 너나 할 것 없이 쏠리는 현상. 이는 방송을 넘어 우리나라 국민의 특성이기도 하다. 몰개성의 시대, 방송마저 하나의 트렌드에 갇혀 도전하지 않고 안전한 기획만을 추구하는 현실은 어딘지 아쉬움이 느껴진다.

혹자는 이 바쁘고 살기 힘든 세상에 '쿡방'이 치유의 가치를 전달한다고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과연 '쿡방'을 통해서만 힐링을 느끼는 사회를 건강하고 유쾌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다.

'쿡방'은 분명 예능의 가치가 뛰어난 콘텐츠다. 재미도 있고, 공감하기도 쉽다. 하지만 '쿡방'의 열풍을 자세히 뜯어보면, 그 안에는 '먹는 것' 말고는 위로받을 게 없는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이 엿보이기도 한다.

요리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이며, '쿡방'은 늘 방송 콘텐츠로 우리 곁에 자리해왔다. 그런데 왜 우리는 지금에 와서 '쿡방'에 열광하는 것일까. 먹고 살기 힘든 세상, 타인의 '먹방'과 '쿡방'을 통해 진정한 위로를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밥상의 양극화'라는 현실에서 찾아낸 또 다른 도피처는 아닌지,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박창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saintpcw.tistory.com),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쿡방 스타킹 힐링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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